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 <어둠속의 어둠(5)>
“뭐?”
담악은 방금 들은 이야기가 이해되지 않았는지 되물었고 보고를 하던 부하는 긴장한 기색으로 답했다.
“그, 그러니까. 진소운 그자가 황사문의 거처에서 패싸움을…….”
이게 미쳤나.
“패싸움?”
“네, 그러니까 처음에는 황사문의 무사들과 싸우고, 그다음에는 구경하던 다른 무사들까지 합세하는 바람에…….”
“이게 진짜 미쳤나!”
“그, 그렇지요.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그게 전쟁이지 싸움이야!”
함께 진소운을 욕하던 부하는 담악의 욕지거리가 자신에게 향한 것임을 알아치리곤 퍼뜩 정신을 차렸다.
“죄, 죄송합니다.”
담악이 부하 쪽으론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물었다.
“그래서, 사상자는 얼마나 나왔지?”
“황사문에 중상을 입은 이들이 좀 있긴 한데,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
보고를 듣던 담악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황사문에선 죽은 이가 없다니, 그렇다면…….
진소운을 신경 써주란 명령을 받은 게 바로 어제 일이었건만.
“……흑염룡은 죽은 것인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알량한 자신의 실력을 믿고 적진 한복판에서 난리를 피웠으니 맞아 죽어도 어쩔 수 없는 상황.
그때.
담악의 눈치를 보던 부하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 흑염룡은 죽지 않았습니다.”
“……뭐? 어떻게?”
황사문이면 이번 사흑련 창단 시에 한 축을 담당했을 만큼 전력이 상당한 문파다.
그들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구경하던 이들까지 다 덤벼들었는데 어떻게 진소운이 살아남았다는 거지?
담악의 표정이 감탄과 부정으로 오묘하게 일그러지려는 찰나-
“혈투 어르신께서 진소운을 빼가시는 바람에.”
“아아, 그렇군.”
이제야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백도 특유의 그 오만함을 버리지 못하고, 명분을 앞세워 행동하다가 위기에 처했고, 결국 혈투 어르신이 나서서 구해준 것이다.
진소운은 모르겠지만, 사실 혈투의 역할은 감시자 행세를 하는 보호자에 가까웠으니까.
다시금 머리가 지끈거린다.
“내 그리 사고 치지 말라 했거늘.”
차석두가 매번 술에 취할 때면 흑염룡의 이야기를 하기에, 조금은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그가 보인 행보는 담악이 경멸하는 백도 문파 제자의 수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니, 더 나아가 적진 한복판에서 보인 조심성 없는 모습들은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결국 진소운은 운 좋게 과대평가받은 애송이에 불과했다.
툭툭-
담악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부하가 본론을 꺼낸다.
“진소운의 행동으로 인해 사흑련에 모인 이들이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죄인으로 지목받아야 할 놈이 대놓고 돌아다니며 조사라는 명목으로 싸움을 벌이고 다닌다.
당장 진소운의 목을 치자고 시위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할 판.
“흐음…….”
“어찌할까요? 그냥 표출하라 할까요?”
어쨌든 사절단을 제물로 바치면 사흑련 내부가 조금 잠잠해질 것이다.
거기다 진소운이 직접 싸움을 일으켜 명분도 내주었으니, 부지불식간에 죽었다는 핑계를 대면 무림맹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리라.
하지만…….
“말려라. 누구든 경거망동하는 자는 일벌백계로 다스려 단죄하겠다 전해라.”
담악의 말에 주저하던 부하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 전하겠습니다.”
부하가 물러가고.
군유현과 담악 두 사람만 남은 자리엔 깊은 한숨 소리만이 내려앉았다.
“대체 어쩌자고…….”
담악의 표정을 살피던 군유현이 조심스레 물었다.
“괜찮겠습니까? 사람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어쩌겠습니까. 일단은 련주님의 명령이 있었으니 따를 뿐입니다.”
툴툴거리는 담악을 바라보던 군유현이 빙그레 웃는다.
“어지간히 진 공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나 봅니다.”
담악이 코웃음을 치며 즉각 대답한다.
“내 평생에 그 정도로 무도한 자는 처음입니다.”
“그래도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전쟁이 벌어진다면 큰 타격이 올 텐데요.”
잠시 고민에 잠긴 듯 먼 곳을 응시하는 담악.
“……두렵지는 않지만 그래도 주의는 해야겠지요.”
그가 차석두를 제외하고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속내를 드러냈다.
담악에게도 결코 안식처가 될 수 없는 이 사흑련에서 군유현은 유일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우였으니까.
그의 마음을 안다는 듯, 군유현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걸린다.
“전쟁은 모두에게 희생만을 강요할 뿐입니다. 담 군사께서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담악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소. 허나, 그 두려움 때문에 피하기만 해선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소이다.”
“그것도 그렇지요.”
“더구나 그자가 우리도 여태껏 찾지 못했던 흉수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되지 않소.”
담악의 단언에 곰곰이 고민하던 군유현이 입을 열었다.
“흐음……. 제가 직접 그를 상대해 본 바론, 어쩌면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군유현은 어지간해선 상대를 쉽게 인정하는 법이 없다.
본인이 불리한 조건을 뚫고 사흑련에서 지배력을 확보한 만큼, 어지간히 능력 있는 자가 아니라면눈에 차지 않기 때문.
그런 그가 진소운을 인정했다.
담악은 저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어찌 그리 생각하시오?”
군유현이 제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올린다.
“그와 도박을 하면서 느꼈던 점을 얘기했다가, 군사의 머리를 어지럽히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내 알아서 걸러 들을 테니 편히 이야기해 주시오.”
“음…….”
군유현이 잠시 말을 멈추고는 차를 한 모금 들이켠 후, 운을 뗐다.
“그는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어 내는 사람 같았습니다. 다만, 그 과정이 다른 이들의 눈에 거슬릴 뿐이지요.”
흑염룡, 진소운.
모난 돌과 같은 사내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자임은 틀림없다 생각합니다.”
그는 분명, 특별하고 뛰어난 존재다.
군유현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담악이 고개를 저었다.
“눈에 거슬린다라……. 그렇다는 건 문제 해결 과정에서 더 큰 문제를 일으키는 위험한 자일 수도 있다는 말 아니오?”
“클클…… 그렇기도 하겠군요. 저 역시 그가 도박에서 승리한 방법을 처음부터 알았다면, 상당히 화가 났을 테니까요.”
두 사람 사이에 잠시 간의 침묵이 흐르고.
담악이 결심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흑염룡 그자를 만나보아야겠소. 이대로 가다간 흉수를 찾는다 한들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를 분위기이니.”
군유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비극만은 없어야겠지요.”
사흑련은 지금 어렵게 첫걸음을 뗀 상태다.
이제 막 일어선 상황에서, 벌써 무너질 수는 없었다.
담악은 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 참!”
그러다 무언가 기억났다는 듯 뒤로 돌아본다.
“……내 동무들의 가족들은 어찌 되었소?”
일순, 군유현의 얼굴에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다.
그는 면목이 없다는 듯, 양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사방팔방으로 찾고 있습니다만, 어디로 간 건지 흔적조차 남지 않았더군요.”
“그렇소이까…….”
“걱정 마시지요. 저희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위로의 말에 담악이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대에게는 계속 신세만 지는 것 같아 미안합니다.”
어느새 그늘을 숨긴 군유현이 고개를 저으며 자조했다.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런 것밖에 없지 않습니까.”
#
내 예상대로 다음 날부터는 조사가 훨씬 쉬워졌다.
전날 만나지 못했던 황사문의 배환장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내가 묵고 있는 숙소로 찾아왔다.
네놈이 아니꼬우면 뭐 어쩔 건데, 거참.
“범행시간에 뭘 하고 계셨지요?”
“으드득…… 진소운 내 널 언젠가 씹어 먹어 버려주마.”
“네네. 알겠으니, 지금은 대답이나 하시지요.”
“……기루에서 기생을 불러 부하들과 작은 주연을 벌였다.”
주연도 충분하겠고만, 거기에 기생까지 불러? 하여간 노는 데 도가 튼 인간들이구만.
“문주가 죽는 동안 화끈하게 노셨군요.”
“빠드득.”
주연에 참석했다는 부하들을 하나하나 조사하고, 기루엔 일명을 보내어 사실 확인을 한 끝에, 배환장은 사건 현장에 부재했음이 증명되었다.
이어 같은 방식으로 사룡문의 부문주 갈문정과 그의 부하들.
마도문의 매봉식과 그의 호위.
혈검문의 도봉수와 그의 의형제까지 모두 조사를 마쳤다.
그러는 동안 살해 협박을 여덟 번 정도 받았고, 태을문에 불을 싸질러 멸문시키겠다는 협박은 열여덟 번이나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범인 색출은 오리무중인 상태.
“그럼, 이만 조사를 마치겠습니다. 나가보셔도 좋습니다.”
그렇게 혈검문의 도봉수와 상스런 욕지거리를 내뱉던 의형제가 조사실을 나서는 와중.
적봉환이 작게 진동했다.
‘응?’
아주 작고 미미하지만, 적봉환을 통해서 작은 기운이 몸으로 스며든다.
애당초 마기에만 반응하는 줄 알았는데…… 흑도 무공에도 반응을 하는 건가?
갑작스런 상황에 잠시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혈투가 말을 걸어왔다.
“네놈 예상대로 조사가 쉬워진 건 신묘한 일이다만, 범인은 영 보이지 않는데 어찌할 것이냐?”
혈투의 비아냥을 듣는 일에도 이제는 적응되기 시작한 터라, 나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애당초 이런 조사로 범인이 밝혀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뭐?”
거참, 생긴 거랑 다르게 순진하시긴.
“대놓고 살인을 저지른 놈이 이런 요식행위에 모습을 드러내겠습니까?”
“그럼?”
나는 혈투를 바라보며 씨익 미소지었다.
“범인의 다음 행보를 기다리는 중이지요.”
“다음 행보?”
간계를 꾸미는 자는 대중의 분위기를 민감하게 감지한다.
명분을 만들어 대중을 선동하고, 그 선동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달성하는 것.
이것이 바로, 계략을 꾸미는 자들의 특기이다.
금번 사건 역시 상황이 갖춰졌다.
구계악의 죽음으로 분위기가 조성되고, 사절단인 내가 조사를 한다며 나대고 있는 탓에 사흑련 내부의 분위기가 들끓는다.
암중에 숨은 범인에게는 절호의 기회.
절대 그냥 넘길 수 없는 유혹인 것이다.
“범인은 분명 다음 행보를 이어 갈 겁니다.”
“…….”
혈투가 인상을 쓰고 있는 사이, 일명이 곁으로 다가왔다.
“진 시주, 담악이라는 자가 찾아왔습니다.”
흐음, 왜 안 오나 했다.
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나가 보겠습니다.”
#
지금 담악은 내게 계륵 같은 존재다.
먼 미래의 정마대전을 생각하면, 이자가 사흑련에서 총군사로서 활동하는 편이 도움이 되는 게 맞지만.
어쨌든 지금 당장 무림맹의 대척자로선 상대하기 영 어려운 존재니까.
더구나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무림맹에, 아니 백도 전체에 대해 증오를 품고 있는 듯 보였다.
이는 결코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더구나 내가 친 사고를 무마하고 겉으로나마 사흑련의 인원들을 움직이는 걸로 봐선, 벌써 사흑련 상당 부분을 장악하여 통제하고 있는 듯 보였다.
전생에서도 뛰어났던 그의 지략은, 현생에서도 똑같이 빛나고 있었다.
평소 성정과 달리, 빠른 걸음으로 내게 다가오는 담악.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보아하니,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심기가 불편해진 모양이다.
나는 어깨를 한번 으쓱여 보였다.
“보다시피 조사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죽고 싶은 게 아니고요?”
그 특유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오늘따라 더욱 매서워 보인다.
뛰어난 지략으로 서서히 사흑련을 장악하는 와중에, 내가 초를 쳐 버렸으니.
어지간히 내가 미워 보일 수밖에.
“제가 죽는 게 담 군사님의 입장에선 좋은 거 아닙니까?”
“그걸 말이라고…….”
그렇기에 난 알고 싶었다.
그가 지금 무림맹의 적이 될 사람인지, 훗날 함께 할 수 있는 동지인지를 말이다.
전자라면 아쉽지만 제거하는 쪽이 편하고, 후자라면 어떻게 해서든 그를 살려서 사흑련을 장악하도록 만들어야 했으니까.
나는 일부러 그를 도발했다.
“담 군사님은 주전파에 속하신 분이 아닙니까?”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전쟁을 바라는 사람이라는 겁니까?”
“하긴…… 그건 그렇군요.”
내 태연자약한 반응에, 담악이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는지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읊조린다.
“당최 무슨 생각인 겁니까? 황사문의 일도 그렇고, 조사라며 각 문파의 수장을 부르는 것도 그렇고.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 알고 하는 행동입니까?”
“예상했던 바입니다.”
담악의 두 눈이 부릅떠진다.
“진짜…… 이곳에 뼈를 묻고 싶은 겁니까?”
나는 지그시 담악을 바라보았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일변한 내 분위기에, 담악의 눈빛도 차분히 가라앉는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왜 무림맹을 싫어합니까?”
잠시간의 정적이 흐르고.
담악이 몸을 뒤로 물리며, 너무도 방어적으로 대답했다.
“……난 사흑련의 총군사입니다. 내가 무림맹을 싫어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글쎄, 전생에 그토록 무림맹의 생존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그의 모습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의 말을 쉽사리 납득할 수 없다.
그는 단순히 부귀영화를 위해 자신의 머리를 쓰는 부류의 인간이 아니니까.
나는 그가 몸을 뒤로 물린 만큼, 그에게로 몸을 숙였다.
“진짜로 무림맹을 싫어하는 사람은 자신이 주전파인 척 행세하지 않습니다. 가만히 전쟁이 일어나길 기다리겠지요.”
“……!”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고 엄포를 놓는 것은, 주전파가 자신의 편이라 믿게끔 하기 위한 의도된 행위가 아닙니까?”
죽일 듯이 나를 노려보던 담악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뭔가 오해하셨군요. 내가 한 행동은 모두 진심입니다. 난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무림맹과 전쟁을 해도 된다는 주의입니다. 이길 자신도 있고요.”
그렇겠지.
그 파멸에 가까운 무림맹 부대를 이끌고 마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던 천재 병법가 아닌가.
하지만 정치력은 내 쪽이 조금 뒤 위인 듯했다.
“담 군사께서 정녕 그런 분이시라면, 이번 사태를 열심히 수습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내버려 두었겠지요. 흑도 무인의 분노가 사절단을 갈가리 찢고 나면, 무림맹과의 전쟁은 필연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련주님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에 움직이는 거라 생각하지 않은 겁니까?”
미간을 편 담악이 다시금 무뚝뚝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본다.
“난 위선을 떠는 백도 무림이 싫습니다. 말로만 정의를 실천하는 무림맹은 더 싫고요. 당신들이 당신들 입으로 말하듯 진실로 정의로운 존재였다면, 내 스승과 동무들이 죽는 일도 없었겠…….”
별안간 말을 멈춘 그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곤 덧붙였다.
“……만약 무림맹이 무너지는 순간이 온다면 그 앞에 바로 내가, 웃으며 서 있을 겁니다.”
분명, 그를 증오를 키워낸 조각이 방금 살짝 모습을 드러낸 것 같은데…….
‘스승과 동무…….’
그의 증오는 내 생각보다 더욱 깊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뭔가 변명을 할 거라면…….”
“그런 거 없습니다.”
“…….”
무림맹의 생리, 백도의 위선이라면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난 더 할 말이 없다.
“담 군사께서 어떤 일을 당했든 분명 무림맹의 잘못이 있을 겁니다. 그것에 대해선 어떤 핑계도 변명도 대고 싶지 않습니다.”
예상 못 한 답변이었는지 담악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저 또한 무림맹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얼마나 부당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에 대해 제가 변명한다 한들, 담 군사님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도 아닐 테고요.”
“…….”
나는 나를 노려보는 그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다만 죄송하다는 말씀은 드리고 싶군요.”
내가 한 일도 아니고, 나와 관계가 있는 이가 저지른 일도 아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알아본다면 분명 내가 증오하는 부류의 인간들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난 조금이나마 위로를 전하기 위해 무림맹에 소속된 자로서 죄책감을 가지고 사과를 전했다.
그것이 전해질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
일그러졌던 담악이 신색을 회복했다.
“……그쪽과 관련된 일이 아니니 사과를 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이윽고 담악은 더 이상 마주하기 싫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마십시오. 이 이상 사고를 쳤다간 목숨을 보전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가려 몸을 일으키는 담악을 불러세웠다.
“담 군사님. 혹시 모르니 호위를 보충하시길 건의드립니다.”
“그게 무슨…….”
“흉수가 바라는 것이 전쟁이라면, 지금 사흑련을 통제하고 있는 담 군사님은 눈엣가시일 겁니다. 분명 손길을 뻗겠지요.”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혹시 천관문의 군유현이란 자를 아십니까?”
“……알고 있소.”
“그는 어떻습니까? 믿을 만한 자입니까?”
“무슨 소릴 하고 싶은 것이오?”
“천관문이란 문파를 처음 들어 봐서 말이지요.”
담악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천관문은 남해에 위치한 소규모 문파요. 역사적으로도 백 년이 가까워지는 유서 깊은 사문이기도 하고.”
“믿을 만한 곳입니까?”
“……군유현을 의심하는 거요?”
“그건 아닙니다. 도움을 좀 받고자 해서 말이지요. 그 전에 담 군사님의 고견을 듣고자 묻는 겁니다.”
“신의가 있는 사문이자 사람이요. 흑도 문파에 소속된 것도 인근의 어촌에 들이닥치는 해적들을 막기 위해 과감한 손을 쓰다 보니 무림맹에서 배척당한 점도 있고.”
“음…… 그럴 수 있겠군요.”
담악은 예의 날카로운 눈초리로 말했다.
“천관문과 군유현에게 짐을 지우지 마시오. 그들은 당신이라는 짐을 짊어지기엔 위치가 위태로운 사람들이니 말이오.”
흠…… 하지만 그렇게 믿을 만한 사람이라면 그 머리를 빌리지 않을 수가 없는데.
나는 일부러 대답하지 않고 그를 배웅했다.
담악도 뭔가를 말을 하려다가 이내 귀찮다는 듯 고개를 홱 돌리곤 내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혈검문의 처소에서 도봉수가 주검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시체에선 당가에서 많이 사용되는 우모침이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