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신검을 놀라게한 일류무사(2)>
나는 남궁세가의 무사들과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본래 태을문으로 돌아가기 전에 남궁세가에 들르기로 했었고, 남궁산이 ‘반드시 함께 가야 하네. 왜 자네를 그냥 보냈냐고 할아버님이 대로하셨네.’라고 말하며 물러서지 않을 기세를 보여 결국 함께 움직이게 되었다.
“한동안은 보기 힘들겠군.”
작별의 순간, 모용상원이 무거운 한숨을 내뱉었다.
“시간이 나게 되면 모용세가에 들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위로했지만 모용상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네. 바쁜 사람 오라 가라 할 수 있겠나. 내가 태을문에 한번 방문하지.”
“……어, 전 아마 이런저런 일들로 태을문에 없는 시간이 많습니다.”
“그래? 더욱 좋군.”
“네?”
뭐가 좋다는 건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모용상원.
“아 참! 자네 혹시 싫어하는 여성상이 있나?”
뜬금없는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요. 누굴 만나본 적이 없어서.”
슬프게도 이번 생에서도 전생에서도 누군가와 사귀어 본 적이 없었다.
갑자기 나 자신이 지금 뭐 하고 있는 건지 자괴감이 들었다.
“그으래?? 그럼 자네는 자네보다 훨씬 강한 여자에게 거부감 들거나 그러진 않는가?”
지금 나보다 강한 여자라 한다면 내 또래에선 찾을 수 없을 텐데.
아직 내 무공의 고하를 파악하지 못하는 모용상원의 질문은 쓴웃음을 짓게 할 뿐이었다.
“그런 것보단 마음이 고운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허허! 그럼 걱정 없겠군.”
“……?”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만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용상원을 뒤로하고 우린 다시 안휘성으로 향했다.
남궁세가의 무사들과 함께 움직이는 행렬은 무척이나 편안하기 그지없었다.
우선 길을 막고 서는 자들이 없었다.
백인이나 되는 인원들이 말을 타고 맨 앞엔 기수가 남궁세가의 깃발을 들어 올린다.
그럼 통행세를 비싸게 받기로 유명한 산채들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중·대형 도시에는 남궁세가에서 운영하는 상단이나 다루 등이 있어 따로 여곽을 잡지 않아도 되고.
아무것도 없는 경우엔 남궁세가의 선발대가 먼저 달려 나가 객잔을 통째로 빌린다.
더구나 내가 배정받는 객실이나 방들은 모두 남궁산, 남궁선화와 같은 등급의 것들이었기에, 전생과 이번 생을 통틀어 가장 편안한 여행이라 할 수 있었다.
남궁세가 도착을 하루 남겨둔 거리.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구엄산을 앞에 두고 남궁선화가 말을 바짝 붙여왔다.
“정말 여자가 남자보다 더 강해도 상관없어요?”
긴 여정 동안 함께 움직이고 함께 밥을 먹다 보니, 남궁산과 남궁선화와는 거의 격식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게 무슨 이야기입니까?”
“……아니, 그 뭐야. 청명표국에서 소가주님이랑 했던 이야기 있잖아요…….”
“아…….”
전생에서 대부분 여자 무사들은 나보다 더 강했다.
가깝게는 홍사련이 나보다 무공의 성취가 높았고, 훗날 만나게 되는 모용설은 거의 까마득한 차이가 났었고.
“두 남·녀가 사랑을 하는 데 누가 강하고 누가 약하고 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래도……, 남자들은 자기보다 강한 여자를 별로 안 좋아하잖아요.”
“오히려 좋지 않습니까. 어디 가도 불안할 일 없고. 나를 지키기 위해 앞서준다면 더욱 좋을 거 같습니다만.”
“흠음…….”
남궁선화는 묘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여잘 만나본 적이 없다는 것도 사실인가요?”
청명표국에서 조금 껄끄러운 일이 있었지만, 친해진 뒤론 남궁선화는 그 일은 잊은 듯 나를 친근하게 대했다.
여자를 대하기가 쉽지 않았던 나였지만 그녀가 매번 질문을 하며 대화를 걸었기에 별 부담도 없었다.
다만, 조금 불편한 점이 있다면 남궁선화의 외모가 워낙 뛰어난지라, 그녀가 내게 말을 걸고 있는 모습을 보면 지나가던 무인들이나 행인들이 한 마디씩 욕하는 것이 들린다는 것이었다.
“허! 사내놈이 여우 꼬리가 붙어 있나 보군.”
“돈이 많은가 봐.”
“남궁세가의 여식이 저리 따르는 걸 보면 집안이 대단한 거겠지.”
저들끼리 하는 말을 듣게 된 거라 뭐라 할 수도 없었고, 나 또한 전생에는 저들과 같이 질투했던 처지였기에 그들에게 큰 분노를 느끼진 않았다.
“평생을 태을문에서 자랐는데 제가 누굴 만날 수 있었겠습니까. 또 제가 태을문이라 하면 관심 두던 여자도 도망치겠죠.”
“관심 두던 여자는 있었어요?”
“…….”
왠지 모르게 계속 추궁당하는 느낌이었다.
“없었던 것 같군요.”
“……‘없었던 것 같다?’ 한번 기억한 일은 절대 잊어먹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요?”
내가 왜 계속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하는지, 어째서 계속 대답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마령고원에서 만났을 때보단 확실히 편해지긴 한 것 같았다.
‘어쩐다…….’
나는 복잡한 눈동자로 남궁선화를 바라봤다.
내가 마령고원에서 그녀를 구해내긴 했지만, 문제는 여전히 그녀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남궁선화를 잃은 일로 남궁세가는 큰 전쟁을 겪게 된다.
미타성수에 관련된 문파들을 멸문시키고 그 과정에서 세가가 크게 흔들렸다.
그 와중에 남궁세가의 방계가 남궁산을 공격하게 된다.
남궁산의 실력이야 워낙 뛰어난 탓에 죽음을 맞이하진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깊은 내상을 입어 평생 제대로 공력을 쓸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남궁세가의 방계는 이를 빌미로 직계를 고립시키고 남궁세가 전체를 장악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본래부터 외부에 관한 일은 모두 방계에 일임하고 있었음에도, 직계가족들이 권리를 모두 채간다는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점은, 신검이 결국 검을 들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믿었던 부분은 아무리 그래도 자신들이 남궁세가의 사람이라는 것.
절대로 신검이 자신의 혈육을 직접 죽여 가문과 자신의 명예를 땅에 떨어뜨리는 일은 없을 거라는 안이한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고 범인을 알았을 때, 신검은 결국 검을 들어 방계의 ‘남궁’이라는 성을 쓰는 자들을 모두 베어버렸다.
이 일로 인해 남궁세가의 세는 확연하게 줄었고, 결국 마교의 무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멸문하고 만다.
방계의 음모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들의 계획을 시작하는 신호탄으로 직계의 누군가를 노릴 것이 분명했다.
‘어차피 노릴 것이라면 남궁산이 아닌 남궁선화를 노리겠지.’
남궁산은 비록 집안일 때문에 활동하진 못하지만, 무림학관 졸업생 중 가장 성적이 뛰어난 이들만이 들어가 활동한다는 용봉지회 소속이었다.
이미 일류를 지나 절정에 다다르려 하는 그를 노린다는 건, 남궁세가 방계의 입장에서도 부담인 상황.
결국 노리는 이는 남궁선화가 될 것이 분명했다.
난 알고도 이야기 해주지 못하는 상황에 안타까웠다.
“왜 대답을 못 하는 거죠? 기억나는데 말하지 않는 건가요?”
“선화 소저.”
“네?”
“곧 구엄산이군요. 잠시 대화를 멈출 필요가 있겠습니다.”
남궁선화의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잘 빠져나가시네요. 남궁세가의 깃발을 보고도 덤벼들 산채가 어디 있다고.”
그녀의 안도와 달리 내 기감에는 지금 구엄산에 숨어있는 자들이 느껴졌다.
‘오백 정도 되는 건가?’
정확하게 다 느껴지진 않지만, 대략 그 정도 되는 인원이 최대한 기척을 숨기고 있었다.
그동안 산을 넘을 때와는 꽤 다른 반응이다.
그때는 자신들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최대한 멀리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면.
지금은 사냥을 준비 중인 호랑이가 몸을 숨기고 있는 모습.
본격적으로 구엄산에 들어서자, 넓었던 길이 조금씩 좁아지기 시작했다.
뒤를 바라보니 남궁세가의 무사들은 긴장이 풀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직 느끼지 못했는가.’
그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쯤.
다행히 남궁산이 뭔갈 느꼈는지 주먹 쥔 손을 번쩍 들었다.
“정지.”
히이잉.
갑작스레 발걸음을 멈춘 탓에 말들이 투레질했다.
“경계.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
남궁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재깍 투기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과연 명문세가의 무사들다운 모습이었다.
“천천히 움직인다.”
다시 말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점점 길이 좁아져 이제는 말 두 필이 겨우 길을 지나갈 수 있을 때쯤.
길을 떡하니 막고 선 커다란 바위가 나타났다.
“발검!”
채채채채챙.
남궁산의 외침과 동시에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그들도 앞에 있는 바위가 심상치 않은 것이라는 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잠시간의 정적.
그리고 이어지는 시위 당기는 소리.
난 재빨리 외쳤다.
“화살입니다!”
슈슈슛.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절벽 위에서 화살이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크악!”
“커흑!”
부지불식간에 화살을 맞은 무사들이 길 반대편으로 굴러떨어졌다.
다른 무사들은 그들을 구하러 갈 사이도 없이 말을 버리고 곧장 엄폐물 뒤로 숨거나 날아드는 화살을 쳐내기 바빴다.
쿠르르르릉. 쾅. 쾅.
뒤쪽에서 산사태 소리와 함께 거대한 돌무더기가 떨어져 퇴로까지 막혀버렸다.
절벽 위에 선 적들은 엄폐물에 몸을 가린 채 미친 듯이 화살을 쏘아내고 있었기에, 절벽을 타고 올라가는 것도 여의찮았다.
“제길! 말들을 모두 버려라!”
이미 대부분 말들이 화살을 맞고 죽어가고 있는 상황.
남궁세가의 무사들은 말들을 경사 밑으로 밀어버리고 겨우 공간을 확보할 따름이었다.
남궁산이 화살 비를 뚫고 절벽 위로 올라가 보려 했지만,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상황.
난 재빨리 남궁산에게 말했다.
“선배님. 잠깐만 시간을 벌어주십시오. 제가 올라가 보겠습니다.”
“자네가?”
“네.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알겠네.”
검을 도로 넣은 남궁산이 양손에 공력을 모았다.
“으아아아!”
그리곤 천풍장력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뻐버버버버벙.
공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절벽 일부가 무너지고, 그 사이로 화살을 쏘아대던 괴한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휘이이잉-.
나는 그 틈을 타고 비룡조를 절벽 사이에 박아넣은 뒤, 벽을 박차고 단박에 절벽 위로 뛰어올랐다.
“위, 위다!”
갑작스레 튀어 올라온 나를 보고 대경한 궁사들이 몇몇 화살을 쏘아내었지만, 다시금 회수한 비룡조를 쏘아 바닥에 내려찍는 나를 맞힐 수는 없었다.
“크아아악!”
더 이상 남궁세가의 눈을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진 순간.
나는 쌍천검결을 부챗살 펴듯 흩뿌렸다.
“커흑.”
“컥!”
“푸헉!”
순식간에 나타난 열다섯 자루의 환검이 궁사 다섯의 목숨을 빼앗는다.
절벽 위에 도열한 궁사들 뒤로 칼을 찬 무사들이 끼어들려 했지만, 줄지어 선 궁사들 때문에 쉽지 않았다.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음에도 시위를 당길 수 있는 궁사가 얼마나 되겠는가.
나는 핏물을 비처럼 맞으며 궁사들 사이를 종횡무진으로 움직였다.
이윽고 무사들이 하나둘 다가와 검을 맞부딪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의 실력의 고하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실력은 일류와 이류 사이. 무공은 흑도 계열인 것 같군. 궁사들은 퇴역한 군인들을 쓰는 건가?’
안휘성에는 이미 남궁세가라는 터줏대감이 있는 만큼, 커다란 흑도 세력이 없었다.
고로 이들은 성 밖에서 온 사람들이었고, 감히 남궁세가임을 알면서도 습격을 자행했다는 것이다.
‘방계가 벌써 움직인 건가?’
하긴 전생에선 이미 왕소소가 죽고 왕금산이 염상의 직위를 포기했을 때 그 염상의 자격을 차지한 창궁상단의 움직임이 활발했었다.
되려 지금 움직인 것도 어찌 보면 늦은 상황이었다.
“소운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화살비가 멎자,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절벽을 타고 올라왔다.
“괜찮습니다. 아래 피해는 심각합니까?”
“아직 괜찮습니다. 근데 화살 비가 멈추자마자 경사 밑에 매복하고 있던 적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앞뒤를 막고 양옆에서 공격한다.
천하의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상대일지라도 오백 정도면 해볼 만한 숫자긴 했다.
“전 우선 궁사들을 처리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남궁세가의 무사들은 나에게 별 기대를 하지 않는지 선뜻 맡기곤 칼을 든 자들을 상대해 갔다.
나는 절벽 끝을 오가며 궁사들을 처리하고, 절벽에서 올라오는 자들을 향해 비룡조를 쏘아 그들을 끌어 올렸다.
“감사합니다. 공자님!”
얇은 줄에 어찌 그런 거력이 담겨있을 수 있느냐 물을 사이도 없었다.
어느 정도 인원이 모이자 그들은 곧장 창궁검진을 펼치기 시작했다.
“발진!”
창궁검진이 만들어지자 중과부적으로 보였던 적들도 쉽사리 남궁가의 무사들을 꺾을 수 없었고, 되레 그들의 날카로운 검에 고혼이 되기 십상이었다.
절벽에 매달린 궁수들을 빠르게 처리한 나는 곧장 아래를 살폈다.
내가 남궁세가의 방계이고, 지금 이 습격을 준비했다면 필히 남궁산과 남궁선화 둘 중 하나를 죽이고 싶을 것이 분명하다.
아니나 다를까.
괴한들은 목숨을 걸고 남궁산과 남궁선화가 검진에 합류하는 것을 막고 있었다.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어느 정도 안정된 검진을 유지하는 것에 비해 두 사람은 위태하기 그지없는 상황.
남궁산의 주위론 다가오던 괴한들이 켜켜이 시체가 되어 쌓였지만, 반대로 남궁선화의 몸에는 상처가 계속 늘어가고 있었다.
나는 곧장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진 후 비룡조를 쏘았다.
나무에 살짝 박혀있는 비룡조의 탄성을 이용해 방향을 바꾼 나는, 나무를 박차고 바닥으로 떨어져 남궁선화의 뒤를 공격하려던 괴한 둘의 목에 소천검법을 찔러넣었다.
“고, 고마워요.”
자기 얼굴에 튄 피를 보고 괴한의 존재를 알아차린 그녀.
“인사는 나중에 하도록 하죠.”
나는 재빨리 소천검법을 쏘아내었다.
쐐액!
다시금 괴한 하나가 쓰러진다.
하지만 공간은 확보되지 않는다. 금세 새로운 괴한이 그 자리를 채웠다.
괴한들은 남궁산과 남궁선화에 집중되어 있었다.
더구나 그들 두 사람이 한곳에 모여있던 탓에, 적들의 수는 도저히 세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수가 아니었다.
“소저!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네?! 그게 무슨?”
난 남궁선화의 허리를 안아 들고 비룡조를 쏘아 그 탄성으로 날아올랐다.
“꺄아아악!”
다시금 거목의 비룡조를 쏘아 남궁선화를 절벽 위에 올린 후, 남궁산에게 전음을 날렸다.
-선배님, 바위 뒤로 숨을 수 있으시겠습니까?
전음을 쏠 정신도 없는지 남궁산이 싸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호를 드리겠습니다.
동시에 나는 품속에서 은색 봉우리 같은 것을 꺼내었다.
악양 흑점의 점주인 양군백이 친구비 대신 준 기물이었다.
‘이걸로 사천의 귀신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지만, 그래도 신검을 앞세우면 무마되겠지.’
백모화통(百毛火桶).
독과 암기의 종주인 사천 당가에서 제작된 금용 암기 중 하나였다.
이것이 어떻게 악양의 흑점에서 팔리게 됐는지 연유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이것만이 남궁세가의 무사와 나를 구할 수 있었다.
남궁산은 인파의 파도에 휩쓸려 이제 자취가 거의 가려질 때쯤이었다.
-지금입니다!
백모화통은 아무리 때려도 절대 발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특정한 방법으로 내기를 이용해 봉우리의 잎사귀들을 눌러주면 작은 충격에도 발동한다.
내 말과 동시에 몸을 날린 남궁산이 바위 뒤로 몸을 숨겼고, 나는 비룡조로 날아가는 백모화통을 툭 건드렸다.
차르르르륵.
봉우리를 감싸는 잎사귀들이 일제히 펴지며 그 안에서 우모침이 마구 흩날린다.
슈슈슈슈슈슈슈슈슈슈,
자신들이 쏘아내었던 화살 비처럼 우모침이 비가 되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살과 같이 확연하게 보이는 암기와는 달리, 우모침은 눈에 간신히 보일 정도로 은밀하기 그지없었다.
우모침을 맞은 괴한들이 볏단처럼 툭툭 넘어가기 시작했다.
“커흑.”
“큭!”
“헉!”
“사, 살려…….”
갑자기 오십에 달하는 인원이 속절없이 죽자, 장내에는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다.
곧이어 바위 뒤에서 뛰어오른 남궁산이 사자후를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대(大) 남궁세가의 정예들과 끝을 보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 남아있어라!! 우리는 적을 살려서 데려가지 않는다!”
그러자 주춤거리며 괴한들이 경사 밑으로 뛰어내리기 시작했고, 절벽 위의 괴한들은 뒤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소리를 질렀다.
“와아아아!”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남궁선화를 데리고 절벽 아래로 내려가자 남궁산이 다가왔다.
남궁선화를 안고 내려오는 나를 보는 남궁산의 눈빛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고맙네. ……또 신세를 졌군.”
“별말씀을요.”
남궁산은 금세 머리를 털고 다친 무사들을 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대체 누가 겁도 없이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이지? 녹림이 단체로 실성하기라도 했나?”
남궁산은 아직 감을 못 잡고있는 듯 보였다.
“위에서 보니 유달리 선배님과 선화 소저가 검진에 합류하지 못하게 하더군요.”
“응?”
여전히 멍한 눈빛의 두 사람.
“……제 생각이지만, 이번 습격은 명백히 두 분을 노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
“!”
거기에 방점을 찍었다.
“그런데 이상하군요. 어떻게 감히 안휘성에서 남궁세가의 직계를 습격할 생각을 했을까요? 그것도 오백이란 적지 않은 인원이 안휘성 전체에 퍼져있는 남궁세가의 눈과 귀를 피해서 말이죠.”
“…….”
“…….”
서로 시선을 맞춘 두 사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