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 <열매가 맺히는 시간(5)>
갑작스런 욕지거리에 수라문의 인사들이 미간을 찌푸렸다.
대저 식객 따위가 뭐가 잘났다고 욕지거리를…….
“가가!”
수라문 사람들이 나서기도 전에, 화살처럼 날아드는 중년 여성의 외침에 백발 사내는 앗 뜨거! 하는 표정이 되었다.
“부, 부인…….”
“욕을 하지 않으시기로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방금 야차 같은 얼굴로 욕지거리를 내뱉은 사람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백발 사내의 목이 움츠러들었다.
“미, 미안하오……. 우릴 환대해 주신 분을 압박한 듯 보여…….”
그러나 중년 여성은 단호히 고개를 내저으며 딸아이를 가리켰다.
“그래도 욕은 모든 갈등의 시작입니다. 자중하십시오. 지아가 뭘 보고 배우겠습니까.”
“아빠……?”
사랑스러운 딸아이의 얼굴을 한번 바라본 사내가 황급히 목을 가다듬었다.
“그, 그렇지. 알겠소이다. 흠흠.”
그러곤 얼굴에 미소를 내걸며 다시금 정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개 같은 분들께선 어찌 이리 무례하시오?”
“……가가.”
“응? 뭔가 잘못했소? 저놈들은 아무리 잘 봐줘도 흑도 왈패만도 못한 놈들이지 않소?”
“아무리 그래도…….”
부부의 만담에 결국 인내심이 다한 주영산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뭐 하는 짓거리들이냐!”
주영산이 살기를 쏘아내자 백발의 사내가 여인과 아이의 앞을 막아섰다.
그 모습에 주영산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살기를…… 해소해?’
전력을 다해 쏘아냈다고 볼 순 없지만, 그렇다고 쉽게 흘릴 수 있을 정도도 아니다.
그런데 백발 사내 뒤에 선 여성과 아이는 살기의 영향따윈 전혀 받지 않은 듯, 영문을 모르는 표정이었다.
핏줄이 튀어나온 이마와 달리, 백발의 사내의 목소리는 딸아이를 의식했는지 여전히 정중했다.
“밖에서 듣기로 수라문에서 왔다고 하던데 사실이오?”
“그렇다.”
그러나 이도 잠시.
“백팔봉의 상위에 드는 문파라 들었는데, 내가 잘못 들은 것인가?”
“무슨 소릴 하는 거지?”
백발의 사내의 잇새로 정중을 가장한 으르렁거림이 튀어나왔다.
“이런 씹새끼들이 백팔봉의 문파라니 말이 안 되지 않소.”
“가가!”
“아, 미안하오.”
다시금 다그치는 여인과 한발 물러서는 백발의 사내.
두 사람을 노려보던 주영산이 고갯짓을 하자, 호위로 왔던 호권단주가 앞으로 나섰다.
척.
한 손을 길게 뻗으며 기수식을 펼치는 주영단주의 모습에 백발의 사내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애송아, 내가 아무리 검을 들지 않았다 한들 그리 만만해 보이느냐?”
“어디 남이 흘린 밥풀이나 주워 먹는 쌀벌레 따위가.”
호권단주가 내기를 끌어올리며 출수를 준비하는 그때.
전음이 들려왔다.
-호권단주. 놈에게 맞아 주어라.
호권단주가 의아한 듯 눈살을 찌푸리자 주영산이 말을 이었다.
-이건 명분이 될 수 있다.
문주의 의도를 알아차린 호권단주가 고개를 끄덕이곤 앞으로 달려 나갔다.
“하앗!”
호권단주의 호쾌한 주먹질이 허공을 가르자, 백발사내가 가볍게 손을 들어 주먹을 잡아챘다.
“제대로 할 생각이 없다면 그만둬라.”
“……!”
예상과는 달리 너무 쉽게 자신의 주먹이 잡히자 당황한 호권단주.
그의 귓가로 다시금 전음이 들려왔다.
-지금!
백발 사내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지금은 사문의 일이 더 중요한 법.
그는 들어오는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커흑!
호권단주가 바닥을 굴렀다.
“으어억!”
마치 중상을 입은 듯 가슴을 부여잡고 바닥을 뒹구는 그의 모습에 주영산과 장로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영기야!”
“호권단주! 괜찮은가!”
그때, 집무실 문을 열고 왕금산과 진태산이 나오다가 그 장면을 보고 굳어버렸다.
“이게…… 무슨!”
쿨럭.
그 와중에 호권단주는 피를 토해냈고, 주영산은 그를 품에 안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대천상단주! 이게 대천상단의 뜻이요?”
왕금산과 진태산은 장내를 둘러보며 현 상황을 파악했다.
누가 봐도 커다란 문제가 생겼다는 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상황.
난색을 표하는 두 사람의 얼굴을 노려보던 주영산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이런 식으로 일을 해결하겠다고 한다면 수라문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외다!”
그 말을 끝으로 문주가 대천상단을 나가버리자, 장로는 얼른 호권단주를 등에 업고 그를 따라나섰다.
“…….”
장내의 모든 사람은 일이 크게 틀어졌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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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백해광이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 새…… 아니, 그들이 저희 가족을 환대해 주신 은인께 무도한 모습을 보이기에 과거의 성미를 못 버리고…….”
백해광과 섭소정의 진심 어린 사죄에도 장내의 분위기는 그리 밝지 못했다.
“일단, 이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세.”
위기의 상황에서 가장 먼저 대처 방안을 떠올린 건 왕금산이었다.
“수라문이 어쨌든 간에 억지 명분이라도 잡았으니 가만있을 리 없어. 일단은 이들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고 잡아떼는 것이 상책이네.”
진태산이 물끄러미 백해광을 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소운이에게 이미 약속한 바가 있으니까요.”
문파 창설을 돕는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렷다.
왕금산이 답답한 듯 가슴을 쳤다.
“이 사람아, 이들이 여기 있으면 문제가 커지네. 돈으로 막을 수 있는 일을 피로 막아야 한다는 말일세.”
그 말에 잠자코 듣고 있던 백해광도 함께 거들며 나섰다.
“사실 저 또한 문파 창설 도움까지 받는 건 염치 없다 생각하여 말씀드리려던 찰나였습니다.”
“것 보게나.”
“갈 곳 없는 저희 세 식구 받아주신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 이상 저희가 남아있는 건 은인에게 해가 될 것 같습니다.”
백해광마저 이리 이야기하자 왕금산이 더욱 적극적으로 말했다.
“이들을 보낼 곳은 내가 찾아보겠네. 그러니 이들이 사는 것에 대해선 전혀 걱정할 필요 없을 걸세.”
그러나 진태산의 얼굴에 드리운 근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분들에게만 문제의 책임을 지게 한다면, 이분들께서 평생 도망자로 사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건…….”
말을 잇던 왕금산이 입을 꾸욱 다물었다.
수라문의 힘이 아무리 대단치 않다 해도, 그들이 속한 백팔봉과 무림맹의 힘은 대단하다.
혹여나 이번 일을 계기로 수라문이 무림맹 쪽에 입김을 불어 넣는다면, 백해광과 그의 가족들은 평생을 도망자로 살아야 할지도 몰랐다.
진태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소운이에게 가르침을 주셨다 들었습니다.”
“그리 대단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제게 필요치 않은 것이었기에…….”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는 백해광을 보며 진태산은 따뜻한 눈빛을 지었다.
“얼굴에 수염이 나기 시작한 뒤부터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저 스스로 앞길을 개척하던 아이였습니다.”
아비 눈엔 아직 작기만 한 아들. 그 아들이 홀로 서 있는 모습을 보며 대견해하면서도 또 얼마나 가슴을 졸였던가.
“그것이 독립적인 성향 때문이 아니라 못 미더운 애비와 스승들 때문이라는 건 제가 제일 잘 알지요.”
태을진경을 회수한 것도, 태을문의 명예를 지킨 것도 모두 다 진소운 본인의 힘이었다.
녀석은 어른들마저 자신들 뒤에 세우고 홀로 풍파를 맞았다.
그런 녀석에게 ‘스승과 같은 분.’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얼마나 고마웠던가.
“타지에 홀로 나가 어린 사제들까지 건사해야 하는 녀석에게, 어르신께서 얼마나 의지가 되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랬기에 두 배 세 배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러니 더 이상 고개를 숙이지 않으셔도 됩니다. 더불어 저희 때문에 굳이 도망자가 되실 이유도 없습니다.”
왕금산이 답답한 듯 발을 굴렀다.
“태산이 이 친구야!”
“…….”
그러나 진태산은 한 손을 들어 그를 막으며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태을문은 지난 오백 년간 단 한 번도 은혜를 저버린 적이 없습니다. 설사 모든 걸 잃는다 하더라도 신의는 계속 지켜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리할 것입니다.”
“…….”
“아무 걱정 하지 마십시오. 애당초 아들놈이 만들어 준 상단입니다. 그 녀석에게 기댈 곳이 되어주신 스승님의 좋은 기반이 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사용처가 있겠습니까.”
진태산이 백해광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상단이 망해도 문파 창설에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이윽고 아비는 아들의 스승을 향해 포권을 쥐었다.
“앞으로도 아들에게 좋은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거대한 상단이 적의 아가리에 꿀꺽 들어가기 직전임에도 스스로 고개를 조아리는 진태산.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백해광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를 바라보던 섭소정의 눈가 역시 촉촉해졌다.
“가가…….”
입술을 꽉 깨물던 백해광이 마주 포권을 쥐었다.
“우선 죄송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소, 새길을 걷자 했으면 행실 또한 그리해야 했을 텐데. 아직 과거의 그림자를 제대로 떨치지 못했구려. 대신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이 일을 제가 해결하도록 맡겨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게 무슨…….”
그의 눈빛엔 어느새 결연한 빛이 어려있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제가 대천상단을 대신해 수라문을 상대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길 바랍니다.”
“…….”
“…….”
진태산과 왕금산은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당최 백해광이란 사내가 제정신인가 싶었던 것.
무려 수라문이다.
소림사의 지원을 받고 백팔봉의 상위에 자리하고 있다.
철검문도 쉽사리 상대할 수 없는 문파인데…….
“모든 걸 처음으로 돌린 후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백해광이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그를 따라 아내인 섭소정도 함께 고개를 숙였고, 천진한 미소를 짓고 있던 지아도 덩달아 엉성하게 허리를 굽혔다.
왕금산과 진태산이 서로 복잡한 눈빛을 교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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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다행이군.’
주영산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태산이 이야기 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믿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긴급으로 경도사에 사람을 보내보았지만, 본사에서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려 보라는 말만 돌아올 뿐.
그렇게 나흘이 지난 후에 주영산은 확신했다.
‘빌어먹을 놈의 말이 사실이었을 줄이야…….’
무슨 연유에서인지 소림사는 이번 일에 나서길 원치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천상단의 확장을 우려하며 수라문을 부추겨 놓고선 이제 와서 발을 빼다니.
그렇다 한들 주영산도 이미 내디딘 발을 멈출 생각은 없었다.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대천상단의 막대한 유통망.
특히나 천목산 일대에 지부를 설립하고 지배력을 높임으로써, 항주로의 진출까지 준비가 완료된 상태였다.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런 엄청난 상단이 태을문의 손아귀에 있다는 걸 안다면, 어느 문파라도 탐을 내고 남을 터.
넋 놓고 있다가 만약 성세를 확장하고 있는 흑도 문파의 손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안휘성 내에서 백도의 세력이 수축되는 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몰랐다.
‘그래, 이건 다 정의를 위해서다!’
그때, 무장을 마친 호권단주가 절도 있는 몸짓으로 들어섰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문주님!”
이번 일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일등 공신.
그가 대천상단의 식객에게 구타를 당해 명분을 가져옴으로써, 수라문은 대천상단을 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어쩌면 왕가장에서 나설지도 모른다. 그러나 절대 그들은 상대하지 않는다. 오직 대천상단의 인원만 빠르게 제압한 후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한다. 알겠나?”
“넷! 모두 전달했습니다.”
정의를 외치던 수라문주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그럼 가자.”
자신의 애병인 ‘철갑’을 양손에 낀 주영산이 앞장서자, 그의 뒤로 손목갑을 낀 수라문도들이 길게 줄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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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상단은 들어라! 그대들은 음험한 계략과 암습으로 본 문의 호권단주에게 회복하지 못할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에 암습의 주체인 죄인을 내놓고 피해보상을 하라!”
일대가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큰 소리를 낸 이유는, 어차피 싸움이 크게 번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식객’은 그 집단에서도 더없이 중요한 손님이다.
귀한 손님을 함부로 적에게 내미는 것은 곧, 그 집단의 신뢰도에 커다란 하락을 야기한다.
어쩔 땐 돈이나 무력보다 명예가 더 중요할 때가 있는 법.
적이 두렵다고 손님을 희생양으로 삼는 집단은 세간의 손가락질을 피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손님을 내빼는 것뿐인데.
그럴 경우, 수라문의 공격은 오히려 정당한 명분을 가지게 된다.
‘크흐흐 그야말로 도망갈 곳 없는 사면초가(四面楚歌).’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꿀꺽할 생각에 수라문주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는 사이.
암습을 당해 복구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입은 호권당주가 마지막으로 외쳤다.
통상 세 번 외친 후에 행동하는 관례를 따른 것이었다.
“대천상단은 들어라! 그대들은 음험한 계략과 암습으로 본 문의 호권단주에게 회복하지 못할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에 암습의 주체인 죄인을 내놓고 피해보상을…….”
그때.
끼이익.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면서 백발의 사내가 털레털레 걸어 나왔다.
“……커흥, 크흠 이거 원, 부끄러워 미치겠군.”
……호권단주에게 회복하지 못할 깊은 상처를 남긴 장본인, 백해광이.
금방이라도 대천상단으로 튀어 나가려던 수라문도들은 어처구니없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관심의 중심이 된 백해광은 쑥쓰러운 듯, 볼을 긁적거리며 크게 외쳤다.
“본좌…… 아, 아니. 보, 본인은 배, 백검문의 문주. 크흠, 백해광이라 한…… 아니, 하오.”
이런 삼엄한 분위기에서 저런 긴장감 없는 어색한 행동이라니.
“거, 그, 무엇이냐. 지난날의 행동에 대해선 섣불렀다고 생각하고 사과하고 싶소이다.”
갑작스러운 사과에 호권단주는 얼빠진 표정이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백해광은 포권을 쥐며 호권단주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 이만 돌아가 주면 고맙겠소.”
말을 마친 백해광이 온몸이 근질거리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잠시간의 정적이 흐른 후.
어처구니없이 백해광을 바라보던 수라문주와 문도들이 일제히 광소를 터트렸다.
일부는 눈물까지 보이며 그를 비웃었다.
“크하하하하하!”
“별 미친놈을 다 보겠군!”
“자네, 백검문이란 문파에 대해 들어봤나?”
“그딴 이름은 난생처음 듣네. 하지만 이름만 들어도 삼류 문파인 것쯤을 알 수 있겠군!”
사람들의 비웃음과 멸시, 조롱에도 백해광은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그때, 주영산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대천상단은 왜 나서지 않는 것이지?”
백해광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벌인 일이니 내가 해결하겠다 말했소.”
“허…… 손님인 식객을 버렸다고?”
“버린 게 아니라 내가 해결하겠다고…….”
주영산이 일부러 더욱 크게 탄식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세상 어느 문파와 집단이 손님을 버린단 말인가! 더구나 대천상단은 태을문이 운영하는 곳이 아닌가!”
“……말귀 못 알아먹는 건 흑도나 백도나 똑같구만.”
이윽고 주영산이 분개하며 백해광을 노려보았다.
“허, 네놈이 혼자서 해결하겠다? 대체 뭘 해결하겠다는 것이지? 목이라도 내놓을 생각인가?!”
“거참, 한 대 때린 걸 가지고 무슨 목숨까지 내놓는단 말…….”
“그럼? 우리랑 싸우기라도 하겠단 말이냐?”
서슬 퍼런 윽박에도 백해광은 조금도 긴장되지 않는다는 듯, 그저 입맛만 다실 뿐이었다.
“……나는 사과를 하려 했는…….”
“멍청한 놈! 강호의 격언에 핏값은 핏값으로 치른다는 걸 모른다더냐!”
“내가 많이 당해봐서 아오. 그거 별로 좋은 것이 아니…….”
“닥쳐라! 네놈이 책임지겠다면 핏값으로 치러라!”
“거, 계속 사람 말을 끊네. 이 시벌놈…… 큼, 아니 수라문주님?”
뒤쪽을 슬쩍 한번 돌아본 백해광은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나도 이편이 더 편하오.”
그러곤 상단 무사에게서 빌려온 검을 뽑았다.
스르릉.
“소란이 일어 주변에 피해를 끼칠 수도 있으니, 음…… 한 번에 오시겠소?”
“허…… 허허…….”
주영산은 겁을 상실한 듯한 백해광의 행동에 얼이 빠져버렸다.
호권단주 역시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질문했다.
“문주님, 어찌할까요.”
무려 백 명이다.
수라문 일·이대 제자들 사이에서도 가장 정예들만 데리고 나왔다.
당장 중·소문파들과 전쟁을 벌여도 밀리지 않을 인원들을 홀로 상대하겠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게 틀림없었다.
“죽여라. 오늘 이후로 태을문의 대천상단을 신뢰하는 자들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식객이 죽은 사실이 알려지면 그 누구도 대천상단과 거래하려 하지 않을 터.
더 나아가 무림맹에서 이번 일을 문제 삼을 수도 있었다.
“쳐라!”
“넷!”
호권단주의 명령과 함께 다섯의 제자가 주먹을 쥐고 호쾌하게 달려나갔다.
“이것 참, 한 번에 오라니까…….”
달려나간 다섯 제자는 정예 중에서도 정예.
그러니 저 겁대가리를 상실한 백발 사내는.
일 초에 어설픈 검이 부러지고, 이 초에 자세가 흐트러지며, 삼 초에 급소를 맞고 기혈이 뒤틀린 뒤, 사 초에 피를 토하고 오 초에 절명할 것이다.
아니, 분명 그래야 했는데…….
털썩, 털썩, 털썩.
백해광에게 달려가던 다섯 제자들이 마치 실 끊어진 인형마냥 바닥을 구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이 무슨…….”
눈을 부릅뜬 주영산의 귀로 박히는 백해광의 태평한 목소리.
“아, 걱정 마시오. 그냥 기절만 시킨 것이…….”
“말도 안 되는…….”
“하, 계속 말을 끊네 시벌새…… 큼, 아무튼 오지 않겠다면 내가 가겠소.”
곧이어 백해광이 처음으로 진지하게 발검식을 취한다.
착.
순간, 알 수 없는 불안감과 함께.
“이, 이게 무슨…….”
주영산의 눈에는 백해광 뒤로 붉은색의 거대한 악귀가 보이기 시작했다.
위기를 감지한 것은 주영산뿐만이 아니었다.
수라문의 제자들도 쓰러지는 문우들을 보며 위기를 감지.
합공으로 달려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백해광에게 뛰어들었다.
그러나.
“도, 도망…….”
어리석은 제자들의 행동에 주영산이 말리려 소리를 질러 보지만 이미 늦은 상황.
백월제천삼식
제 일(一)초식
‘극쾌’
핑-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이 수라문 제자 전체를 삼켜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