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272화 (272/357)

272. <누군가의 악의(3)>

은호는 진영을 새로이 구축했다.

화살촉 모양의 공격진의 맨 앞엔 남화성과 금표가 섰고, 방어를 중시하는 두 사람을 대신하여 동룡과 사련이 뒤따랐다.

우리 소대원을 중심으로 우리 소대에 편입되었던 인원들이 뒤를 따랐다.

“가자!”

남화성의 외침과 함께 금표가 함께 달려 나간다.

성문을 꿰뚫는 유성추처럼 단박에 상대 진영을 박살 내며 깊숙하게 파고들면, 동룡과 사련 그리고 내가 상대를 제압한다.

채채채챙!

퍼퍼퍼퍽!

같은 홍군임에도 우리의 앞길을 막아선 것은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함이 아니다.

자신보다 낮은 곳에 있어야 할 우리가 자꾸만 위로 올라가는 것에 대한 분노.

기대에 못 미치는 자신에 대한 좌절과 원망을 상대에게 쏘아내는 열등감.

그리고 그 연약해진 마음을 파고드는 철순직의 뱀심을 알아채지 못한 아둔함.

그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그들을 근시안적으로 움직이게 한다.

“마, 막아!”

“기수! 기수를 찾아라!”

“백군이 도우러 올 거다!”

다른 이의 인형이 되어 그들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게 된다.

허수아비 장기 말이나 다름없게 된다.

이를 감수할 만큼, 그토록 우리가 무릎 꿇기를 바라는 것인가?

이들은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어떤 각오를 다졌는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크아악!”

“이 무식한 새끼들!”

“니들만 잘났냐!”

안타깝지만 너희들의 악의에 멍청하게 놀아 줄 생각 따윈 없다.

우리의 노력이 그깟 저열한 질투에 꺾이도록 놔둘 생각 따윈 없다.

그렇기에 앞으로 나아간다.

앞으로, 또 앞으로.

“가라!”

흑룡검을 휘둘러 학관생 둘을 기절시키고, 유운신공을 펼쳐 또 다른 놈의 팔목을 꺾어 부러뜨린다.

“으아아악!”

“빌어먹을!”

쓰러진 이들에게 일말의 자비조차 남기지 않는다.

남을 질투한 대가란 본래 뼈가 시릴 정도로 아픈 법.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보낸 악의에 정당한 대가를 치르게 만들 뿐이다.

“대표님!”

어느새 적군 학관생들에 둘러싸인 장우재가 외친다.

“이대로 가다간 포위당합니다.”

“상관없다! 이대로 뚫어낸다!”

저열한 질투의 감정에 각오 따윈 없다.

편안한 곳에 안주한 채 상대가 추락하기만을 바라는 이들은 제 손톱 밑에 가시만 박혀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물러선다.

지금도 마찬가지.

다들 우리를 죽이고 싶어 하는 눈빛이지만, 정녕 나서는 이들은 없다.

모두 말만 앞설 뿐.

“막아! 막아! 저놈들을 떨어뜨려!”

“거기! 물러서지 마!”

“네놈이나 물러서지 마 이 새끼야!”

그렇게나 우리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정녕 그렇다면 쓰러트려 봐라.

너희들의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어지는 상황 속에서 똑똑히 지켜봐라.

“시, 시발 너무 심한 거 아니야!”

“그냥 평가잖아!”

애당초 악의의 대가에 대해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아니 생각해 보지 않아도 되는 온실 속에서 자라온 화초들의 의미 없는 아우성.

그러나 숱하게 거친 악의를 받아온, 길가의 잡초처럼 끈질기게 살아남았던 우리 소대의 인원들은 이빨을 몇 개 털어 그 어리광 같은 아우성을 막아버린다.

“그럼 꺼져 이 새끼들아!”

“이제 와서 그따위 말을 하고도 사내새끼라 할 수 있냐!”

나는 부대를 독려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한 발 한 발.

우리 앞을 막아서는 이들을 부숴버리며 계속 나아간다.

“백군이다!”

홍군의 아수라장을 지나치자 진정한 적군이 눈앞에 나타난다.

“돌격!”

남화성과 금표는 온몸에 상처를 가득 품고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목표는 백산의 철순직.

그 앞을 막아서는 건 한낱 장애물에 불과하다.

퍽! 퍽! 퍽!

내공 없이 싸움해본 적이 없는 이들은 초장에 체력을 모두 소진한 탓에, 현저하게 느린 무공으로 적을 상대하려 한다.

백병전 경험이 없는 일반인들의 싸움이란 동네 아이들끼리 벌이는 전쟁놀이나 다름없다.

어설프게 휘두르는 주먹, 힘없이 내뻗어지는 발길질.

이를 악물고 버텨보려 하지만 한계가 명확한 체력.

각오 없이, 훈련 없이, 오직 악의만으로 가득 찬 이들은 자신들의 분노만큼의 실력을 내뿜지 못한다.

“크헉!”

“억!”

“꺼어억!”

눈깔을 뒤집고, 코피를 흘리며 쓰러져 간다.

우린 그들을 지나쳐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대사형! 후열이 끊겼습니다.”

우리라고 불리한 요소가 없는 건 아니다.

합치되지 않은 움직임은 후열을 놓치게 만들기도 하니까.

하지만 상관없다.

“계속 나가!”

“괜찮습니까?”

나는 은호를 향해 물었다.

“우리 소대에 필기평가에서 무(戊) 평가를 받은 이가 몇 명이냐?”

“두 명입니다.”

“그럼 두 명만 살리면 되는 거야!”

“……알겠습니다.”

내 말에 은호가 굳게 입을 다물며 검진을 더욱 날카롭게 변화시킨다.

우리 소대는 이제 창날의 모양처럼 상대의 진영을 파고든다.

저들이 간과한 것은 두 가지.

첫째는 우리 소대에선 낙오 대상자가 성모란과 금표뿐이라는 것.

반대로 이야기하면 두 사람만 이 평가에서 살아남는다면 나머지는 낙오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두 번째는 내가 이런 전투에 이골이 났다는 것.

소정대는 단 한 번도 모두의 생환을 목표로 싸운 적이 없다.

오직 그날 아침의 제비뽑기로 각자의 생사(生死)를 결정하고 그들만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대표님! 인원들 체력이 한계입니다!”

아직 백산의 절반밖에 오르지 못했건만, 벌써 지쳐 나가떨어지는 인원들이 생겼다.

나는 내 뒤를 따르는 이들을 향해 소리쳤다.

“지금부터 손속에 사정을 두지 마라!”

“네?”

장우재가 토끼처럼 놀란 눈으로 나를 본다.

“체력에 한계가 올 거 같으면 그냥 탈락해 버리라고! 한 놈씩 데리고 빠져!”

잠시 머뭇거리던 장우재가 굳게 다문 입술로 고개를 끄덕인다.

“……네!”

이제는 내 의도를 조금씩 알아차린 것인지 장우재도 별반 말을 덧붙이지 않는다.

역시나 영특하다.

아니면 이번 실기평가에서 발생한 일에 어지간히 분노가 치솟아 버린 것인지도.

촤아아악!

“끄아악!”

“바,반칙! 반칙이야!”

“고명진! 탈락!”

체력의 한계에 다다른 소대원들이 상대를 전투 불능으로 만들고 전투에서 빠지기 시작하고.

과한 손속이 이곳저곳에서 터지자 적들은 혼란을 감추지 못한다.

애당초 본래의 의도하던 목적이 어그러졌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감수하겠단 각오를 다졌어야 하지만, 그들은 상대의 예상 밖의 행동은 예측하지 못했다는 듯 당황한다.

“죽여!”

“죽여!”

“죽여!”

악의에 맞선 분노가 타오른다.

온몸을 잠식하는 고통은 다시금 분노의 연료가 되어 폭발하고 이는 광기에 사로잡히게 만들기 충분할 만큼 위력적이다.

사방을 둘러싼 적군들의 얼굴에 조금씩 당황이 어리기 시작한다.

그 표정은 다시금 우리 소대원들의 분노를 일으킨다.

겨우 이 정도인가?

겨우 이 정도 각오로 덤빈 것이었던가?

“하……!”

겨우 이 정도에 쉽게 당황할 것이면서 그리도 저열한 질투를 발산했던 건가?

그들의 분노에 화답하듯 난 목소리가 터져라 외쳤다.

“다 죽여버려!!!”

이어 내 목소리에 답하듯 소대원들이 답했다.

“““다 죽여버려!”””

악에 받친 목소리가 백산 전체에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홍군의 인원들은 쓰러지는 그 순간까지 계속 발걸음을 옮긴다.

난 마치 전생의 정마대전의 전장에 온 것 같은 절박한 기분으로 쉼 없이 검과 주먹을 휘둘렀다.

#

백산 꼭대기.

백군의 진영.

“끄응…….”

죽현방 장자인 철현직이 나지막하게 신음을 내뱉었다.

“일단 인원을 수습하고 부대를 더 키워서 방어하는 게 정통전략 아닌가.”

철현직이 혼잣말인 듯, 질문인 듯 아리송하게 말하며 옆에 선 철순직을 바라본다.

“…….”

그러나 철순직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입을 꾸욱 닫고 전장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 뒤, 철순직이 나직이 묻는다.

“형님이라면…… 어찌하셨겠습니까?”

철현직은 다시금 되물었다.

“내가 진소운이라면?”

“네. 아군은 길을 열고, 적군은 자신들만 노리고 있다면.”

“흠…….”

잠시 고민하던 철현직이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역시나 전통적인 전략을 따랐겠지. 부대를 모으고 세력을 키워서 방어에 치중했을 거다.”

그 대답에 철순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랬다면 조기 탈락 했을 겁니다.”

“음? 역시 그런가?”

잠시 철순직을 가만히 바라보던 철현직이 이내 씨익 웃었다.

“그래도 내겐 네가 있으니 저런 꼴을 당할 일은 없겠지. 안 그러냐?”

“…….”

굳은 얼굴의 철순직은 대답하는 대신 시선을 전장으로 돌렸다.

이에 철현직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내가 뭘 잘못 말한 거냐?”

“……아닙니다. 그게 평균적인 것이지요.”

냉랭하기 그지없는 철순직의 목소리.

그의 시선이 다시금 진소운의 부대에게로 고정된다.

홍산을 내려온 이들은 이윽고 백산에 들어선다.

그나마 모았던 부대 인원들은 반파가 되었지만, 꾸역꾸역 계속해서 백산을 오른다.

그 모습에 철현직이 의아한 듯 뇌까린다.

“저렇게 해봐야 점수는 얼마 따지도 못할 텐데.”

그 의문에 철순직이 주먹을 살짝 쥐었다.

“……그의 목표는 점수가 아니니까요.”

“응?”

이어 굳은 얼굴로 덧붙인다.

“진소운의 목표는 저를 잡는 것이기 때문에 저리 무리해서라도 백산을 오르는 겁니다.”

철현직의 두 눈이 점차 커다래진다.

“설마……. 네가 꾸민 짓이란 걸 알고 있단 말이냐?”

“…….”

“분명 너는 전혀 나서지 않았는데…….”

철순직은 그간 진소운이 아무렇지 않게 보여주었던 기행들을 떠올렸다.

“특이한 사람이니까요.”

“흠…….”

그러곤 철현직의 두 눈을 지그시 응시했다.

“형님.”

“응?”

“진소운처럼 하실 수 있겠습니까?”

일순 철현직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냐는 표정.

“뭘 말이냐?”

진소운은 언제나 지금처럼, 예상을 깨부수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다.

“저렇게 목표를 위해 맹렬하게 돌진하실 수 있겠냐는 말입니다.”

감히 범인은 흉내 낼 엄두조차 내지 못할 만큼.

“하하. 별소리를 다 하는구나. 네가 늘상 말하지 않았더냐. 준비되지 않은 이들이나 ‘전심전력’을 외치는 거라고. 준비가 완벽한 이들은 여유 있게 검을 휘두르는 거라고.”

“……그렇지요.”

철순직은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외면하려 하면 할수록, 진소운이 발산하는 빛은 더욱 정순하게 빛났기에.

“그나저나 대단하구나.”

철순직의 의중 따윈 깨닫지 못한 철현직이 유심히 진소운을 바라본다.

“백병전에 저리도 능숙한 무인이라니……, 누가 보면 북방의 군대 출신인 줄 알겠구나.”

철현직의 말마따나 진소운의 움직임은 내공을 전폐당한 무인의 것이 아니다.

애당초 내공 따윈 익힌 적이 없는 듯한 병사의 움직임.

아니, 정확히 말하면 투전판에서 닳고 닳은 싸움꾼의 움직임이었다.

자비 없이 손을 휘두르고, 상대의 약점을 파고든다.

평소 내공을 쓰지 않는 훈련을 해본 적 없는 학관생들은, 평소 제 기량의 절반도 못 되는 움직임을 선보이다가 이내 고꾸라져 버린다.

‘그런데 진소운 너는 어찌…….’

하지만 진소운은 평소 내공을 쓸 때보다 더욱 유려하게 움직이고 있다.

마치 홀로 내공을 쓰고 있는 것처럼.

새삼 급이 다르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진다.

비단 진소운뿐만 아니다.

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의 소대원들 모두 백병전에 능숙한 모습을 선보인다.

정도회나 백도회의 정예들이 픽픽 쓰러지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들.

“그래도 내공 없이는 결국 한계가 있는 거지. 그걸 모르는 모양이다.”

여전히 진소운의 패배를 확신하는 철현직이 혀를 찬다.

물론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긴 했다.

부대를 부수며 진격하던 진소운 소대의 속도가 천천히 줄어들기 시작했기 때문.

애초에 작금의 상황은 압도적인 내공으로 수적 열세를 이겨내는 무인의 전투가 아니다.

내공을 제한함으로써, 어디까지나 한 사람분의 지략과 실력을 투명하게 시험하는 전략 전술 평가.

소설 속 주인공처럼 무쌍을 찍고 환상을 그려낼 수 없다.

그때.

“어, 어?”

여유 있게 전장을 살피던 철현직이 갑자기 미간을 찌푸린다.

“저게 무슨…….”

시험장 밖에서 평가를 하던 교관들도 당황스런 모습을 보인다.

두려움 없이 달려가던 백군의 인원들도 주춤거린다.

어떤 이들은 달려가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도 했다.

철현직이 비명처럼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미, 미친!”

그는 제 두 눈에 들어온 광경에 당황했다.

그간 전장에 없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 것.

그건 바로 막대한 피였다.

상대에 중상 이상의 피해를 입히면 탈락이라는 규정이 있음에도 홍군의 인원들은 거침없이 상대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

전에 없던 손속에 백군들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철현직 역시 겨우 목소리를 짜내며 철순직을 바라보았다.

“탈락을 각오하지 않고서야…….”

철순직의 얼굴에도 깊은 당혹이 서렸다.

갑자기 일변한 태도.

대체 무슨 의도로…….

“……!”

부릅뜬 눈으로 전장을 살피던 철순직은 그제야 깨달았다.

저들은 탈락을 각오한 것이 아니다.

체력적 한계에 다다라 탈락할 것이 예상되기에, ‘그 탈락이 헛되지 않도록’ 검면 대신 검날을 이용해 ‘의도적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기 시작한 것이다.

“미친…….”

어차피 탈락할 인원이라면 상대에게 중상을 입힌다 한들 아무런 상관이 없기에.

제약을 뒤집어 사용한다.

하지만 상대의 입장에선 예상치 못한 막대한 피해일 터.

정신이 나가버린 듯한 홍군의 행태에 백군들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뭐, 뭣들 하는 거냐! 당장 막아!”

철현직이 버럭 외치지만, 핏물을 잔뜩 뒤집어쓴 홍군에 쉽사리 덤벼드는 인원은 없었다.

더구나 진소운의 홍군은 마치 철순직이 있는 백군의 진영만을 노린다는 듯 일직선으로 달려오고 있는 상황.

자신들이 목표가 아니라는 사실에 백군의 인원들은 주저 없이 뒤로 물러섰다.

마치 초창기 홍군이 길을 활짝 열었던 것처럼.

“수, 순직아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제가 시키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겁니까?”

“그게 무슨…….”

철순직의 경멸 어린 시선.

철현직은 흠칫하며 원망의 말을 쏟아냈다.

“네, 네가 이렇게 하면 될 거라 하지 않았더냐.”

철순직은 대답 대신 이를 갈았다.

빠드득.

‘또다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움직이는구나.’

이번이 대체 몇 번째인지 모른다.

모두를 위한 대계에 진소운은 몇 번이고 잿가루를 뿌려대었다.

수백 년간 정체되어 있던 강호를 뒤엎을 기회를 몇 번이나 망가뜨렸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물러설 곳은 없다.

철순직은 악에 받쳐 명령했다.

“백군 전원 공격!”

진영 주위를 포진하고 있던 철순직의 중대가 순식간에 전열을 마친다.

본디 방어란 높은 곳에서 하는 것이 유리한 법.

철순직의 중대는 다른 이들과 달리 두려움 없이 진소운의 소대를 막아섰다.

철순직은 양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이번엔 당신의 의도대로 되지 않을 겁니다.”

자신에겐 목표가 있다.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다.

한낱 돌부리에 지나지 않는 진소운 때문에 자신의 목표를 포기할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다.

어느새 정면으로 대치한 두 집단.

철순직의 시선이 진소운 소대의 가장 선두에 선 이에게 고정된다.

본래 자신의 소대, 혹은 중대에서 가장 맨 앞에 섰어야 할 인물.

“남화성…….”

그가 적이 되어 자신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으아아아악!”

내공을 쓰지 않았지만 타고난 거력으로 적을 뭉개며 다가온다.

검이 지나가고 도가 살점을 베어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마치 이번 전투에 목숨을 걸었다는 듯 자신의 마지막 생명까지 소진하며 미친 듯이 싸우는 남화성.

“대체 어찌하여……!”

만약 그가 12봉성에 계속 소속되어 있었더라도 저리 싸웠을까?

문득 든 잡념이 머리를 어지러이 만든다.

굳이 고민해 보지 않아도 답이 나오는 것 같다.

그렇기에 절로 나오는 답변을 마주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 답을 마주하게 되면 남화성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더욱 이해할 수 없을 테니.

으드득.

대신 원망과 분노를 원흉에게 쏟아낸다.

남화성과 이금표를 방패 삼아 가장 앞에서 싸우고 있는 존재.

“순직아, 그만 나가라. 넌 지휘를 해야지!”

뒤에서 들려오는 철현직의 목소리는 귓가에 맴돌다 사라진다.

지금 철순직의 시야에는 오직 한 사람만 보일 뿐이었다.

“진소운…….”

나지막한 으르렁거림을 들었을까.

머리가 산발한 진소운이 이편을 쳐다본다.

“철순직!!!”

그의 쩌렁쩌렁한 외침에 철순직 또한 솜털이 바싹바싹 서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도 동시에 안도했다.

‘다행이다.’

그도 나와 마찬가지로 분노하고 있어서.

이 분노가 일방적이지 않아서.

하지만 그가 얼마나 분노했건 자신에 비할 바는 아닐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진소운을 죽이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그랬다. 지금 이 순간, 그 정도로 분했다.

“진소운!!!!”

철순직은 평생에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바로 감정대로 움직이는 것.

“으아아아악!!!!”

그의 발걸음이 미친 듯이 내달려지며 진소운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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