#28. <시험을 지배하는 이류무사(3)>
“세번째 시험은 실전 무공 대련입니다. 앞선 두 차례의 시험으로 선발된 16명의 수험자들은 앞으로 나와주십시오.”
이자곤의 말에 결국 16명 안에 들지 못한 아이들은 대연무장 한쪽에 자리했다.
기이하게도 전생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아이들의 얼굴엔 아쉬움이나 억울한 감정 같은 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단지 계철영이 개인의 금력을 위해 독보하지 않는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시험에 후회가 없는 듯 보였다.
“비무에 따라 등수를 선발할 것이니 수험자들은 최후까지 최선을 다해주십시오.”
그때, 연무장 밖의 아이 중 하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아버지가 객잔 주방에서 일하는 곽씨네 집 세 번째인 곽 삼남이었다.
“시험은 본래 1명만을 뽑아 무림학관에 가는 것 아닙니까? 왜 등수에 따라 선발하는 것입니까?”
“물론입니다. 허나 열심히 수험 공부에 매달린 수험자들을 치하하기 위해 특별상도 준비되어 있으니 최선을 다해주십시오.”
16명에 들었던 아이들의 눈동자에도 번쩍 빛이 나기 시작했다.
이미 상위권을 사련과 금표 형제가 싹 쓸어가 버린 상황에서 1등은 못 한다 하더라도 2등이나 3등의 기회는 잡으려는 것이다.
더구나 무림맹에서 준비한 선물들.
태을문에서도 쉬이 얻을 수 없는 귀한 것임이 분명했다.
“대사형, 어찌 된 겁니까?”
금표가 의아한 얼굴로 다가왔다.
“왜 그러느냐?”
“어째서 대사형 등수가 8등인 것입니까?”
나는 1차 시험의 계철영의 점수를 보고 등수를 맞추어 놓은 상황이었다.
“이게 다 수련을 열심히 하지 않고 나돈 결과가 아니겠더냐.”
금표가 혀를 차며 말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십쇼. 기출문제 서책을 서술하시고 개량된 소천검법까지 가르쳐 주신 사형이 결과가 이렇다고요?”
“이 녀석이. 지금 대사형한테 볼기를 제대로 맞아봐야 그 말투가 고쳐지겠구나.”
금표 삼형제와는 어린 시절부터 형제처럼 지내왔던 터라 격의가 없었다. 더구나 삼형제의 제일 큰 형인 금표와는 한 살 차이밖에 나지도 않고.
“솔직히 말하십쇼. 지금 사제들한테 양보하시려는 겁니까?”
“녀석아, 어차피 세 번째 시험에선 내가 우승 할 텐데 첫 번째와 두 번째 시험에서 점수가 부진한 것이 무엇이 문제겠더냐.”
“…….”
대답은 금표 대신 옆쪽에서 들려왔다.
“그런 건가?”
고개를 돌린 금표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숙이곤 안절부절하다가 자리를 떠버렸다.
아무리 어른스런 금표라 해도 견성사자 앞에 선다는 건 불편한 탓이었다.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자네 점수가 이런 상태로 나온 것 말일세.”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공부를 게을리하고 수련에 자주 빠진 탓이겠죠.”
“그런 자가 족집게처럼 시험 문제를 쏙쏙 뽑아냈고 말이지?”
이자는 그걸 어찌 알지?
“상위 점수를 받은 수험자들에게 이야기를 들었냬.”
“문제가 있는 겁니까?”
“문제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시험이 유출되지 않고서야.”
“무림맹의 견성사자님의 시험지를 유출한다니 그거 참 듣기만 해도 무서운 일이군요.”
이자곤의 말은 애당초 성립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시험지 관리는 군사부의 최종장인 만통부도 함부로 관여할 수 없도록 되어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험지 유출이 됐다? 시험이 잘못됨은 물론이고 백팔봉의 직위도 흔들릴 판이다.
지금 이자곤은 그걸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네 이야기를 듣고 싶군.”
“곧 시험이 시작되지 않습니까.”
대연무장 위에는 종합점수 일등인 사련과 구등인 운지향이 섰다.
그리고 잠시 후 심판을 보는 견성무사가 경기 시작을 알렸다.
“자네는 공교롭게도 팔등이지.”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전생에 시험지를 봤다고 말할 수 없으니 자연스레 둘러대는 말이 흘러나왔다.
“어차피 시험은 요식행위에 가깝지 않습니까. 각 문파별로 대부분 무림학관에 갈 사람을 정해놓은 거고요. 저희의 경우엔…… 조금 특별합니다만.”
내가 슬쩍 계철영을 보았다.
경기장을 보는 그의 눈이 잠을 못 잔 사람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흥분한 듯 가슴이 들썩거리고 있었다.
“자네 사문의 사정은 알고 있네. 그리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 내가 궁금한 건 그거네. 이번 시험은 이전과 달라. 전 회차 시험을 참고 한다고 예상 문제집을 뽑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지.”
이자곤은 중언부언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듯 보였다. 나는 순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 좋았다?”
“시험을 핑계로 나중에 무림맹에 가서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가르쳐 본 겁니다. 동기부여도 되고 좋지 않겠습니까.”
“그럼 왜 팔등에 스스로를 맞춘 건가?”
“그런 걸 맞출 수 있는 사람이…….”
“자네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들었네. 한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는다지?”
이자곤은 훗날에 군자철검이란 별호를 날릴 정도로 유명해지는 사람이다.
철두철미한 성격으로 빈틈없는 비무를 펼치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 성격이 여기서부터 발현되는가 보다.
그를 얼렁뚱땅 설득하는 것엔 한계가 있어 보였다.
“시험을 공정하게 보기 위해서입니다.”
“이 시험이 공정하지 않다 이건가?”
“시험은 공정하지요. 하지만 전 그래도 사제들과 같은 자리에서 시험을 보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그게 일부러 등수를 낮춘 결과이고?”
“그렇지요.”
“왜 굳이 그런 짓을 한 거지?”
“이미 시험을 불공정하게 보는 이가 있지 않습니까.”
내 시선이 계철영에게 향했고, 이자곤의 시선도 나를 따랐다.
이자곤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 말했다.
“지름길이 때론 사로(死路)가 되는 것을 저 선배는 아직도 깨닫지 못했군.”
“말리지 않으십니까?”
“무얼 말인가?”
이자곤 수준의 고수가 이상함을 느끼지 못할 리 만무한바.
그는 일부러 모르는 척을 하고 있었다.
“선배의 면을 세워줘야 하는 겁니까?”
지난날 이자곤은 장사군에게 시험의 엄격함을 말하며 그의 의견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완전히 묵살시켰다.
그 덕분에 제자들 또한 이 시험이 공정하다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이고.
“견성사자는 어떤 무림맹의 기관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네. 하물며 지나가 버린 옛정 따위야.”
“그렇군요.”
“뭔가 의심을 하고 있는 듯한데 억울함을 호소하지 않는 건가?”
“상관없습니다. 제가 공정하게 만들 생각이니까요.”
이자곤의 시선은 웬 신기한 생명체를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와아아아아아!”””
“멋지다!”
그때 막 운지향의 검이 날아가며 견성무사들이 홍사련의 승리를 선언했다.
제자들과 당주들도 훌륭한 사련의 검술에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
시험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앞선 집단에서 사련은, 제자들과의 비무마다 삼십초식을 넘기지 않았다.
자신이 몰래 배운 대진신공이나 섬뢰검법은 일절 펼치지 않았지만, 부생당에서 배운 공부만으로도 밤마다 문주의 개인 연무장에서 밤새 연습을 하는 사련을 당해낼 제자는 없었다.
4강까지 올라왔던 은호를 꺾고 사련이 결승을 확정 지었다.
여기까지는 크게 전생과 다를 것이 없었다.
반면에 후위 집단인 나와 계철영의 집단에선, 계철영이 압도적인 실력을 선보였다.
사련이 삼십초식을 넘기지 않았다면 계철영은 십초식을 넘기지 않는 기함을 선보였다.
삼차 시험에선 무공의 사용이 자유였기에 계철영은 삼영검을 사용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그의 검에 첫 번째 상대는 자신의 청강검이 잘려 나가 버리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다음 시합 상대는 계철영과 진소운이오!”
견성무사의 부름에 나와 계철영이 연무장 위에 마주 섰다.
여기서 이긴 사람이 사련과 마지막으로 맞붙게 된다.
“너를 결국 여기서 만나는구나.”
계철영은 평소와 달리 엄청난 투기를 사방으로 흩뿌리고 있었다. 갈무리 되지 않고 뻗어나오는 바람에, 앞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따끔거릴 지경이었다.
“피곤하십니까? 눈이 벌겋습니다.”
“그래. 맞다. 피곤하여 얼른 끝내고 쉴 생각이다.”
계철영이 기수식을 펼치자 가운데 섰던 견성무사가 뒤로 물러났다.
나는 마찬가지로 기수식을 취하는 대신 계철영에게 다가갔다.
“그게 아니겠지요. 폭혈단 때문에 빨리 끝내고 싶으신 거 아닙니까.”
“…!!!”
계철영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전생에서도 계철영은 뒤를 바짝 쫓아오는 홍사련을 걱정하여 폭혈단을 사용했다.
내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정마대전이 벌어지고 만통부의 자료들을 읽으면서였기에, 잘못을 다잡기엔 한참이나 지나가 버린 후였다.
“어찌…….”
“전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것입니다.”
계철영이 뭐라 하기도 전에 나 또한 기수식을 취했고, 곧장 계철영의 목을 찔러 들어갔다.
챙!
검을 쳐내는 계철영의 힘이 묵직하게 밀려들어 왔다.
“네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럴까요?”
채채채채채챙.
난 오성의 내공을 끌어올려 본래의 소천검법을 펼쳤다.
자신만만한 계철영은 삼영검을 펼쳤고, 내가 휘두른 쾌검들은 그의 검영에 막혀 뚝뚝 끊기기 십상이었다.
“어디 그 잔재주라도 부려봐라. 손을 내밀면 손을 자를 것이고, 발을 내밀면 발을 자를 것이다. 난 남궁산처럼 우유부단하지 않다!”
계철영은 남궁산과의 일로 불만이 많이 쌓인 것 같았다.
폭혈단의 힘이 가득 담긴 계철영의 검은, 바위처럼 무거웠다.
난 검세를 파격식 소천검법으로 바꾸어 다시 대응하기 시작했다.
챙! 챙! 챙!
요혈을 노리는 파격 소천검법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계철영은 그 속도를 미처 따라오지 못했다.
갑자기 불어난 내기의 조절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계철영의 옷가지가 하나둘 잘려 나가고, 그 안으로 작은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이런 개자식!”
피를 본 계철영이 전신의 기운을 모두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살기는 이름 날리는 고수들 못지않을 만큼 강렬했다.
“네놈을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건진 모르겠지만, 지난날의 모든 원망을 담은 계철영의 검은 더 이상 비무 수준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기이한 것은 견성사자인 이자곤이 비무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는 것.
‘뭐지?’
나는 잠시 딴생각을 접어두고 내공을 칠성까지 끌어올렸다.
계철영은 금방이라도 베어 넘길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러지 못하는 자신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고, 그런 그의 마음은 그의 검에 드러났다.
쾅! 쾅! 쾅!
분명 내기의 전부를 끌어올린 것이 분명한 계철영의 검격.
시험엔 보검을 사용할 수 없다는 조건 때문에 흑룡검을 가져오지 못한 나는, 청강검의 검편이 사방으로 날리는 것을 가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네놈이 망쳤다! 네놈이 모든 것을 다 망쳤어!”
나와 계철영의 비무 속도는 이미 수험자 수준을 아득히 넘은 것이었다.
제자들은 계철영과 나의 비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쿠쿵. 펑!
대연무장에 계철영의 검이 내려쳐지자, 대리석이 조각조각나며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다.
“이, 이거 말려야 하는 거 아니요?”
“철영이 상태가 좀 이상한 것 같은데?”
당주들은 물론 견성무사들도 이상함을 느끼고 이자곤을 바라보았지만, 이자곤은 말없이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리고 난 때가 됐다 생각하여 십성의 내공을 모두 끌어올렸다.
창!
내 검과 맞부딪친 계철영이 처음으로 세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사형, 지금 딱 백초식째요. 아마 이 이상하면 위험할 듯한데 괜찮겠소?”
“!!!”
폭혈단의 안정범위는 백초식.
이미 백이십초식을 발휘한 계철영은 안정 범위를 넘어선 뒤였다.
“그냥 포기하시오. 무림학관 때문에 인생을 포기할 필욘 없으니.”
“네놈이…… 네놈이…… 나의 큰 뜻을 끝까지 방해하는구나!”
계철영의 몸에서 더욱 커다란 기파가 터져 나왔다.
폭혈단이 두 번째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헙!”
“저건!”
“검기라고?!”
사람들은 계철영의 검에 어린 붉은 기를 보고 기함을 터트렸다.
본래 수준 이상의 힘을 사용한 덕분에 계철영은 검기까지 발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좋아할 일은 절대 아니다.
이제 계철영은 단전에 영구한 상처가 남고 잘못하면 주화입마까지도 갈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안 돼!”
관중석에서 누군가 목소리를 쥐어짜듯 외쳤지만, 거기에 시선을 돌리는 사람은 없었다.
“죽이겠다. 죽이겠다. 반드시 죽여버리겠다!”
계철영은 정신을 상실한 사람처럼 달려들었다.
“사형, 알고 있소? 사형이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
계철영은 내 얘기가 이미 들어오지 않는지 광인처럼 달려들었다.
이에 나 또한 도망치지 않고 계철영을 향해 달려갔다.
전생에 무림학관을 통해 무림맹의 간부가 되고, 대사형이란 직위를 이용해 사제들을 노예처럼 부려먹었던 죄.
정마대전의 최일선에 자신의 공을 위해 제자들을 몰아넣었던 죄.
태을문이 위급한 상황에 부닥쳐있었음에도 나 몰라라 했던 죄.
“그 모든 죄를 이곳에서 청산하겠소!”
“죽어! 죽어! 죽어! 죽어!”
계철영은 연신 죽어를 외치며 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렀고, 난 그 검격들을 피해 그의 품 안에 들어가 유운문의 이화접목의 수인 연화(蓮花)를 펼쳐 계철영을 세 바퀴나 돌려버렸다.
퍽. 쿵.
계철영은 아픔을 느끼지 않은 사람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에게 달려들었다.
채채채챙.
불안전하지만 검기는 검기.
평범한 청강검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증거로 내 청강검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꼴 좋구나! 진소운!”
계철영은 자신의 승리가 이미 확실한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그럴 법도 하지.’
일류의 반열에 들어야 펼칠 수 있는 검기는 이 나이대의 아이들에게 그 어느 신검 못지않은 동경의 대상이었으니까.
“네놈을 죽이고! 무림학관에 가서! 출세할 것이다!”
번들거리는 입술과 충혈된 눈빛.
계철영은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나를 죽이면 실격패요. 사형.”
“닥쳐라!”
붉은 기의 크기가 두배로 커지며 계철영은 전력으로 삼영검을 펼쳤다.
세 개의 삼엄한 검기가 요혈을 노리고 옴짝달싹 못하게 엄습했다.
폭혈단을 사용했다지만 분명 뛰어난 한 수 임에는 틀림 없다.
‘하지만….’
전생에 나의 적들은 검기는 물론이고 검강을 장난감처럼 뿜어내는 놈들이 즐비했다.
“겨우 이런 성취로 그들을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까!”
한 발.
삼영검의 검세 안으로 내딛은 발걸음과 함께 삼영검의 검기가 요혈을 아슬아슬 스쳐지나간다.
두 발.
다시 한번 내딛은 발걸음을 따라 붉은 검기가 귓불을 스치고.
세 발.
마지막으로 휘둘러지는 삼영검을 향해 소천검법을 찔러 넣는다.
쐐애애액.
챙!
고막을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내가 들고 있던 청강검의 절반이 날아가 버렸다.
그 광경에 계철영이 두 눈을 번쩍 뜨며 웃었다.
“내가 이겼다 진소…….”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가 처낸 탓에 검과 함께 바깥으로 벌어진 품을 뚫고 나는 마지막 발걸음을 내딛었다.
“평생 속죄하며 사시오. 사형.”
나는 절반만 남은 검을 두 번 휘둘렀다.
촤아아아악
촤아아악.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리로 한번,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허리로 한번.
두 개의 검상이 계철영의 몸을 지나가고.
푸칵!
과육이 터지듯 계철영의 몸에선 핏물이 터져 나왔다.
“철영아!”
관객석에서 바라보던 계연석이 섬전처럼 달려와 계철영을 안아 들었다.
“정신 차려라! 철영아!”
온 몸에 시뻘건 피를 뒤집어 쓴 채 눈동자가 돌아가 있는 모습에 계연석이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다들 뭣 하느냐! 저놈! 진소운이 우리 철영이에게 살초를 썼다!”
계연석의 말에 이자곤이 연무장 위로 올라왔다.
“승부가 났소. 이번 비무의 승자는 진소운이오.”
이자곤의 말에 함께 온 의원에게 계철영을 맡긴 계연석이 입에 거품을 물었다.
“무슨 소리! 저놈은 살초를 썼다! 네놈 두 눈은 옹이눈깔이라도 된단 말이냐!”
“애당초 비무에서 검기를 일으키고 먼저 살초를 쓴 것은 계철영이오!”
“……하지만 …하지만….”
“돌아가시오. 아무리 학부모라 한들 이 이상의 행동은 묵과하지 않겠소.”
이자곤이 고개를 돌려 신기한 듯 나를 바라 볼 때.
“크흐으… 죽인다… 죽인다….”
의원의 품에 안겨 있던 계철영이 벌떡 일어났다.
눈 전체가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겨울도 아닌데 입에선 허연 김이 뿜어져 나온다.
폭혈단이 폭주했다는 증거.
‘평생 침대 위에 누워 지내야겠군.’
그렇게 내가 돌아서려는 순간.
“네놈 때문이다… 네놈! 네놈이 내 계획을 다 망쳤어.”
계철영이 의원도 제 아버지도 뿌리치고 바닥을 박차 날아올랐다.
“……내 이곳에서 끝나는 한이 있더라도 네놈은 반드시 죽이겠다!”
계철영의 음성이 쩌렁하게 울리며 제자들이 어깨를 움찔 떠는 순간. 나 또한 대응하기 위해 자세를 바로 잡았다.
하지만.
쉬익.
나와 계철영 사이에 서있던 이자곤이 빠르게 날아오라 계철영의 머리 위에 나타나더니 그대로 수도를 내리쳤다.
퍽. 꽝!
단 한 수에 연무장에 매다 꽂힌 계철영은 칠공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철영아! 철영아!”
계연석이 철영이에게 다가와 상태를 살폈다.
“이 무슨 짓이냐! 견성사자가 수험자를 이리 만들다니!”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바락바락 이야기를 하는 계연석을 향해 이자곤이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수험자가 금지약을 사용했을 경우 받는 처벌에 대해 알고 있소?”
“!!!”
“알고 있어야 할 것이오. 내 특별전형 시험이 끝나는 즉시 계룡상단에 방문할 예정이니.”
“…….”
이를 꽉 깨문 계연석이 돌아서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장사군!!! 장사군!!! 이 개자식!”
일이 이 지경까지 치달은 원인을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계연석의 옆에 찰싹 붙어 귀엣말을 하던 장사군과 두 명의 조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단주님! 우선 도련님을 옮겨야 합니다.”
“크흑! 뭣들 하느냐! 어서 철영이를 옮겨라!”
계연석이 입에 거품을 물고 말하자, 계철영을 둘러업은 무사와 의원들이 태을문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역시나 알고 계셨군요.”
“자네야말로 왜 더 강하게 이야기하지 않은 거지? 자네가 더 강하게 말했다면 계철영은 이런 사태까지 가지 않았을 텐데.”
난 어처구니없는 심정으로 말했다.
“지금 저더러 왜 견성사자에게 대들지 않았느냐 말씀하시는 겁니까?”
“잘못된 규칙이 있다면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이야기했었어야지.”
이자곤은 마치 무언가를 시험했던 사람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제 보니 아주 뻔뻔하시군요.”
“자네는 내 예상과는 좀 다른 인물이었고.”
대체 나한테 무슨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인지 이자곤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감당할 수 없었다면 어떻게든 시험을 중지시켰을 겁니다.”
“그럴 능력이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공정해야 할 시험에 금지약을 쓴 행위는 기사멸조의 죄에 해당하지요. 아시다시피 우리 태을문은 정상적인 관례로는 그를 처벌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법이지요.”
“허, 그래서 일부러 알면서도 그대로 두었다?”
“네.”
이자곤은 두 눈이 가늘게 흔들렸다.
“그리고 이제는 사자님께서 이 사실을 알면서도 그냥 넘어가신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이자곤은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는 듯 입술을 씰룩거렸다.
“누구에게 말인가?”
“교육각은 만통부 소속 아닙니까. 그곳에 상소를 올릴 생각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분이 있어서요.”
물론 그와 가까이 지냈다간 만통부에 자리를 잡아야 하므로 이건 그저 협박에 불과했다.
그러자 이자곤이 숨기지 않고 웃었다.
“교육각은 만통부 소속이지만 각주의 명을 제외한 외부의 영향은 받지 않지. 허나 총군사님의 부탁이라면 조금 다르지.”
그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림맹을 떠나기 전 총군사께서 그러시더군. 태을문의 진소운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시면서 그에 대한 보고서를 올리라고.”
“!”
제갈소명은 내 거절에도 아직 나를 포기하지 않은 듯 보였다.
“덕분에 뛰어난 머리와 그보다 더 뛰어나 보이는 무공 실력도 보고할 수 있겠어. 총군사님이 좋아하시지 않겠나?”
나는 처음으로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하고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