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지옥 정시 제 ‘三’관문>
“우리는 이번 복양 평원의 사태에 대한 진실을 원한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각 성에 지부 성격의 시설을 짓는다. 소림사는 절을, 무당과 화산은 도원이다.
본산의 위치가 멀어 직접 방문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서 도원을 세웠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전국에 있는 관련 속가 문파와 상업 시설을 관리하는 기능을 도맡아 하기에 무림맹의 지부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무림맹의 지부가 내부의 복잡한 정치 문제로 인해 결속력이 떨어지는 반면, 구파의 지부는 본산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움직인다는 점.
“무슨 진실 말입니까?”
두 사람은 각각 무당과 화산의 도원장을 맡고 있는 인물들이라 소개했다.
“복양 평원에서 천명이 서로 격돌하고 오백에 가까운 인원이 죽었다. 이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화산 정주 도원장의 말에 그 뒤에 선 장년인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각기 복색이 다른 것으로 보아 화산파와 무당파뿐만 아니라 복양 평원에서 죽은 이들의 사문 어른으로 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천명이 격돌한 게 아니라. 팔십을 상대로 천 명이 전투를 벌인 것이지요.”
화산 도원장의 옆에선 무당 정주 도원장이 나섰다.
“내 말이 그 말이다. 어찌 팔십을 상대로 천 명이 격돌하였는데, 너희들은 스무 명만 죽은 것이냐.”
무당 도원장의 말에 남궁선화와 성모란의 안색이 서서히 변한다.
“저희 모두가 죽었어야 했다……. 이 말이십니까?”
“순리대로 따지자면 그것이 옳은 것 아니겠느냐.”
“!”
“!”
남궁선화와 성모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다른 이들이었다면 당장에 나서서 검이라도 뽑았겠지만, 지금은 무당과 화산의 도원장이라 차마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못했다.
“어르신, 이곳엔 남궁세가와 철검문의 영애들이 함께 있습니다. 말을 가려 하시지요.”
철검문이라면 몰라도 남궁세가가 함께 있음에도 그들의 태도는 무례하기 그지없었다.
무당의 정주 도원장은 남궁선화를 한번 보고는 다시 말했다.
“……문제가 있다면 차후에 해결하면 될 터. 지금은 그보다 더 중한 일의 해결이 우선이다.”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음을 깨닫고 무림맹 남악 지부로 들어가려 했다.
여기서 계속 시간을 끌고 있다간 아침 일찍 일어난 이유도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일에 대한 전말을 다 밝히기 전엔 들어가지 못한다.”
무사들을 이용해 입구를 막아버린다.
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교 준동에 대한 실마리는 공식적인 기관을 통해 흘리기 시작해야 한다.
개인이 들어봐야 이해도 가지 않고 납득도 할 수 없다. 의혹만 더 쌓일 뿐이다.
“안 그래도 여기 남궁소저가 무림맹에 보고할 자료를 따로 만들었습니다. 일에 전말은 차후, 맹에서 직접 들으십시오.”
“분명히 말했다. 전말을 밝히기 전엔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
피가 차게 식는다.
형제 자매와 같은 제자들의 죽음은 안타까우나, 그 또한 무림 정시를 치르는 시점에서 각오해야 하는 법.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들의 힘을 믿고 말도 안 되는 주장을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
자신들이 가진 권리가 남들과 다르다 확신하기에 할 수 있는 편협한 사고.
“……지금 무림정시 시험을 방해하는 겁니까?”
“우린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 하는 것이다.”
“삼관문이 펼쳐지는 지역에선 어떠한 불화도 일어나선 안 된다는 것이 규정입니다. 이를 어길 시 당사자는 물론이고 그 문파에까지 영향이 갑니다. 알고 계시지요?”
“흥! 그러니 네놈을 찾으러 온 것이 아니더냐. 그 규정이 아니었다면 네놈이 결코 네 발로 이곳에 오지 못했을 것이다.”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군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검을 꺼내 들었다.
“지금 뭐 하는 것이냐?”
“저를 의심하시는 건 상관없습니다만, 저로 인해 남궁세가와 철검문이 피해를 보는 것까지 용인할 수 없지요. 저와 제 사제들이 시험을 깔끔하게 포기하고 두 분 소저를 안으로 모셔야겠습니다.”
“진 공자!”
남궁선화와 성모란의 두 눈이 부릅떠진다.
“감히 네놈이 우릴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무당과 화산의 도원장은 물론이고 각파의 대표를 자청하고 나온 이들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었다.
도원장들의 무복이 크게 부풀기 시작한다.
서서히 내공을 끌어올리며 주변에 가하는 압력이 피부로 찌릿하게 느껴진다.
나 또한 지지 않고 있는 힘껏 힘을 끌어올렸다.
“이상하군요. 저희는 팔십의 인원으로 오백을 죽인 사람들입니다. 저희 앞에 서는 것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
“…….”
금은동 형제가 검진을 짜고 검을 뽑아 든다.
도원장과 함께 온 이들은 이런 사태까지 올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듯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챙! 챙!
예쁘게 화장하고 왔던 남궁선화와 성모란까지 검을 빼 든다.
“두 분께서는 나서지 마십쇼. 여기서 괜히 나섰다간 정시 시험을 치르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요?”
“모욕을 받은 건 태을문만이 아니에요. 저들은 지금 대 남궁세가의 이름을 모욕했어요. 제가 여기서 시험 때문에 물러났다고 하면 할아버지께서 절대 용서하지 않으실 거예요.”
두 소저가 나서자 그 뒤에 함께했던 무사들까지 모두 검을 뽑아 들었다.
“이, 이것들이…….”
화산 도원장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화산과 무당의 이름으로 찍어누르기엔 상대가 너무 안 좋았다.
창제신검까지 들먹거린 상황에서 진짜로 격돌이 일어났다간 화산과 무당, 남궁세가 간에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훗날 시시비비를 따졌을 때, 지금 이 자리에 있었던 도원장들이 책임을 묻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나는 흑룡검에 검기까지 둘렀다. 이제부턴 담력 시험이다.
잃을 것 없는 놈이 이기는 거다.
내가 성큼 한 걸음 앞으로 나서자, 화산과 무당의 도원장들이 움찔거린다.
“잠깐!”
그때 무림맹 남악 지부 내에서 중년의 사내가 호위들과 함께 걸어나왔다.
“무림맹 남악지부 지부장이십니다. 다들 검을 거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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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소란입니까.”
“…….”
“…….”
지부장이라 소개된 중년의 인물은 이편으로 다가와 도원장들과 눈빛을 교환한다.
뭔가 사전의 이야기가 오갔던 상황인 듯 도원장들은 슬몃 고개를 숙인다.
“다들 돌아가십시오. 지금은 무림정시 삼관문 시험을 치러야 하니.”
“그럴 수 없소이다!”
“복양 평원에서 피해자가 수백이오.”
“사건의 전말에 대해서 알아내야 하오!”
몰려든 이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자, 지부장이 작게 한숨을 내쉰다.
“복양 평원에서의 일이라면 나도 들었습니다. 그 일에 대해선 이미 무림맹에 보고가 올라갔고, 무림맹에선 조사단을 꾸려 파견할 것입니다.”
“아니 그래선 시간이 들잖소! 시간이! 증거가 남지 않은 후에 조사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소!”
“여기 사건의 당사자가 있는데 굳이 무림맹의 조사단을 기다릴 이유가 무에 있소이까.”
사방에서 지부장을 책망하는 목소리가 울린다.
“그만.”
지부장은 목소리에 내공을 담아 사방에 퍼트렸다. 장내의 소란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무림정시 시험은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게 되어있소. 이렇게 사적으로 시험을 방해했다간 그대들의 사문에도 분명 피해가 갈 것인데. 다들 그것에 각오는 되어있소?”
“…….”
“…….”
“그러니 그만하시오. 의혹이 있다면 맹에서 반드시 해결할 것이오.”
일단락 되는 것 같았던 그 순간 화산의 도원장이 나섰다.
“그러기엔 일이 너무 중하오.”
지부장의 눈가엔 미미한 경멸이 어려있었다.
적당히 면이 서게끔 끝내주려 했는데 다시금 도원장이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도원장의 이야기에 장내는 다시금 소란이 일었다.
“복양 평원에서 사술이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있소.”
“…….”
지부장의 눈가가 미비하게 떨린다.
“푸핫!”
성모란이 웃음을 터트린다.
사람들의 시선이 성모란에게 몰렸지만, 성모란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무엇이 그리 웃기시오? 성모란 소저.”
지부장은 놀랍게도 성모란을 알고 있었다.
“저분들이 스스로의 무덤을 팠으니 웃지 않고 배길 수 있나요.”
“무슨…….”
“다음 할 이야기는 ‘태을문이 사술과 관련된 것 아니냐’이겠지요?”
“…….”
“…….”
성모란은 화산과 무당의 도원장을 가리켰고, 두 사람의 얼굴은 붉어지다 못해 폭발하기 직전이 되었다.
“우리 철검문에도 그런 멍청한 이야기를 한 사람이 있었지요. 덕분에 우리는 대대로 내려오는 태사조님의 구중검도 빼앗겼고요. 여기 계신 분들중에 이 사실을 모르는 분은 없지요?”
“흥! 그런 상대와 함께 하는 것을 보니 부끄러움을 모르는군.”
“복양 평원에선 철검문과 남궁세가도 함께였어요. 사술을 썼다 확신할 수 있으신가요?”
“…….”
조용히 있던 화산의 도원장과 달리 이번엔 무당의 도원장이 나섰다.
“철검문과 남궁세가가 사술과 연관되었다고 생각한 적 없소. 하지만 태을문의 무공이 본래 태을문의 무공이라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경천동지하다는 점에 대한 의심은 풀어야 하오.”
난 무당의 도원장을 응시하며 물었다.
“방금 그 말 책임 질 수 있소?”
나 더 이상 거칠 것 없이 살기를 쏘아내었다.
“헙.”
“크흑.”
“뭐, 뭔 놈의 살기가.”
무당과 화산의 도원장은 물론이고 그 뒤에 선 장년인들까지 동시에 인상을 찌푸린다.
“다시 묻겠소. 그 말 책임질 수 있겠소?”
“네 이놈!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따위 행동을 하는 것이냐.”
“난 이제껏 내 사문과 내 사형제를 욕보인 놈들을 가만두지 않았소.”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럴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 이럴 것이다.
전생의 제갈천기가 지금의 나를 보았다면, 마음속 짐을 덜어내지 못하고 쓸데없는 짓거리를 한다고 욕할 것이다.
상관없다.
그로 인해 얼마나 피해를 보든, 얼마나 상처받든, 이젠 전생의 나만큼 나약하지 않으니까.
난 지체 없이 무당의 도원장에게 다가갔다. 뒤편에 섰던 무당의 도사들이 도원장의 앞을 막아선다.
“저, 저놈이!”
무당 도원장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내게 삿대질한다.
금은동 형제는 내 옆으로 따라서며 언제든 검을 휘두를 준비를 한다.
나는 목소리에 내공을 한껏 담았다.
“다시 말해보라!! 무당은 태을문이 사술을 썼다 확신하는가!!!”
“이, 이놈이!”
무림맹 남악 지부 전체에 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
길을 지나가던 이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이편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무당 도원장의 얼굴은 종잇장처럼 일그러졌다.
대답 없는 그의 모습에 내가 쌍천검결을 흩뿌리려는 순간.
“태을문의 진소운 대협은 사술을 쓰지 않았소.”
새로이 끼어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장내의 사람들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가 들린 곳엔 깊은 상처를 치료하던 중으로 보이는 수십의 인원들이 이편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한숨 돌린 표정의 지부장이 물었다.
“그, 그대들은 누구인가?”
맨 앞에 선 사내가 말했다.
“곤오문의 묵정호라 합니다. 이번 정시 참가자이고, 복양 평원에서 태을문과 싸웠던 사람이지요.”
“그렇군. 그곳에서 있었다면 사건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겠군.”
“누가 이야기를 전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곳에서 사술을 쓰는 자가 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거봐라. 태을문이…….”
“하지만! 태을문의 진소운 대협은 그 사술을 쓰는 자들로부터 우리를 구해준 사람입니다.”
“뭣?!”
가까이 다가와 얼굴을 보니, 내가 구해준 것을 부끄러워하며 바락바락 소리쳤던 응시생이었다.
“태을문과 전투를 벌이는 순간. 어둠을 틈타 우릴 습격했던 이들의 모습은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분명 무림맹의 조사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 흉수가 진소운 대협이 아니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걸 네가 어찌…….”
“부끄러운 줄 아시오!”
“뭣?”
“진소운 대협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흉수를 상대로 자신을 공격하러 온 우리를 구해준 사람입니다. 단지, 우리가 같은 백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묵정호가 도원장의 뒤편에 있는 이들을 손가락질하며 말을 이었다.
“더구나 여기 계신 분들의 자제들을 위해 동원된 무사들이 죽어가고 있자 직접 나서 응급처치까지 했습니다. 정작 그들을 고용했던 이들은 여기 와서 협객을 핍박하고 있는 겁니까! 그러고도 여러분들이 백도 문파의 기둥이라 할 수 있습니까!!!!”
“옳소!”
“부끄러운 줄 알아 이 새끼들아!”
묵정호와 함께 움직인 이들은 복양 평원에서 응급처치를 해줬던 무사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고용했던 이들을 향해 욕지기를 서슴지 않았다.
“부끄러운 줄 아시오!”
곤오문이면 백팔봉의 10봉의 위치에 있는 문파다. 화산과 무당을 비롯한 이곳에 모인 이들의 위세를 생각해 보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묵정호는 호통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 곤오문의 묵정호가 보증하건대 태을문의 진소운 대협은 사술을 쓴 바가 없소이다.”
“나도 동의하오!”
“나도 동의하오!”
무사들 사이에서 소리가 커지자, 화산과 무당의 도원장들의 얼굴이 시꺼멓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때 무사 하나가 지부장에게 귓속말을 했고, 지부장이 남궁선화를 바라보며 말했다.
“남궁선화 소저. 무림맹에 전달한 보고서를 만들었다 들었소.”
남궁선화는 품 안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건넸다.
“…….”
남궁선화의 보고서를 읽던 지부장이 나를 바라봤다.
“여기 보니 흉수의 사체 일부를 입수하였다 하는데, 그게 사실인가?”
“네.”
“보여주겠나?”
금표에게 눈짓을 하자 금표가 천으로 둘둘 말아 놓은 암흑절혼단원의 팔을 꺼내었다.
“힉!”
“저게 뭐야!”
“저거, 손바닥에서 검이 튀어나온 거야?”
“뼈 아닌가?”
사체를 보여주자 그제야 지부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왜 이걸 진작 보여주지 않았나? 그랬다면 더 쉽게 해결되었을 텐데.”
지부장의 책망 어린 목소리에 난 고개를 저었다.
“지부장님도 제대로 저희 편을 들어주지 않았는데, 이깟 사체 하나가 있다고 의혹이 해소되겠습니까.”
“……크흠, 꽤 아프군.”
지부장이 도원장들을 바라보았다.
“이걸로 태을문이 사술을 행했다고 말할 수 있는 자는 없겠군.”
“…….”
“…….”
나는 무당의 도원장에게 다가갔다. 무당의 제자들이 검을 들고 나를 막아섰지만, 나는 되려 검을 집어넣고 말했다.
“아직도 태을문이 사술을 썼다고 생각하오?”
“…….”
“말해보시오.”
“…….”
“말해보시오!!”
“아니다…….”
“그럼 사과하시오.”
“뭣!”
“사과하라 하였소.”
“……너 내가 누군 줄…….”
“사과하지 않으면 이 일에 대해 무림맹을 통하여 정식으로 항의하겠소.”
한참을 고민하던 무당의 도원장이 길게 한숨을 내쉰다. 그러더니 고개를 푹 숙인 채 포권을 쥐었다.
“……무당의 송모가 태을문에 정식으로 사과드리오.”
여기저기서 작은 탄식이 터져나왔다.
보고도 믿을 수 없다는 반응.
“당신이 무당의 사람인 걸 다행으로 생각하시오. 태을문인 내가 무당에게 사술을 썼다고 말했다간 사과만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오.”
“…….”
지부장이 다시 말을 꺼냈다.
“무림맹에 보고를 위해 그 사체를 넘겨줄 수 있겠나?”
흉수에 대해 정확한 파악을 하기 위해선 그 증거 또한 필요한 법이다.
지부장의 손은 자연스레 사체로 향했다.
“싫습니다.”
그리고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금표가 지부장의 손을 피했다.
“……시, 싫다고?”
“네.”
“자네들의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선 증거물이…….”
“그 의혹은 이미 해소되지 않았습니까.”
“……이건 중한 사건이네. 특히나 어둠 속에 몸을 숨기는 존재가 있다면, 이건 단연 무림맹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사건이야.”
“무림맹이 해결해야 하는 사건이지만 증거물이 꼭 필요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시험을 치르며 얻는 부산물들은 모두 응시생의 것으로 취급된다. 그것이 규정이지요?”
“…….”
“전 이걸 제 사문으로 보내어 사문에서 직접 조사하게 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태을문은…….”
지부장은 말을 하려다 말고 삼켰다. 조금 전 무당이 실언한 대가가 어떤 것인지를 똑똑히 보았기 때문.
나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지부장님께서 정 필요하시다면 이 사체를 제게서 사시지요.”
“뭐?”
“헛!”
“참 내, 어디 근본 없는 문파 출신 아니랄까 봐.”
화산 도원장의 혀 차는 소리가 들리지만 깔끔하게 무시했다.
“얼마를 원하지?”
“금전 열 냥.”
“허!”
지부장은 물론이고 남궁선화와 성모란마저도 놀란 표정이 되었다.
“그 돈으로 복양 평원에서 죽은 사람의 장례와 상처를 입은 이들의 치료를 해주십시오. 그럼 이 사체를 넘기겠습니다.”
“!”
“!!”
그리고 이내 더욱 놀란 기세를 감추지 못한다.
무당과 화산의 도원장들은 마치 똥 맛이라도 본 표정이었다.
“그리하시겠습니까?”
“하…….”
길게 한숨을 내쉰 지부장이 이내 입을 열었다.
“그런 거라면 받아들이도록 하지.”
“금표야 드려라.”
“넷! 대사형.”
금표는 평소와 달리 대사형이란 말을 붙이며 지부장의 옆에 선 무사에게 사체를 건넸다.
그러자 우레와 같은 함성이 쩌렁하게 울린다.
“““와아아아아아!”””
나는 묵정호에게 포권을 쥐어주었다.
“도와주어 고맙소. 보중하시오.”
“……진 대협, 다음에 또 봅시다.”
사람들을 지나 지부 내부로 들어가는 길 뒤쪽에선 무사들이 일제히 외치기 시작했다.
“진소운!”
“진소운!”
“진소운!”
“흑염룡! 진소운!”
“흑염룡! 진소운!”
“흑염룡! 진소운!”
어쩐지 성모란과 남궁선화는 자신들이 환호를 받는 듯 어깨를 쭉 편 상태였고, 금은동 형제는 평소보다 더욱 바짝 붙어 걷고 있었다.
“왜 이리 붙는 것이냐. 그리고 그 깃발은 이제 좀 내려라.”
“무슨 소릴 하십니까 대사형. 안 그래도 깃대가 너무 짧은 것 같아 더 긴 걸 준비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