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지옥 정시 제 ‘二’관문(3)>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종서강의 입에서 비명이 새어 나온다.
그럴 법하다. 전생에 이 광경을 본 상정문도 똑같은 심경이었을 테니.
전생에 이름 없는 악산에 불과했던 막간산이 유명세를 떨쳤던 것은 금린청선사가 나타나면서부터였다.
당시 백팔봉의 17봉을 맡고 있던 상정문은 가장 먼저 이 소식을 접하고 사문 내의 모든 무사들을 동원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막간산에는 금린청선사뿐만 아니라 뱀의 천적이라 불리는 독각흑섬이 함께 살고 있었던 것이었다.
금린청선사의 비린내를 맡고 몸을 드러낸 독각흑섬. 당연하게도 상정문의 무사들은 그곳에서 도망쳤어야 했지만, 눈앞의 300년 묵은 영물 두 마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그들은 결국 사백 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내고 말았다.
이 일을 계기로 세가 약해진 상정문은, 청도방과 황검문의 공세를 막아 내지 못하고 결국 역사 속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모순적이게도 그때의 그 청도방과 황검문이 이곳에서 금린청선사와 독각흑섬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저, 저 뿔 달린 두꺼비를 먼저…… 아니, 저 뱀을 먼저…….”
금린청선사의 냄새를 맡고 나타난 독각흑섬은, 사방에서 쏘아대는 살기에 이내 목표물을 바꾸어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긴 혓바닥이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지자, 무사 셋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크아아악!”
“끼야아가가.”
“아가가가!”
그들이 있던 자리에는 그들이 들고 있던 검만 남아 있었고, 독각흑섬은 머리를 치켜든 채 입에 담긴 걸 목구멍으로 꿀꺽 넘겼다.
“이 빌어먹을 두꺼비 놈이!”
동료를 잃은 것에 분개한 무사들이 쌍심지를 켜고 두꺼비에게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퍽, 퍽, 퍽, 퍽.
동시에 두꺼비의 등에 검을 날렸지만, 검은 두꺼비의 살을 파고들지 못했다.
더불어 이상함을 느낀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킁킁. 이게 무슨…….”
“커흑.”
검을 날리기 위해 두꺼비의 등 뒤에 올랐던 무사들은 갑자기 검을 놓으며 자신의 목을 부여잡았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듯 재빨리 두꺼비에서 뛰어내렸지만, 세 걸음을 걷지 못했다.
청색으로 물들었던 얼굴은 금세 자줏빛으로 바뀌었고, 이내 검게 변하며 그대로 얼어붙은 듯 숨을 거두었다.
“독이다!”
“가까이 다가가지 마라!”
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독각흑섬에게서 멀어지면, 섬전 같은 혓바닥이 날아든다.
그 혀에서마저 멀어지려 뒤로 물러서면, 금린청선사가 입을 쩍 벌리며 통째로 삼킨다.
“일단 저놈! 일관문패를 가진 저놈을 먼저 쳐!”
종서강의 발악에 아수라장을 보던 무사들이 일제히 감철진을 바라본다.
“이 빌어먹을 새끼들아! 내가 장차 황검문의 문주가 될 사람이야! 당장 움직여!”
“…….”
감철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다시금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내공을 모두 끌어올려 살기를 발산했다.
“크윽, 뭔 놈의 살기가…….”
“제길…….”
황검문의 무사들도 기세에 지지 않기 위해 살기를 마구 발산한다.
주춤하던 그들과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지자 검이 맞부딪친다.
채채채챙.
나는 태을팔만신보를 밟으며 쌍천검결을 흩뿌렸다.
절정의 수준엔 감철진을 비롯한 몇몇의 무사들만 올랐는지, 쌍천검결만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놈이 물러선다! 더욱 압박해!”
득의 양양하는 종서강을 한번 보곤 내가 말했다.
“멍청한 놈이 우두머리라 고생 좀 하겠군.”
“…….”
본래라면 감철진을 비롯한 절정의 무사들은 내가 아닌 두 영물을 상대해야 한다.
전투의 기본도 안 되어 있는 놈이 지휘를 맡으니 아랫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꾸르르륵. 꾸르르륵.
독각흑섬의 울음소리가 들린 순간.
“어…… 어어!”
정신없이 쌍천검결을 받아내던 무사들은 어느새 독각흑섬의 코앞에 다다랐다는 것을 상기하고 대경했다.
난 곧장 귀식행보를 펼쳐 독각흑섬의 가랑이 사이로 빠져나갔다.
“어, 어째서?”
내가 독각흑섬을 지나치는 걸 멍하니 보던 황검문의 무사들은 대경실색했다.
독각흑섬의 혓바닥이 이제 그들을 노리기 시작한 것이다.
“끄아악!”
“피, 피해!”
“이 멍청이들! 피하지 마! 겨우 두꺼비 한 마리다!”
악을 써대는 종서강의 외침에 황검문의 무사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감철진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장법으로 상대해라!”
“넷!”
그리고 일제히 장법을 쏘아내는 황검문의 무사들.
퍼퍼퍼퍼퍼펑
사방에 자욱한 먼지가 끼며 독각흑섬의 자취가 가려졌다.
“…….”
“해, 해치웠나?”
불온한 무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들의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졌다.
“시, 시발!”
쿵.
꾸르륵. 꾸르륵.
독각흑섬은 아무런 타격 없이 무사들 사이를 종횡하기 시작했다.
“괜찮으냐?”
난 곧장 금은동 형제에게 다가가 녀석들을 살폈다.
다행히 크게 다친 이는 없어 보였다.
“대사형, 대체 저게 뭡니까?”
“이관문패지 뭐겠느냐.”
“이관문 이렇게 통과하는 거 맞습니까?”
은호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내가 했다며 줄줄 외던 놈이 이럴 때는 또 불신을 숨기지 않는다.
“잘 들어라. 이제부터 우린 추격자들을 친다.”
“네?!”
“지금요?”
“그래. 지금이 아니면 저들을 뿌리칠 수 없다. 더불어 우리에게 덤볐다간 큰코다친다는 걸 다른 이들이 알지 못하면 추적은 계속될 것이다. 앞으로도 시체들 사이에서 피에 젖은 손으로 육포를 먹고 싶으냐?”
“……어디부터 칠까요!”
금표는 지난 며칠이 지긋지긋했는지 고개를 젓는다. 벌써 저리하면 앞으로는 어쩌려나.
“근데 괜찮을까요? 이들을 처리하고 나면 다음은 저희가 먹잇감이 될 거 같은데요.”
“귀식행보를 왜 가르쳐 주었더냐.”
“귀식행보를 쓰면 녀석이 못 알아봅니까?”
“내단을 가질 정도로 오래 살았어도 한낱 미물에 불과하다. 지능이 없이 본능만을 날카롭게 갈았기에 더욱 속이기 쉬울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우린 사방으로 흩어졌다.
나는 곧장 독각흑섬과 상대하고 있는 황검문에게로 다시금 돌아갔다.
“쳐! 죽여! 왜 한낱 두꺼비조차 잡지 못하는 것이냐! 그러고도 네놈들이 황검문의 무사라 할 수 있느냐!”
종서강은 예의 냉철함을 모두 잃고 완전히 흥분하여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감철진을 필두로 한 황검문의 무사들은 거리를 둔 채 차분하게 사냥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종서강의 눈에는 그것이 독각흑섬과의 일전을 피하고 있는 듯 보였던 탓이다.
“진소운! 진소운 그놈은 어디 있느냐?”
독각흑섬에 잠시 정신이 팔려있던 그는 이내 내 이름을 부르며 사방을 훑어보고 있었다.
-크억!
-컥!
-태, 태을문이다! 태을문이 습격한다!
멀리서 무사들의 비명이 들리기 시작한다.
황검문의 무사들은 사방에 퍼진 자욱한 먼지 때문에 시야 확보를 하지 못한 채 언제 습격을 받을지 몰라 걱정하며 독각흑섬을 상대했다.
덕분에 독각흑섬을 상대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도련님. 일단 물러나시지요.”
“……뭐?”
“지금은 독각흑섬도 금린청선사도 사냥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지금 뭐라 하는 것이오! 눈앞에 이관문패와 일관문패가 함께 있는데.”
“계속 이렇게 진행했다간 황검문의 무사들이 모두 죽을지도 모릅니다.”
“감철진!!!”
악에 받친 종서강의 목소리가 장내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내가 아직 소문주의 직위도 받지 못해 우스워 보이는 것인가!”
“…….”
흥분하다 못해 이성이 완전 날아 가버린 듯 보이는 종서강.
“나 황검문의 종서강이야!”
“…….”
“지금 물러나면, 일관문패는 물론이고, 이관문패를 받을 수 있는 영물도 놓치게 될 것이다! 당신은 그것을 책임질 수 있어 그런 말을 하는가! 말해보라!”
“…….”
종서강은 전생에 집행각에 일하면서 자신의 사문을 말아먹었던 방식 그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역시 사람 안 변하는군.’
더 이상 신경 쓸 필요 없겠다고 생각한 나는 곧장 청도방의 소방주 장순원을 찾았다.
장순원은 자신의 호위무사와 함께 가장 안전한 곳에서 사방을 감시하고 있었다.
“방도들이 죽어 나가고 있는데 구경만 할 셈인가?”
귀식행보로 다가가자 그들이 흠짓 놀랐다.
“진소운…….”
장순원이 이를 갈 듯 내 이름을 불렀다.
“참으로 감개무량하군. 당신이 내 이름을 그런 식으로 부를 줄이야.”
“……나를 아나?”
그는 영문을 모르는 표정이다.
그럴 수밖에 우리의 인연은 전생의 것이었으니까.
“무사들을 데리고 돌아간다면 잡지 않으마.”
“…….”
고민하는 표정.
참으로 얕다.
자신의 방도들이 죽어가고, 함께 하기로 한 문파들의 무사들이 죽어 가는 와중에 손익을 계산한다.
자신이 가진 것이 절대 상대방보다 낮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전형적인 특징.
‘그리고 대게 비슷한 결정을 하지.’
장순원의 눈썹이 치켜 떠졌다.
“어디서 얕은 수작을! 네놈이야말로 당장 일관문패를 모두 내놓아라!”
“그런 선택을 할 줄 알았다.”
감철진 같은 무사는 아무나 데리고 다닐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청도방은 감철진 수준의 비밀 무사를 키워낸 적이 없었다.
피가 채 마르지도 않은 흑룡검이 휘둘러지며 사방에 수십 개의 환검을 만들어 낸다.
청도방의 호위무사들이 앞으로 나서서 태도를 휘두르지만, 태도의 묘리는 중(重).
변검의 묘리가 담긴 쌍천검결을 넘어설 수 없다.
“크헉.”
“큭.”
네 명의 호위무사들이 일순간에 쓰러지자 장순원은 두 눈이 격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아, 알겠소. 도, 돌아 가겠…….”
“제 목숨이 위험해져서야 결정을 내리는가?”
“돌아간다고 하지 않았소! 돌아가겠으니.”
“소방수답게 죽어라.”
“크흑! 네놈! 감히 이러고도 우리 청도방의…….”
장순원은 말을 채 잇지 못하고 가슴에 쩍 갈라지며 쓰러졌다.
나는 목소리에 내공을 담아 쩌렁하게 외쳤다.
-청도방의 소방주가 죽었다. 살고자 하는 이들은 각자 스스로를 도모하라!
…….
……?!
……!!
믿지 못하는 눈으로 장순원의 죽음을 본 무사들의 움직임이 굼떠지기 시작했다.
청도방의 무사들은 금린청선사를 상대하고 있었기에 내게 다가올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죽여라! 저놈만 죽이면 우리가 이긴다! 무림학관에 들어갈 수 있다!”
종서강이 나에게 삿대질하며 소리치지만, 섣불리 움직일 수 있는 이는 없었다.
나는 곧장 천하독행신을 밟아 순식간에 종서강의 눈앞에 나타났다.
“헙! 뭔 놈의 경공이…… 커흑!”
그리고 그대로 흑룡검을 찔러 넣었다.
“이 무슨…….”
자신의 가슴속을 파고든 흑룡검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종서강의 눈동자.
스르륵.
그의 몸이 기울어지며, 몸속에 잠겼던 검이 빠져나왔다.
“…….”
“…….”
“…….”
독각흑섬을 상대하던 황검문의 무사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멍하니 보고 있었다.
“이제 황검문에도 무림학관에 들어갈 인원은 없소이다. 계속하실 거요?”
황검문의 실세인 감철진을 보고 말했다.
“…….”
“계속하겠다면, 황검문의 모든 무사들도 이곳에 뼈를 묻어야 할 거요. 아까 봤다시피 우리 태을문은 저 영물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으니까.”
“…….”
감철진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쉰 명에 가까운 무사들이 죽어있다.
그럼에도 남아있는 자들은 서른 명 남짓이다. 남은 스물은 시체도 남기지 못한 채 고혼이 된 것이다.
모든 이들이 일심하여 사냥을 해도 될까 말까인 상황에서 계속 태을문의 습격을 받는다면, 결국 모두 이곳에 뼈를 묻을 수밖에 없다.
“돌아가지.”
“…….”
“…….”
“…….”
감철진의 결정에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도리어 돌아가게 되어 다행이라는 표정.
“잘 생각하셨소.”
“……무사들의 목숨을 보전해 주어 고맙네.”
“그 무사들의 목숨은 그대가 구한 것이오.”
“모두 물러서라! 그만 돌아간다!”
감철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황검문의 무사들이 장력을 쏟아부으며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황검문이 물러나니 독각흑섬이 다시금 금린청선사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에 청도방의 무사들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지금부터 일각을 주겠소! 이곳에 남아있는 이들은 끝내 싸우겠다는 결정을 한 것으로 알겠소이다!”
“금린청선사와 독각흑섬은 어찌하란 말이오.”
“내가 막겠소.”
“?”
나는 곧장 두 영물 머리 위로 뛰어올라 만화무적권을 폭사했다.
퍼퍼퍼퍼퍼퍼펑.
육중한 몸으로 끄떡도 않던 녀석들이 거대한 돌무더기에 깔린 듯 꿈쩍하지 못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당최 태을문의 무사가 무슨 저런 무공을.”
무사들은 도망치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다시금 목소리에 내공을 담아 일갈했다.
-일각이라 하였소!
그러자 마치 벼락을 맞은 듯 눈을 번쩍 치켜뜬 무사들은, 문파에 관계없이 사방에 보이는 시체들을 있는 대로 들쳐메고 산 아래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
이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빽빽한 그물처럼 사방을 옥죄며 숨을 조여왔던 적들이, 고양이 만난 쥐처럼 도망치는 꼴을 보며 은호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아니 저렇게 가면 저 괴물은 어떻게 잡으라고.’
200년 영물인지 300년 영물인지 무사들의 평생에 한 번 만났으면 소원이 없는 존재이긴 하지만, 그것도 그만치 수준이 되는 사람에게나 보물이 되는 거지. 이제 갓 약관도 되지 않는 자신에게는 그저 사람 잡아먹는 괴물에 불과했다.
“사형이 알아서 잡을 수 있으니까. 다들 물린 거겠지.”
은호의 걱정에 금표는 별걱정을 다한다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후우.”
동룡이는 검에 흐르는 피를 털어내며 그저 개운해하는 표정이었다.
그때 진소운이 두 괴물을 상대하다 말고 허공을 박차 금은동 세 형제 곁으로 착지했다.
“어어?”
“엇!”
“……!”
자연스레 금은동 세 형제의 눈이 커졌다.
“갑자기 여기로 오면 어쩌십니까?”
은호는 불안함에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물었다.
“…….”
게슴츠레 자신을 바라보는 진소운. 아차 싶은 은호가 얼른 말을 이었다.
“사형, 잡을 방도가 있으니 사람들을 물리신 거죠?”
진소운은 흑룡검에 묻은 진액을 털어내며 무슨 소리냐는 듯 눈썹을 치켜뜬다.
그 표정이 못내 은호와 금표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다.
“내가 무슨 천하십대고수도 아니고 저것들을 어떻게 잡느냐.”
맞다. 맞는 말이다.
대사형의 무공의 끝이 어디인지 자신이 모르지만, 그래도 수백 년을 살아온 영물을 잡는 건 또 다른 이야기일 테니까.
……근데 지금 그 말을 하면 안 되지 않나?
“그럼 잡지도 못하면서 사람들을 보내신 거라고요?”
최소한 잡을 자신이 없으면 협동해서…… 아, 물론 함께한다는 것이 상상이 안 되긴 하지만.
“그럼 그냥 두고 가야 한단 말입니까?”
“애초에 잡을 필요가 없는 걸 뭐 하러 잡느냐?”
“네?”
은호는 혹시 자신이 뭔가 이해를 못 한 것인가 하는 생각에 금표를 봤지만, 금표는 옷에 묻은 핏자국을 지우려 애쓰고 있었고 동룡은 입을 헤- 벌리며 영물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해가 안 된 건 자신만이 아님이 분명하다.
이치들은 그저 생각 멈춘 것일 뿐.
“잡을 필요 없다. 지금부터 다시 귀식행보를 펼쳐라.”
“…….”
진소운이 귀식행보를 펼치기 시작하자 분명 눈앞에 있음에도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반면에 금표와 동룡의 귀식행보는 확실히 조금 기척이 느껴진다.
“두꺼비의 천적인 뱀과 그런 뱀을 잡아먹고 사는 뿔 달린 두꺼비의 싸움이다. 우리가 낄 필요가 없는 것이지.”
“그게 무슨…….”
“잘 봐라.”
진소운 일행의 기척이 사라지자, 흉폭하게 사람들을 찾아 헤매던 두 괴물이 어리둥절하며 사방을 살핀다.
그러다 이내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고는 서로를 향해 투기를 보인다.
캬아아아아.
끄르르르르륵.
두 영물의 싸움은 순식간에 시작된다.
금린청선사가 독각흑섬의 몸을 감으려 하며, 독각흑섬은 그 육중한 몸으로 튀어 오르며 머리 위에 난 뿔로 금린청선사에 돌격한다.
캬아아아아.
웬만한 검엔 흠집도 나지 않았던 금린청선사의 살이 움푹 패며, 금린청선사가 사방에 비명을 지른다.
고음역대의 울음소리가 고막을 찌른다.
“저 둘이 싸운 후에 이긴 쪽만 처리하면 된다는 겁니까? 근데 그것도 쉬워 보이지 않는데요?”
설사 둘 중 하나가 죽는다 한들, 남은 하나를 상대할 방도란 게 당최 뭐가 있을까?
“그것도 할 필요 없다.”
싸움은 격화된다.
금린청선사는 사방에 독액을 쏟아붓자, 독각흑섬이 독액을 맞고 마비되었는지 몸을 부르르 떤다.
그사이 금린청선사가 그 거대한 아가리를 벌려 독각흑섬을 한입에 삼킨다.
“어어! 저러면 내단이…….”
“아직 안 끝났다.”
독각흑섬을 한입에 삼킨 금린청선사. 목 부위가 불룩 튀어나온 금린청선사는 순식간에 녀석을 흡수해 버리려 하는데.
빠각. 푹.
금린청선사의 머리 위에 웬 뿔이 자란다.
‘오! 독각흑섬을 먹고 이제는 독각금린청선사가 되는 건가?’라는 실없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가는 순간.
뿔 사이로 분수처럼 피가 솟으며 금린청선사가 그 육중한 몸을 누인다.
쿵.
끄르르륵. 끄르르륵.
금린청선사의 머리에서 뿔을 빼낸 독각흑섬은, 피부 이곳저곳이 녹은 채로 겨우겨우 몸을 빠져나온다.
“거 봐라. 싸울 필요 없다고 했지.”
어느새 독각흑섬의 머리 위로 이동한 대사형이 독각흑섬의 눈알에 흑룡검을 깊게 처박는다.
끄윽.
독각흑섬은 반항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죽었다.
은호는 뜨악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사형, 애당초 추격자들이 붙을 것을 알고 막간산으로 들어온 것이었습니까?”
“어차피 이관문은 통과해야 하지 않겠느냐? 우린 돈이 없고. 그러니 다른 이의 ‘도움’을 좀 받았지.”
“……도움?”
은호가 멍하니 있는 동안.
진소운이 금표와 동룡에게 말했다.
“이제 이 사형을 좀 믿을 수 있겠느냐?”
“사형! 이 금표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사형을 의심해 본 적 없습니다.”
“대사형! 저는 대사형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어요!”
“…….”
금표와 동룡이 승리의 기쁨에 도취되어 마구 환호하는 순간.
은호는 알 수 없는 찝찝함에 제대로 끼지 못했다.
이게 맞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쉬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무림학관에서 낸 시험의 의도는 이게 아닌 거 같은데.’
분명 대사형의 말대로라면 무림학관도 나름대로 교육기관이니 대놓고 ‘돈 많은 놈들이 들어왔으면 좋겠다.’라고 쓸 수 없으니 이렇게 시험을 낸 것일 텐데.
애초에 풀지 말라고 낸 문제를 풀어버리면 학관 측에서 얼마나 당황할까.
‘이거 과연 괜찮은 건가?’
금표와 동룡은 이제 둘이서 대사형을 헹가래 치려다 힘이 모자란 지 자신을 보고 있다. 은호는 작게 한숨을 쉬며 생각을 멈췄다.
***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양군백이 참담한 표정으로 금린청선사와 독각흑섬을 바라보았다.
본래 왔어야 할 전서응이 천라지망의 살기로 접근하지 못하자, 결국 걱정이 된 양군백이 직접 움직인 것이다.
나로선 마침 처리할 일이 있었기에 그가 온 것은 반가웠지만, 그의 얼굴은 썩 편해 보이지 않았다.
“어찌 그러십니까?”
“제가 이걸 그대로 보고서로 올리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의심받을 게 분명하니까요.”
“……하하. 그렇습니까?”
양군백이 길게 한숨을 쉰다. 그러더니 금세 신색을 회복한다.
“정말 다행입니다. 걱정했는데. 이렇게 훌륭한 결과까지 내시다니.”
“걱정해 주신 덕분입니다.”
“이(二)관문패는 받으셨습니까?”
금린청선사와 독각흑섬을 잡고 둘의 배를 열어 내단을 꺼내자, 어디선가 무림맹의 심사관과 무사들이 나타났다.
“각기 삼 갑자로 처리해 주더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양군백은 멍하니 금린청선사와 독각흑섬을 바라보다 번뜩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그럼…… 이 녀석들의 시체는 어찌하시기로 하셨습니까? 무림맹에 인도하시기로 하셨습니까?”
통상 무림맹에선 영물의 시체와 내단도 취급을 하기에 마침 심사관도 똑같은 질문을 했었다.
“제겐 더 좋은 친구가 있는데, 굳이 그들을 이용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말하니 양군백의 입이 찢어질 듯 벌어진다.
“절대…… 절대로 후회 없이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그 김에 이것도 같이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금린청선사와 독각흑섬의 내단을 양군백에게 건넸다.
그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 두 가지를 처분하고 적당한 영약 세 개를 구해주십시오.”
“……소운님. 물론 그것도 가능합니다만, 굳이 이걸 되팔아 다른 걸 사는 것보다 이걸 직접 복용하시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한데, 녀석들 내공이 아직 10년 언저리에 있습니다.”
“아…….”
나는 서로 장난치고 있는 금은동 형제를 보며 말했다.
금린청선사와 독각흑섬의 내단에는 독기가 포함되어 있다.
내공이 충분한 이라면 그 독기마저도 내공으로 치환할 수 있으나, 금은동 형제는 내단을 녹이기도 전에 독에 중독되고 말 것이다.
“금린청선사와 독각흑섬의 사채도 함께 처리해서 모두 영약을 사는 데 보태주십시오.”
“넵. 영물들을 처분하기 전에 영약부터 구해드리겠습니다.”
양군백의 말에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그렇게 하면 저야 좋지만, 그리 무리하지 않으셔도…….”
물건을 처분하기도 전에 먼저 영약을 구해준다는 건, 자신이나 사문의 돈을 먼저 쓰겠다는 건데.
이럴 경우 영물의 사체 처리 비용, 보관 비용 등 부대 비용의 증가는 물릴 수 없게 되지 않나.
혹여나 시장에 물건을 팔 수 없는 경우, 돈이 묶여있는 기간이 길어질 수도 있을 텐데.
굳이 감당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손해를 감수하겠다는 양군백의 의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
그에 관해 뭔가 말을 하려던 양군백은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이다가 겨우 말을 꺼냈다.
“좋은 분위기에 초를 칠지 몰라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무슨 일 있습니까?”
“지금 소운님껜 시간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일관문이 늦었어도 이관문을 좀 빠를 텐데요?”
“무당파, 화산파, 점창파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
“소운님을 향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