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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249화 (249/357)

249. <판돈을 챙기는 흑염룡(2)>

차석두는 정예를 이끌고 사흑련을 내달렸다.

이미 암살자들이 한차례 사흑련을 휩쓸고 간 걸 알고 있다.

시선을 돌리기 위한 행위였으니, 그들이 다시 나타날 일은 없다.

그럼에도 완전무장을 갖춘 수십의 인원을 이끌고 사흑련 내를 돌아다니며 의미없는 지시를 내린다.

“련주님! 저희 문주님께서……!”

“내 반드시 흉수를 잡겠다! 내부의 모든 횃불에 불을 붙이고 무기를 거두어들여라. 반항하는 자가 있다면 선조치 후보고 하라!”

이건 사흑련의 진정한 련주가 누구인지 보여줄 수 있는 기회.

차석두가 그저 임시 련주가 아님을 각인시킬 장이기도 했다.

영웅은 난세에서 탄생하고, 믿음은 유능함에서 나온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해야 할 일을 정해주는 이를 따르는 건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속성.

그건 반골기질이 다분한 흑도라 할지라도 다르지 않았다.

“련 내의모든 이들에게 알린다! 지금 흉수를 추적하고 있으니, 안심하라!”

“존명!”

“존명!!”

차석두를 싫어했던 사람은 그를 좋아하게 되고, 좋아했던 사람은 맹신하게 된다.

그리고 그 믿음들이 모이고 모여 ‘경외’라는 감정을 낳는다.

흑도들은 그간 반토막에 불과했던 사흑련과 차석두에 대한 믿음이 급속도로 치솟아 올랐다.

차석두 역시 바뀐 여론에 만족감을 느꼈다.

“이 정도면 될까?”

“한두 바퀴 정도만 더 도시죠.”

“또? 벌써 다 도망쳤다면서?”

그의 반문에 부하는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련주님. 여기 모여 있는 호사가들이 몇인 줄 아십니까?”

“호사가는 무슨…… 왜 갑자기 어려운 말을 쓰고 난리야. 그냥 술주정뱅이들이지.”

“……아무튼, 오늘의 일은 그들을 통해 천하 전체로 퍼져나가야 합니다.”

경외를 자아내 내부 결속을 다졌다면, 이젠 그 힘을 외부로 확장해야 한다. 그래야 사흑련이 정식 단체로서 뿌리를 내릴 수 있을 터.

수하의 의중을 알아차린 차석두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아 참, 그리고 다친 사람 상처를 살피는 일도 좀 하십시오. 왜 자꾸 그냥 지나가기만 하십니까?”

“너도 봤잖아. 그건 분명 습격당한 상처가 아니라 지들끼리 처싸우다 다친 거라고. 그놈들은 상처 입히지 않아. 그냥 죽이지.”

부하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진다.

“련주님 대체 살수들 정체가 뭡니까? 대관절 그런 실력은 처음 봤습니다. 살막이랑은 비교도 안 되게 깔끔했습니다.”

“…….”

차석두는 부하의 질문에 무심코 답하려다 그만두었다.

하기사 말한다 한들 알아듣기나 할까?

그 정체가 오백 년 전 사라진 단체라는데.

본인도 제대로 믿기지 않는데.

눈앞에서 놈들의 정체를 파악한 게 아니었더라면.

진소운이 결국 미쳤구나 했을 것이다.

분명 사황봉의 무공이었다.

호위였던 흉수는 사흑련 창설 과정 중에 마찰이 생겨날 때마다, 차석두 앞에서 몇 번이나 무공을 펼쳤다.

의심의 여지없이 사황봉의 것과 똑같았고, 다시 기억을 복기해 보아도 이상한 점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놈이 피부 한 꺼풀을 벗기자 다른 놈으로 변했다.

진소운의 말대로라면 복양평원에서 나타난 놈들이랑 똑같은 놈들이란 것인데…….

그때 복양평원에서 있었던 일을 면밀하게 조사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이쯤 되자 슬슬 머리가 아파온다.

무림맹만 견제하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또 다른 세력이라니.

사흑련의 미래를 다시 그려야 하나 하는 생각에 머리가 다 지끈거린다.

그때.

“련주님…….”

“응?”

부하가 한 곳을 향해 손가락을 내뻗는다.

“저기.”

부하가 가리킨 곳은 담악의 처소. 그곳엔 진소운을 제외한 사절단과 혈투, 염귀비가 모여 있었다.

담악이 구출되었다는 보고는 받았는데…… 저자들은 왜 저러고 있는 거지?

차석두는 지체 없이 발을 움직였다.

“가보지.”

이윽고 그들 곁에 당도한 차석두는 연유를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어르신.”

위기에 빠진 사흑련을 구한 공신들인 무림맹 사절단과 혈투, 염귀비는 낙담한 표정으로 차석두를 바라봤다.

“진소운이…….”

그러나.

차석두의 물음에 답하던 혈투가 이내 입을 다문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여 시선을 돌리자 당서희는 닭똥 같은 눈물을 또륵또륵 흘리고 있고, 악병비와 일명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다.

그 누구도 쉬이 입을 떼지 못하는 상황.

결국 염귀비가 말을 이었다.

“……진소운 그 아이가 죽었어.”

“네?”

차석두는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재차 확인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진소운이 죽었다고?

그놈이?

진소운이 누군가.

마령고원에서도 정시에서도 살아남은 독하디독한 놈이다.

남들은 목숨이 열 개여도 살아남기 모자랄 곳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은 놈이란 말이다.

그런데 그런 녀석이 갑자기 죽었다니.

“……확인된 겁니까?”

차석두의 말에 염귀비는 물론이고 혈투도 미간을 찌푸린다.

“그럼 놈들이 저곳에서 어찌 나왔을까.”

혈투가 가리킨 담악의 처소한구석에선 불온한 붉은색의 벽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마치 지옥불처럼 너무도 붉어서, 차석두 역시 저도 모르게 침음을 흘려버리고 말았다.

혈투의 말대로 안 봐도 뻔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겠습니다.”

차석두의 눈빛이 단호히 빛났다.

#

사흑련을 만들고 차석두가 처음 했던 일은 바로 진법가들을 모으는 것이었다.

마령고원에서의 악몽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사흑련이란 단체의 속성이 문제였다.

가뜩이나 강호에 몸담지 않으려는 학사재질의 진법가들이, 안전도 보장되지 않은 흑도연맹에 오겠는가.

하지만 차석두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해결하면 될 일.

제갈세가, 모산파 등 기문진과 관련된 무문에 소속되어 있었던 자들 중에 노름에 빠진 종자들을 모았다.

노름쟁이들이 그렇듯, 대부분 막대한 빚을 지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들을 포섭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빚쟁이들에게 돈을 주고 채권을 가져오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그렇게 만들어진 흑법당의 인원들은, 채권자가 차석두라는 사실 때문에 본래 무문에서 보여왔던 능력 이상을 선보였다.

무려 한 시진 만에 생문과 사문을 찾아낸 것.

“하지만, 이제 시작입니다. 해진을 하려면 면밀한 분석부터…….”

“생문과 사문을 동시에 때리면 약한 기문진은 부서진다 들었다 맞나?”

“마, 맞습니다만 기문진의 힘이 얼마인지 모르고, 또 자칫 잘못하다간 내부에 있는 사람이…….”

차석두는 노름쟁이의 말을 더 새겨듣지 않았다.

습격을 위해 급하게 설치된 기문진이다.

강해봐야 얼마나 강하겠는가.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한 사람이 생문과 사문을 동시에 부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

“내가 함께하지.”

혈투가 앞으로 나섰다.

“지치신 것 아닙니까?”

“내가 네놈 따위와 비교가 될 것 같으냐?”

그렇게 혈투와 차석두가 동시에 기문진을 때렸고, 차석두의 예상대로 기문진이 부서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흐…….”

핏물을 흘리며 쓰러진 진소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 살려줘…… 시발.”

혼절한 채 신음처럼 구조요청을 보내고 있는 진소운.

차석두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을 느끼며 소리쳤다.

“……있다!”

“네?”

차석두가 재차 외쳤다.

“살아있다…… 녀석이 살아있어……!”

순간, 사절단 일행이 쓰러지듯 무릎을 꿇으며 안도했다.

“역시 흑룡채 채주이자 사흑련 부련주인 진소운이 쉽게 죽을 리 없단 것이야!”

“나무아미타불…….”

이뿐만 아니라, 담악의 처소에 모여있던 사흑련도들 역시 일제히 환호를 내질렀다.

젊은 흑도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담악을, 구해낸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무림맹 사절단원의 모습이 그들의 심금을 울렸던 것이다.

“진소운!”

“진소운!”

“흑염룡!”

“흑염룡!”

이윽고 사흑련 내부엔, 진소운이 그토록 싫어하는 별호가 사람들의 입을 타고 널리 널리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

제갈소명이 혁무강의 집무실을 찾았다.

“무영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어찌 되었답니까?”

“미상의 존재들이 그간 사흑련 일대의 전서구와 인편들을 막고 있었다 합니다.”

“미상의 존재들?”

혁무강이 미간을 찌푸렸다.

제갈소명이 이리 불분명하게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던가?

제갈소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소속인지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다고 하더군요.”

제갈소명의 씁쓸한 반응에 혁무강은 그 미상의 존재들이 누군지 예측할 수 있었다.

아마 제갈소명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터.

하지만 그는 정보를 다루는 자답게 확실한 것이 아니면 입에 담지 않았다.

“더구나 사흑련 내부에 백도무문의 무공을 익힌 흉수들이 사흑련에 숨어 있었답니다.”

“뭐라고요!”

혁무강의 몸이 움찔거렸다.

정보가 차단된 상황에 백도의 흉수라니.

혁무강이 다급히 물었다.

“혹시 모를 오해를 풀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우리가 보낸 존재가 아니라 알려야지요.”

백도와 흑도 간에 오랜 시간 쌓여왔던 적의가 터지기 딱 좋은 상황.

무림맹에서 보낸 사절단들이 안전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사절단의 안위는 물론이고 전쟁까지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사절단은 괜찮답니까?”

몸을 들썩이며 당장이라도 산서로 달려갈 것 같은 혁무강을 보며 제갈소명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다고 합니다.”

“혹여, 구금되어 있는 건 아닙니까?”

이런 기회가 왔다고 사흑련이라고 본격적인 전쟁을 치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절단 정도는 흑도무림의 화를 풀기 위해 희생양으로 삼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건 아니라고 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걱정 안 해도 된다고요?”

혁무강의 두 눈에 의문이 가득했다.

대충 듣기만 해도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자신이 이렇게 알아차릴 정도라면 제갈소명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지 않을 텐데…….

어찌 이리 태평한 것일까?

그 의문을 알고 있단 듯, 제갈소명이 덧붙였다.

“사절단이 사흑련에 숨어든 흉수를 찾아냈답니다.”

“네?”

이건 또 무슨 소리람?

사흑련 내부의 인사들이 흉수를 찾은 것도 아니고, 무림맹에서 파견된 사절단이 흉수를 찾았다니.

……흉수가 백도의 무공을 쓰고 있었다면, 오히려 용의자로 몰리기 딱 좋은 상황 아닌가?

“정확히 말하면 진소운이 사흑련 내부에 숨어든 흉수를 찾아냈다고 하더군요.”

“진소운이요? 왜? 아니, 대체 어떻게요?”

“…….”

제갈소명은 입에도 담기 싫다는 듯 입술을 달싹거렸다.

혁무강은 그 모습에 더욱 애가 닳았다.

“총군사.”

혁무강의 채근에, 결국 제갈소명이 말했다.

“……관심법으로 찾았답니다.”

“……네?”

방 안에 정적이 감돌았다.

혁무강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잘못 들었나?

“관심법이요?”

“네.”

“……하지만 태을문은 도가무문 아닙니까?”

“맹주…….”

도가무문이든 불가무문이든 애당초 관심법(?)이라는 말도 안 되는 것으로 흉수를 잡았다는 말에 이상함을 느껴야 하는 것 아닌가.

“아차차, 이게 아니지. 대체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저도 모릅니다. 무영이 보낸 전서에 그것만이 적혀 있었으니까요.”

“…….”

끊겼던 정보가 재개된 것은 반가웠으나, 단편적인 정보, 그것도 얼토당토않은 정보들만으론 제대로 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더구나 관심법이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적으면서 제대로 된 설명조차 하지 않았다.

제갈소명은 무영이 돌아오는 대로 수신호위들에게 정보 보고 방법에 대한 교육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흉수를 잡은 덕분에 무림맹이 세작을 집어넣었다는 오해는 풀었다고 합니다.”

“……큰일 날 뻔했군요.”

사천에 혈교가 아직 남은 상황.

사흑련과의 전쟁까지 벌어지면 무림맹은 유례없는 위기를 맞이할지도 몰랐다.

그러니 몰랐다 하더라도 오해를 푼 것은 정녕 대단한 일이다.

“근데…….”

잠시 생각에 잠겼던 혁무강이 입을 열었다.

“정말 관심법을 쓴 거 랍니까?”

“……맹주.”

혁무강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대체 적진 한가운데 뚝 떨어져 용의자로 몰리는 상황에서 숨은 흉수들을 찾아낼 수 있단 말인가.

“총군사는 안 궁금하십니까?”

“…….”

제갈소명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걸 보니, 그의 심정도 자신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그걸 논할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이라는 말을 덧붙이는 걸 보면 진소운이 돌아왔을 때. 캐볼 작정인가 보다.

그렇게 생각한 혁무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사천의 일이 예정보다 길어지고 있으니.”

겨울이 오고 있다.

이 이상 전쟁을 끌었다간 무림맹이 뿌리부터 흔들릴지 모른다.

그렇다고 혈교를 눈앞에 두고 물러설 수는 없다.

괴랄한 사술을 쓰는 자들을 뒤에 두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도통 감이 오지 않으니까.

혁무강이 조심스레 의견을 구했다.

“사흑련에서 오해가 풀렸다 해도 사천에 흑도 문파들을 물러서게 할 수는 없겠지요?”

앞으로 나아갈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

가망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새삼 이렇게 되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제갈소명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맹주, 혈교를 정리하시지요.”

“……괜찮겠습니까? 사천의 흑도 문파들이 뒤를 노릴 텐데요.”

“사흑련에선 사천일을 지원하겠다고 합니다.”

“네?”

혁무강의 눈이 부릅떠졌다.

제갈소명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무림맹의 사절단은 이번 개파식에서 협정을 맺고 혈교를 공적으로 선언함과 동시에, 혈교가 사라지기 전까지 무림맹과의 평화를 이어가기로 약속했답니다.”

혁무강이 입을 쩍 벌렸다.

전쟁터에서 뒤가 찔리지 않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건만, 공적선포라니.

미약하긴 하겠지만 흑도 무림이 지원까지 한다면, 혈교를 더욱 단시간에 끝장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랍니까?”

너무 좋은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것이 거짓말처럼 들린다고 하던가.

지금 혁무강의 심정이 딱 그랬다.

제갈소명도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내뱉는다.

“사실이랍니다. 진소운이 협정을 이끌어냈다고 합니다.”

“진소운이요?”

“악병비 그 친구가 올린 보고서이니 확실할 겁니다.”

“악병비라면…….”

악가와 진소운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해선 혁무강도 들었다.

그 일로 인해 감정의 골이 깊게 파였을 것을 생각하면, 악병비의 보고서가 공적을 치하하기 위해 없는 말을 써넣은 허위 보고서는 아닐 것이다.

“대체 사흑련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랍니까?”

“저도 모르겠습니다.”

악병비 또한 감찰각 출신이다 보니, 어떤 정보가 만통부에 필요한지를 모르고 있다.

이참에 각과 당을 초월하여, 보고 형식을 통일할 필요성을 간절하게 느끼는 제갈소명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되었답니다. 그러니 사천의 흑도 문파들의 동태를 잠시 살핀 후에 혈교를 정리하시지요. 곧 혹독한 겨울이 올 겁니다.”

한참을 침묵하던 혁무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소운 그 아이에게 빚을 졌군요.”

“……네, 뭐. 과정이 심히 수상하긴 하지만요.”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상상하지 못했던 성과를 이뤄냈다.

제갈소명으로선 당최 진소운을 다른 신성들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가 없었다.

설사 그 대단한 용소아라 할지라도 말이다.

용소아의 무공으론 이런 일은 이뤄낼 수 없을 테니까.

“흠…… 이런 말을 하면 안 되지만, 협정 이야기까지 듣자 하니 더 욕심이 나는군요.”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동맹 말입니다. 무림맹은 물론이고, 전 강호가 앞으로 커다란 전쟁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림맹은 물론이고 사흑련에서도 그 흔적을 자꾸 드러내고 있는 마교.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의 전초전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때가 온다면 백과 흑의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었다.

그때를 대비해서 당분간은 사흑련과 같은 배를 타고 싶었다.

제갈소명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흑련에는 무림맹과 전쟁을 하고 싶어 모여든 이들도 많습니다. 차석두가 그들까지 온전히 지배하고 있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음…… 역시 무리겠지요?”

“네.”

제갈소명의 즉답에도 혁무강이 다시금 말을 잇는다.

“여기서 더 바라면 도둑놈이겠지요?”

“…….”

“진소운도 그것까진 좀 무리겠지요?”

이 양반이……?

제갈소명은 왠지 혁무강이 도둑놈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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