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혈해를 삼키는 흑염룡(6)>
-청성파 및 속가문파 사상자 열두 명.
-아미파 및 속가문파 사상자 여섯 명.
-무리를 이끄는 장로 실종.
전서구가 전한 짧은 내용에 승호당주 구정룡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세상에.”
이번 작전은 그저 진소운에게 힘을 조금 실어주는 작전이라 생각했다.
진소운이 오는 내내 상대에 대한 불명확한 공포감을 조성하긴 했지만, 그것이 실제 피부로 와닿진 않았다.
무림맹이 강호의 혼란을 야기하는 ‘십(十)대 금공’을 지정한 후론 좌도방문술의 씨가 말랐다.
덕분에 이론으론 알아도 실제로는 그게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청성파라면…… 그래도 정통 도가 문파가 아닌가.”
그런데 그런 청성파의 제자와 장로까지 당했다니.
흔히 무림학관에서 배웠던 올바른 정심을 침투하지 못하는 ‘사술’의 수준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
더구나 문제는…….
“감천악…… 너 파사(破邪)와 제령(制靈)에 대해서 배운 거 기억나냐?”
승호당 부당주이자, 오랜 시간 함께해 온 후배인 감천악이 뒤통수를 북북 긁었다.
“파사제령? 그게 뭡니까? 진소운이 쏘기로 한 사천 특산물입니까?”
“…….”
이게 현실이라는 것.
“너 제령구(制靈球) 챙겼냐?”
“그게 뭔데요?”
너무 당연한 듯 물어보는 감천악의 표정에 구정룡의 이마에 핏대가 솟아올랐다.
“……이 새끼가. 맹에서 지급받은 물자가 뭔지도 몰라?”
“……제령구??”
한참을 고개를 굴리던 감천악이 주먹으로 제 손바닥을 때렸다.
“아! 기억났습니다. 그 나무랑 옥으로 만든 구슬이죠?”
“그래! 그거! 우리 출동할 때마다 챙겨야 하는 필수 물자잖아!!”
“없는데요.”
“이 새끼가!!!”
감천악이 구정룡의 주먹을 슬쩍 피하며 되물었다.
“그러는 당주님은 챙기셨습니까?”
씩씩거리던 구정룡이 흠칫 멈춘다.
감천악이 슬며시 미간을 찌푸리며 묻는다.
“아니, 애당초 가지고는 계십니까?”
“…….”
“맹에 있는 애들한테 다 물어보십시오. 그거 아직 가지고 있는 놈이 있나.”
감천악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열에 아홉은 안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럼? 우리가 사도랑 싸운 적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걸 얻다 써버린 거야?”
“맨 처음 월봉 나오기 전에 애들이 무슨 돈으로 맨날 주루에 가겠습니까. 그게 모양새는 또 이뻐서 기생들한테 꽤 비싼 값에 팔립니다.”
내심 분통은 터지지만, 자신도 잘 알고 있다.
이게 작금 무림맹의 현실이라는 걸.
사도와 요도, 마도의 부재가 워낙 길었던 탓에 이제 무림맹에게 ‘사술’, ‘요술’, ‘마술’이라는 존재는 마치 옥기린이나 봉황처럼 환상 속의 존재가 되어버렸다.
‘어쩌다 이런 일에 휘말려서는…….’
맹주원에게 빚을 갚을 겸.
안 그래도 무림학관 내에서 정도회, 백도회, 12봉성과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는 진소운이 궁금하기도 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나온 길이었다.
원래도 기득권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구정룡의 입장에선, 맹주원과 진소운을 핑계로 장로원들을 괴롭힐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했으니까.
반쯤은 유랑의 성격으로 왔던 것인데 갑자기 이런 상황이라니.
자꾸 그런 생각이 들다 보니 현실 도피 하고픈 마음이 자꾸 일어난다.
“이거 확실한 거 같냐?”
감천악은 전서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그걸 왜 저한테 물으십니까?”
“뭐?”
“여길 오자고 한 것도 당주님이고, 이 ‘급박한’ 와중에 사천에서 하루 쉰 것도 당주님 아닙니까.”
이 새끼 봐라? 지금 발 빼냐?
“그럼 판단도 당주님이 하셔야죠.”
“이 자식아! 이게 문제가 된다면 나만 죽을 것 같아! 당주와 부당주는 한 몸이나 마찬가지야! 너도 같이 죽는다고!”
“제가 뭘 했다고요!”
“시간 앞당겨서 더 좋은 객잔에서 머물자고 애들 독려한 건 너니까! 내가 감찰각에 끌려간다면 네놈은 반드시 같이 끌고 들어갈 거다!”
구정룡이 거품까지 물며 발악하자 감천악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확인 가능 여부를 떠나서 저희끼리 처리할 사안은 아니지 않습니까?”
청성파와 관련된 학관생들에게서 사상자가 난 건 둘째치고, 장로원의 장로가 실종되었다.
이는 절대 쉬이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맹에 전서를 보내도록 하죠.”
“답변을 듣고 움직이기엔 너무 늦어.”
하지만 마냥 무림맹의 답변을 기다릴 수도 없는 것이.
진소운의 말에 의하면 이들은 남은 학관생들과 장로들도 노리고 있는 게 분명했으니까.
‘지금 강호에서 누가 맹에 도전할 수 있다는 거지?’
너무 얼토당토않은 일이었기에 현실을 자각하면서도 실감되진 않는다.
단순 신경전이라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이리 본격적으로 행동한다는 건 끝을 보겠다는 의미.
“어쨌든 진소운 그놈이 지침을 주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그대로 움직이는 게 맞는 듯합니다.”
“그래, 우리도 바로 움직이자.”
구정룡이 곧장 승호당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대화를 듣고 있었던 듯 일제히 눈을 맞춰오는 승호당원들.
“지금부터 속도를 더 올린다!”
“옛!”
일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승호당원들의 기세가 삽시간에 바뀐다.
껄렁거리며 농담 따먹기를 하던 이들이 자신의 무장을 다시 확인하기 시작했고, 말의 속도는 단 한 번도 늦추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진을 쉬지 않고 달려, 반나절 먼저 출발한 12봉성 남궁선화 일행을 만날 수 있었다.
남궁선화는 계속 종남파의 무리 안으로 들어가려 시도하지만, 종남의 제자들이 막고 서 있었다.
“남궁 소저.”
“아! 당주님!”
“어찌 된 겁니까?”
“죄송해요.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질 않으세요.”
구정룡은 곧장 말에서 내려 무리로 다가갔다.
구정룡을 알아본 학관생들이 무리 안으로 들어오려는 그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으로 엉거주춤하는 사이.
구정룡은 남궁선화를 이끌고 종남파 장로 수허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뭐?”
이야기를 들은 수허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군. 세상 어느 누가 무림맹의 행사를 방해할 수 있단 말인가?”
“……혹시, 혜성 장로님이나 명현 장로님과 마지막으로 연락하신 게 언제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
구정룡은 저도 모르게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럼 다른 선두의 조들과는 연락하지 않으셨습니까?”
“우린 각자 흩어졌다 파당에서 다시 모이기로 했었네. 나는 이참에 사천에서 우리 무림맹이 백도의 정기를 세웠던 역사를 이야기해 주기 위해 이곳에 왔던 것이고.”
“…….”
이야기를 듣던 구정룡이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들은 애당초 흑수에 대한 조사고 뭐고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정말 조사를 핑계로 바람이나 쐬자고 이곳까지 온 것이다.
“일단 저희와 함께하시지요.”
구정룡의 말에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지 수허가 날카롭게 반응했다.
“지금 나더러 진소운의 이야기를 듣고 움직이란 말인가?”
“…….”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장로원의 장로나 돼서 이 와중에 극단적 현실 도피를 하고 있는 건가?
“당주님.”
갑자기 대화에 끼어든 감천악으로 인해 수허 장로의 얼굴이 와그작 짓뭉개졌다.
하긴 무림맹의 장로가 이야기하는 와중에 끼어들 만큼 간 큰 인간이란 존재 하지 않을 테니까.
헌데 감천악 저 새끼도 그렇지. 장로들 성질머리 알면서 굳이 끼어든 건가?
“이걸 보셔야겠습니다.”
감천악이 내민 새로운 전서를 본 구정룡의 머리가 차게 식었다.
이건 더 이상 자존심이나 체면을 내세울 일이 아니다.
“장로님,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
“지금까지 내 말을 뭘로 들은 거지?!”
“이는 만통부의 명령입니다.”
‘만통부’라는 이야기에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한 얼굴의 수허 장로.
구정룡은 자신이 본 전서를 수허 장로에게 건넸다.
“만약 이게 거짓이라면 장로님은 장로님이 바라시는 대로, 진소운의 목을 쳐낼 수 있을 겁니다.”
씩씩거리던 수허 장로가 찢어질 듯 거칠게 전서를 펼친다.
그리고.
“…….”
-화산파 및 속가문파 사상자 열다섯 명.
공동파 및 속가문파 사상자 스물두 명.
-화산파 소충현 장로 사망 확인.
-공동파 정사익 장로 사망 확인.
전서를 바라보는 수허 장로의 두 눈이 파르르 떨렸다.
장난이라기엔 도를 한참이나 넘었고, 진실이라기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소식.
“만약 진소운이 자신의 알량한 지위를 지키기 위해 벌인 수작이라면 제가 직접 감찰각에 끌고 가 단죄하겠습니다.”
“…….”
“하지만 지금은 만통부의 명령을 시행해야겠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수허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가지……. 만약 사실이라면 이들을 구해야 할 테니.”
앞뒤가 꽉 막혀 환기도 잘 안 될 듯 보이는 옹고집 수허 장로를 설득해 냈지만 구정룡의 마음은 심히 편하지 않았다.
맨 후열인 종남이 이리 멀리 나왔다면, 그 앞의 인원들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적과 만나는 것도 시간문제다.
더구나 인원이 한없이 부족한 승호당은 가는 길에 계속해서 학관생들을 합류시켜야 하는 상황.
피해가 커지리라 예상된다.
“지체 없이 출발한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한 걸음이라도 더 빨리 움직이는 것.
그리고.
‘부디 살아만 있게. 진소운’
앞서 나간 이들의 생존만을 바랄 뿐이었다.
#
화살을 시위에 걸던 모용재화는 화살촉에서 기이함을 느꼈다.
‘더 무겁다…… 그리고 헐거워…….’
이는 아직 벽력시를 완성하지 못한 자신을 위한 진소운의 배려.
“정말이지, 형님은 어찌 저에 대해 이리 잘 아십니까.”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없는 내공을 쥐어짜 힘을 준다.
강철로 만들어진 봉이 기이하게 휘어진다.
덕분에 엄청난 장력이 팔에 부하를 주고, 손가락은 천잠사에 잘려나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각궁처럼 부러질 거란 불안감은 들지 않았다.
퉁. 쐐액.
창공을 가르는 화살이 예상했던 호선을 그리며 나아간다.
모용재화가 다시 활을 쏘기 시작한 것을 알아차린 혈의인들이 예의 두꺼운 방패와 바위를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퍽!
바위를 반쯤 뚫고 들어갔지만, 결국 화살은 혈의인에 닿지 못했다.
그럼에도 모용재화는 다시금 시위를 당긴다.
찌지지지지직.
팔 근육이 찢기는 느낌이 든다.
강철궁을 당길 때마다 온몸이 비명을 지르지만 되려 안정감이 든다.
건곤파섬검의 힘이 화살촉에 실린다.
그때, 정시에서 함께 활을 쏘았던 진소운의 목소리가 들린다.
-궁은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무기다. 예상치 못한 순간, 예상치 못하게 상대의 목숨을 앗아간다. 그런 공포를 맞닥뜨리면 죽음의 감각이 무뎌진 암살자들마저도 두려움에 떨게 만들 수 있다.
모용재화는 곧장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아낸다.
퉁. 쐐액.
그리고 다시금 화살을 시위에 걸고 녀석들에게 쏜다.
퉁. 쐐액──
두 번째 화살이 쏘아지자 혈의인들이 방패를 들고 돌을 든다.
퍽!
이번에도 세 겹으로 덧댄 방패에 화살이 막히자, 득의양양해진 혈의인들이 바위 뒤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하늘로 날아올랐던 화살이 곧장 바닥으로 떨어지다 혈의인들과 같은 선상에 놓였을 때.
공중에서 폭발하고 산산이 깨져나가며 사방으로 철 조각을 암기처럼 쏘아낸다.
펑.
콰르르.
바위 뒤에 섰던 이들은 날아드는 철 조각에 미처 대비하지 못했다.
퍼퍼퍼퍼퍽.
마치 만천화우를 받아낸 듯 온몸에 구멍이 송송 뚫린 혈의인들이 바닥으로 쓰러진다.
간신히 뒤에 서서 벽력시의 타격을 받지 않았던 혈의인들은, 이제 아예 더 뒤쪽으로 물러나 이 빌어먹을 궁사의 사각지대에 들어간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여 그곳에 없는 것은 아니다.
마치 자신에게 딱 맞춘 듯한 조언.
하지만 어느새 목소리는 진소운의 것이 아닌, 얼굴을 알 수 없는 존재의 것으로 바뀌어 들린다.
‘누구지?’
거대한 등을 보이는 사내.
외롭고, 고독하고, 쓸쓸해 보이는.
그러면서 어깨엔 엄청난 무게의 짐을 지고 있다.
그 사내가 말한다.
-머릿속으로 그들이 어디 있는지 그려 보라.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그릴 수 있다면 궁은 언제든 그들을 노릴 수 있다.
분명 진소운이 한 이야기이건만, 목소리는 의문의 사내의 것으로 들린다.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너무나 낯익고 익숙한 느낌의 사내.
그의 조언에 따라 다시금 화살을 당긴다.
-눈으로 확인할 필요가 없다.
머릿속에 그릴 수 있으니.
-정확할 필요가 없다.
한 사람을 노리는 것이 아니니.
-빠를 필요가 없다.
그들은 이미 두려움에 자리를 벗어나지 못할 테니.
퉁. 쐐액──.
그렇게 호선을 그리며 쏘아진 화살이 혈의인들이 숨어든 엄폐물 뒤로 떨어진다.
콰쾅.
으아악.
으아아악!
크악!
저 멀리서 증오스런 혈의인들의 비명소리가 울린다.
“헉…… 헉…….”
한계의 한계까지 다다른 모용재화의 상태는 가히 사람이라고 보기 힘들 지경이었다.
철궁을 잡은 뒤로 다시금 혈의인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지만, 그럴수록 모용재화의 상태는 점점 악화되어 가기 시작했다.
“재화 공자, 피가…….”
모용재화의 손끝은 상처가 나다 못해 갈라지고 찢어졌다.
강력한 철궁의 시위를 당기느라 손가락이 엉망이 되어버린 상태.
모용재화는 무감하게 자신의 손가락을 보다 말한다.
“은 소저, 좀 얼려 주시겠습니까?”
“그, 그만해야 해요. 재화 공자……!”
“저들은 결코 우릴 살려두지 않을 겁니다.”
“…….”
그 말에 은설란은 결국 그의 손가락을 쥐고 소수신공을 일으킨다.
뚝뚝 흘러내리던 피가 멈추자, 모용재화는 다시금 궁을 들어 올린다.
모용재화의 머릿속엔 또다시 의문의 사내 목소리가 들려온다.
-무자비한 이들은 자신이 죽으면서도 피해를 남긴다. 그들을 막겠다며 맞서는 것 또한 우리의 일방적 손해다.
그러니 다가오기 전에 막아야 한다. 다가오지 못하도록 두렵게 해야 한다.
무자비한 자는 물론이고, 무심한 자, 살생에 미친 자, 자신의 욕망만을 바라보는 자, 인간성을 상실한 자까지 두렵게 만드는 것.
모용재화의 활이 당겨진다.
두려움을 심어주어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
태양을 쏘듯 쏘아진 화살이 엄폐물이 된 바위를 넘어 적진 한가운데로 향한다.
펑! 콰쾅!
끄아악!
커흑!
피해!
그것이 바로 파궁(破弓)이다.
저 멀리서 비명이 들린다.
접근을 하던 혈의인들은 어느새 한발이라도 더 도망치고 싶은 듯 뒤로, 또 뒤로 물러났다.
그 광경을 두 눈에 담던 일각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세상에…….’
과연 누가 이런 일을 또 해낼 수 있을까?
소림의 무공으로도, 점창의 무공으로도 불가능했던 일을 모용재화가 궁 하나로 이뤄냈다.
무림의 태산북두이자 무공의 정점이라 생각했던 소림사의 무공에 대한 환상이 완벽하게 깨어져 내린다.
‘절대적이고 완벽한 것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알았으면서도…….’
일각이 눈을 질끈 감았다 뜬다.
‘이 또한 깨달음이구나…….’
더불어 진소운이 보냈다는 저 철궁과 화살들.
모용재화의 숨겨진 힘 또한 그와 관련된 것임이 직감적으로 느껴진다.
대체 그는 어디까지 알고 있었던 것인가?
어찌 되었든 이제 희망이 보였다.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모용재화의 말대로, 진소운과 지원 조가 온다면 자신이 상상했던 끔찍한 광경은 보지 않아도 될…….
“어……?”
이 흥분되는 상황을 만든 모용재화가 기이한 눈빛으로 전방을 바라본다.
일각도, 은설란도, 남화성도 그의 시선을 따른다.
엄폐물 사이에서 홀로 나오는 인형.
여태껏 혈의만 입고 있던 이들과 달리 기이한 장신구 같은 것들을 착용한 이였다.
이상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걸음걸이가…….”
양발을 붙인 채로 장난치듯 통통 튀어 오르는 존재.
“설마…….”
“시부럴…….”
“아미타불.”
은설란과 남화성, 일각이 차례로 기함하는 동안.
모용재화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시위를 끝까지 당겼다.
퉁. 쐐액──
바람을 가르듯 날아간 화살이 기이한 사내의 머리를 꿰뚫으려던 찰나.
어색한 움직임을 보이던 사내가 돌연 고개를 홱 돌려 화살을 부여잡았다.
텁.
물론 모용재화가 준비한 건 이게 끝이 아니었다.
펑!
폭발음과 함께 화살촉이 터지며 철 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자욱한 먼지가 퍼지며 사내의 전신을 완전히 가린다.
먼지가 가시며 철 조각에 온몸이 꿰뚫린 끔찍한 사체가 나타나…….
“세상에…….”
“미치겠군.”
완벽하진 않지만, 혈의인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벽력시였다.
하지만 기이한 사내는 온몸에 철 조각이 박혔음에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러곤 아무렇지 않은 듯 화살이 날아든 이편을 응시하고 있었다.
일각이 끙끙 앓듯 한마디 내뱉었다.
“강시…….”
이미 사라졌다고 알려진 마물(魔物)이 다시금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