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167화 (167/357)

#167. <사천에 번지는 혈해(3)>

진소운이 외출을 신청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철순직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학사가 이제 시작이 되었건만 대표가 가긴 어딜 간단 말인가?

‘역시나 예상이 되지 않는 불쾌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고 넘기려는 찰나.

그의 목적지가 사천이고, 그곳으로 정도회가 현장 학습을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냥 넘기지 못했다.

멸혼진 내에서 사람이 죽어갈 때도 여유 만만이었던 사람이, 정도회의 반항적인 시위에 불과한 외유성 현장 학습을 다급하게 따라간다?

그것도 청룡각의 타격대까지 동원하여?

‘참 여러모로 불쾌한 사람이란 말이지.’

본래 예측되지 않는 대부분의 것을 좋아하지 않는 철순직으로선, 진소운은 거북하기 그지없는 존재.

그렇기에 이번 행차에 따라가겠다 나선 것이었다.

항상 자신의 예상을 벗어나는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내기 위해서.

‘그저 감정의 끌림대로 돌발행동을 연발하는 애송이인지, 아니면…….’

진소운의 뒤를 바라보던 철순직의 생각은 거기서 끊겼다.

“뒤처지는 자는 놓고 간다! 사천 성도까지 죽을힘을 다해 쫓아와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진소운의 외침에 철순직은 저도 모르게 고삐를 강하게 틀어쥐었다.

이번 진소운의 행차에 참석한 12봉성의 인원들도 정예 중의 정예.

겨우 이런 속도를 버거워할 존재들은 아니다.

“철 형, 굳이 왜 저자의 행차에 참석한 거요?”

남화성의 질문에 하영영, 상무흔 등 무리가 철순직 옆으로 다가와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기예에 가까운 행동이었지만 누구 하나 어려워하는 이는 없다.

남화성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미간까지 찌푸렸다.

“그것도 명령권까지 주면서.”

그 말에 철순직은 저도 모르게 큭큭 웃음을 터트렸다.

출발하기 직전, 함께하겠다는 자신의 제안을 진소운은 의외로 선뜻 허락했다.

그가 내건 조건은 단 하나.

절대복종.

남화성을 비롯한 12봉성 정예들이 반발하였지만, 철순직은 결국 그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일행들은 참아왔던 의구심을 지금에 와서야 추궁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자네들도 진소운이 궁금해서 참석한 터 아닌가?”

“…….”

철순직의 물음에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난…… 구파일방 놈들과 진소운이 싸우는 꼴을 보고 싶어 가는 거요. 저놈은 늘 뒤가 없이 덤벼드니까.”

남화성의 말에 철순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그렇다네.”

“응?”

“그의 행보에는 항시 이유가 있단 말이지.”

예측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인간이다.

예측되지 않는 행동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지 않는 행동을 일컫는다.

대부분이 하지 않는 행동이란, 결과가 좋을 확률이 낮다는 이야기이고.

헌데 그에겐 적용되지 않는 이야기란 말이지…….

그의 예측되지 않는 행동은 항시 그에게 최선의 결과를 주었다.

마치 그것이 본래 숨겨진 답안지처럼.

마령고원에서 그랬고,

무림정시에서 그랬으며,

멸혼진의 사태에서도 그랬다.

“철 형은 아직도 그걸 모르오? 그놈은 또라이요. 그저 정신이 풀린 또라이.”

남화성의 말에 12봉성의 인원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나?”

혹자들은 진소운을 과소평가한다.

그가 미친 인간이라든가, 정신이 살짝 나가 스스로 백도인 줄 아는 흑도라든가.

이런 평가는 그가 항시 예상치 못한 선택으로 최상의 결과를 내는 현실을 인정할 수 없는 이들의 시기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렇기에 궁금한 것이지.”

진짜 그가 그저 뒤가 없는 또라이인지…….

아니면 다른 이들이 선택하지 않는 남다른 길을 걷는 새로운 존재인지…….

철순직이 생각하기에 현재 무림을 살아가는 자신의 세대는 이미 망했다.

이 생각은 과거 용소아를 처음 만났을 때 확실하게 뇌리에 박혔다.

자신의 세대에선 그 누구도 용소아를 뛰어넘을 수 없다.

그가 있는 한 자신 대에선 무림을, 중원을 지배할 수 없다.

제아무리 12봉성의 세력이 커지고 수많은 고수들이 출현한다 한들, 결국 누구도 소림의 일명과 무당의 용소아를 뛰어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자신들은 다음 세대를 위해.

그들이 더 이상 강호에 존재하지 않는 순간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런 나의 확고한 예측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존재라면 말이야…….”

철순직의 시선이, 제 앞에서 달려나가고 있는 진소운의 등으로 예리하게 꽂힌다.

정말로 그가 혹자들이 생각하는 그저 단순한 또라이가 아니라면.

그가 내가 생각하는 ‘그런 존재’라면.

우리 세대에도 내가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는 희망적 존재가 나타난…….

“이봐! 12봉성! 뭘 쭝얼쭝얼대고 있어! 빨리 안 쫓아올 거야?”

“…….”

자신의 생각을 끊어낸 진소운이 야차 같은 얼굴로 쏘아보고 있었다.

철순직은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며 말했다.

“진소운 대표, 이대로 계속 달릴 겁니까? 이렇게 가다간 다들 지쳐 떨어질 겁니다.”

“뭐?! 니들이 데려가 달라며! 그렇게 느릿느릿 올 거면 뭐 하러 쫓아온 거야! 학관으로 돌아가!”

“…….”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달리고 있단 말인가?

이대로라면 12봉성은 물론이고 저 대단한 승호당도 얼마 버티지 못할 텐데?

“……철 형.”

남화성이 나직이 말했다.

“속도 좀 내시오. 안 그래도 철 형이 계속 늦어진 탓에 우리까지 저 또라이에게 욕먹고 있지 않소.”

“아니, 난…….”

“철 형이 오자 하지 않았소. 속도나 내시오.”

“……미안하네.”

생각 없이 이리 사람을 몰아붙여 몰고 가다니 어쩌면 그간 그저 운이 좋았던 걸지도…….

왠지 생각의 추가 한쪽으로 기우는 철순직이었다.

#

“중경을 가로지르겠습니다.”

진소운의 이야기에 구정룡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호북성에서 사천으로 향하는 행단 대부분은 장강을 타고 섬서를 돌아 사천으로 향한다.

강을 이용하는 이동은 여러모로 효율적이다.

육지 길과 비교했을 때, 운송량에서의 차이도 컸지만 무엇보다 편하니까.

때문에 사천으로 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행로를 타고 들어가는 법인데…….

중경을 가로지르자니.

이는 가벼운 봇짐을 들고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이에게나 어울리는 동선이다.

지금과 같이 완전 무장을 하고 말까지 이끈 무리가 중경을 가로질러야 한다는 소릴 하면 미쳤다는 욕을 듣기 딱 좋다.

근데 구정룡이 지휘권을 넘긴 지 하루도 되지 않아 진소운이 미친 소리를 지껄인 것이다.

“제정신인가? 중경을 가로지르다니. 무사들은 차지하고서라도 말들이 버티지 못할 것이네.”

구정룡이 진소운에게 지휘권을 주었던 것은 맹주원의 읍소 때문이었다.

과거의 빚도 있어 충분히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었건만, 만통부의 부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제발 제 여우 같은 처와 토끼 같은 자식을 위해 한 번만…….’이라며 당원들 앞에서 읍소하기에 거절할 수 없었다.

‘애당초 맹주원 그 사람은 아직 총각이 아니었던가?’

아무튼 없는 처와 자식까지도 팔아먹는 그의 간절한 마음에 이왕지사 하게 되는 일 맹주원에게 힘을 실어주기로 마음먹고 지휘권까지 주었지만, 그렇다고 이런 비상식적인 행동까지 무조건 따라줄 수는 없었다.

“선두와 거리를 좁히려면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왜 이리 서두르는 거지?”

“먼저 출발한 이들을 따라잡기 가장 좋은 때는, 바로 그들이 아미산에 도착하기 전입니다. 하지만 장강의 물살이 평소처럼 빠르다면 그들이 파당에 도착하고도 뒤늦게야 저희가 도착하겠죠. 그들을 따라잡으려면 중경을 가로지르는 수밖에 없습니다.”

일리 있는 말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것에 불과하다.

인간과 말은 이론대로만 움직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까.

“호북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중간 기착지인 중경시에는 무림맹 지부가 없어. 물론 그 이후도 문제지. 사천 성도까지 가는 동안 백 명에 달하는 인원들을 먹이고 재우며 말까지 바꿔줄 곳이 어디 있나?”

이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전쟁이 터진 것도 아니고, 그저 외유성 짙은 외부 현장 학습을 막기 위해 승호당을 굴린다?

당원들의 반발이 장난이 아닐 것이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뭐?”

“도움을 청해 놓았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물론 그분께서 나중에 뭘 바라실지 모르겠지만…….”

영문을 알 수 없는 진소운의 이야기.

구정룡은 엄한 경고를 해줄 수밖에 없었다.

“자네, 지휘권이 갖는 책임에 대해서도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거기에는 승호당원들의 불만도 포함되네. 제대로 된 이유 없는 혹사는 무사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

“이대로 형주까지 달린다고 해도 무림맹 형주 지부는 이미 문을 닫은 상황일 거야. 자네는 저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겠는가?”

구정룡의 다그침에도 진소운의 표정은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음, 모르긴 몰라도 형주 지부에서 쪽잠을 자는 것보단 괜찮을 겁니다.”

“음?”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몰랐지만 구정룡은 일단 두고 보기로 했다.

형주에 도착하기 전 쉬어야 한다는 구정룡의 말을 무시하고 달이 차도록 달린 이들은 결국 해시가 다 돼서야 형주에 도착했다.

“하아…… 하아…… 염병.”

“내 이럴 줄 알았지.”

“제길, 흑염룡 저 자식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그리고 역시나 무림맹 형주 지부는 이미 문을 닫은 상황이었다.

이윽고 승호당원들의 불만이 하나둘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당주님, 지금 이게 뭐 하는 겁니까? 저희가 싸우러 가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혹사당해야 합니까?”

“아무리 만통부 부장님의 부탁이라도 이건 좀 심합니다.”

“당주님, 이대로 가면 사천에 가기 전에 다들 퍼질 겁니다.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욕지거리와 함께 터져나오는 불만에, 구정룡이 결국 지휘권을 되찾아 와야겠다 생각한 순간.

“이쪽입니다.”

진소운은 형주의 가장 큰 객잔 앞에 멈춰 섰다.

“진 공자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불만을 터트리던 승호당원들과 12봉성들이 일제히 입을 함지박만 하게 벌렸다.

형주 제일 객잔이라는 금각장의 장루가 사용인들과 도열하여 진소운 일행을 맞이하고 있었던 것.

“무사님들을 모셔라!”

사용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무인들에게 다가가 말을 받아주고, 시원하게 적신 물수건으로 손과 얼굴을 닦을 수 있게 준비해 주었다.

“식사 준비와 목욕 준비를 마쳤습니다. 내일 일찍 출발하신다 하셨죠?”

장루의 물음에 진소운은 익숙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시 전에는 출발할 겁니다. 말은 확보가 되었습니까?”

“호북성 내의 각 지부에는 이미 준비가 완료되었고, 중경시와 사천성에선 공자님이 도착하기 전에 준비를 마칠 겁니다.”

“무리한 부탁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진소운이 고개를 숙이자, 중년의 금각장루가 황송해하며 되려 진소운을 말린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덕분에 왕가장주님께 점수를 더 딸 수 있으니 저로선 되려 감사한 일이죠.”

그 생경한 광경에 사람들은 멍하니 진소운을 바라본다.

왕가장주? 황금으로 산을 쌓았다던 왕금산을 말하는 것인가?

더구나 기이한 점은, 태을문의 제자들을 비롯해 진소운과 늘상 붙어 다니는 남궁선화와 성모란도 이런 대접이 익숙한 듯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진소운이 왕금산의 자식이라도 되는 건가? ……하지만 성씨가 다르잖아?’

욕탕에서 먼지를 모두 씻어내고 식당으로 나온 사람들은, 마치 시간을 딱 잰 듯 눈앞에 펼쳐진 진수성찬에 눈이 돌아갔다.

“술은 일 인당 한 병까지로 제한하겠습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머니까요.”

진소운의 말에 승호당 인원들이 일제히 환호를 질렀다.

불만을 터트리던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일제히 흑염룡을 칭송하기 시작했다.

“흑염룡! 흑염룡!”

“후배님! 자네, 아주 사내답구만!”

“역시 지휘관을 잘 만나야 해!”

구정룡은 승호당원들의 재빠른 태세 전환에 기가 찼다.

“…….”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잘 몰랐던 구정룡이 결국 참지 못하고 진소운에게 물었다.

“자네, 혹시 왕금산 장주의 숨겨진 아들이거나 그런 건가?”

“네? 무슨 소리십니까?”

“그게 아니라면 왕금산 장주가 어째서 이런 편의를 봐주느냐 이 말일세.”

이 커다란 별채에 손님이라곤 자신들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진소운을 위해 오늘 하루의 수입은커녕, 손실까지도 감내했다는 말.

“왕 장주님과 태을문이 본래 막역한 사이입니다. 그분 따님은 제 사매이기도 하고요.”

당연한 듯 말하는 진소운에 구정룡은 의문이 더욱 많아졌다.

‘아들도 아닌데 왕 장주가 뭐가 아쉬워서 태을문의 제자에게 이런 편의를 제공한다는 거지? 지가 왕가장 사위라도 되는 거야? 뭐야?’

의문감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지만, 어쩐지 진소운과 좀 더 친하게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구정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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