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지옥 정시 제 ‘三’관문(2)>
“정말이지, 놀랄 수밖에 없군요.”
맹주원은 제갈소명의 집무 책상 위의 보고서를 보다가 감탄을 터뜨렸다.
“…….”
제갈소명은 궁금했다.
어째서 만통부의 대부분 이들은 정신없이 바빠 다른 일은 신경도 쓰지 못하는데, 저 자식은 볼 때마다 매번 딴짓을 하고 있는 걸까.
“총군사님. 이거 보셨습니까?”
맹주원이 내미는 서류. 삼관문이 열리는 지부에서 올라온 보고서다. 당연히 아직 검토하지 못했다.
제갈소명은 핀잔을 한번 줄까 하다 고개를 저었다.
저놈이 딴짓을 하고 있다는 건 이미 자신이 해야 할 일 이상을 했다는 이야기였으니까.
“뭐지?”
“무림맹 남악지부에서 올라온 보고섭니다.”
그럼 그렇지.
언젠가부터 맹주원 저놈은 연신 진소운에 대한 관심을 끄지 못하고 있었다.
“또 진소운 이야기냐?”
“그게 아닙니다. 복양 평원에서 벌어진 사태에 관한 보고섭니다.”
“그거라면 이미 천목각에서 보고하지 않았더냐.”
“그 사건의 내막에 관한 건데 관심 없으십니까?”
“……가져와 봐라.”
제갈소명은 자신이 처리하던 서류를 놓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게 벌써 이렇게 올라올 보고서던가.
남악지부장은 정도회의 연줄이 닿아있는 인물이다. 중요한 보고라면 만통부가 아닌 정도회를 통해 보고한다.
결국 사건의 내막에 관해선 무림맹의 조사단이 파견된 후에나 파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보고서가 벌써 왔다는 것이다.
“역시나 흉수가 있었더군요.”
“흉수?”
맹주원의 보고서를 건네받은 제갈소명은 재빠르게 보고서를 읽어갔다.
사건이 일어난 일시와 간단한 내막. 그리고 실제 사건 당시에 일어났던 자세한 상황 설명까지 근래에 보기 드문 보고서다.
“남궁선화라는 소저가 보고서 초안을 잡았다는군요.”
남궁선화라면 그럴 만하다. 남궁세가 내에서 쓰는 보고서의 형식 또한 무림맹과 비슷할 터였으니.
“어둠을 이용한 사술?”
하지만 이어지는 내용은 쉽사리 믿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아마도 저희가 예상한 바가 맞는 것 아니겠습니까.”
“흐음…….”
단순히 보고서만으론 모든 걸 믿을 수는 없다.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은 종종 몽혼향이나 환각 증세를 일으켜 보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보고서 말미를 보시면 인편으로 증거물품을 보내겠다 적혀있습니다.”
동물의 가죽처럼 단단하고 검은 피부를 가지고 손바닥에서 검이 나오는 기이한 사체.
단지 글을 읽는 것만으론 쉽사리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런 보고서를 읽던 제갈소명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이 증거품을 만통부로 보내겠다고?”
이것이 실제라면, 그만치 중요한 일이라면 남악지부장이 이 기회를 그냥 넘길 리 없었다.
자신이 확보한 증거물을 정도회를 통해 만통부로 전달한다면, 자신의 위상과 더불어 정도회의 힘을 강화시킬 수 있을 테니까.
“허,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이것들이 단체로 약을 먹었나 하는 의심마저 들 지경.
그때 맹주원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닙니다. 총군사님.”
“뭐?”
“자세히 보시면, 우리 소운이가 금전 열 냥을 제안했다고 쓰여있지 않습니까.”
자신도 그 대목에선 실소를 내뿜었다.
낙악 지부장놈이 진소운에게 한 방 먹은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무림맹의 중차대한 일에 돈을 끼워넣는 행위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던 것.
“잘 보십쇼. 금전 열 냥을 복양 평원의 사상자와 부상자를 위해 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게 다 저희 만통부를 위한 처사가 아니겠습니까.”
“…….”
제갈소명은 마치 술 취해 주정을 부리는 사람 보듯 맹주원을 바라봤다.
“금전 열 냥의 돈이란 게 남악 지부장이 사적으로 지출할 돈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럼 지부 차원에서 금전을 지출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보고서를 제대로 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
“저라면 정보가 중간에 새지 않도록 이렇게 했을 겁니다. 소운이랑 똑같이요.”
그럴듯하게 들리긴 하는데, 어째 꿈보다 해몽이 더 좋은 것 같다.
아무튼 증거물을 바로 받게 되었으니, 흉수에 대한 조사도 더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로 진소운으로 인해 변하는 것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총군사님. 이럴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우리 소운이 만통부로 데려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맹주원이 말을 하는 꼬라지가 정말로 애가 달아 있다. 일할 때는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모습.
“삼관문에서 그 무식한 놈들에게 당해서 머리라도 다치면 어쩐답니까? 삼관문 이후에는요? 그 아비규환 속에서 과연 우리 소운이가 멀쩡할지…….”
“야.”
“네? ……아! 저 할 일 다 했습니다. 거기다 총군사님이 말씀 안 하신 일들도 미리 처리해 놨구요.”
“…….”
선수를 치는 맹주원, 맹주원은 방긋방긋 웃으며 제갈소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갈소명은 고개를 불량하게 꺾었다.
“너 말투가 굉장히 불량하다.”
“네?”
#
“형님! 역시 오실 줄 알았습니다.”
무림맹 남악 지부 내부로 들어온 진소운 일행은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재화?”
“네! 접니다. 형님!”
모용재화는 잃어버린 형제를 만난 것처럼 신나 하며 다가왔다.
이어, 태을문에 머무는 동안 친해진 건지 금은동 형제와도 인사를 나누었다.
“야, 너 우린 안 보이냐?”
성모란의 불량스런 말투에 모용재화가 화들짝 놀라며 돌아봤다.
“헉! 모란 누님, 선화 누님?”
“이게 한동안 안 봤다고 기강이 빠졌지.”
남궁선화와 성모란 또한 모용재화와 안면이 있었는지 장난을 치자 모용재화는 당황스러워했다.
“저…… 근데.”
모용재화가 두 소저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두 분께선 일관문과 이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겁니까?”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반문하는 두 사람의 말에 모용재화는 더욱 놀란 얼굴이 되었다.
“그럼 삼관문 시험을 치르려고 오신 게 맞습니까?”
“당연하지. 넌 이 누님을 뭘로 보고.”
“재화야, 나 그렇게 안 약해.”
당연한 듯 이야기하는 두 사람. 모용재화는 더욱 어처구니없는 얼굴이 되었다.
“그 꼴로 말입니까?”
“…….”
“…….”
무림정시 삼관문은 결투 방식으로 결정된다.
일관문과 이관문을 통과한 자들끼리 모여 상대방을 지정하여 결투한 후, 승리한 자에게만 삼관문 패를 쥐여준다.
일관문과 이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자들이 생사 대적을 만난 듯 결투를 치러야 하는데, 남궁선화와 성모란의 모습은 꼭 나들이를 온 사람들 같았으니 하는 말이었다.
“무, 무슨 소리야. 재화야, 나 이거 평소 모습이잖아.”
“네? 그게 무슨…….”
“너, 나랑 수련할 때도 나 이런 모습이었잖아, 기억 안 나?”
평소 미소를 잘 잃지 않는 남궁선화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린다. 그녀가 모용재화의 곁으로 다가가 팔에 슬쩍 손을 올렸다.
갑작스레 엄습하는 고통에 모용재화가 비명을 내질렀다.
“으앗!”
“어머? 왜 그래? 일관문과 이관문에서 어디 다쳤어?”
모용재화는 살점이 뜯겨나가는 고통을 느끼며 남궁선화를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야! 너 죽고 싶냐?
그때, 모용재화의 머릿속엔 우레가 울렸다.
전음을 보낸 이는 다름 아닌 성모란.
-그렇게 놀란 눈빛 보이면 티가 나지 않냐.
모용재화가 얼른 고개를 숙인다.
-쓸데없는 말 했다간 이거다.
성모란이 진소운의 뒤에서 엄지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해 보였다.
모용재화는 당최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일단 말을 돌리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다.
“혀, 형님, 등록하러 오신 거 맞으시지요?”
“응? 어. 근데 너 왜 이렇게 땀을 흘리냐?”
“아, 하하. 그, 그게 너무 오랜만에 반가운 들을 많이 만나서 그런가 봅니다.”
삼관문의 상대는 먼저 온 사람이 차후에 온 사람을 지정하는 방식으로 정해진다. 그 때문에 진소운 일행은 아침부터 바지런히 발길을 재촉했던 것.
“그런 것치고는 사람들이 많이 와있네.”
“이미 전날부터 와서 기다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모용재화의 말마따나 남악지부의 대연무장 곳곳엔 각 문파의 무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적은 곳은 서넛이 온 사람들도 있었고, 많은 곳은 수백 명이 모여있는 곳도 있었다.
“제일 먼저 온 곳은 소림이었습니다.”
맨들맨들한 민머리를 가진 스물에 가까운 인원들이 연무장 안으로 들어오는 이들을 하나하나 살핀다.
적당한 상대를 물색하고 있는 것이다.
“넌? 정했어?”
“저도 아직 마땅한 인물이 없어 기다리는 중입니다.”
성모란이 모용재화의 머리를 툭 쥐어박았다.
“그런 거 따지지 말고 그냥 아무하고 붙어. 어차피 다 똑같아.”
“누님, 그러니까 누님이 맨날…… 아, 아닙니다. 아무튼, 삼관문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눈치 싸움이 필요한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근데 저쪽 무당 아니야?”
등록처 앞에 모여있는 이들의 무복에는 공통적으로 무당을 상징하는 하얀 구름이 그려져 있었다.
“무당은 통상 섬서성으로 많이 갔는데. 어찌 된 일이지?”
“그러니까 말이죠. 안 그래도 소림 때문에 호북성 경쟁률이 언제나 박 터지는데 무당까지 합세한 상황입니다.”
응시생으로 보이는 이들은 총 다섯. 여타 다른 응시생들과는 질이 달라 보였다.
“어? 벌써 상대를 정한 건가?”
“이상하네요. 아직 첫날이라 응시생들이 다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무당파의 제자들이 일제히 대연무장을 나가기 시작했다.
“진 공자, 진 공자!”
성모란이 진소운을 급하게 불렀다.
“왜 그럽니까?”
“눈 깔아요.”
“네?”
“진 공자는 약간 반항적인 눈빛이라 무당의 심기를 건들 수도 있잖아요.”
“…….”
“삼관문은 무조건 자신보다 약한 사람하고 붙는 게 최고예요.”
“…….”
그때, 무당파의 가장 선두에 선 청년이 우뚝 걸음을 멈추고, 진소운 일행을 바라봤다.
갑작스런 그들의 행동에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던 금표와 모용재화가 화들짝 놀랐다.
“뭐, 뭐죠?”
“다시 들어가려고 하는 건가?”
“혹시 남궁선화 누님이나 성모란 누님과 안면이 있는 건가?”
금표가 두 사람을 보았지만, 두 사람은 그저 작게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진소운 일행의 근처까지 다가온 청년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진소운에게서 시선을 멈추었다.
“진소운이겠군.”
“…….”
“무당의 현수다.”
진소운도 갑자기 무당의 현수가 자신을 부르는 이유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
“현정의 사형 되지.”
“그런가?”
진소운이 심드렁히 대답하자 현수의 눈썹이 슬쩍 들썩였다.
“현정은 너를 잡겠다고 화산의 연우문과 함께 움직였다.”
현수와 함께 그의 사제들로 보이는 여타 다른 응시생들이 조용히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다들 용과 같은 기세를 뿜고 있었다.
“그런데 내 사제는 연락이 되지 않고 너는 이곳에 도착했군.”
“그래서?”
현수의 눈썹이 다시금 들썩인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군.”
진소운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상대에게 뭔가 원하는 게 있을 땐 예의를 갖추는 것이라 못 배웠나?”
현수를 비롯한 무당파 제자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처음 보는 자리에서 반말 찍찍 싸도 상대가 호의를 가지고 대답할 거로 생각한 건가?”
“……현정은 내 혈육 같은 동생이다.”
“그럼 더 정중하게 물어봤어야지. 나를 죽이러 왔다는 놈의 행선지를 그렇게 무례하게 물으면 어떻게?”
진소운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금은동 형제가 슬금슬금 진소운의 곁에서 멀어진다.
남궁선화와 성모란도 도저히 적응되지 않는지 슬금슬금 멀어진다. 반면, 모용재화만이 그 빈자리를 채우려 더 가까이 다가간다.
“말이 안 통하는군.”
현수의 한숨에 다른 제자들이 희번덕 눈을 뜬다.
하지만 딱히 지부 밖의 사람들처럼 무력행사를 하진 않는다.
“결국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현수를 비롯한 무당파의 제자들은 대연무장을 나섰다.
긴장하고 있던 성모란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사람이 왜 그래요. 내가 방금 전에 말했잖아요. 아주 싸움하고 싶어 안달이 났어요?”
“아뇨. 되려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 왜 그러는데요?”
“제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제 사제들에게, 그리고 태을문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할 거 아닙니까. 그렇다면 제가 대신 싸우는 게 낫죠.”
“…….”
진소운의 말에 성모란이 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자 얼른 들어가서 등록하죠.”
“네 넷.”
등록처 앞은 한산했다.
아직 지부까지 도착한 응시생도 많지 않았고, 치열한 눈치 대결을 펼치기 위해 등록 시간을 일부러 늦추는 일도 있었다.
진소운 일행이 모두 등록을 마치고 진소운이 학사 맹원에게 말했다.
“상대 선정은 들어오는 사람을 보고 하겠습니다.”
“음?”
학사맹원이 서류를 뒤척이더니 고개를 젓는다.
“태을문의 응시생들은 이미 모두 상대가 정해졌네.”
“네?”
“자네들이 지부에 들어오자마자 이미 등록하고 간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야.”
“그게 무슨……. 저흰 방금…….”
말을 잇던 은호가 말을 잇지 못한다.
“누굽니까?”
진소운의 물음에 학사맹원이 서류를 돌려 진소운 일행에게 보여주었다.
“이게 무슨…….”
일행은 그 명단을 보고 기함을 금치 못했다.
● 삼관문 시험 대전자
무당파 현수 – 태을문 진소운
무당파 현명 – 태을문 금표
무당파 현향 – 태을문 은호
무당파 현진 – 태을문 동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