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지옥 정시 제 '一'관문(2)>
500년 전 마교의 등장과 결성된 무림맹.
마교를 퇴치하고 남은 당시 무림맹원들은 결사의 증거로서 무림맹을 남겨두었다.
주인이 없던 강호에 무림맹을 중심으로 이권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무림맹은 급격한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급격한 성장에 수반되어야 하는 인재 유입은 혈연, 지연, 관연에 엮여 하양평준화를 만들었고, 이에 300년 전 무림학관을 설립하여 무림맹과 강호의 질서를 지키는 인재 양성을 시행했다.
그렇게 무림학관은 무인들에게 출세의 상징이 되었다.
무림학관을 통해 무림맹에 들어간 이들은 간부로서 대접을 받았고, 하급 무사로 무림맹에 들어간 이들은 부각주 이상 승진하기 불가능했다.
승진에 제한이 있는 하급 무사로서 무림맹에 들어가는 것은 명문대파에게 참을 수 없는 굴욕.
그렇게 시작된 입시경쟁은 끝없이 시험의 수준을 높이기 시작했고, 어느 새부턴가 사람들은 무림학관 정시를 지옥 정시라 부르기 시작했다.
“알겠느냐? 너희들이 무슨 시험을 보려 했는지?”
“…….”
“…….”
“…….”
나는 녀석들에게 말했다.
“돌아가거라. 너희를 말리지 않겠다.”
태을문의 모든 아이를 보호하고자 한다면 더 많은 무림학관 출신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에 와선 태을검제의 진전도 이었고, 여러 가지 조건들이 추가되었다.
굳이 모두가 목숨을 걸고 무림학관 정시를 볼 필요가 없는 것.
하지만 내 설득에도 금은동 형제는 물러서지 않았다.
“무슨 소립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십쇼.”
“저희가 무슨 각오로 그 훈련을 견뎠는데요.”
내 걱정과 달리 녀석들의 투지는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억울해서라도 따라갑니다.”
“놓고 가면 죽어라 따라갑니다.”
“저도요!”
하긴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두고 간다면, 나중에 저 삼형제가 나한테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지.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지?”
“태을문의 문도는 후회하는 거 아니라고 했습니다.”
“누가?”
“대사형이요.”
“…….”
왜 절대 기억력을 가진 내가 기억 못 하는 말을 녀석들이 하고 있는 걸까?
“대사형, 근데 왜 산채인가요?”
동룡이의 질문에 내가 말했다.
“그건 응시생들의 숫자와 관련되어 있다.”
“응시생이요?”
한 회에 무림학관이 뽑는 숫자는 단 팔백구십이 명. 백팔봉에서 선발된 백팔 명을 포함하면 총 천 명이다.
무림학관에 응시하는 인원이 대략 이십만에서 삼십만. 이들이 이끌고 다니는 무사들의 수까지 포함하면 백만에 다다른다.
무림맹은 이 기회를 통해 무림맹에 들어오는 민원들을 처리할 겸, 응시생의 숫자를 줄이려는 생각으로 일(一)관문을 만든다.
“무림맹이 지목한 산채의 숫자가 전국적으로 사천 개다. 이는 녹림 맹으로 대표되는 녹림칠십이채를 제외한 큰 규모로 성장할 가능성 있는 산채들 전부다.”
녹림맹에 속해있는 산채들은 대부분이 무공을 익힌 흑도 출신의 산적이다. 이들은 산채보단 방파에 가깝다.
“그럼 첫 번째 관문에서 단 사천 명만이 통과하는 거라고요?”
“그래.”
참으로 절묘한 한 수다.
어지간한 무공이 없는 자들, 세력이 없는 자들, 힘이 없는 자들은 첫 번째 시험에서 떨어진다.
동시에 시험이 완수되면 그간 무림맹을 속 썩이던 산채들이 일거에 사라진다.
무림맹은 가만히 앉아서 시험도 치고 문제도 해결하는 것이다.
“그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은호 녀석은 역시나 눈치가 빠르다.
내가 웃으며 물었다.
“어째서?”
“사천 개 중에서 가장 약한 산채를 얼른 선점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흰 가뜩이나 사람도 적은데.”
“그래, 일단 가자.”
나는 녀석들은 화운산으로 데려갔다.
“여긴 화운산 아닙니까. 여기 산채가 있습니까?”
“아니.”
“그럼요?”
“산채를 소탕하기 전에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
“앞에 서거라.”
금·은·동 세 형제가 나란히 선다.
“행공을 배운 적 있지?”
금표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행공 말입니까?”
“그래.”
“네.”
“뭐라 배웠느냐?”
“쾌화당 당주께서 말씀하시길 ‘금표야 어떤 상황에서든 행공을 써선 안 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음…… 아!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정이나 써야 하겠거든, 진짜 진짜 어쩔 수 없거든. 목숨이 정말 정말 위험한 상황이거든…… 그래도 쓰지 마라.’ 라고요.”
“잘 배웠구나.”
“……에이 설마?”
행공은 입공, 좌공, 와공과 함께 대표되는 운기법 중에 하나.
“그 행공을 새로이 배울 것이다.”
“……사형.”
“왜 그러느냐?”
“한가지 말씀드리자면, 문주님이 저희를 보내실 때, 사형을 감시하라는 임무도 있었습니다. 미친 짓을 하면 꼭 막으라고.”
강호 무림에 대표되는 운기법이 좌공인 것은 그 효율성과 안정성 때문이고, 행공이 백안시되는 것은 좌공과는 달리 효율성과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말하지 않았느냐. 새로이 배울 것이라고.”
“…….”
“내가 불러주는 것들을 잘 외우거라.”
나는 소정대 시절 빈약한 내공 때문에 언제나 한계에 봉착했다.
적은 끝도 없이 밀려오고, 우린 쉴 시간도 없었기에 운기를 할 여유조차 없었던 것.
그나마 미약한 내공이라도 없이는 마공을 익힌 마인들을 상대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소정대원들도 마찬가지.
나는 주화입마의 위협을 수백 번 겪으며 새로이 행공을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미친 짓이었지. 죽을 각오를 했으니까 가능했다.’
전투에서 내가 지치는 모습이 점점 사라지자 소정대원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나는 그것을 소정대원들과 공유했다.
소정대원들은 이름이 없던 행공에 내 사라진 사문의 이름을 붙였다. 바로 태을행공이다.
“외웠느냐?”
“…….”
여전히 불신에 가득 찬 눈빛들.
대사형에 대한 신뢰가 없는 녀석들에겐 벌을 내려야겠지?
나는 그 셋을 향해 살기를 발산했다.
“커흑!”
“헙!”
“끄억!”
녀석들의 얼굴이 귀신을 본 듯 사색이 되어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화정산과의 비무에서 선천지기를 이용해 태을진경을 극성으로 끌어 올린 후 살기가 더 진해진 탓에, 녀석들은 금방 혼이라도 나갈 것 같은 얼굴이었다.
“허억, 허억, 허억. 뭐, 뭡니까. 사형.”
“왜, 왜 이러십니까.”
“다시 서봐라.”
내 말에 세 형제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에도 주춤주춤 걸어오기 시작했다.
“지금부터는 천천히 살기를 뿌려 차츰 그 강도를 올릴 것이다. 행공을 운기해라.”
녀석들은 살고자 하는 간절한 심정으로 행공을 운기하기 시작했다.
“어떠냐?”
“……어? 괜찮아지는데요?”
나는 살기를 두 배로 올렸다.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리고 점점 살기의 강도를 올려 녀석들이 종전의 반만큼 올렸다.
“지금은 어떠냐?”
“힘들긴 하지만…… 괜찮습니다.”
“이것이 행공의 이점 중 하나다.”
태을행공을 만들어 내면서 얻은 효과 중 하나는, 살기와 마기 안에서 이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태을행공은 주화입마에 대한 위협을 민감하게 느낄 수 있으므로, 스스로가 주화입마에 빠지기 전 행공을 멈추게 만들 수 있었다.
“아하! 살기가 느껴지면 이 행공을 쓰라는 말씀이시죠?”
“무슨 소릴 하는 거냐? 그럴 거면 행공은 왜 익혀.”
“어…… 그럼…….”
“앞으로 깨어있는 내내 행공을 운기 한다. 걸을 때도, 달릴 때도, 싸울 때도.”
“사형! 사형!”
동룡이가 손을 든다.
“왜 그러느냐?”
“이거 움직이려 하면 온몸이 비틀릴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요?”
“그게 안전장치다. 거기서 더 나아가면 주화입마에 들어간다. 그러니 조심해서 연습한 후에 천천히 움직여야 할 것이다.”
“…….”
세 형제는 숫제 나를 미친놈처럼 보고 있었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첫째는 너희들의 내공이 너무 미천하다. 태을행공을 통해 움직이면, 좌공에 비해 미약하지만 조금씩 내공을 꾸준히 모을 수 있다. 둘째는 너희들은 시험과 수련을 병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껏 데려온 녀석들이 태을검제님의 진전도 잇지 못한다면 어디에 쓰겠느냐? 셋째.”
이것이 내가 녀석들에게 태을행공을 전수하는 이유였다.
“우리는 넷뿐이 없다. 그리고 우리의 경쟁자는 백만 명에 가깝다. 우리가 쉴 시간이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
“비단 시험뿐만이 아니다. 미약한 힘을 가진 태을문이 비상하기 위해선 숱하게 많은 이들과 수없이 많이 싸워야 할 것이다. 우리를 짓밟으려는 이들은 기본 수천이 넘을 것이고 우린 쉴 시간조차 없을 것이다.”
정마대전까지 일어나면 여유라곤 일절 없는 끔찍한 하루하루가 몇 년이나 지속된다.
내공을 쓰는 동시에 내공을 모아야 하고, 그와 동시에 정신력을 유지해야 한다.
금·은·동 형제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이렇게 하면…… 우리 앞길을 막는 사람들을 이길 수 있습니까?”
“내가 여태껏 어떻게 이겨 왔을 거라 생각하느냐?”
세 형제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시작해라.”
그러더니 천천히 발을 떼기 시작했다. 하지만 움찔하는 기분이 계속 드는 것인지 움직임은 달팽이보다 느렸고, 미간은 잔뜩 찌푸려져 있는 상태였다.
“무림학관 시험 내내 안휘성에 머물고 싶지 않으면 부지런히 해야 할 것이다.”
“어디 가십니까?”
“나는 화운산에서 자고 싶지 않다. 너희들도 그러고 싶지 않다면 얼른 내려오너라. 산 아래서 기다리고 있으마.”
나는 녀석들을 두고 산 아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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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운산 아래로 내려온 나는 소매에서 작은 쪽지를 꺼냈다.
-소화루. 갑실.
무림맹 합비 지부에서 방을 보고 있을 때, 누군가 은밀히 손장난을 걸어왔다.
당연히 품 안에 전낭을 노리는 것이라 생각하고 손목을 잡아 비틀었는데, 상대는 비명도 지르지 않고 손바닥을 펴 보였고, 그 안에 이 쪽지가 있었다.
“이제야 연락이 오다니. 어지간히 재는군.”
호남에서 월향의 무덤을 털고, 재물을 처리하면서 양군백에게 하오문의 ‘식객’ 자격을 부탁하였다.
그 말과 함께 개방의 정보를 넘긴 것이 몇 달 전인데. 이제야 그 답변이 온 것이다.
“자신들의 몸값이 가장 비쌀 때를 기다린 것이겠지.”
무림학관의 시험과 함께 개방과 하오문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올라간다.
아마 하오문도 이것을 알고 내게 답변을 미뤘던 것이겠지.
합비의 유흥가엔 대표되는 주루가 세 개 있는데.
만월루, 조향루, 소화루였다.
그 중 계철영이 뻔질나게 들락거렸던 곳이 조향루였고, 셋 중 가장 가격이 비싸 고관대작만 드나드는 곳이 소화루였다.
입구부터 화려한 등과 천으로 장식된 소화루에 들어서자, 천이 부족해 속살이 드러난 옷을 입은 여자가 다가왔다.
평범한 무복에 어찌 봐도 돈이 없어 보이는 나의 복색을 보고도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다.
“찾으시는 기생이 있으십니까?”
“약속이 되어있습니다. 갑실로 오라 하더군요.”
소화루의 기본 객실이 정(丁)실이다.
여자 하인 한 명에 남자 하인 한 명과 손님 한 명당 기생 하나가 붙는 가장 기본적인 객실.
갑실이라면 여자 하인 넷에 남자 하인 넷이 붙어 있고, 악공이 딸려있는 채로 손님 한 명당 기생이 넷이 붙는다.
그야말로 돈지랄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나 올 수 있는 곳이다.
본래라면 나 같은 사람이 갈 수 없는 공간.
하지만 여인도 내가 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지체 없이 장소로 안내했다.
방 안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쾌적했다.
창문은 없었지만, 곳곳에 초가 켜져 있었고, 잡스런 가구는 없었다.
한쪽엔 노년의 하녀와 하인들이 대기를 하고 있었는데. 옷차림은 단출해도 그 질감이 평범한 면이 아닌 비단처럼 보였다.
홍루의 하인들과 하녀들은 취객들이 건드릴 것을 대비해서 노인들을 많이 쓰는데. 이는 곧 기생들의 젊고 이쁜 외모가 더욱 도드라지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잠시 기다리시면 오실 겁니다.”
방 안에 기생은 없었다.
하인과 하녀들은 말없이 고개를 조아리고 선 상태였는데. 그 모습마저도 고급스러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와서 돈을 쓰는 건가?’
잠시 뒤, 서른 중반대로 보이는 여인이 기세가 대단한 무사 네 명과 함께 방안에 들어섰다.
방금 나를 안내해 주었던 젊은 여인의 미모도 범상치 않은 수준이었는데, 지금 들어오는 미녀는 그 아름다움이 더하다.
눈가와 입가에 은은하게 보이는 세월의 흔적만이 없었다면 가히 천하를 뒤흔들 법한 미모.
중년의 여인은 세월의 흔적에 대한 아쉬움도 없는지, 자연스런 화장 외엔 자신의 노화를 가리지도 않았다.
“이제야 인사드리는군요. 하오문을 대표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하오문주 여미미라고 합니다.”
나도 천천히 일어나 포권을 쥐었다.
“태을문의 진소운이라고 합니다.”
“흑염룡 공자의 소문은 익히 잘 들어왔습니다.”
“…….”
“군백이를 통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식객이 되고 싶으시다고 하셨지요?”
“네.”
“내부적인 일을 확인하느라 빠르게 답변드리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이해하는 바입니다.”
개방과 달리 하오문의 문도들은 대부분 생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다. 객잔에, 주루에, 상점에, 사람들이 있는 곳엔 어디에서 하오문이 있다.
하지만 개방과 달리 무공이 전승되어 오지 않고, 무사보다 민간인이 많기에 더욱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 노력했다.
“저희로선 진소운 공자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 많았거든요.”
“이제 정리가 된 겁니까?”
하오문은 대체로 정보를 파는 단체에 가깝지만, 실제로 그들의 정보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다.
하오문에겐 하오문을 지키고 그 문도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최상의 목표.
‘식객’은 그런 하오문의 목표를 넘어서는 존재로서의 위치를 말한다.
그랬기에 그간의 역사 속에서 이 ‘식객’의 자격을 얻은 사람은 얼마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르는 것은 이 하오문의 ‘식객’ 자격을 받기 위해선 몇 가지 시험을 쳐야 한다. 첫 번째 시험은 하오문이 가지지 못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가.
내가 개방의 정보를 양군백에게 넘겨준 것은 그에 따른 것이었다.
“네. 진 공자가 주신 정보도 확인했고요.”
“도움이 되었습니까?”
“너무나요. 솔직히 진 공자가 그 정보를 어디서 얻었는지에 대한 출처를 찾기가 정말 힘들더군요.”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려도 있습니다. 저희의 시야 밖에 있는 사람을 식객으로 받아도 될까 하는 마음이지요.”
“그러므로 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모르는 대상은 내 시야 안에 넣는 것이 가장 잘 관찰하는 방법이죠.”
여미미는 내 말에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특이한 것은 생각하는 와중에도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그 안에 뭐가 있는지 관찰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었다.
“하오문의 폐쇄성이 무엇 때문에 필요한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에만 너무 매몰되면 결국 고이고 썩기만 하지 않겠습니까?”
여미미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마령고원의 사태. 실력 좋은 술사 하나만 있었어도 하오문이 위기에 처할 일은 없지 않았겠습니까. 만약 제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여미미가 처음으로 고개를 숙여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흑염룡 공자의 심계가 무량불괴멸혼진보다 깊다고 하더니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처음으로 여미미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어린다.
과거 저 미소에 얼마나 많은 남자가 애간장을 태웠을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혹시 몰라 준비했는데, 결국 쓰게 되는군요.”
여미미는 말과 함께 비단으로 만든 주머니를 내민다.
그 안엔, 현재 무림학관 정시 일(一)관문에 참가한 이들 중, 주목해야 할 수험자들에 관한 정보가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여미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자료들을 보다가 여미미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 끝난 겁니까?”
“네. 언제든 하오문의 도움이 필요하실 땐 불러주세요.”
여미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무사들이 동시에 그녀를 둘러쌌다.
난 여전히 자료에 눈을 고정한 채 물었다.
“그렇습니까?”
하오문의 검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럼…… 문주님은 언제 볼 수 있는 겁니까?”
“…….”
고개를 홱 돌리는 여미미의 얼굴이 조금 굳어있었다.
“가뜩이나 늦게 연락을 주셔서 좀 바쁩니다. ‘식객’ 자격을 검증하는 자리는 빨리 끝났으면 좋겠군요.”
두 번째 시험.
진실을 판별할 눈을 가졌는가.
나는 늙은 하녀들 맨 끝에 서 있는 이를 보며 물었다.
“문주님께서 제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시거든 돌아가겠습니다. 사제들을 산속에서 자게 할 수는 없거든요.”
“!”
나를 보는 여미미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