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243화 (243/357)

243. <오늘의 운세(2)>

장내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다들 입은 꾹 다물고 있었지만, 금방이라도 분노를 폭발시키고자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흑염룡이 우리를 불러 놓고 농담을 할 리도 없고. 이건 진심이라고 봐야겠지?”

내가 건넨 종이를 꾸깃꾸깃 집어 든 마도문주가 이를 갈았다.

“우리가 그간 너무 많이 참았다는 생각이 드는군. 련주와 농담 몇 마디 지껄이더니 여기가 어딘지 벌써 잊은 건가?”

마도문주는 당장이라도 깽판을 놓을 듯 분개하고 있었다.

갑자기 생각지도 못했던 채권을 받았으니 열 받을 만하지.

다른 이들도 마도문주가 움직이기만 기다리는 것 같고.

나는 마도문주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럼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왜 제가 일한 게 공짜라고 생각하십니까?”

“…….”

역시나 도둑놈 심보가 팽배한 놈들답게 자신들이 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전 사흑련의 소속도 아니고, 여러분들 중 대다수는 제가 소속된 무림맹과 전쟁을 벌이려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 제가 여러분들을 위해 일을 했는데, 염치도 없이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을 생각이십니까?”

“……그, 그건 양 진영의…… 그 머시기냐…….”

“공익?”

“그래! 공익! 그걸 위해서였으니까!”

하여간 지들 좋을 때만 번지르르한 말 갖다 붙이지.

“우리가 맺은 건 평화협정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동맹을 맺었다면 모를까. 임시 휴전에 가까운 평화 협정을 맺은 상대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시는 거 아닙니까?”

“…….”

“어쨌든 제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으면, 여기 계신 분들 중에 무사히 목숨이 붙어 있을 분은 얼마 없을 겁니다.”

“…….”

나는 마도문주에게 새로운 계약서를 건네주었다.

다들 하나같이 똥 씹은 표정으로 계약서를 읽고 있던 중, 사룡문의 새로운 문주가 된 왕주발이 옆에 앉은 황부식의 계약서를 보곤 물었다.

“잠깐. 왜 계약서마다 금액이 다른 거지?”

“으잉?”

“어디?”

그걸 시작으로 문주들은 서로의 계약서를 살폈다.

큰 금액이 적혀 있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분개했고, 절반의 금액이 적힌 이들은 조금은 안도하는 표정들이었다.

“이게 무슨 짓거리냐? 흑염룡!”

나는 당연한 듯 말했다.

“무림맹과의 전쟁을 바라는 사람들과 화평을 바라는 사람들 간 금액이 다른 건 당연지사 아닙니까? 제가 성인군자도 아닌데 똑같은 금액을 책정할 필요는 없죠.”

공평이란 게 어느 때나 다 통하는 건 아니다.

특히 이런 때엔 차등을 두어 먼저 움직이는 사람을 만들어야 하는 법.

“……그래도, 금전 오백 냥은 너무 과하군.”

황부식의 말에 별안간 일명이 히끅 놀랐다.

“그, 금전 오백 냥?”

아니, 당신이 왜 놀라. 당신더러 달라는 것도 아닌데.

그러더니 별안간 전음을 보낸다.

-진 시주, 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어쨌든 일을 하긴 하지 않았습니까. 일명 선배께도 조금 떼어드릴 테니 걱정 마십시오.

-……제 말은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가만히 있으면 어련히 알아서 챙겨줄 텐데.

하지만 걱정 많은 대머리는 말을 잇는다.

-저들이 그 큰돈을 쉽사리 주겠습니까?

받지 못할 거라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았겠지.

“흑염룡. 네가 열심히 한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아무리 우리라도 이런 일에 금전 오백 냥을 지출할 수는 없다.”

황부식이 이리 나오자, 다른 이들도 때를 기다렸다는 듯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래! 금전 천 냥이 뉘 집 개 이름인 줄 알아?!”

“아무리 현실 감각이 없어도 그렇지, 이건 도가 지나쳐!”

“특급 암살자를 고용해도 금전 오십 냥이면 시체까지 처리해 준다!”

역시나 인간이란 족속들은 뒷간 들어갈 때랑 나올 때가 다르다더니.

하긴 흑도 놈들이 더하면 더했지, 덜할 놈들은 아니지.

나는 모인 이들을 한 차례 주욱 훑었다.

“흐음, 여기 계신 분들의 목숨값은 그 정도도 되지 않는 모양이군요.”

주전파, 그러니까 금전 천 냥짜리 채권을 받아 든 이들이 노기를 띠며 벌떡 일어났다.

“아니, 갑자기 무슨……!”

“그래!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이야기할 건 아니……!”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암수가 더 없을 거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응?”

순간 얼어버린 문주들.

흑도치고는 순진한 양반들이네.

나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저는 암수를 다 잡았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 그게 무슨 개소리야!”

“부, 분명 일을 다 처리했다고!”

“그래! 연회에서 술도 마셨잖아!”

이런, 아무래도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듯하다.

“‘급한 일’은 다 처리했다 했지요. 가장 가까이서 여러분들의 목을 노릴 놈들을 한시라도 빨리 없애는 게 목적이었으니까요.”

“그, 그럼……?”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암수는 남아 있습니다.”

문주들은 집문서와 땅문서를 걸었다 날려버린 노름이 사기도박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대체 몇이나?!”

“제가 그걸 알려 드려야 합니까? 미래에 적이 될지도 모르는 분들에게?”

“이, 이런 쳐 죽일!”

난 황망한 표정을 짓는 마도문주를 바라봤다.

“그러게 동맹을 하자고 할 때 옳다구나 하고 받아들이셨어야죠. 그럼 다 공짜로 처리해 드렸을 텐데.”

“개 같은…….”

내 생각보다 흑도인들의 머릿속은 꽃밭인 듯 보였다.

이 정도는 기본 아닌가?

소정대에선 다들 그랬는데.

“뭐, 어쨌든 다들 금액을 지불할 생각이 없으신 듯하니. 전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어딜 간다는 거냐!”

쿠당탕.

빈자리에 있던 의자들이 공중을 날아 문에 부딪힌 후 쌓이면서 출구를 막았다.

와, 방금 허공섭물 쓴 거야?

“사절단의 임무가 끝났으니 이제 무림맹으로 돌아가야지요.”

“이대로 돌아간다고?”

“그럼요?”

나의 당연하다는 반응에, 결국 마도문주가 흥분을 가라앉힌다.

“……네가 한 말. 진실이더냐?”

“거짓말이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거짓말일 수도 있지!”

마도문주는 저도 모르게 다시 흥분한 듯 보였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내뱉는 게 백도의 본질 아니더냐!”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

마도문주는 두 개의 컵이 놓인 노름판 위에서 빨간 콩을 찾는 사람의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나도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정말 확신하십니까? 거짓말이라고?”

온갖 고성이 오갔지만, 결국 간단한 이야기다.

“거짓말이라 생각하면 돈을 내지 않으면 되고, 진실이라 생각하면 돈을 내면 됩니다.”

오십 대 오십의 간단한 양자택일.

문제는 거기에 걸린 판돈이 목숨이라는 것일 뿐.

세상 그 어떤 도박사도 제 목숨을 걸고 판을 벌이진 않을 테니까.

만약 그런 놈이 있다면, 그야말로 진정한 도박사라고 봐야겠지.

저벅.

나는 좌중에 내려앉은 침묵을 깨트리며,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정녕 거짓이라고 확신하십니까?”

“……!”

나를 부리부리한 눈으로 노려보던 마도문주가 결국 고개를 떨궜다.

한 사람을 꺾고 나면, 그다음부턴 아주 쉬워지는 법.

나는 이어 다른 문주들을 하나하나 바라봤다.

“거짓이라 확신하신다면 저와 이리 신경전을 벌일 필요도 없습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차례차례 고개를 숙이는 문주들.

“거짓이라 확신하십니까?”

다시금 침묵에 잠긴 좌중 사이에서, 마도문주가 겨우 입을 뗐다.

“……지금 당장 금전 천 냥을 준비할 순 없다.”

그럼 그렇지!

나는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억누르며 차분히 대답했다.

“현물도 받고 전표도 받습니다.”

이 공간 안에 진정한 도박사는 아무도 없었다.

#

사절단에 드리웠던 누명이 벗겨지면서 사흑련주 입장에선 사절단을 만나기 수월해졌지만, 실제로 만난 횟수는 적었다.

차석두를 사흑련주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눈을 희번덕거리던 연맹 주요 세력들은 암수의 등장으로 입을 꽉 다물었고, 이때를 틈타 차석두는 인사권을 제 뜻대로 행사했다.

각주 하나 임명하는 데도 무수히 많은 제지를 받던 그는, 담악의 도움으로 사흑련의 기둥이 되는 자리에 제 사람을 속속들이 꽂아넣었다.

견제 세력에 의해 사흑련주의 자리를 잃을 뻔했던 위기 속에서 극적으로 회생하며 자신의 자리를 공고히 다진 것이다.

사흑련은 이제 어엿한 단체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가능케 한 이는, 사흑련 내부의 인물이 아닌, 바로 무림맹의 사절단원 진소운이었다.

“…….”

“크하하하하. 이게 다 얼마람.”

일명은 면벽 수행하는 눈으로, 전표를 세는 진소운을 바라봤다.

흑도의 거두들에게서 뜯어낸 각종 전표와 영약, 보물 등으로 앞섬이 볼록한 진소운.

저것마저도 일부에 불과하고, 내일이면 남은 잔금을 사절단의 숙소로 가져다준다 했더랬다.

참으로 기이한 광경이었다.

흑도의 거물들이 제 손에 든 재물을 내놓으면서 ‘잘 부탁한다’고 고개를 조아린다니.

강호의 역사상, 이런 광경을 본 이가 대체 얼마나 있을까?

일명은 머릿속으로 침범하는 번뇌를 겨우 쫓아내었다.

“진 시주…… 하나 물어도 되겠습니까?”

진소운이 흠칫 놀라며 제 품을 두 팔로 가린다.

“나눠 드리겠다곤 했지만, 금전 백 냥 이상은 드릴 수 없습니다. 이건 어쨌든 제가 번 것이니까요.”

“…….”

대체 이 인간은 자신을 뭘로 보는 걸까.

스윽-

진소운이 두 팔로 제 몸을 더욱 단단히 가린다.

“안 줘도 된다는 말은 안 하시는군요.”

“……부처님 뜻이 닿는 좋은 곳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쳇.”

뭔가 실망의 기색이 역력한 진소운을 보며 일명이 말을 이었다.

“왜 굳이 돈을 뜯어…… 아니, 받은 겁니까? 어차피 해야만 했던 일, 그냥 해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양쪽의 관계에 더 좋지 않았겠습니까?”

“사흑련까지 와서 이 개고생을 하고 아무 소득 없이 돌아가서야 되겠습니까.”

“…….”

일명의 눈동자가 더욱 탁해지려는 찰나.

“아, 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호들갑을 떨며 양손을 흔드는 진소운.

그 모양새에 그나마 남아있던 기대감도 팍팍 깎여 나간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진소운이 팔을 내리며 말했다.

“흑도 놈들 힘을 좀 빼놓을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힘이요?”

진소운의 활약으로, 흔들리던 사흑련은 더욱 공고히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됐다.

과연 이를 두고 힘을 뺐다 할 수 있을까?

“정확히 말하자면 주전파 놈들이지요. 애당초 놈들은 상대가 두렵지 않으면 계속 전쟁을 부르짖을 놈들 아닙니까.”

“……화를 더 돋운 게 아니고요?”

“인간이란 게 참으로 우습습니다. 상대의 손발이 잘려나가는 고통보다 제 손톱 밑에 박힌 가시가 더 큰 고통으로 느껴지는 법이거든요.”

어느새 진소운이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웠다.

“전쟁이 터지면 가장 먼저 죽는 이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가장 선두에 있는 사람이겠지요.”

진소운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가장 약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가장 늦게 죽는 건, 바로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이지요.”

“…….”

“자신에게 절대로 피해가 오지 않는다 생각하면 사람은 얼마든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천, 아니 수만의 인물도 사지로 내몰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일명은 어쩐지 진소운의 얼굴이 감정을 잃어버린 사람의 것처럼 보였다.

“더구나 저들은 흑도 무림의 정점에서 무소불위의 권력과 무력을 자행했던 존재들. 그렇기에 이런 경험을 심어줘야 했던 겁니다. 자신이 무력할 수도 있다는 충격,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두려움.”

그러나 이내, 진소운의 눈빛이 그 누구보다 번뜩 빛난다.

“그럼, 전쟁을 언급할 때 주저하는 마음이 생겨나겠지요.”

순간, 일명은 머리 한쪽에서 뭔가가 투둑- 하며 깨지는 기분이 들었다.

감정을 잃은 듯 보였던 그의 얼굴은, 마치 모든 걸 깨달은 이의 얼굴처럼 초연하고 형형해 보였다.

……물론, 볼록한 앞섬만 아니라면.

일명은 자신이 느꼈던 괴리감을 결국 입밖으로 꺼내었다.

“전쟁이 싫다면…… 사흑련을 만들지 않았으면 될 일 아닙니까.”

진소운이 벌인 흑도야행의 전말과 그 결과에 대해 알고 있다.

그는 정시의 마지막 관문에서 용소아가 아닌 흑도들에게 손을 뻗었다.

모든 걸 진소운의 탓으로 돌릴 순 없지만, 어찌 되었건 사흑련의 창설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일명의 물음에 잠시 침묵하던 진소운이 입을 열었다.

“일명 선배는 무림맹이 정의롭다고 생각하십니까?”

뚝.

일명은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한 번도 의문을 가지지 않았던, 아니 가져선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이야기.

단순한 질문이지만, 그 안에 담긴 함의(含意)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정의를 향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꽃길만 걸어온 사람의 시선은 찬란하게도 긍정적이군요.”

날카로운 가시 같은 말들이 날아든다.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일명이 침묵하는 사이, 진소운의 시린 목소리가 연이어 날아든다.

“내가 본 무림맹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헌데 이상하게도 그 공격이 아프지 않다.

오히려 그가 마치 자신의 몸에 박힌 가시를 꺼내어 제 상처를 보여주고 있는 듯 느껴졌다.

“약자에겐, 흑도보다 비정하고 사도보다 비열하게 느껴지는 곳이 바로 무림맹입니다.”

“…….”

“무림맹은 너무 고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썩어가고 있지요.”

이자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자신이 무림학관의 대표이자, 장차 무림맹을 이끌어 갈 정예라는 정체성은 갖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연회에서 했던 농담처럼, 사흑련의 부련주 자리를 차지할 생각이라도 하는 건가?

볼록한 앞섬을 출렁거리며, 진소운이 몸을 앞으로 숙여온다.

“학관에 들어갔을 때 제가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대단하다는 이야기 아니었습니까?”

그의 업적은 실로 대단하다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진소운이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제가 혼란을 불러올 거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혼란이 강호를 어지럽히고 정의를 무너뜨릴 거라고요.”

안타깝지만 납득이 가기도 했다.

부와 권력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 기득권에겐 진소운은 눈엣가시나 마찬가지인 존재.

용소아 또한 그런 진소운을 이용해 무림맹 내부를 정리하고자 했었으니까.

“그렇다 해도 사흑련을 만든 일이 어찌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겁니까?”

일명의 물음에 진소운이 고개를 저었다.

“황실에는 거대한 연못이 있고, 천하에 진귀한 물고기들이 그 안에 살고 있다는 것 아십니까?”

뜬금없는 이야기였지만, 일명은 현학적인 음성에 취해 잠자코 이야기를 들었다.

“……들어는 보았지요.”

“이 연못에 물고기를 가져올 때 가장 고민했던 문제는, 바로 물고기들의 생존이었습니다.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물고기들이 황실에 도착하기 전에 다 죽어버렸거든요.”

물에 사는 생명들은 수온이 조금만 바뀌어도 죽어버릴 만큼 민감하다.

일명 역시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는 어느새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이를 해결한 방법은, 바로 그 어항 속에 물고기들의 천적을 집어넣는 것이었습니다.”

“……천적이요?”

진소운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상하지요? 한 마리도 죽어선 안 되는 진귀한 물고기와 천적을 함께 넣다니. 그런데 그렇게 하자, 신기하게도 황실에 도착할 때까지 그 귀한 물고기들이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답니다.”

“…….”

“천적을 피해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생을 이어갔던 거지요.”

이야기를 듣던 일명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불경 속에서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깨달음이 그의 머릿속에 뇌성벽력을 친 것이다.

이윽고 진소운이 몸을 뒤로 물리며 기지개를 켰다.

“물론 진정한 사흑련의 존재 이유는 무림맹의 정화에 국한되지 않습니다만, 어쨌든 지금 당장은 무림맹에 좋은 영향을 주겠지요.”

“또 다른 이유가 있단 말입니까?”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

흔들림 없는 진소운의 눈동자를 본 순간.

일명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일각의 말대로 진소운은 ‘깨달은 자’가 맞다.

더 이상 그의 행동에 의문을 품을 필요는 없었다.

그는 이미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으니까.

일명은 감히 그와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보려면 얼마나 큰 깨달음을 얻어야 할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그럼 이제 무림맹으로 돌아가는 겁니까?”

진소운이 당연하다는 듯 즉답했다.

“아니요. 아직 할 일이 남았습니다.”

“…….”

물론, 또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는 점이 심히 걱정되긴 하지만.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소운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간다.

“교활한 여우 새끼를 잡아야 하거든요.”

“…….”

어차피 다른 시선으로 보는 ‘깨달은 자’가 아니겠는가.

‘나는 이제 모르겠다. ……아미타불.’

어쩐지 사흑련에 와서 무심(無心)의 도량이 늘어나는 것 같은 일명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