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310화 (310/357)

310. <악의 불씨(3)>

해가 진 뒤, 합비의 유흥가에 가자 낮에는 볼 수 없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가판마다 등불을 밝히며 장사하는 이들부터.

낮에는 볼 수 없었던 화려한 복장의 젊은 남녀.

거리를 지날 때마다 호객행위를 하는 점소이들과, 커다란 가마에 몸을 실은 채 어디론가 분주히 가고 있는 고관대작들까지.

‘원래 이렇게 화려했었나?’

전생의 밤 시간은 대부분 지쳐 쓰러져 휴식을 취하거나, 잔업을 했던 기억밖에 없었다.

지금 이렇게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전생과 다른 삶을 살고 있기에 가능한 것.

[이 새끼야 월봉을 오늘 다 쓰면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내일 살아 있을 보장 있어?]

[어? 그러네.]

[여기…… 은전 열닷 냥짜리 술 하나 더!]

내일이 없는 듯 월봉을 다 쓰고 다음 월봉도 받을 수 있길 바라던 놈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들려 했기에 얼른 당과 하나를 사서 입에 넣었다.

그렇게 걷다 목적지에 다다르니 어째선지 인파가 가득 모여있었다.

‘무슨 일이지?’

뭔가 구경거리가 났나 싶기도 했지만 그건 또 아닌 것이, 줄을 길게 선 사람들의 복장이 하나같이 화려했던 것.

“이봐. 여기 들어갈 생각인가?”

여인들 셋을 대동한 채 맨 앞에 서있던 사내가 말을 걸어왔다.

근데 이 새끼는 왜 초면에 반말이지?

“누굴 만나기로 해서.”

“그 꼴로?”

내 옷차림을 쭈욱 살피더니 피식 웃음을 내비친다.

그의 옆에 선 여자들도 어쩐지 하나같이 입을 가리며 하찮다는 눈웃음을 지었다.

거참, 따귀 잘 맞게 생긴 관상이네.

“예약은 했나?”

“예약?”

“소화루는 예약이 기본인 것도 모르나?”

사내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려 있다.

“……그렇게 와본 적이 없어서.”

“쯔쯧. 얼치기들이 뭣도 모르고 유명하다니까 오는 거지.”

“…….”

“뭐 하나! 저어기 뒤로 가서 줄 서. 어차피 오늘은 못 들어갈 테니까.”

“그래? 오늘 여기서 만나기로 했는데.”

예약을 해야 하는 줄 알았으면 다른 곳에서 만나자고 할 걸 그랬나.

아니, 근데 애당초 약속을 잡은 건 양군백이잖아.

어찌해야 하나 난감해하는 사이 사내가 내게 제안을 했다.

“재주 하나를 부려 보게. 마음에 들면 내 데리고 들어가 주지.”

“재주?”

“검을 차고 있는 걸 보니, 무인인 듯한데…… 설마 보여줄 재주도 하나 없나?”

사내의 말에 여인들이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빵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배를 부여잡고 웃는 여인도 있었다.

되게 신나 보이네.

나는 그들을 차례로 훑어보고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사람 죽이는 재주 말고는 딱히 없는데. 그거라도 보여주면 되나?”

“…….”

왠지 갑자기 분위기가 싸하게 가라앉았다.

웃어대던 여인들은 안 그래도 분칠로 하얗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내게 뭐라 대꾸하려던 사내는 괜히 헛기침을 하고는 ‘무인 놈들이 그렇지’라고 중얼거리며 몸을 돌렸다.

그때.

끼익-

때마침 소화루의 문이 열리며 관리인이 명부 같은 것을 들고 나왔다.

“다음은…….”

사내와 여인들은 금방 들어갈 채비를 하고 내게서 시선을 떼었는데.

“어? 공자님?”

관리인이 갑자기 나를 보더니 명부를 접었다.

“왜 여기 계십니까? 오셨으면 들어오지 않으시고.”

“……아니, 난 예약을 해야 한다는 소리에 어찌해야 하나 고민을 하던 중이라.”

“아이고! 무슨 그런 말씀을……! 공자님께선 당연히 예약하지 않으셔도 언제든 방문하셔도 되지요.”

“그래?”

“네. 얼른 드시지요! 안에서 손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겠어. 아……!”

나는 관리인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가려다가 말고 사내와 그 일행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어느새 멍한 얼굴이 된 그들.

그들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물었다.

“혹시 보여줄 재주가 있나?”

“…….”

내 제안에 입을 꾸욱 다무는 사내.

하긴 밤낮으로 술만 퍼마시며 다니는 게 무슨 재주가 있겠어.

나는 관리인의 극진한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섰다.

#

“어?”

이전에 하오문주를 만났던 갑실.

그곳에서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봤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공자님.”

“호남성에 계셨던 것 아닙니까?”

“저는 종종 자리를 옮기곤 한답니다.”

바로 만빈각 각주 해령.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이어 내가 만남을 청한 양군백이 인사를 해왔다.

“덕분에요.”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진수성찬이 펼쳐져 있었고, 좋은 술향이 공기 중에 진동을 했지만, 내부엔 악공도 예기도 없었다.

술잔이 두어 번 오가며 서로 간의 안부를 물은 뒤에 본격적인 이야기가 바로 시작되었다.

“전등문과 전광도 오일식에 대한 자료입니다.”

해령이 내미는 서류에 난 술잔을 넘기다 멈칫거렸다.

난 아무 얘기도 안 했는데.

해령이 묘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저희는 항시 공자님을 관찰하고 있답니다. 원하시는 바가 아니셨습니까?”

전생의 정마대전 당시 하오문이 어찌하여 무림맹을 등에 업은 개방과 비등한 경쟁관계가 될 수 있었는지 절감했다.

‘이러니 개방이 치고 올라오는 하오문을 경계했던 거구나.’

또다시 내가 몰랐던 과거의 일에 묘한 감정을 느끼며 서류를 살폈다.

하지만 전등문과 오일식에 관한 자료를 살펴도 크게 특별한 점이 없었다.

전등문은 청성파나 풍향문의 도움 없이 스스로 지은 문파이고, 오일식은 홀로 수련해서 일가를 이룬 사람이라는 것 외에는 달리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내 시선이 한 부분에서 계속 머무르자 해령이 입을 열었다.

“역시 공자님은 무사로 남기엔 아깝습니다.”

내가 고개를 갸웃하며 시선을 맞추자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어린다.

“그 정보들 사이에서 이상한 점을 찾으신 거지요?”

“혼자의 힘으로 세운 문파치곤 성장세가 급격하군요.”

독아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무관에서 문파로 모습을 바꾸는 데 최소 십 년 이상은 걸렸을 거라 예상을 했다.

자리를 잡고 세력을 넓히는 일이 무력만 높다고 무작정 되는 게 아니니까.

그런데.

표국 시험을 보는 이를 대상으로 운영되던 무관이 문파로서 모습을 바꾸는 데 오 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더구나 내가 상대했던 전등문의 문도들은 오합지졸이 아니라 꽤나 오랜 시간 훈련과 교육을 받아온 사람의 모습이었는데…….

“삼 년.”

해령이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였다.

“무관에서 문파가 되는 데 딱 삼 년이 걸렸습니다.”

“혹, 후원하는 이가 있었습니까?”

막대한 지원이 있다면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없었습니다. 전등문은 그야말로 혼자의 힘으로 그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

나는 쉬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문도들이 입었던 똑같은 복색의 무복은?

잘 손질된 검은?

굶주린 흔적 없이 통통하던 볼과 살은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후훗, 여기까지는 공자님도 예측하기 힘드신 거지요?”

“전 전능한 사람이 아닙니다.”

“후후, 그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이리 공자님께 도움이 될 수 있으니 말이죠.”

그러면서 해령이 서류 하나를 더 건넨다.

나는 그 서류를 대충 눈으로 훑다가 깜짝 놀랐다.

“공자님이 봐도 이상하죠? 그 사람들이 오일식을 만난 목적은 대부분 표사가 되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관원이 되고 문도가 되면 어느새 목적은 잊은 채 돈을 가져다 바치는 사람이 되었죠.”

제 돈은 물론이고, 제 부모의 돈부터 일가친척들에게 빌려서 가져다 바친 돈까지.

딱히 다른 후원이 없어도 번듯한 문파 하나 세우기엔 충분한 돈이었다.

“…….”

문득 전등문의 인원들이 외쳤던 그 좆 같은 구호가 떠올랐다.

마치 홀린 듯 제 몸을 불사르며 오일식을 지키고자 했던, 광신도들에 버금가는 문도들.

그리고 오일식이 죽자마자 정신을 차린 듯 제 안위를 챙기기 바빴고.

‘……사술도 익힌 건가?’

라고 생각하기엔 그 당시 동행했던 독아검이 너무나 멀쩡했다.

“혹 오일식에게 도를 쥐여준 사람이 있습니까?”

오일식은 도를 들기 전과 후로 사람이 바뀌었다.

그렇다면 마공을 익힌 건 그즈음.

하지만 내 기대와 달리 해령은 고개를 저었다.

“풍향문을 나온 이후 오일식이 따로 사부로 모신 사람은 없었습니다. 표국도 한곳에서 장기간 일한 게 아니라 종종 옮기기도 했었고요.”

이야기를 듣던 도중 오일식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천……마재림 만마앙복!]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놈은 살길을 찾는 대신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마교를 외치며 죽었다.

……전생의 마인들이 죽을 때처럼.

으드득.

이건 다시 생각해도 빡친다.

“……공자님?”

“아, 미안합니다. 어디까지 이야기했지요?”

“어디서도 오일식에게 가르침을 준 사람은 없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렇군요.”

“흐음, 어째서 오일식에게 스승이 있었다 확신하시는 것일지요?”

오일식은 죽음의 순간 마화를 피워냈다.

이는 곧 놈이 마교에 제대로 빠진 정신병자라는 이야기.

허나 따로 스승도 없었다면 대체 어떤 방식으로 오일식을 마인으로 만든 걸까?

그리고 그 오일식에게 죽음을 불사하게끔 복종하도록 세뇌시킨 방법은 또 뭐고.

난 오일식이 죽음을 자진해 택했던 부분만 따로 빼내어 이야기해 주었다.

해령 역시 묘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확실히 이상하긴 하군요.”

“혹 오일식의 경우처럼, 갑작스레 실력이 늘거나 세력을 확장하는 이들이 더 있을까요?”

해령이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한 곳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만약 오일식과 같은 과정을 밟고 있는 놈이라면 그 새…… 아니, 그놈 역시 마인이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

그놈 사문의 기둥뿌리를 뽑는 한이 있더…….

“태을문의 진소운.”

응? 갑자기 내 이름이 왜 나오…….

해령이 방긋 웃었다.

“공자님 말씀대로라면, ‘진소운 공자야말로’ 가장 의심스러운 사람이지요.”

아, 그러네.

#

이 문제의 가장 엿 같은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다.

애당초 전등문을 박살 내면서 이건 존나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라 미리 생각했던 부분이기도 하고.

“저부터 조사를 받아야겠군요.”

“물론 몇몇 미심쩍은 부분이 있긴 하지만 공자님은 충분히 혐의를 벗으셨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가볍게 싱긋 웃는 해령.

와, 이 사람…… 무서운 사람이었네.

벌써 조사를 다 마쳤다니.

이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무튼 문제는 오일식 같은 놈이 또 있다 해도 마인이라는 걸 밝혀낼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폭혈단을 강제로 처먹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도 일단은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자료가 모여야 분석을 시작할 수 있을 테니까요.”

“시간이 많이 걸릴 텐데요.”

“중요한 일이지 않습니까.”

해령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공자님. 우린 이 일의 중요성을 무척이나 깊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일이 더 어려워질 거란 생각에 나도 모르게 크게 낙담하려 했으니까.

그러나 이번 일을 해결하는 건 나 혼자가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감사합니다.”

내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자, 해령이 한쪽에서 보퉁이를 내놓았다.

“혹시나 해서 가져와 봤습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풍향문의 무공과 전광도 오일식의 독문 무공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호오, 전등문을 뒤졌을 때. 이런 건 없었는데.

“독아문의 사람들이 무척 친절하더군요. 다행히 무림맹에서 조사관이 나오기 전에 만들 수 있었습니다.”

순간 해령의 눈빛이 진중하게 바뀌었다.

“등고현의 눈동자가 흑요석과 같이 검게 변해 있었다던데…… 사실인가요?”

하긴 정보상인으로서 이런 정보는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겠지.

백방으로 등고현의 시체를 확보하려 수소문하고 있을 테고.

하지만 힘들 것이다.

이상 상태의 시체는 사술과 연관되어 있고, 그것은 곧 고과와 연결된다는 뜻.

사사로운 돈 몇 푼에 자신의 출세를 바꿀 이는 없지 않겠나.

“궁금하십니까?”

“해부를 해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보기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좋을 듯해서 말입니다. ……혹, 학관 수석님께서 선을 대어주실 수 있을까요?”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

해령과 양군백의 얼굴이 굳었다.

뭔가 서운함이 슬쩍 새어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아, 무리한 부탁을 드렸…….”

“굳이 귀찮게 왔다 갔다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네?”

난 내가 가져온 보퉁이를 그들 앞으로 밀었다.

움직임에 따라 보퉁이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양군백이 슬쩍 보퉁이를 열어 보더니 두 눈이 토끼처럼 커졌다.

“이, 이게 뭡니까?”

먹물을 바른 듯 검게 변해 있는 뼈.

“오일식, 그자의 것입니다.”

내가 가져온 것은 마화에 타고 남은 오일식의 뼈였다.

해령 또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양군백에 옆에서 유심히 뼈를 들여다보았다.

“……귀한 걸 가져오셨군요.”

해령의 입꼬리가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나는 그 입매를 바라보며 고개를 한번 까닥였다.

“그럼 오늘 술값은 안 내도 되는 겁니까?”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던 해령이 빵 하고 웃음을 터트린다.

“그럼요. 그것뿐이겠습니까. 더 귀한 것도 대접해 드려야지요.”

해령이 박수를 두 번 치자 잠시 후 한 여인이 술병을 들고 내실로 들어섰다.

“한잔 올리겠습니다.”

양군백과 해령이 오일식의 뼈를 살피는 동안 묘령의 여성은 잔을 채운 뒤 옆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

내가 이상하단 듯 여성을 바라보니 해령이 말했다.

“아, 그 아이는 옆에 계속 있을 겁니다.”

난 이런 걸 바란 적이 없는데.

하오문을 내가 잘못 본 건가 싶었는데.

쪼르르륵.

술잔에 따라지는 술을 보며 깨달았다.

“차갑네…….”

잔에 떨어진 술의 온도가 낮은 탓에 술잔이 금방 축축해졌다.

그렇게 한입에 넘긴 술에선…….

“오!”

감탄이 절로 나온다.

“화빙로라 합니다.”

꽃에 맺힌 차가운 이슬이라…… 이름에 딱 걸맞은 맛과 향이었다.

내가 감탄하고 있자니, 해령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날아든다.

“화빙로는 차갑게 마실 때. 가장 최고의 맛을 낸답니다.”

그녀의 말에는 자부심이 깃들어 있었다.

생각해 보면 합비에 고급 주루가 그렇게 많음에도 소화루가 문전성시를 이루는 이유가 있었다.

‘빙공을 이용해서 술을 판다니…….’

이런 기이한 경험을 하고 나면, 제아무리 고관대작이나 부자들이라도 눈이 돌아갈 게 분명하다.

무공을 익힌 나도 이렇게 신기한데.

빙공은 여러모로 쓸 데가 많다.

이번 행단에서도 빙공을 익힌 이가 있었으면 등고현의 시체 썩는 냄새를 견디지 않아도 되었을 테니까.

찌도록 더운 여름날에도 사용하기 편하다.

무림맹에서 어떤 당주들은 일부러 빙공을 익힌 이들에게 추가 점수를 주기도 하니까.

‘하지만 노력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

그런 면에서 빙공을 익힌 직원이 술을 따른다는 건 무인의 입장에서도 희귀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즐길 수 있을 때 최대한 즐겨야지.

다시금 화빙로를 입에 댔는데. 그사이 잔을 쥔 손의 열기로 인해 온도가 올라갔는지 본래의 향과 맛이 나지 않았다.

“잔을 비우시면 새로 따라 드리겠습니다.”

잔을 비워내고 새 술을 담는 게 화빙로를 마시는 본래의 방법인 듯, 빙공을 익힌 여성이 빈 그릇을 슬쩍 내민다.

하지만 어쩐지 나는 화빙로가 아까워 쉽게 잔을 비우지 못했다.

쩝, 이게 다 얼마냔 말이다.

‘흐음…… 이렇게 하던가?’

술이 너무 취해서였을까?

은설란이 빙공을 쓸 때를 떠올리며 내기를 운용했다.

물론 이걸로 빙공을 쓸 수 있을 리 없다.

애당초 구결도 모르고, 내공의 질 자체가 빙공을 쓸 수 없는 것이니까.

그러니, 그냥 술기운에 장난을 친 것에 불과했다.

츠츠츠츳.

분명 그러했는데…….

“고, 공자님?!”

“서, 설마!”

“……어머!”

세 사람이 오일식의 뼈를 봤을 때보다 더 놀란 눈으로 내 잔을 바라봤고, 해령의 경악한 목소리가 내실에 울려 퍼졌다.

“공자님…… 빙공을 쓰실 수 있으셨습니까? 분명 저희 조사에서 그런 건 없었는데……!”

……응? 나 빙공을 쓸 수 있는 거였어?

난 놀란 눈으로 해령에게 물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네?”

그걸 왜 자신한테 물어보냐는 표정.

그녀의 표정만큼 내 손의 술잔도 차갑다.

“앗 차가!”

“…….”

“…….”

정적이 깃든 방 안에선 화빙로의 감미로운 향기만이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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