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 <흑도 신성 흑염룡(4)>
왕가장과 진소운의 합류 이후에 대천상단의 여정은 훨씬 편해졌다.
왕가장의 사용인들이 끼니마다 신선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주고, 대천상단에 비해 훨씬 실력 있는 무사들이 번을 서준다.
거기에 무림학관 수석에 빛나는 진소운까지 합류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안전한 여정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걸 좋다 해야 할지 걱정된다 해야 할지.’
하지만 정작 이 여정 내내 고중탁의 얼굴에서 근심이 사라지지 않은 것 또한 진소운과 왕가장의 마차가 합류한 탓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흑도 문파를 그렇게나 박살 내 버리면…….’
처음엔 상문방의 흑도인들을 끌고 그들의 문파로 쳐들어가는 진소운을 보며 걱정을 떨치지 못했다.
무림학관의 수석이라 하지만, 그래도 그곳은 흑도 문파 아닌가.
흑도 무림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 수십에서 수백 명 모여 있는 소굴에 홀로 들어간다는 건 고중탁의 입장에선 제정신이 아닌 일이었으니까.
왕가장의 책임자나 마찬가지인 왕소소에게 그를 구하러 가자고 이야기하자 왕소소는 되려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에? 진 오라버니를요? 왜요?”
너무나 태연하게 진소운이 돌아올 것임을 자신하던 그녀.
되려 걱정한 자신이 이상한 꼴이 되었다.
하지만.
‘진짜 멀쩡히 돌아올 줄이야.’
멀쩡히 돌아온 정도가 아니었다. 상문방으로부터 앞으로는 보호통행비를 받지 않고 보호를 해주겠다는 약속도 받아 왔다고 했다.
대체 무슨 조화를 일으켰기에 그런 약속까지 받아 왔을까 궁금하던 차.
꽝!
“여기 대천상단이 어디 있나!”
두 번째 흑도 무리가 대천상단의 마차를 보고 찾아왔다.
퍼퍼퍼퍽!
또다시 흑도의 이빨이 옥수수 강냉이처럼 털려 나가고.
“너희 문주한테 안내해라.”
……상문방 때와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었다.
고중탁은 질겁했다.
이번에 건드린 흑부문은 상문방의 두 배는 되는 세력을 거느린 문파였으니까.
더구나 흑부문을 개파한 흑부칠견은 하북뿐만이 아니라 안휘에까지 악명을 떨칠 정도로 위험한 상대였으니까.
이번에도 느긋한 왕소소와 달리 고중탁은 혹여나 상단주님의 장자인 진소운이 횡액이라도 당할까 흑부문에 쫓아갔다.
그런데.
엥?
콰쾅!
퍼퍼퍽!
쿵쿵!
고중탁의 표정은 어쩐지 달관한 자의 것이 되었다.
‘내가 괜한 걱정을 했구나.’
이건 뭐라 할까, 벌집에 난입한 곰을 보는 느낌이랄까……?
벌은 목숨을 걸고 독침을 쏘는데, 곰은 벌의 소중한 꿀을 퍼먹느라 정신이 없다.
독침 따윈 성가시지도 않다는 듯.
‘그나저나 이 정도라니…….’
고중탁은 무공을 익히지 않았지만, 그간 표국과 상단에서 일하면서 무공을 익힌 이들을 많이 봐왔다.
그들의 능력도 평범한 수준을 넘어선다 생각했건만, 진소운은…….
‘인간이 맞는 건가……?’
자신이라면 상행 중에 마주치자마자 오줌을 지려 버렸을, 백에 가까운 흑도인들 중에 멀쩡히 서 있는 자는 없었다.
그리고 진소운은 문주의 목을 팔로 휘어 감고 뭔가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
……협박 내용은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상단 내에서 다치는 사람이 한 명도 나오지 않아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게 끝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나타날 흑도 문파는 더욱 큰 세력을 자랑할 테니까.
더 이상 진소운도 쉽사리 나서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꽝!
“여기 대천상단이 어디 있나!”
퍽!
“너희 대장한테 안내해라.”
제, 제발 그만……!
그러나 고중탁의 절규는 가닿지 않았다.
보호통행료를 걷으러 올 때마다 진소운이 출동하고, 흑도 문파가 박살이 난 후에야 진소운이 돌아왔다.
그렇게 안휘성에 들어서기 전에 박살 난 흑도 문파만 일곱 개.
이쯤 되자 고중탁은 다른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거 그냥 냅둬도 될까요, 아가씨……?”
고중탁의 물음에 왕소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뭐가요?”
“진 공자님께서 흑도인들과 계속 갈등을 일으키고 있지 않습니까, 괜찮은 건지 걱정이 되어서 말이죠.”
“으흠…… 오라버니께서 그들과 친구가 되었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전 되려 너무 잘 풀리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
“게다가 앞으로 보호통행료를 내지 않아도 흑도 문파들이 보호를 해주겠다고 했다면서요?”
“그게 걱정입니다.”
흑도인들이 어째서 흑도인인가.
정해진 상식과 규칙을 제멋대로 어기고. 남의 눈치 따윈 살피지 않고 제가 원하는 대로 살아서 흑도인 아닌가.
애당초 약속 따윈 그들에게 언제 어겨도 상관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숙이고 있어도 언젠가 보복할 수도 있는 일이고, 불만 있는 자들이 많아지면 다수에 의해 공격받을 수도 있는 상황.
“흐음…….”
“이렇게 멍하니 고민을 하고 있을 시간이 없습…….”
고중탁의 고민을 듣던 왕소소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진 오라버니께 뭔가 생각이 있으실 거예요.”
“……네?”
생각이 있다고?
이제껏 무지성으로 쳐들어가서 곤죽을 내고 돌아온 게 다가 아니었나?
그 일련의 사태에 심모원려라든가 숙고 따윈 보이지도 않았는데…….
“그냥 생각 없이 행동한다고 보시는군요.”
“…….”
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왕소소의 모습에 고중탁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어느새 웃음기를 지운 그녀가 질문을 덧붙인다.
“진 오라버니는…… 태을문의 제자로 현재의 위치까지 왔어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아시나요?”
하루 두 끼를 먹는 것도 버거워 계룡상단의 눈치를 보던 태을문.
그런 삼류 문파의 무재 없는 제자.
그런 존재가 자력으로 무림학관에 들어간 것 자체가 대단하다곤 생각했다.
그러나 왕소소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만이 아니에요. 대천상단을 세운 것도, 잃어버린 태을문의 비전(祕傳)을 되찾은 것도 모두 오라버니가 해낸 것이에요.”
고중탁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아무리 그래도 그 모든 것을 한 사람이 이뤘다는 게 쉽사리 믿어지지 않았던 것.
왕소소는 고중탁의 그런 반응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쉽사리 믿기지 않는 일이죠. 하지만 사실이에요.”
“……허.”
“오라버니의 행보에 뜻이 없었던 적은 없어요. 아마 지금 벌이는 일에도 다 의도가 있으실 거예요.”
왕소소의 이야기를 듣고 나자 진소운이 다르게 보였다.
진짜 자신은 모르는 깊은 뜻을 품고 있는 것인가?
고중탁이 다른 탁자에서 무사들과 낮술을 즐기고 있는 진소운을 바라보았다.
술을 마시는 와중에도 그는 연신 객잔 입구를 주시하고 있었다.
“아, 이 동네 흑도 놈들은 왜 이렇게 행동이 느린 거야. 이래서 밥 벌어먹고 살겠어?”
그러자 옆에 있던 무사가 묻는다.
“말썽 없이 지나가면 더 좋은 거 아닌가?”
“무슨 소리세요! 그럼 그간 빼앗긴 돈은요? 앞으로 내가 없을 때는요?”
일갈을 내뱉은 진소운은 입맛을 다시듯 혀로 입술을 축인다.
“아, 이번에 오는 놈들은 돈을 좀 많이 모아놨으면 좋겠는데. 지난번 놈들은 워낙 낭비벽이 심한 놈들이어서 완전 개털…….”
고중탁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정말 내가 모르는 심모원려가 있는 거 맞나?
그냥 삥 뜯으려는 왈패로밖에 안 보이는…….
꽝!
그러나 고중탁의 생각은 거기서 이어지지 않았다.
“여기 대천상단이 어디 있나!”
……진소운의 다음 먹잇감이 객잔 안에 들어왔기 때문에.
“드디어 왔다!!!”
왠지 모르게 신난 듯한 진소운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
친구.
오랜 시간 가깝게 두고 사귄 사람을 뜻하는 말.
아버지는 어린 시절 친구를 많이 만들어 두라 하셨다.
어떤 친구든 사귀어 두면 언젠가 도움받을 일이 생긴다고.
전생에서는 아버지의 조언을 실행하지 못했다.
하지만 새롭게 얻은 지금의 삶에선 아버지의 조언을 열심히 실행하고 있다.
“우린 친구지?”
내가 묻자 새로 사귄 친구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그렇지! 우린 친구 아닌가!”
독아검이라는 별호로 불리는 친구였는데, 생긴 건 험악하지만 마음은 따뜻한 친구였다.
이렇게 자신이 번 수입도 다 나눠주고.
세상에 이토록 따듯한 친구가 어디 있겠나.
“앞으로 잘 부탁해.”
“거, 걱정 말게. 진소운 자네가 운용하는 상단인데 당연히 보호해야지, 쿨럭! 내, 내가 이 일대는 꽉 잡고 있으니까 걱정 말게나!”
호언장담을 하며 제 가슴을 땅땅 치는 친구.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기 전에 이렇게 마음을 열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괜히 보고 있으니까 괜히 내 마음이 다 아프네.
아무튼 아버지의 말씀이 맞았다.
친구를 많이 만드니까 많은 도움을 받는다.
앞으로도 친구들을 더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친구와 회포를 풀고 그의 사문을 나서려 할 때.
콰직, 콰직.
“……?”
내가 반쯤 부숴놓은 문을 열어젖히며 일단의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왔다.
그러더니 살기 등등한 표정으로 일제히 도를 뽑아 들었다.
“독아검은 당장 내 도를 받아라!”
“감히 우리 전등객잔에 손을 대…… 응?”
당장 전쟁이라도 치를 듯이 흉흉한 기세로 독아문에 쳐들어온 무사들.
그러나 이내.
온 사방에 널브러진 부서진 집기들과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독사문도들을 보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 되었다.
“이, 이게 무슨…….”
“우리 애들 중에 먼저 온 놈이 있었나?”
“당주님, 저희는 방금 막 왔습니다.”
침입자들이 당황하여 할 말을 잃은 사이, 독아검이 이를 갈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전등문 이 비열한 새끼들. 하필 이럴 때…….”
욕지거리를 내뱉다 나와 눈이 마주치니 입을 꾸욱 다무는 독아검.
대체 뭔 일이래.
그사이 대충 상황을 파악한 건지 전등문의 인원들이 득의양양 도를 치켜들었다.
“독아검! 오늘이야말로 결판을 내자!”
“으드득, 등고현! 네놈이 이러고도 백도 문파라 할 수 있느냐?”
“내 분명 말했지, 언젠가 정의가 널 심판할 것이라고.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가만 보니 독아문과 전등문은 이 일대의 경쟁 관계인 듯했다.
우연찮게 내가 독아문에 방문했을 때 덩달아 처들어온 참인 것 같고.
그런데…….
‘이상하네.’
나는 전등문이란 백도 문파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것도 사흑련과 관련해서 문제가 생긴 걸까나?
“전등문은 청성의 속가무문인 풍향문의 제자가 세운 문파네. 놈들은 청성의 이름을 팔아 같은 악행을 일삼는 놈들이지.”
라고 흑도의 악명 높은 독아검이 말해줬다.
그러니까 청성파의 속가제자의 속가제자쯤 되는 건가?
이쯤 되면 서로 이름을 언급하는 것도 낯부끄러운 일일 듯한데.
실제로 전등문은 모두 도를 쓰고 있기도 했고.
“그래서 말인데…….”
그때, 독아검이 조심스레 내게 말을 걸어왔다.
“함께 도와줄 수 없겠나……? 그! 우린 치, 친구 아닌가!”
독아검의 말에 나는 큰 실망을 금치 못했다.
“친구한테 무리한 부탁을 하는 거 보니 이거 완전 나쁜 놈이로군. 친구로서의 자격이 없어, 쯧. 그냥 확 토벌해 버릴까?”
“그, 그게 무슨!”
“어이, 나는 백도 문파의 제자가 아니냐. 그런 내가 니들이랑 같이 어울려서 백도 무문의 제자와 싸우기라도 해봐. 얼마나 문제가 커지겠어?”
“…….”
“더구나 제 앞가림도 못 하는 친구라면 친구할 필요도 없다고 봐야지. 음…… 그래, 그냥 치워버리는 게 낫겠어.”
“자, 잠깐! 잠깐!”
독아검이 두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우리 독아문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지금 상태가 이렇더라도 얼마든지 싸울 수 있지!”
“호오…… 그래?”
나는 나가려던 발걸음을 되돌려 평상에 앉았다.
실은, 과연 누가 싸워 이길지 궁금했거든.
내가 착석하자 독아문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표정으로 숨을 들이켰다.
“독아문도들은 모두 모여라!”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독아문 전체를 울린다.
그나마 팔다리가 부러진 이들이 많지 않다는 게 다행이었다.
숫자도 독아문의 인원들이 훨씬 많았고, 전투불능 부상자를 제외해도 전등문보다 독아문의 인원이 더 많았다.
아니 근데, 애당초 전등문 이 새끼들은 무슨 깡으로 쳐들어온 거지?
그렇게 강해 보이지도 않는데.
“저자는 누구지?”
등고현이 나를 가리켰지만 독아검이 이를 으르렁거렸다.
“네놈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러자 등고현은 나에게 경고하듯 말했다.
“함부로 끼어든다면 절대 용서치 않겠다.”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을 했고, 두 무리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우아아악!”
“쳐라!”
채채채채챙!
탕탕! 타타탕! 타타탕!
내 예상대로 독아문과 전등문의 수준은 비슷했다.
아니,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독아문의 실력이 조금 더 나아 보였다.
전체적으로 임기응변 능력이 좋다고 할까.
더불어 애들이 깡도 좀 더 좋고.
전등문은 백도 문파의 정석답게 작은 부상도 경계해 가면서 상대에게 피해만 주려는 반면, 독아문은 작은 상처 따위엔 아랑곳하지 않고 상남자답게 오직 상대의 목만 노리며 달려들었다.
본래라면 독아문이 이길 수 있는 싸움이었지만, 두 세력은 서로 백중세를 유지했다.
‘생각보다 부상이 꽤나 깊은가 보네.’
거, 그렇게 강하게 때리지도 않았는데 말이지.
싸움 도중 독아검의 원망 어린 눈초리가 쏘아져 온다.
하지만 그렇게 쳐다봐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는걸.
뭐, 이제 와서 어쩌겠어?
서서히 독아문이 밀리는 형국이 되자 전등문이 더욱 용기백배하기 시작했다.
“쳐라! 오늘부로 독아문을 세상에서 지워버리자!”
“우와아아아!”
기세가 오른 전등문의 도가 점점 날카로워지고, 수세에 몰린 독아문의 인원이 점점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때, 독아검이 무언갈 각오했는지, 품속에서 붉은 환단을 꺼내 삼켰다.
‘응? 저건……?’
이어 독아문의 이인자와 삼인자도 붉은 환단을 삼키기 시작했고, 급기야 독아문의 모든 인원들이 차례차례 환단을 먹기 시작했다.
“으…… 으…… 으아아아악!”
세 명의 전등문 무사들의 검을 피해 뒤로 물러나던 독아검이 별안간 엄청난 기파를 뿜어내더니, 단박에 세 사람을 삼 장 밖으로 날려버렸다.
“후욱…… 후욱…… 후욱…….”
깊게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김이 내뿜어져 나왔다.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고, 두 눈은 더 붉게 번들거렸다.
하, 씨바 저거…….
‘폭혈단이네.’
이전 계철영이 시험 때 썼던 바로 그것.
가뜩이나 기량 차이가 없던 두 세력 사이에서 추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독아문의 문도들은 일제히 폭혈단의 힘에 취해 전등문을 몰아세워 갔다.
“크아악!”
전등문에서 처음으로 큰 상처를 입고 쓰러지는 이가 나타나고.
“크억!”
“이, 이게 무슨……!”
뒤이어 속속들이 전등문의 무사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전등문의 무사들이 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말리려 나서려는 순간.
“전등문은 영원하다!”
이건 또 뭐야.
이번엔 전등문의 한 문도가 손에 쥔 단약을 먹었다.
이어 다른 전등문의 문도들이 그를 따라 단약을 먹기 시작했고, 엄청난 기파가 퍼져나왔다.
퍼퍼펑!
‘니네도 폭혈단이냐?’
……시바 뭔 놈의 강호의 싸움이 약쟁이 대전으로 변한 거지?
통탄을 금치 못하는 와중에.
다시금 싸움은 호각을 이루기 시작했다.
두 세력 다 백 초식을 넘기면 안 된다는 조바심 때문인지 부상을 감수하면서 억지로 공격을 하기 시작했고 싸움은 점점 거칠게 변했다.
‘난리도 아니구나.’
폭혈단이란 건 비슷한 수준의 상대와 겨룰 때, 그 상대는 이를 복용하지 않았단 전제하에서 유용한 것.
이런 상황은 그저 동귀어진에 불과하다.
그걸 다들 알고 있는지 백 초식에 가까워지자 사람들의 움직임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허억!”
“……비, 빌어먹을 어쩌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극한의 눈치 싸움.
더 싸우지도, 그렇다고 여기까지 온 마당에 멈추지도 못하는 상태.
잠시간 두 세력 사이에 정적이 흐르고 있던 그때.
전등문의 무사들 사이에서 엄청난 기파가 터져 나왔다.
퍼퍼퍼퍼펑!
기파의 주인은 다름 아닌 등고현.
폭혈단을 먹은 후 오십 초식이 지났건만 그의 무복은 여전히 터질 듯 부풀어 있었고, 그의 머리는 폭발하는 기파에 떠밀려 허공에 붕 뜬 상태였다.
“다…… 다 죽여 버리겠다!!!”
“다, 당주님! 여기서 더 하시면…….”
전등문 문도 하나가 황급히 말렸지만 등고현은 대답 대신 검을 휘둘렀다.
촤악!
등고현을 말리던 문도의 목이 잘려 나가며 피 분수가 솟구쳤다.
“이, 이…… 무슨…….”
갑작스런 상황에 전등문의 문도들이 멍해진 사이.
등고현이 번개같이 독아문의 문도들에게 달려들었다.
촤아아악!
급작스레 피 분수가 솟구치며 독아문도 세 사람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일도에 한 사람도 아니고 세 사람의 목을 잘라버린 것이다.
“으, 으허허허허!”
등고현은 자신의 일 수에 감탄했는지 뒤이어 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무자비한 움직임.
독아문의 문도들이 처절하게 막아섰지만 어찌 된 일인지 등고현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촤르르르르륵!
촤악! 촤악! 촤악!
도를 휘두르는 속도가 범상치 않다.
심지어 검기를 두른 검조차도 잘라내곤 독아문 문도의 목을 베어버리는 신위까지 보여주자, 질려버린 독아문도들이 대응을 포기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 어딜 가려 하느냐! 내 오늘 독아문의 풀뿌리조차 남기지 않겠다!”
펑!
독기가 오른 등고현이 바닥을 박차고 뛰어오르자 흙더미들이 속살을 드러내며 사방으로 모래를 분사했다.
엉망진창인 보법이지만, 속도만큼은 미친 듯이 빨라 먼저 도망쳤던 독아문도의 앞을 막아설 정도였다.
‘……폭혈단이 이 정도라고?’
제아무리 폭혈단이라 한들 그가 가진 잠력에서 끌어낼 수 있는 한계가 정해져 있다.
등고현은 지금 그 제한을 한참이나 넘은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더구나 등고현은 맨 처음 제 사문의 문도를 죽이지 않았던가.
마치 세상의 법칙을 거스르는 사람처럼…….
드등, 드등.
그때, 적봉환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고개를 들어 등고현과 눈을 마주친 순간.
“……!”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그의 두 눈은 마치 흑요석처럼 온통 시꺼멓게 변해 있었으니까.
‘마공…….’
그 빌어먹을 눈깔이 나를 먹잇감 보듯 응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