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사냥의 시간>
“점창파 명현도장께서 방문하셨습니다.”
만통부 인원의 말에 제갈소명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진다.
“없다 전하였느냐?”
감히 천하의 무림맹 총군사이자 만통부와 심현각의 수장인 제갈소명이 불쾌감을 뿜으며 말했지만, 말을 전한 인원은 긴장한 기색도 없이 내 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입맹 기록을 보고 오셨다 합니다.”
다른 녀석이었다면 송구함에 벌벌 떨며 어찌 대답해야 할지 몰랐겠지.
“…….”
잠시 딴생각으로 현실 도피를 하던 제갈소명이 길게 한숨을 내쉰다.
“……후. 하필 오늘. 처리할 일도 산더미건만.”
안 그래도 이전 무림학관 시험에 비해 과열되는 시험 분위기에, 그의 심사를 기다리는 서류가 한쪽 책상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바닥에까지 쌓여 있는 상태.
가뜩이나 바쁜 와중에, 명현도장이 왔다 가면 기분까지 불쾌해져 일 처리 속도가 더욱 느려진다.
“저리 밖에 서 있으면 부서의 인원들이 일하기 버거워집니다. 얼른 치워주십시오.”
“…….”
만약 다른 인원이 이런 소릴 해댔다면 당장에 곤죽을 내서 내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한 이가 맹주원이었기에 꾸욱 참고 넘어간다.
“……모시거라.”
제갈소명은 말과 함께 만통부의 한쪽 탁자로 움직였다.
평소엔 제갈소명이 절대 쓰지 않는, 만통부의 인원들이 급하게 밥을 먹을 때 쓰기 위해 가져다 놓은 허름한 탁자였다.
곧이어 맹주원의 안내로 만통부 내에 들어온 점창파 명현도장.
“총군사를 뵈오.”
“어서 오십시오.”
서로 가볍게 포권을 주고받은 뒤 제갈소명은 자리에 앉았지만, 명현도장은 초라한 탁자에 앉지 않은 채 주위를 휘휘 둘러본다.
“꽤나 소란한 듯한데, 자리를 옮김이 어떻습니까?”
무림맹 내의 상위 직위에 대한 최고의 대우를 받아온 명현도장의 입장에선, 지저분한 창고와 구분되지 않는 만통부에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불편하기 그지없는 상황.
그것을 아는 제갈소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구려. 제가 시간이 없어 이런 곳에서 손님을 맞이하는군요. 불편하시다면 다음에 좀 더 나은 곳에서 약속을 잡으시는 게 어떻겠소?”
싫으면 나가든가.
명백한 축객령에 명현도장의 얼굴이 종이처럼 구겨지다가 이내 포기한 듯 의자에 앉았다.
“험험. 되었습니다. 언제 또 만날 줄 알고.”
“…….”
예의 안내를 맡았던 맹주원이 차를 내온다.
한데 명현도장의 미간이 다시금 찡그려진다.
차를 가져온 맹주원에게서 며칠은 씻지 못한 듯한 쉰내가 나는 것이다.
“크흠.”
명현도장은 불쾌함을 노골적으로 표현했으나, 맹주원은 그러거나 말거나 차를 내놓고는 다시금 자리로 돌아가 시체처럼 일을 한다.
감히 맹의 장로 앞에서 긴장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괘씸하긴 하지만, 이내 그가 제갈소명이 직접 백호각까지 행차하여 발탁한 인재라는 것을 알아보곤 화를 눌러 참는다.
“클클. 미안하외다. 무림학관의 시험이 시작하면서 아이들이 밥도 겨우 챙겨 먹고 있는지라.”
만통부가 본래 하던 일에 더해 무림 학관의 시험까지 주관하려니 가뜩이나 없는 인원들이 갈려 나간다.
만통부의 인력 부족은 늘상 있는 일이지만, 올해는 과열된 시험으로 더욱 업무가 가중된 상태.
“크흠, 별말씀을요 다 강호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는 향기 아니겠습니까?”
“차를 더 드시겠소?”
“……아니 됐습니다.”
대충 명현도장을 놀린 제갈소명은 곧장 본론을 꺼냈다. 그와 노닥거리며 놀기엔 제갈소명이 할 일이 너무 많다.
“어쩐 일로 오시었소?”
“이번 고위 학사 시험에서 우리 점창파의 제자 무문탁이 아까운 점수로 떨어졌습니다.”
제갈소명의 얼굴이 다시금 찌푸려진다.
바빠 죽겠는 와중에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만통부가 매번 인력난을 겪는 것 또한 총군사님의 엄격한 시험 때문 아니겠습니까.”
“…….”
무림맹은 맹의 원활한 업무처리를 위해 학사 맹도를 뽑지만, 만통부에 들어오기 위해선 총군사가 제안하는 고위 학사 시험을 따로 치러야 한다.
그 시험이 워낙에 악랄하고 어려워, 요 몇 년간 통과한 이들이 없었다.
“그게 어찌 내 탓이라고만 할 수 있겠소. 다 무공과 배경에만 집중한 무림 학관 시험 때문이지.”
“…….”
제갈소명이 총군사에 임명된 이후로 무림학관과 무림정시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을 요구했지만 번번이 좌절되었다.
“내 말하지 않았소. 무림학관의 시험을 이리 진행하면, 실력이 부족해도 돈이 있는 자들이나, 학식은 제외한 채 무공만 익힌 자들만 들어올 것이라고.”
“지금 시험에 대해 이야기 하자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
누누이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지들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자 하는 놈들이다.
“더구나 이번 시험은 과열이 심하여 만통부의 인원들이 집에도 가지 못하고 이곳에서 먹고 자고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소.”
“무문탁이라면 본 문에서도 학식이 뛰어나고 무공에 대한 이해가 밝은 아이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이번에 특채로 데려다 쓰시는게 어떻습니까.”
아무리 인력이 부족하다 한들 무림맹을 비롯한 강호 전체를 움직이는 만통부의 인원을 비워놓을 수 없는 법.
이에 무림학관 내에서 최우수 성적을 받거나 제갈소명이 인정하는 선에선 만통부에 들어오는 것이 허락되었다.
명현도장은 그 특례를 바라는 것이었다.
‘여우도 못 되는 것들.’
예전부터 구파일방을 위시한 정도회가 만통부에 입김을 넣고 싶어 하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만통부에 입지를 넓히고 그걸 통해 친목 단체로 치부되는 정도회를 정식 단체로 발전시켜 정도각을 창설하고, 장차 무림맹을 한입에 삼키고 싶어 하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알량한 대계다.
“내 굳이 명현도장의 흉을 꼬집는 것 같아 말하지 않으려 했으나, 무문탁이란 아이는 제한 시간 동안 시험의 절반도 치르지 못하였소, 더구나 그가 풀어낸 문제 중에서도 절반이 완전한 오답이었지.”
“…….”
명현도장의 얼굴이 맹주원의 구린내를 맡았을 때보다 더욱 찡그려진다.
“누구라도 데려다 비벼보고 싶걸랑 좀 말이 되는 녀석들을 데려오시오.”
“……태을문의 진소운 같은 아이 말입니까?”
“……?”
제갈소명은 처음으로 당황하여 머리가 멈추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여기서 그 녀석의 이름이 왜 나온단 말인가.
“한동안 떠들썩했지요. 총군사가 제 가문에도 내리지 않았던 입관패를 처음으로 준 아이의 정체에 대해서…….”
총군사와 무림맹주에게 각기 주어지는 입관패 다섯 개.
무림맹주가 매번 입관패를 정치적인 용도나 개인적인 용도로 쓴 데 반해 총군사인 제갈소명은 그동안 입관패를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다.
한데 이번에 처음으로 입관패를 사용했단 말에 무림맹 전체가 떠들썩했었다.
“근데 어찌합니까. 그 아이가 무림학관 시험을 치르다 큰 경을 치게 생겼으니.”
“…….”
명현도장의 얼굴에 처음으로 득의만만한 미소가 어린다.
“듣기로는 저희 문의 아이들이 그 아이를 노리고 움직이고 있다 하더군요. 더구나 무당파와 화산의 아이들까지 말입니다.”
구파일방의 방파 중 가장 강력하다 손꼽히는 세 문파의 제자가 움직인다?
이를 상대할 수 있는 제자는 없을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하시지요. 저희 점창에서 그 아이를 보호하겠습니다. 무당과 화산이 어째 그 아이를 노리고 있는 것 같은데. 점창과 함께 움직인다면 그들이라고 별수 있겠습니까.”
운이 좋아 관문패나 입관패만 빼앗기면 다행.
최악의 경우엔 죽음까지도 예상할 수 있다.
“대신 문탁이를 중히 써주십시오.”
“…….”
두 사람 사이에 깊은 정적이 감돈다.
만통부의 인원들도 몰래 듣고 있는지 종이를 넘기는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는다.
깊은 침묵 속에 잠식되기 직전, 제갈소명의 입이 슬며시 열렸다.
“……누굴 말하는 거지?”
“……예?”
“난 분명 입관패를 남궁세가의…… 아 참!”
제갈소명이 제 이마를 친다.
“그렇고만! 그때 퍽이나 난감한 상황이 되어 태을문인지 뭔지 하는 문파의 제자에게 주었지…….”
“…….”
“한데 분명 남궁산이가 도로 빼앗을 거로 생각했는데…… 아닌가?”
제갈소명이 고개를 돌려 맹주원을 바라본다.
맹주원이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남궁세가에서도 시험에 참석한 걸로 봐서 아직 진소운 소유인 것 같습니다.”
“그래……?”
명현도장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린다. 어디서 되지도 않는 얕은 수작을…….
한마디 쏘아붙이려는 찰나.
“나 참 명현도장. 좀 적당히 좀 하시게. 쯧. 진정 누군갈 만통부에 넣어 대계를 이루고 싶다면, 최소한 생각이란 걸 할 수 있는 녀석을 데려오란 말이야. 자네처럼 머리 안 돌아가는 이들만 계속 밀어넣지 말고.”
“뭐, 뭣이오! 지금 방금.”
명현도장이 버럭 소리 지르자, 제갈소명이 목소리를 낮게 깐다.
“네가 장로직을 받고선 눈에 뵈는 게 없지. 예전처럼 한 따가리 해 줄까?”
“지금 무슨…… 나, 난 무림맹의 장로요…….”
“난 무림맹의 총군사고.”
“…….”
명현도장은 잊었다고 생각한 과거가 떠올라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돌아가시게. 바쁘니.”
수치심에 몸을 부르르 떨던 명현도장이 문을 쾅! 하고 닫고 나갔다.
순간 제갈소명이 처리해야 할 서류들이 우르르 떨어진다.
“쯧. 깜냥도 안되는 것에게 자리를 줬더니 이리되는군.”
“그냥 받아주시지 그러십니까.”
맹주원이 바닥에 떨어진 서류들을 다시금 주워들며 툴툴거린다.
제갈소명이 미간을 찌푸린다.
“뭬야?”
“와서 만통부 청소라도 시키면 되지 않습니까. 여기 보십시오. 당최 만통부가 푸줏간인지 지휘통제실인지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
“더구나 진소운은 총 네 명의 인원만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정말 죽어버리면 어찌합니까. 그럼 우리 만통부는 늙어 죽을 때까지 야근만 할 수도 있습니다.”
“이 녀석이…… 만통부의 일이 얼마나……?”
오냐오냐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제갈소명이 한 소리 하려는 찰나. 문득 의문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네놈이 진소운을 어찌 아는 게야?”
방금 전 남궁세가의 일도 그냥 의례 물어보는 척했을 뿐이었는데 대답이 척척 나오고, 지금에 와선 진소운에 대한 정체도 꽤나 상세히 알고 있는 듯하다.
“총군사께서 입관패를 주셨다 했을 때부터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이 녀석 아주 대단합니다. 어찌 4명이서…….”
천목산의 일부터 최근 막간산의 일까지, 제갈소명이 몰래몰래 보았던 이야기를 녀석도 다 알고 있었다.
“쯔쯧, 하라는 일은 하지 않고…… 이러니 매일 야근하는 것 아니냐.”
“만통부에 들어올 인재 아닙니까. 그러니 선배 된 도리에서 미리미리 챙겨야죠.”
“허…… 그 아이가 무림학관을 졸업해서 여기에 오기까지 몇 년이나 남은 줄 알고?”
“무릇 대계는 10년을 보고 준비하는 것 아닙니까. 전 장가가고 나서도 이곳에서 야근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능글맞게 이야기하는 꼬라지가 영 보기 싫다.
“……방금 듣지 못하였느냐? 점창과 무당, 화산이 노리고 있단다. 목숨이나 구하면 다행인 것이지.”
“하지만 조금 전에 ‘몇 년이나 걸릴 줄 알고?’라고 이야기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합격을 염두에 두신 것 아닙니까.”
“…….”
만통부를 움직이기 위해선 똑똑한 녀석들이 필요하지만, 똑똑한 녀석들은 눈치가 빨라서 질색이다. 명현의 말마따나 단순 업무라도 시킬 녀석들을 알아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잠시 생각을 이어가던 제갈소명이 맹주원을 보았다. 며칠째 감지 않아 머리에 떡은 졌지만, 방금처럼 구린내는 나지 않았다.
“아까 그 구린내는 무엇이었느냐?”
“황취충 몇 마리를 잡아뒀습니다. 총군사께서 노시면 저희가 더 피곤해지니까요.”
“에라이!”
제갈소명이 결국 참지 못하고 맹주원에게 찻물을 부었지만, 맹주원은 미리 예견한 듯 찻물을 피했다.
꼬리를 말고 줄행랑을 치는 맹주원을 보며 제갈소명은 욕지기를 내뱉는다.
“그나저나…… 정시로 통과하려나.”
마령고원의 사태도 그렇고 움직임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다.
최근엔 제갈세가에서 투옥 중이던 제갈천기를 빼갔다는 소식을 듣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그 돌댕이처럼 머리가 굳은 놈들을 어떻게 설득했지?
더구나 제갈천기 그놈은 지 할애비 말도 듣지 않는 놈인데, 스스로 금옥에 처박힌 놈을 어찌 빼냈단 말인가.
단순 호기심으로 줬던 입관패에 점점 기대감이 실린다. 과연 혈혈단신이나 마찬가지인 놈이 진정 무림정시를 통과할 수 있을지도 참으로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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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산을 떠나온 뒤 우리의 행보는 불안할 정도로 순탄했다.
습격이 뚝 끊긴 것이다.
“이걸 좋다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며칠 만에 불을 쬐며 육포를 뜯던 은호의 말이었다.
그 말에 녀석의 얼굴을 보는데.
“왜요? 대사형?”
거지꼴도 이런 거지꼴이 없었다.
“네가 괜히 불길한 말 하니까 쳐다본 거 아냐.”
옆에서 은호를 타박하는 금표.
금표 역시 마찬가지. 거의 반 들짐승 같은 몰골이다.
그리고 한쪽에서 구운 토끼를 정신없이 먹는 동룡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배시시 웃고 계속 정신없이 토끼를 먹는다.
개방도도 보면 더럽다며 피할 몰골.
“……일단 마을에 좀 들르자.”
“네? 그러다 추격자라도 붙으면…….”
“지금 추격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럼요?”
“사람들이 너희를 볼 때 태을문도가 아니라 개방도로 볼까 무섭다.”
“…….”
“…….”
금표와 은호가 서로를 바라보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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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습격이 없다 해서 안정이 보장되었다 자신할 수 없다. 이럴 바엔 그냥 당당하게 나서는 것이 더욱 적들을 상대하기 수월할지 모른다.
‘무당, 점창, 화산이 움직이는 데 시간도 좀 걸릴 것이고.’
양군백의 말을 들었을 때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무당은 호북성에, 화산과 점창은 섬서성에 각기 자리하고 있는데, 겨우 우릴 잡기 위해서 절강성까지 움직인단 말인가?
“각 문파의 주력 제자들은 아닙니다.”
내 의문에 대한 양군백의 대답이었다.
“그렇다 해서 무시할 수 있는 상대 또한 아님은 소운님도 잘 아시지요?”
거대 문파의 제자가 하나둘도 아니고 각 제자들은 사부들의 이해관계에 얽혀 각기 다른 지원을 받게 된다.
무당파의 직접적 지원을 받고, 무당파의 제자들로 꾸려진 주력 제자들이 있다.
그 아래로 무당파에서 직접적 지원은 받지만, 무당파 속가무문의 비호를 받는 제자가 있다.
마지막엔 무당파의 제자지만 직접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소속된 상방의 지원을 받고, 자신의 가문의 무사들을 동원하여 시험을 치르는 제자들이 있다.
“소운님을 노리는 건 직접적 지원을 받지만 속가무문의 제자들을 동반한 이들입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속가무문은 어지간한 중소문파들보다 더욱 강한 무력을 가지고 있다.
같은 성안에선 주력 조를 뛰어넘을 수 없으니 경쟁에 밀려 멀리까지 이동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성의 기존 중소문파의 제자들은 이들에게 밀리는 수난을 겪는 것이고.
“그렇다 해도 절강성까지 오는 건 의외군요.”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다른 이들에게 관문패를 빼앗긴다면 닭 쫓던 개의 상황이 되어 버리는 것이니까.
“아마도 사전에 어떤 모의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주력 제자들이 아니라 할지라도 무당, 화산, 점창 세 문파가 모인 단체는 결코 경시할 대상이 아니다.
“그러니 부디 조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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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군백의 마지막 말이 계속 귓전에 남는다.
절강성을 넘어 강소성에 들어선 후. 소주를 앞에 두고 금은동 형제들은 조금 들떠있었다.
“소주엔 4대 정원이 그렇게 유명하다던데. 가볼 수 있을까?”
금표의 느긋한 말에 은호가 혀를 찬다.
“정원? 지금 우리가 지옥정시 시험을 치르고 있다는 개념은 이미 잊어버린 거야?”
“누가 잊어버렸다는 말이냐? 그냥 소문으로 듣기에 유명하다니까 이야기해 본 거지.”
“어떨 때 보면 금표 형이 동룡이보다 더 어린애 같다니까.”
은호의 말에 발끈한 금표가 동룡에게 묻는다.
“동룡아, 넌 소주 가면 뭐 하고 싶어?”
“응? ……음. 대사형. 소주에선 어떤 음식이 유명해요?”
“글세. 민물고기 요리가 유명하다 듣긴 하였다만…….”
동룡이 금새 고개를 끄덕인다.
“난 소주 가서 생선요리 먹고 싶어.”
“허…….”
은호는 길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젓는다.
나는 녀석들의 모습에 웃으며 말했다.
“정원은 가볼 수 없겠지만. 음식은 다 먹어 보자꾸나.”
“괜찮을까요?”
은호의 걱정에 금표가 비아냥거렸다.
“넌 걱정되니까 우리가 먹는 동안 경비 보고 있어.”
“……이게 진짜 말이면 단 줄 알아.”
“이게? 너 지금 형한테 ‘이게’라고 했냐?! 사형! 이 자식이 지금…….”
그렇게 투닥거리던 금은 형제는 어느 순간 주위의 시선을 느끼며 움직임을 멈췄다.
“…….”
소주로 들어선 후 번화가로 향하는 우리를 가운데 두고 양옆으로 수많은 검을 찬 무사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었다. 멀리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저들이 태을문인가?
-아마도.
-관문패를 많이 가지고 있다지?
-노리는 자들이 많아.
-거기에 한팔 거들어야겠군.
금은동 형제들은 정확한 내용은 듣지 못했겠지만, 그들의 시선이 주는 커다란 부담감에 짓눌린 듯 입을 꾹 물었다.
“이쪽이다.”
내가 이야기하기 전까지 목각인형처럼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던 금은동 형제는, 부모를 쫓는 병아리처럼 후다닥 나에게 딱 붙었다.
“긴장 좀 풀거라. 되려 여유 없는 모습이 저들에게 틈으로 보일 것이다.”
“……네.”
“넷.”
“네. 대사형.”
내 말에 조금이나마 긴장을 풀려는 듯 어깨와 목을 움직이는 은호.
하지만 녀석의 표정은 객잔으로 들어간 순간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
“…….”
“…….”
왁자지껄 떠들던 객잔의 소란이 순식간에 잦아든다.
일 층, 이 층 할 것 없이 칼 찬 이들 모두가 이편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무서운 악몽 속에서나 볼 듯한 광경이었다.
바쁘게 움직이던 점소이마저도 심상찮음을 느꼈는지, 다가오다 말고 멈춰선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 곳에나 앉으면 되나?”
내가 말을 걸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는 모습이다.
“아, 네넷. 편한 곳에 앉으시면 됩니다.”
“이곳은 뭘 잘하지?”
“보통 동파육을 많이 드십니다.”
“소주는 생선요리가 유명하다 들었는데?”
“아…… 그러시면 송서계어를 한번 맛보시는 건 어떠십니까?”
“송서계어와 동파육, 경장육사와 소면, 만두를 가져다주게.”
“일행이 더 있으십니까?”
“아니, 우리뿐이네.”
“……아, 알겠습니다.”
“아 참, 그리고 식사를 하는 동안 물을 좀 데워주게, 옷도 좀 사다 주고.”
“넷! 잠시만 좀 기다려 주십시오.”
은전 세 냥을 탁자 위에 올려놓자. 좀 전까지 불안에 떨던 점소이는 표정이 확연히 좋아져 주방으로 들어갔다.
“대사형, 일부러 우리뿐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지 않았습니까?”
은호가 주위를 의식한 듯 작게 조잘거린다.
객잔 내부의 인원들은 그 작은 소리라도 들으려는지 젓가락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우린 앞으로 계속 고난을 겪을 것이다. 겨우 지금까지 겪은 정도로 움츠러들지 말거라.”
“……하긴 그렇겠군요.”
황검문과 청도방을 비롯한 절강성의 문파들을 쳐부쉈고 그로 인해 경종을 울렸지만, 관문패를 가지고 있는 이상 얼마 오래가지 못할 평화다.
마지막 남은 삼관문을 통과하기 전, 그리고 통과한 후엔 더 많은 적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당장 성 너머에선 무당파와 화산파, 점창파의 정예들을 우릴 향해 달려오고 있다.
짝짝짝짝짝짝짝짝.
이 층 계단에서 비단옷의 공자가 박수를 치며 천천히 내려온다.
양옆에는 삼십 대로 보이는 무사 둘이 호위처럼 찰싹 붙어있었다.
“정말 대단한 배포군요.”
공자는 우리 앞까지 와서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이쪽 방면으로 움직이실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움직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
“괜찮으시다면 합석을 해도 되겠습니까?”
우리의 탁자는 여덟 명이 앉을 수 있을 만큼 넓었다.
하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식사를 방해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말입니다.”
척척.
역시나 공자의 양옆에 선 무사들이 금방이라도 검을 뽑을 것처럼 움직인다.
이런 걸 보면 호위무사들은 공통적으로 교육받는 체계가 있는 것 같다.
‘호위 대상의 말이 무시당하면 나서는 척이라도 해라’ 같은.
“대신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식사를 대접하겠습니다.”
“사제들아 뭐 하느냐. 손님 앉으시게 비켜드려라.”
“…….”
공자의 호위들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날 본다.
뭐? 공짜 밥 싫어하는 사람 있냐?
“…….”
이윽고 은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대사형, 그럼 더 시켜도 되겠지요?”
“그럼 전투를 치러야 할 공자가 무복 대신 비단옷을 입으신 걸 보니 돈이 썩어나시는 것 같으니 말이다.”
내 비아냥에도 비단옷의 공자는 입가에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 규화계랑 소총반두부, 아! 그리고 장우육도 좀 내와요!”
“야! 회과육 먹어보자. 계철영이 그렇게 자랑하던 그거.”
“여기 회과육도!”
신경을 긁기 위해 무리하게 음식을 시켰지만, 공자의 표정은 별반 변화가 없었다. 그는 가볍게 포권을 쥐며 말했다.
“전 소주에 자리 잡은 화영표국의 송백이라 합니다.”
화영표국.
강북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대형 표국.
표국은 그 특성상 상계와 강호에 각각 절반씩 발을 걸치고 있기에, 자체적으로 돈과 무력을 모두 갖춘 특별한 곳이라 보면 되었다.
“관문패가 필요하신 겁니까?”
내 단도직입적인 말에 객잔 전체가 들썩인다.
긴장된 표정으로 이편을 주시하는 수많은 무사.
반면, 송백의 입가엔 미소가 지워지지 않는다.
“듣던 대로 범상치 않은 분이시군요.”
“그렇습니까?”
“전 일관문과 이관문 모두를 통과했습니다.”
표국의 자제이니 강북에 있는 산채들의 정보는 대부분 알 것이다.
더불어 상계에 발을 얹고 있었으니 영단을 얻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겠지.
“그렇다면 굳이 저를 찾아올 필요가 없지 않았습니까?”
“막간산을 넘은 후엔 일정이 조금 편해지지 않으셨습니까?”
“…….”
점소이가 음식들을 잔뜩 가지고 나왔으나, 금은동 형제도 나도 입을 꾸욱 다문 채 그를 응시했다.
“강소성…… 소주에서만큼은 편히 지내셔도 될 겁니다. 화양표국이 태을문의 제자들을 지켜보고 있을 테니 말입니다.”
강소성의 소주는 어지간한 다른 성도에 비해 인력도 물자도 넘쳐나는 곳이건만 이곳을 꽉 잡고 있다고 자신하는 화양표국.
하지만 객잔의 그 누구도 송백의 말에 비웃음을 내비치는 사람은 없었다.
“굳이 이런 친절까지 내비칠 필요가 있습니까?”
송백이 난감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저는 필요가 없습니다만…….”
이윽고 희번덕 눈을 치켜뜬다.
“제 사형들은 그렇지 않더군요.”
“…….”
“종벽기 사형과는 이미 만나지 않으셨습니까?”
갑자기 용봉지회의 비운신풍 종벽기가 왜 나오나 했더니.
“전 점창파의 속가제자입니다.”
“아…… 그러셨군.”
달그락. 달그락.
종남기의 이야기가 나오기 무섭게 금은동 형제가 수저와 젓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송백은 세 형제를 슬쩍 본 뒤 다시금 이야기를 이어갔다.
“종 사형께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시더군요.”
“좋은 말이었습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태을검제의 진전이 태을문의 것이냐고 음모론을 펼치다 모용강에게 곤죽이 되었던 종벽기.
기행을 멈춘 대가로 모용강에게 끌려다니며 곤혹을 치를 거라 예상했건만, 벌써 움직일 수 있었던 건가?
“때문에 다른 사형들께서도 진 공자에게 억하심정이 꽤 많으신 듯합니다.”
이윽고 이 층에서 호위무사들과 같은 복색의 무사들이 걸어 내려온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세의 무사들.
“사형들께서 오시기 전까지 저희와 함께해 주시겠습니까? 그 전에 누군가에게 당해버리면 제가 꽤 곤란할 거 같아서 말이죠.”
“돈은 있습니까?”
“네?”
“음식들 산다고 했는데. 돈은 있는지 묻는 겁니다.”
송백이 피식 웃는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 든다.
“최고의 전각에서 모시도록 하지요.”
난 곧장 녀석의 머리를 잡고 탁자를 내려쳤다.
퍽.
나무로 만든 탁자건만 녀석이 머리를 부딪친 모양으로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기를 머리에 둘러 탁자가 쪼개지는 것을 막은 것이다.
덕분에 기의 충격을 온전히 받은 송백은 칠공에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이, 미친…….”
챙챙.
호위무사를 비롯한 무사들 전원이 검을 뽑는다.
나는 송백을 당겨 녀석의 목에 검을 가져다 대었다.
“도련님이 죽는 것을 눈앞에서 보고 싶은 것인가?”
“…….”
“…….”
송백의 무사들은 금방이라도 생사대적을 벌일 듯 흉흉한 기색이었다. 이에 덩달아 객잔의 무사들도 하나둘 검집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때.
후루룩.
후루루룩.
쩝쩝.
긴장이 감도는 객잔 내에 음식을 섭취하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쪽으로 몰린다.
금은동 형제는 칼부림이 나건 말건 음식을 입에 넣는 데 정신이 없었다.
내가 어처구니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니, 금표가 눈치를 보다 겨우 이야기한다.
“지금 못 먹으면…… 꿀꺽. 언제 또 먹을지 모르지 않습니까……. 후루룩.”
“대사형, 조, 조금만 더 대치해 주십쇼. 음식이 아직 뜨겁네요.”
그렇게 말하곤 다시금 음식을 입에 넣느라 바쁜 세 형제.
“…….”
화양표국의 무사들은 물론이고, 객잔 내의 모두가 금은동을 미친놈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쪽팔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