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326화 (326/357)

326. <신령 사냥>

이후로 우리는 쉬지 않고 사냥을 이어갔다.

이전까지 느리게 움직인 것은 마물을 피하기 위함이었다는 듯, 양자평은 거침없이 길을 열기 시작했다.

그렇게 거침없이 움직이다 보면.

“으, 으아아……!”

묵림이 왜 묵림인지를 증명하듯 마물들이 튀어나왔다.

청린금선사나 비천오공은 물론이고, 간만에 만난 인면지주까지.

아, 물론 인면지주를 만났을 때 성모란은 혼절을 해버렸다.

중원에선 한 마리 보기도 힘든 마물들이 이곳에선 동네 동산에 사는 토끼들처럼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왔다.

‘물론 토끼는 사람을 잡아 먹겠다고 눈이 뒤집혀 달려들진 않지만.’

처음엔 무서운 겉모습 때문에 주춤거리던 조원들도 한 마리 한 마리 사냥감이 쌓여갈 때마다 점차 적응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사냥 속도 역시 점점 빨라졌다.

“이번에도 좁쌀만 한 게 하나 나오네요.”

가장 극적인 변화는 바로 성모란.

그녀는 벌레를 보더라도 더 이상 기겁을 하지 않았다.

인면지주를 보고 나니 이젠 어지간한 건 버틸 만하다던가?

근데 버틸 만한 걸 넘어서서.

“이번에 누구 차례지? 동룡인가?”

솔선수범하기까지 한다.

절로 흐뭇한 웃음이 지어지는구나.

성모란이 능숙하게 영단을 꺼내어 동룡이에게 건네자 녀석이 그 모습을 가만히 쳐다본다.

그러자 성모란이 손을 더욱 가까이 들이밀었다.

“왜 얼른 먹고 운공해야지.”

“…….”

말없이 영단을 바라보던 동룡이 이내 내게로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대사형은 여지껏 하나도 먹지 않았는 걸요.”

동룡이의 마음 씀씀이에 가슴속에서 감동이 울컥 치밀어오른다.

그래, 내가 얘들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 거지.

나는 눈물을 겨우 참으며 동룡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너희가 먹고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게 이 대사형이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좁쌀 영단을 내게 주고 싶어 하는 동룡을 보며 성모란이 비아냥 어린 음성으로 말했다.

“그게 아냐 동룡아, 어차피 그거 먹어봤자 간에 기별도 안 갈 사람이거든.”

“…….”

“들어보니까 남궁세가에서도 영단을 먹고, 모용세가 영단을 먹었다면서요? 하아……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철심단으론 단전의 상처가 치료되지 않을까 엄청 걱정했네.”

크흐흠. 대체 기밀이 어디서 새어 나간 거지?

강호에서 말하길 늘 칠 할은 숨기라 했는데.

나는 성모란의 이야기를 못 들은 척 말했다.

“동룡아, 이 대사형은 너희들이 먹는 것만 봐도 절로 내공이 불어나는 기분이니 내 걱정은 말고 먹어라.”

사실, 실제로 내공이 늘어나고 있기도 하고.

영단을 가진 마물들 대부분은 영단보다 큰 독단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그것들을 몰래몰래 흡수하고 있는 상황.

영단에 비하면 기운 자체가 크진 않지만, 청룡환을 쓰면 독단에서도 충분히 내공을 뽑아낼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좁쌀만 한 영단은 굳이 먹지 않아도 되었다.

문제는 청룡환을 쓰기가 영 여의치 않다는 것.

‘하아, 눈치 보느라 놓친 독단이 몇 개인지.’

혼자 돌아다닐 수 있기라도 하면 얼마든지 왔던 길을 되돌아가 몰래 청룡환을 쓰고 올 텐데.

이런 험지에서 혼자 다녔다가 무슨 꼴을 당할 줄 알고 그걸 먹으러 다녀온단 말인가.

내가 아무리 제정신이 아니어도 이 정도 사리분별은 된단 말이지. 암, 그렇고말고.

그렇게 한숨만 늘어가는 사이, 언덕 아래로 소란스런 음성이 울려 퍼졌다.

“응?”

나를 비롯한 우리 조원들 모두가 고개를 아래로 내리자, 이백에 달하는 학관생들이 함께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뭐지?’

안력을 돋구어 살피니, 정도회와 백도회의 인원들이 혼재된 무리였다.

“쟤들 뭐 하는 거래요?”

“그러게 말입니다. 탐사 임무를 받았을 텐데…… 왜 뭉쳐 다니는 거지요?”

성모란과 은호의 말마따나 인원들의 행동은 영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탐사를 위해서라기보단 마치 사냥을 위한 편제를 짠 듯.

주변에 뭐가 있건 무자비하게 나무를 쓰러뜨리고 풀을 잘라 길을 내며 오직 이동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었다.

“끄응…….”

양자평이 뭔가 알고 있는 듯 길게 신음을 내뱉었다.

“애당초 교관들이 왜 이런 위험한 일을 지시하나 의문이었는데…….”

“뭔가 아시는 게 있습니까?”

“후…… 아무래도 신령(神靈) 사냥을 하려는 모양입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딱딱하게 굳을 수밖에 없었다.

“신령이라니요?”

“묵림을 지배하는 사대(四大) 신령 말입니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그게 정말입니까?”

“그러니까 말입니다. 그런 위험천만한 짓을 왜…….”

나는 머리끝까지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진 대표, 너무 신경 쓰지 마십……”

“묵림에…… 영물이 있는 겁니까?!”

아니 왜 그걸 이제야 말해?

“진짜 있는 겁니까?”

“…….”

양자평이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그게 궁금했던 거냐? 라는 시선.

나는 흥분을 꾹꾹 억누르며 예의를 갖춰 다시 물었다.

“영물이 있다면…… 커다란 영단도 가지고 있겠네요?!”

“……위험천만하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으십니까?”

“영단이 있다면 얼마나 큰 겁니까? 사대 신령이라 불린다면 어마어마하겠지요?”

“저기 학관 대표님?”

“어마어마…… 크큭…….”

“학관…… 야! 진대표! 인마! 너 내 말 안 들려?!”

“사대신령…… 크큭…… 사대신령이라…….”

그래, 티끌로 언제 태산을 만드나.

인생은 원래 한 방인 법인데!

“이보세요! 진 대표! 당신 지금 눈깔이 이상해! 알아?!”

거짓말만 일삼는 양자평이 하는 이야기는 더 이상 귀에 들리지 않았다.

#

“태양후.”

“흐히히히.”

“청설빙백사.”

“크하하하.”

“……만년토웅.”

“푸히히힛.”

“금갑붕조.”

“파하하하핫!”

“…….”

싸늘한 시선들이 꽂힌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관리했다.

아니 근데 나도 모르게 터지는 웃음은 어쩔 수 없는 거잖아.

“이 넷을 통틀어 묵림의 사대(四大) 신령(神靈)이라 부릅니다.”

“흐히히히.”

“…….”

“아, 아, 미안합니다.”

양자평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 관자놀이를 꾸욱꾸욱 눌렀다.

“……말씀드렸다시피 이건 사냥하고 말고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애당초 인외의 존재들이니까요. 달리 신령이라 부르는 게 아닙니다.”

양자평은 열변을 토했다.

“더구나 신령들에게 영단이 있는지 그 여부는 한 번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글쎄요.”

“이제껏 단 한 번도 사냥에 성공한 적이 없으니까요.”

“한 번도요?”

놀랍다는 듯 남궁선화가 물었고 양자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리하기가 사람 뺨칠 정도에 마물 수준의 힘을 가지고 있는 데다, 묵림이 제 안방이지 않습니까? 사냥은 커녕 추적을 하다가 길을 잃기 십상이지요.”

“…….”

“만약 신령을 사냥하겠다고 하면 저는 길 안내를 그만두겠습니다. 아무리 의무를 다해야 한다 해도 목숨까지 버릴 수는 없으니까요.”

들떴던 감정이 이내 차분하게 가라앉고 냉정하게 이성이 돌아왔다.

독 내성 작업과 마물 사냥에 흔쾌히 도움을 주었던 양자평이 이리 단호하게 거절할 정도라면 진정 위험하단 뜻이니까.

아무리 영약이 탐나도 사제들과 조원들의 목숨까지 담보해 움직일 일은 아니기도 했고.

나는 그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양 대협의 말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양자평이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렇게 신령 사냥에 대한 아쉬움을 접고 이동하려는 찰나.

“대사형, 이쪽으로 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신령 사냥을 하는 인원 중 일부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수풀을 베며 나타난 이들은 다름 아닌 교관과 학관생들.

“응? 어떤 족제비 같은 놈이 우리 사냥을 방해하러 왔나 경고를 하러 왔는데…… 허, 학관 대표가 나오다니.”

노진하가 입술을 이죽거리며 말했다.

거 못생긴 얼굴이 더욱 못생겨졌네.

“주둔지에 있어야 할 교관이 왜 여기까지 기어 나온 겁니까?”

“뭐? 기어 나와?!”

노진하가 불쑥 튀어나오려 하자 강태하가 그를 말리며 말했다.

“……학관생들을 보호할 겸 우리도 탐사를 나온 것이라네.”

나는 강태하의 옆에 선 엽사 차림의 사람들을 턱 끝으로 가리켰다.

“굳이 남권문의 사람이 아닌 길잡이를 데리고 말입니까?”

엽사 차림의 사내들 중 하나가 눈썹을 찡그리며 나선다.

“남권문이 묵림에 대해 전부를 아는 것이 아니오. 되려 저들은 입구나 지키는 애송이들이라 볼 수 있지.”

“으드득.”

양자평은 엽사 차림의 사내들과 일면식이 있는 듯 이를 갈며 그들을 노려보다 교관들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대여정 중에 신령 사냥이라니……! 대체 무슨 생각들입니까?”

“우린 댁들처럼 겁쟁이가 아니라서 말이지. 여기까지 온 마당에 신령 얼굴은 한번 봐야지 않겠소.”

“신령 사냥은…….”

“아아, 잔소리라면 듣지 않겠소. 천연진이라든가 그런 것들에 대해선 다 대비하고 있으니까.”

엽사 차림의 인원들이 이죽거리며 덧붙였다.

“애당초 천연진이라는 것도 피해 가려니 무서운 겁니다. 그냥 다 밀어 버리면 그만인 것을.”

“하……!”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는 양자평을 두고 노진하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경 탐사를 해야 할 대표가 왜 아직도 이곳에서 알짱거리고 있는 거지? 혹여 신령 사냥에 끼고 싶은 건가?”

한바탕 저들끼리 웃음을 주고 받은 노진하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어떻게, 엎드려 절이라도 하면 신령 사냥에 껴줄지 한번 생각해 보지.”

“……!”

순간 몸이 움찔 하고 앞으로 튀어나갔지만, 때 맞춰 은호가 내 팔을 잡았다.

-정신 차리세요.

휴, 하마터면 절을 할 뻔했네.

녀석 눈치는 빨라가지고.

나는 옷자락을 툭툭 털며 고개를 저었다.

“됐습니다. 신령이 무슨 동네 들개도 아니고. 멍청한 지휘관들을 어떻게 믿고 사냥을 합니까.”

“뭣이!”

“거 신령 사냥이건 나발이건, 알아서 잘 해보세요. 부디 꼭 사냥에 성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뒤돌아섰다.

뒤에서 ‘저 빌어먹을 놈 반드시…….’ 어쩌고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가뿐하게 무시했다.

그렇게 조금 걷고 있자니 양자평이 어쩐지 들뜬 기색을 숨기지 못하며 내 곁으로 바짝 다가왔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신령 사냥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대신이라 하긴 그렇지만…… 제가 최대한 마물이 많은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어느 정도 노진하 일행들과 거리가 벌어졌을 때.

나는 양자평의 늠름한 어깨를 꽉 붙잡으며 물었다.

“분명…… 성공 못 하는 거 확실하죠?”

“네? 뭐, 뭘…….”

“사냥…… 신령 사냥 말입니다. 진짜 성공 못 하는 거 맞죠?”

“…….”

양자평의 표정은 어쩐지 다 타버린 숯처럼 시커멓게 변했다.

나는 그의 어깨를 거세게 흔들며 재차 물었다.

“진짜, 진짜 성공 못 하는 거 확실하죠?!”

“…….”

“후…… 꼭 실패해야 되는데.”

안 그럼 너무 배가 아플 거 같단 말이야.

#

우리는 마경으로 향하는 와중에도 마물 사냥을 계속 이어 갔다.

강호영약서나 만초보록에서 본 마물도 있었고, 난생처음 보는 희한한 마물도 있었다.

점차 능숙해지자 더 이상 사냥하는 데 큰 무리가 없었다.

다들 마물의 성향을 금방 파악한 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실히 알고 행동했다.

말하지 않아도 척척 제자리에 가서 사냥을 도왔다.

나중에는 작은 크기나 독성이 강하지 않은 마물 등은 내가 없이 사냥할 수 있게 됐을 정도.

양자평이 사냥 속도에 감탄을 내지를 정도이니, 마물 사냥에는 충분히 숙달됐음이 증명되었다.

칠 주야 차가 되어가자 조원들은 더 이상 묵림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듯 보였다.

독 내성을 키우기 위해 먹은 독의 영향인지 더 이상 벌레에 물리는 이들은 없었고, 은설란이 있는 덕분에 가끔은 시원하게 휴식을 취할 수도 있었으니까.

“참으로 좋군요. 빙공이라는 건…….”

양자평이 시원하게 살얼음이 낀 물을 마시면서 연신 감탄을 멈추지 않았다.

아쉽게도 독단은 여전히 흡수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중간에 금표가 영단을 찾다가 독단에 중독될 위험을 겪은 후론.

양자평이 철저하게 독단을 떼어내어 바닥에 묻고 이동할 때까지 시선을 떼지 않는 바람에 도저히 독단을 흡수할 틈을 찾지 못했던 것.

결국 나는 어느 정도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내공은 아깝지만, 청룡환을 들킬 위험을 감수할 정도는 아니니까.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양자평의 능력이었다.

보름 가까이 함께 지내다 보니 알게 된 것인데.

양자평은 어느 정도 자신의 방위를 짐작하고 있는 듯 했다.

천연진을 피하고 마물에게 쫓기는 일도 몇 번 있었기에 본래 경로에서 크게 벗어날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양자평은 귀신같이 본래의 경로로 돌아왔으니까.

내가 이에 대해 묻자 양자평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저는 어느 정도 방위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이 안에선 어떤 감각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영맥의 기운이 너무 크니까요.”

“그럼 양 대협은 대체 어떻게 그렇게 방위를 잘 찾는 겁니까?”

양자평의 얼굴 위로 자신감이 떠오른다.

“모든 감각이 영맥에 방해를 받아 혼선을 빚지만 반대로 방해를 받지 않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방해를 받지 않는 것이요?”

양자평이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영맥 말입니다.”

“오!”

나도 모르게 작게 감탄해 버렸다.

되려 모든 감각을 방해하는 영맥을 방위를 잡는 데 쓸 줄이야.

“영맥은 크게 북에서 남동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물론 세세한 기운들까지 모두 기억한다면 묵림을 제 안방처럼 드나들 수 있겠지만, 그건 인간으로선 불가능한 영역이니까요. 하지만 큰 줄기의 영맥이나 영맥의 흐름 등만 기억해도 묵림에선 어느 정도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남권문이 묵림을 관리하는 문파가 된 데엔 달리 이유가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럼 영맥을 느끼는 방법이 따로 있습니까?”

“물론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무인이 기운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니까요. 다만 일반적인 토납법으로는 힘들지요.”

“어떻게 하는 건지 배울 수 있겠습니까?”

혹 사문의 비전 같은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물었건만 양자평은 흔쾌히 답했다.

“그리 어려운 건 아닙니다. 일반적인 내공심법은 정(精)과 기(氣)의 합일을 통해 기운을 몸 속에 저장하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영맥의 흐름을 읽는 건 기(氣)와 신(神)을 이용하는 겁니다. 내 모든 감각을 기운으로 뻗어 대지 아래 흐르는 영맥의 기운을 신(神)이 느끼게끔 하는 것이지요.”

양자평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태을진경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딱히 가부좌를 틀지도 행공을 운용하지도 않고, 그대로 기와 신의 합일을 이어갔다.

순간 오감이 확장되며 수많은 정보들이 마구 밀려들어 오기 시작했다.

비릿한 마물의 체액 냄새부터, 피부에 느껴지는 습한 공기.

관조되듯 보여지는 조원들의 모습과, 저 멀리서 들려오는 전투 소리.

그리고 입안에 아직 남은 찬물의 기운까지.

그렇게 오감이 불러들이는 정보가 지나간 이후에.

쏴아아아.

발밑으로 흐르는 거대한 물소리 같은 것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피부로 느껴지듯 시리고 차가운 기운.

아니, 그건 들린 게 아니었다.

보이고 느껴진 것이었다.

물이라 하기엔 너무도 가볍고 공기라 하기엔 무거운, 범접할 수 없는 크고 거대한 대지의 기운.

‘이것이었구나.’

드디어 묵림에 흐르는 영맥이 무엇인지 깨달은 순간.

나는 천천히 오감을 되돌렸다.

이제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봐야 하니까.

“……렇게 오 년을 수련하면 미묘하게나마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것이지요.”

마침 양자평은 설명을 계속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나는 그에게 태연한 목소리로 물었다.

“영맥을 느꼈습니다. 그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요?”

“…….”

말을 잇던 양자평이 못 믿을 이야기라도 들은 사람처럼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라고요?”

“영맥을 느꼈다고요. 이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

순간, 알 수 없는 불편한 정적이 흐르기 시작했다.

“거 표정이 왜 그러…….”

“…….”

뭐지 이 분위기는?

내가 또 뭘 잘못했나?

볼을 긁적거리며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대답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