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만서고의 요괴를 만나는 흑염룡(3)>
“진 공자님, 얼굴이 왜 그래요?”
“누구죠? 누가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거예요?”
성모란과 남궁선화가 무거운 살기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나는 그녀들을 자중시켰다.
“그런 거 아닙니다. 수련하면서 생긴 상처예요.”
성모란은 내 말이 믿기지 않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솔직히 말해요. 구파일방인가요? 아님, 오대세가예요? 대체 누구한테 이렇게 맞은 건데요?”
“……그렇게 엉망입니까?”
요즘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검마를 찾아가 시비를 걸고 뚜들겨 맞고선, 기절한 채 하루를 보내는 것이 일과였기에 동경을 챙겨볼 시간이 없었다.
“사람을 아주 그냥 걸레짝으로 만들어 놨네.”
그래도 사람한테 걸레짝이란 말은 좀 심한 거 아닌가?
나는 내막을 이야기해 줄 수 없었기에 이야기를 돌렸다.
“학관에서 처음 보내는 휴식기인데 본가에 안 가십니까?”
“…….”
“…….”
묘한 정적이 감돌며 두 사람이 서로 어색하게 눈을 마주친다.
“뭐, 지, 지금은 학관 수업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서요.”
“괜히 지금 돌아갔다간 들뜬 마음 때문에 긴장이 놓일 것 같아서 말이죠.”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림학관의 첫 번째 휴식기는 가혹한 무림 정시를 통과하고 본가에서 보내는 첫 휴가다.
이 첫 휴가는 단순한 휴식 기간이 아닌 금의환향의 성향이 짙다.
사문이 북해에 있는 은설란 같은 경우야, 애당초 휴식기 동안 오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기에 포기한다지만.
하북이나 광서성 같은 경우, 오가는 거리가 상당함에도 부득불 휴식기에 사문이나 가문에 돌아가지 않던가.
사문은 물론이고 동네, 나아가 인근 도시에 널리 방이 붙어 사람들이 몰려드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열리는 연회에 누가 빠지고 싶어 하겠나.
“혹시 시험 점수가 넉넉지 않아 그러십니까?”
“…….”
“…….”
난 두 사람의 낮은 필기시험 점수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러게, 제가 집어드린 것만 달달 외우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얼마나 많은 양인데 그걸 다 외워요.”
“진 공자, 우리가 진 공자처럼 괴물인 줄 알아요?”
“아무튼 아쉽겠군요. 그런 축하는 일생에 한 번만 받을 수 있는 것인데.”
“그럼 진 공자님은 왜 안 돌아가세요?”
남궁선화의 물음에 난 단호하게 말했다.
“어차피 제 아버지는 짠돌이라 연회 같은 건 안 열어주시거든요.”
“에……. 그럼 남궁세가에 같이 가실래요? 아마 크게 연회를 열어주실 텐데.”
“응?”
“아, 아버지가 진소운 공자는 언제 오는지 계속 물어보셔서요. 할아버지도 그렇고요.”
그러고 보니 예전에 남궁진명이 자신의 손님으로 놀러 오라고 한 적이 있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지금은 수련해야 할 때라서 말이죠.”
성모란이 입을 삐쭉이며 말했다.
“진짜 휴식 기간 내내 수련만 할 거예요?”
“두 분도 그러기 위해 남았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한데, 그래도 좀 쉬어야죠. 인근에 놀러도 가고. 동정호가 얼마 멀지 않은데.”
“두 분이서 놀러 가시면 되지 않습니까?”
“뭐라고요?!”
성모란의 눈초리가 삐쭉 솟았다.
두 사람이 쉬는 데에 굳이 내가 끼어야 하는 건가?
아니면 내 사제들을 생각해서 배려해 주는 건가?
“안 그래도 악양엔 한번 가려고 했습니다.”
“정말요? 언제요? 며칠간 갈 건데요?”
“처리할 일이 있어서 말이죠. 간 김에 조금 구경하다 오는 것도 사제들에게 좋은 경험이 되겠고요.”
“…….”
실망한 표정을 짓는 성모란.
남궁선화는 그런 성모란에게 뭔가 귓속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성모란도 남궁선화에게 다시금 귓속말을 했다.
전음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왜 굳이 저러는 거지?
“좋아요! 그럼 아쉬운 대로 악양에라도 놀러 가기로 해요.”
“처리할 일이 있어 간다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요. 빨리 처리하고 놀면 되죠.”
“…….”
“그럼 언제 갈 거예요?”
“수련이 좀 끝나면 갈 생각입니다.”
“……무작정 기다리라는 건 아니겠죠?”
“두 분도 제 사제들처럼 수련하며 시간을 보내시는 건 어떻습니까?”
“…….”
“…….”
성모란과 남궁선화는 왠지 화난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화를 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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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선화나 성모란도 그렇지만, 지금 무림학관에서 나에게 가장 화를 내는 사람을 꼽자면 바로 검마다.
얼마나 화가 난 건지, 만날 때마다 기절하기 직전까지 폭력을 행사한다.
역시나 흑도의 거두답다.
“그렇게 맞고도 또 온 것이냐?”
우드득, 우드득.
등 쪽에 볼록 튀어 나왔던 뼈가 쏙하고 들어가더니 반듯하게 선 검마.
봐도 봐도 신기하단 말이야.
보통 역골공이 취할 수 있는 변형의 한계를 아득히 넘어, 아예 곱추가 되어버리는 역골공은 몇 번을 봐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가르쳐 줄 때까지 계속 올 생각입니다.”
“그럼 난 네놈이 오지 않을 때까지 계속 패줄 생각이다.”
“누가 이길지 궁금하군요.”
“내가 이길 것이다.”
“저에겐 신고라는 최후의 수단도 있습니다.”
“네놈이 나를 신고할 생각이었다면, 처음 맞은 날 신고했겠지.”
“…….”
한마디도 안 져, 이씨.
“고로 단단한 주먹으로 때리는 내가, 물렁물렁한 살로 맞아야 하는 너를 이길 것이다.”
“흠…… 납득이 되는군요. 그럼 어디, 오늘도 신나게 맞아볼까요?”
검마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탄식을 터트린다.
“왜 같은 백도도 아니고, 굳이 나에게 무공을 알려달라는 것이지?”
“검마님께선 본래 백도 출신이지 않으십니까. 그러니 배울 만하지요.”
“그것은 이유가 안 된다. 더구나 네 무공은 스스로 발전시키는 형태의 공부다. 그걸 모르고 덤비는 건 아니겠지?”
몇 번 손을 섞어본 게 다인데, 무공의 본질에 대해서 벌써 파악이 끝났다고?
역시나 최고의 무공 사부가 될 자질이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발전하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왜 당장 누가 쫓아오느냐?”
검마에게 말해봤자 좋은 소릴 듣진 못할 것 같아 대충 이야기를 던졌다.
“제 상황에 대해서 아십니까? 전 구파일방이랑 오대세가, 12봉성에 모두 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검마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나를 보았다.
“……흑염룡이 흑도 신성이라더니, 정말 거짓말을 잘하는구나. 하마터면 속을 뻔했다.”
“…….”
나를 노려보던 검마는 길게 한숨을 쉬곤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좋다. 네가 무엇에 쫓기는지는 내 알 바 아니고. 그동안 맷값을 생각해서 한 가지 알려주마. 검강을 배우고 싶다고?”
“네.”
“하지만 검강만 따로 떼어내 배울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해서 강호를 독보하며 홀로 무공을 창시하신 검마님께 요령을 듣고자 함입니다.”
“아부해도 소용 없다. 아무튼 검강을 배우고자 함이 검강을 상대하기 위함이더냐?”
만검으로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긴 하지만, 그걸론 한계가 있다.
언제 부러질지 모르는 검을 들고 생사대적을 펼칠 순 없지 않는가.
검강의 고수를 상대하려면 검강의 세계에 들어서야 한다.
“네.”
“하핫.”
“왜 웃으십니까?”
“제 손에 금덩이가 들린지도 모르고 남의 손에 들린 은덩이를 탐내는 꼴이 우스워서 그런다.”
“네?”
“넌 검강을 익힐 필요가 없다. 물론 익히면 좋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거지.”
“어째서 말입니까?”
“네가 맨 처음 내게 선보인 만검이란 무공.”
만해천지검결은 태을진경의 오의나 마찬가지지만, 검강을 상대하기엔 부족하다.
이미 이에 대해선 여러 번 말했었는데.
“그 만검은 실제가 아니면서 실제이지 않더냐.”
“그렇……지요.”
“그럼 그 검에 검기를 덧씌우면 되는 것 아니냐.”
“…….”
만검에 검기를 덧씌운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 거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냐?”
“그건 불가능한 일이지 않습니까?”
환검에 한계가 지어지는 것은, 수준이 올라가도 검기를 덧씌우지 못하기 때문 아니던가.
“거야 멍청한 놈들이나 그런 거지.”
검마는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들었다.
이전에 검강의 파도를 만들어 냈던 그것이다.
“잘 봐라.”
일순간 나뭇가지가 휘둘러지며 허공엔 수십 개의 나뭇가지가 생겨났다.
뒤이어 검마의 나뭇가지에 유형의 기가 어렸다.
하지만 아직 허공에 남아 있는 나뭇가지의 환영은 그대로인 상태.
“환검에 검기를 씌울 수 없다면, 검기 자체를 환영으로 만들면 되는 것 아니더냐.”
이어 허공을 가득 메운 나뭇가지들에 하나하나 검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빛의 축제.
화려한 연회가 열린 듯 사방엔 그의 검기가 유형화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필요한 때엔 네놈이 쓰는 검법처럼 실제를 가져다 놓으면 되는 것이다.”
샤샤샤샤샥-
나무와 바위를 통과하던 나뭇가지들이 숲의 곳곳에 상흔을 남기기 시작했다.
오른쪽의 나무가 갑자기 절단되어 쓰러지고, 왼쪽의 바위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롭게 잘려 나갔다.
“그리고 이것이 숙달되면 두 가지를 하나로 합치는 것이다.”
검마의 나뭇가지에서 뻗어나온 기의 환영이 더욱 빨라졌다.
이윽고 검기와 나뭇가지가 하나가 되어 환검이되 환검이 아닌, 진검이되 진검이 아닌 존재가 되었다.
“허…….”
내가 눈앞에 만검과 비슷한 무공이 펼쳐지는 것을 보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
허공을 가득 메우던 화려한 나뭇가지들은 일순간에 사라졌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나 검마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뭐가 말이냐?”
“제 무공 사부 말입니다.”
나는 흑룡검을 뽑으며 말했고, 검마의 얼굴은 마치 똥이라도 씹은 얼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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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 오늘도 가르침 감사합니다.”
진소운은 말을 끝으로 바닥에 푹 쓰러졌다.
만서고의 꼽추 노인으로 정체를 숨기고 있던 검마 백해광은, 그런 진소운을 보다가 자신에 손에 들린 나뭇가지를 보았다.
‘부러졌다고?’
연약한 나뭇가지와 단단한 철검이 부딪치면 나뭇가지가 잘려 나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지만, 백해광에겐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이는 곧 그 짧은 가르침으로 인해 진소운이 한 단계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분명 무재는 그리 뛰어나 보이지 않는데.”
백해광은 진소운의 근처에 다가가 그의 몸을 구석구석 살폈다.
“허, 이놈 봐라. 얼마나 좋은 기연을 얻었기에 무신지체가 된 거지?”
본래 타고난 근골이 한번 다시금 바뀌며 무신지체가 되었다.
녀석의 출신 성분이 그리 대단하지 않은 태을문이라는 것을 참작하면, 엄청난 기연을 얻었다는 것.
그러다 손바닥을 관찰하는데, 백해광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
“참내.”
마치 딱딱한 돌을 만지듯 굳은살이 가득 박여있는 손바닥.
더불어 삼갑자에 달하는 내공이 있음에도 외공 수련을 쉬지 않았는지, 신체 전체가 오밀조밀하게 단련되어 있다.
“이건 노력이 아니라 독기라 봐야 겠구나. 여간 미친놈이 아니었어.”
여기까지 살피자 자신의 나뭇가지가 부러진 이유도 어느 정도 납득이 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젊은 날의 자신이 보이자 짜증이 울컥 튀어나왔다.
“녀석아, 무에 대한 집착으론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 되려 가진 것마저도 모두 잃게 될 뿐이지.”
한편으론 아쉬움도 있었다.
녀석이 태을문의 제자가 아니고, 자신이 지금 이리 숨어있는 존재가 아니었다면…….
그랬다면 자신의 필생의 진전을 이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아쉬움.
이 정도의 집념과 독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자신과 비슷한 삶을 살아 왔다는 증거.
아마도 자신이 만든 최후의 검식도 잘 소화할 수 있겠지.
백해광은 고개를 저었다.
“아서라 백가야. 그리 업을 쌓고 그 업을 후세에 물려주려 하느냐. 마(魔)라는 이름 때문에 지불한 대가를 생각해라.”
그렇게 말한 백해광은 움막으로 발길을 돌리다가 다시금 진소운을 바라봤다.
“쯧-, 귀찮은 녀석 같으니라고.”
우웅-.
진소운의 신형이 바닥에서 일 척 정도 떠오르며 스르르 백해광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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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께.
그간 잘 지내고 계셨습니까? 아가씨의 소식은 멀리 합비에서 잘 듣고 있습니다.
아가씨의 학관 합격 소식 덕분에 철검문도 한동안 긴 연회를 벌였습니다.
이번에 사문으로 돌아오시지 않는다는 소식에 실망하는 제자들이 많았습니다. 부디 바쁘시더라도 언젠가 한번 방문하시어 어린 제자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더불어 정인과의 관계는 잘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워낙 그런 것들에 관심이 없던 분이라 이 초모는 항시 걱정이 많습니다.
아마 이번 휴식기에 오시지 않는 것도 그분과의 시간을 위해서겠지요?
부디 시간을 낭비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혹여 함께 유랑이라도 갈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마음을 쟁취하여 아가씨의 것으로…….
초무빈의 전서를 읽던 성모란은 와락 구겨서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대, 대체 초 대주는 무슨 소릴 하는 거람!”
옆에서 전서를 읽던 남궁선화가 동그랗게 뜬 눈으로 성모란을 바라봤다.
“왜, 왜요? 언니. 무슨 일 있어요?”
“어? 아, 아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는데요?”
“더, 더워서 그런가 봐. 벌써 여름이 다가오나?”
“…….”
성모란이 어색한 듯 손부채질을 하다가, 문득 생각 난 듯 남궁선화에게 물었다.
“선화야, 너 악양에 갈 때 입을 옷 있어?”
“없죠. 학관에 들어온 뒤엔 가문에 연락도 드릴 틈이 없었으니까요.”
“그럼 우리 옷이나 사러 갈까? 악양에 놀러 갈 때 이런 꼴로 갈 순 없잖아.”
“벌써요? 언제 수련이 끝날 줄 알고요?”
“미리미리 사둬야지.”
“…….”
남궁선화가 잠시 성모란을 바라보았다.
“언니…… 갑자기 이런 질문 미안한데요…….”
“응?”
“언니, 아직 진 공자님 좋아하지요?”
“…….”
가뜩이나 달아올랐던 성모란의 얼굴이, 이제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 빨갛게 변했다.
남궁선화는 대답을 듣지 않고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랬구나…….”
“가, 갑자기 그건 왜 물어?”
“…….”
성모란을 지그시 바라보던 남궁선화가 큰 죄라도 지은 듯 고개를 숙였다.
그러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성모란은 얼음이 되어 작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집중했다.
“저도 진 공자님을 좋아하고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