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 <흑도 신성 흑염룡(2)>
은하상단을 출발한 마차는 다시금 합비로 향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반가운 깃발을 만났다.
“어? 대천상단!”
객잔에 들어가려는 와중에 마차에서 대천상단의 깃발을 발견한 것.
“아, 진 공자님.”
객잔 안으로 들어서니 밥을 먹던 무사와 상인들이 일제히 일어나 알은체를 했다.
“은하상단에서 돌아오시는 길이십니까?”
장궤 고중탁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조심스레 물어온다.
“……가셨던 일은 잘 마무리 지으셨습니까?”
장궤답게 은하상단과 이루어진 거래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 보였다.
“네.”
나는 은하상단에서 가져온 계약서를 고중탁에게 건네었다.
고중탁은 조심스레 서류를 살피더니 놀란 표정을 금치 못했다.
“정말 성사되었군요……!”
“기대하셨던 듯합니다?”
“말도 마십시오. 안 그래도 항주에 굴러다니는 돈을 줍지 못해 얼마나 애가 쓰렸는지.”
고중탁은 앓는 표정을 지어 보였고, 우린 한바탕 웃음을 나누었다.
“그런데……. 어째 장궤께서 이곳까지 나와 계신 겁니까?”
장궤는 통상 상단에서 멀리 움직이지 않는다.
물건의 가치를 판별하고 운송이나 유통의 비용을 책정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그들의 일.
“더구나 표국의 깃발이 없더군요. 표국은 쓰지 않은 겁니까?”
“아…… 그게.”
고중탁이 손가락으로 볼을 긁적였다.
“비용 감면을 위해 짧은 거리는 주로 상단 내에서 직접 움직입니다. 더구나 이번 상행은 부피 대비 가치가 높은 물건들이 대부분이라 제가 직접 움직이기도 했고요.”
“그렇군요.”
하긴 짧은 거리나 관도를 이용하는 안전한 상행엔 표국을 쓰지 않는 것이 관례이긴 했다.
표국을 쓰는 것 자체가 비용에 추가되어 경쟁력이 떨어지니까.
“마침 잘되었군요. 어차피 대천상단으로 가시는 길이면 저희와 함께 움직이시지요. 상자수가 요리 실력이 뛰어납니다.”
은하상단에 함께 따라온 사용인도 요리 실력이 만만치 않았지만 나는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대천상단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고 싶기도 했거든.
‘진짜 상전벽해(桑田碧海) 수준이네.’
전생의 이맘때는 뭘 했던가 떠올려보면, 돈 몇 푼이라도 벌어 보겠다고 일자리를 구하고 있었다.
계철영이 특채로 무림학관에 들어가고, 태을문의 제자들은 감히 무림 정시를 치를 생각도 하지 못했으니까.
무림맹의 의무 복무까진 몇 년 남은 상황.
사문에서 매일 놀고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일자리를 구했지만, 보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자연스레 칼밥 먹는 표사 일을 찾았다.
‘하지만 어림도 없었지.’
표사 일자리를 구하려 애를 써봤지만 어떤 곳에서도 표사로 써주지 않았다.
실력이 미천하고 경험이나 연줄도 없는 이를 써줄 표국이 어디 있겠나.
결국 계룡상단에서 쟁자수 일을 하면서 입에 간신히 풀칠을 하고 사문에 돈을 가져다주는 정도밖에 벌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생에는 태을문의 이름으로 세운 대천상단이 존재하고, 그 대천 상단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이 일을 하며 돈을 벌어 온다.
더 이상 계룡상단의 후원금이 줄어들까 전전긍긍할 필요 없고.
싫어하는 이들 앞에 서서 앓는 소리를 할 필요도 없었다.
사문에서 수련하는 아이들의 입에 세끼 밥을 먹여 줄 수 있고, 찢어진 무복을 기워 입게 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기분이 좋아져 점소이를 불렀다.
“여기서 제일 좋은 술이 뭐가 있지?”
“소홍주와 금존청이 있습니다.”
“금존청으로 열 병.”
“아! 넵!”
점소이는 허리가 부러져라 고개를 숙인 뒤 쏜살같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옆에서 내 주문을 듣고 있던 상단의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공자님, 저희는 아직 상행 중이라…….”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간단하게 반주로만 곁들이는 걸로 하시지요.”
고중탁은 기대 어린 사람들의 눈초리에 결국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들었지. 취하지 않을 정도로만 마셔라.”
“““네에에!”””
얼굴이 굳어 있던 고중탁도 금존청의 향을 맡은 뒤에는 어느새 얼굴이 풀려 있었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식사 자리가 이어지는 동안.
털컥!
문이 거칠게 열리며 일단의 거구들이 객잔 안으로 들어왔다.
손님은 아닌지 주방에서 나오던 점소이는 접객을 하려다 한숨을 쉬고 주방으로 돌아가 버렸고, 거구들도 자리를 찾아 앉는 대신에 객잔 내부를 둘러보았다.
‘새끼들 더럽게도 생겼네.’
험상궂은 얼굴과 커다란 무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모습이 딱 봐도 흑도 놈들이었다.
‘빚쟁이라도 찾으러 왔나?’
흉흉한 기색을 내뿜으며 부리부리한 눈으로 좌중을 훑어보자, 객잔에서 밥을 먹던 이들은 하나같이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나 또한 신경 쓸 일이 아니었기에 가만히 있었는데.
“여기! 대천상단이 어디 있나!”
엥?
스윽-
엥??
갑자기 내 옆에 앉아있던 고중탁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아닌가?
‘뭐지?’
고중탁이 공손하게 포권을 쥐었다.
“대협들께 인사 올립니다. 대천상단의 고중탁입니다.”
“그래. 돈은?”
“여기 있습니다.”
그러면서 작은 전낭을 건네었다.
그리고 거구들은 그 전낭을 열어 내부를 살폈다.
“대천상단이 요즘 상세가 좋은가 보군. 낮부터 비싼 술을 마시고 말이야.”
전낭을 확인한 거구의 시선이 우리 탁자 위에 올려진 금존청으로 향했다.
“그게 다 대협과 같은 분들 덕분이지요.”
탕-!
씨바 깜짝이…… 아니 그것보다 내 금존청……!
두꺼운 손이 탁자 위로 내리쳐지자, 순간적으로 나는 금존청 병들을 확인했다.
휴, 무사하네.
근데 저 새끼, 방금 탁자 내려친 거야?
“그렇다면 통행료를 더 내야 할 것 아닌가!”
이윽고 쩌렁쩌렁한 음성이 객잔 내부에 울려 퍼졌다.
무식한 호통에도 고중탁은 공손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상단주님과 상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좋다. 그럼 우리 방주님께도 그리 전하지.”
“네. 감사합니다.”
그러곤 당연한 듯 몸을 돌리는 거구와 일당들.
일련의 사태를 바라보던 나는 생각했다.
이게 뭔 개 같은 경우지?
나는 이마를 매만지며 그들을 불러세웠다.
“잠깐…… 잠깐 잠깐 잠깐.”
내 목소리에 고중탁이 아연실색해 얼른 다가왔다.
“진 공자님. 제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아니. 장궤님은 잠깐 계시고, 어이, 너! 너 이리 와봐.”
거구가 부리부리하게 눈을 뜨며 제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애송이, 지금 본좌를 말한 것이냐?”
“본좌는 시발 뒈질라고 본좌…….”
“고, 공자님!”
나는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장궤의 마혈을 짚은 뒤 앞으로 걸어갔다.
“그 돈 이리 내.”
“……뭐?”
“그거 피 같은 대천상단의 돈이니까 이리 내놓으라고.”
객잔 안에 잠시 정적이 어린다.
침 삼키는 소리마저 굉음같이 들릴 정도로 무거워진 분위기.
이어 거구가 광소를 터트렸다.
“하하하하하하하!”
거구가 웃으며 일행을 바라보자 일행들도 거구와 마찬가지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하!”
“크하하하!”
“이런 미친놈이 감히……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그러더니 이내 수박만 한 주먹을 휘둘렀다.
퍽!
나는 막거나 피하는 대신 그대로 주먹을 맞아 주었다.
그러나.
“끄윽…….”
신음 소리는 내 입이 아닌 거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놈은 주먹에서 느껴지는 아픔을 티 내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일단 손목부터 풀고.
“너 한 대 때렸으니. 이제 내 차례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모르겠다.
음, 뭔가 내가 알지 못하는 사정이 있는 거겠지.
그래. 뭐 다 알겠는데.
“미친놈이 겁대가리를 실성했……!”
“됐고.”
그래도 눈앞에서 내 피 같은 돈을 가져가는 걸 보자니 분노가 치솟아 오른다.
“이 꽉 깨물어라.”
마인을 만났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분노가.
#
통행료.
통상 주인이 있는 길목을 지나갈 때 사용자가 내는 비용을 뜻한다.
관도를 닦은 관부가 성의 입구에서 통행료를 받고, 산속의 길을 닦은 녹림채가 산길에서 통행료를 받는다.
수로채들이 수로를 안내하고 통행료를 받기도 한다는데, 뭐 그건 모르겠고.
이 새끼들이 받는 통행료라는 게 당최 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도로는 니들이 닦은 것도 아닌데 왜 통행료를 받는 거냐?”
눈두덩이가 시퍼렇게 변하여 무릎 꿇고 있는 거구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대답했다.
“……보오통행요.”
“이 새끼가 말을 왜 똑바로 못 해! 이빨 더 털어 줄까?”
이빨이 털렸으니 제대로 발음을 못 한다고 항변이라도 하고 싶었던 건지.
거구는 억울해 죽겠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뭐 어쩌라고?
내가 도끼눈을 뜨고 있자 옆에 서 있던 고중탁이 대신 입을 열었다.
“진 공자님. 보호통행료라는 건 최근에 생긴 겁니다.”
“보호통행료?”
고중탁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듣자 하니 그간 흑도 방파는 확실한 자신의 세력이 있는 곳에서만 보호비를 받으며 살아왔다.
무림맹에 속한 백도 무문들이 있는 곳에서 싸움을 일으키면 이는 곧 흑도 토벌로 이어지기에, 감히 세력을 침범하거나 알력 다툼을 할 수 없었던 것.
하지만 사흑련이 생기고 나서 슬금슬금 백도의 세력권을 침범하는 흑도 방파들이 많아졌단다.
사흑련에 소속이 되어있는 것만으로도 일단은 일방적으로 토벌당할 가능성에서 벗어날 수 있기에 점차 그 세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는 것.
하지만 명분 없는 싸움을 먼저 일으키거나 빌미를 제공한 사건에 대해선 사흑련이 나서주지 않기에 기존의 백도 세력권을 함부로 빼앗진 못했고.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방안이 보호비와 통행료, 그 사이인 보호통행비라는 것.
와, 이거 무슨 신기한 개소리지?
“아니, 그러니까 이해가 안 간다는 거야! 보호도 안 받고 도로도 니네 게 아닌데 왜 보호통행료를 받냐고!”
“…….”
“대답 안 하냐?”
“에옴 암히 우이 항뭉방을 오욕하는 거이냐?”
“항문방? 니네 문파 이름이 항문방이냐?”
“이! 혀중일 옴이!”
거구가 눈을 부릅뜨는 모습에 뒤에 있던 흑도 놈이 재빠르게 대신 대답했다.
“사, 상문방입니다.”
“상문방?”
듣도 보도 못한 처음 듣는 문파였다.
“장궤님.”
“네, 공자님.”
“혹시, 이런 일이 자주 있습니까?”
고중탁은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포기했다는 듯 털어놓았다.
“사흑련이 생긴 이래로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허…….”
그러니까 이 빌어먹을 놈들이 사흑련 덕분에 새로운 사업 분야를 찾았다는 거네.
나는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리며 물었다.
“통상 얼마나 뜯깁니까?”
“얼마 안 됩니다. 표국을 직접 쓰는 것보단 훨씬 저렴하기도 해서 여타 다른 상단들도 이렇게 하는 편입니다.”
“그러니까 얼마요?”
“성 하나에서 열 번 정도…….”
그러니까 들르는 마을마다 한 번씩은 뜯긴다는 거네.
나는 왕소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희도 똑같이 내니?”
“어…… 저희는 안 내는 거로 알고 있어요.”
와. 이 새끼들 봐라?
“그러니까 만만한 놈들만 받는다는 거구나.”
시벌 사흑련 만든 게 이런 부작용을 불러온 건가?
허, 감히 내 주머니를 털어!
“저, 진 공자님. 화가 나신 건 알겠지만 그만하시는 게 어떠십니까?”
“아니, 왜요? 이 돈이면 쟁자수들 성과급도 주고, 쉬는 객잔도 더 좋은 데로 묵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지금이야 공자님이 계시니까 그런데…… 나중에 해코…… 아니, 일이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장궤가 걱정하는 건 결국 상행의 지속적인 안정성이다.
지금이야 돈을 안 뜯길지 몰라도 이후의 상행에서 이들이 도적으로 변할 수도 있는 거니까.
그걸 가장 걱정하는 것이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나중에도 안전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네?”
그러니까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놈들을 도적으로 절대 변하지 않도록 만들면 돈도 안 뜯기고 상행도 안전하게 할 수 있다는 거잖아.
나는 이빨 빠진 거구 놈을 발로 툭 찼다.
“야, 항문방.”
“……!!!”
그러자 거구가 날 죽어라 쏘아본다.
“너희 방주한테 안내해라.”
“에옴 진정 죽오시프 거시냐?”
“내가 죽긴 왜 죽어. 얘기 좀 하자는 건데.”
“으응?”
내 얘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건지 거구와 그 졸개들이 멍한 표정을 짓는다.
이빨 털려 발음이 이상한 거구 대신 졸개가 조심스레 내게 물어온다.
“저…… 혹시 방주님을 아십니까?”
“내가 흑도 나부랭이를 알긴 어떻게 알아!”
뭔가 예상이 되지 않았던지 고민에 빠지는 흑도 졸개.
그러더니 다시 머뭇거리며 내게 묻는다.
“혹, 존함이 어찌 되시는지…….”
“진소운.”
단 세 글자를 들었음에도 흑도 졸개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흐, 흑도 신성 흑염룡?!”
“설마……! 흐, 흑미륵을 말하는 건가?!”
그래, 그게 나다 씹새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