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 <신령 사냥(2)>
“거……짓말하지 마시지요.”
양자평의 두 눈이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거짓말을 왜 합니까?”
“……영맥을 느끼기 위해선 부단한 시간과 노력, 그리고 스스로를 고통에 던지는 억겁의 인내가 있어야…….”
“아니, 느낄 수 있다니까요.”
나는 잠시 자리를 옮기면서 이야기했다.
“여기, 이만한 영맥이 흐르고 있고, 이쪽에는 가늘게 요만한 영맥이 흐르네. 아니에요?”
“……입문에만 삼 년이 걸렸는데…….”
넋이 나간 표정으로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만 중얼거리는 양자평.
더 이상 뭔갈 물어보기가 좀 뭐해서 스스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신기하네.”
양자평의 말대로 묵림의 영맥은 숲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공기처럼 상승할수록 희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 자체가 영맥이 머무는 그릇인 듯 땅속부터 나무 끝까지 균일하게 영맥의 기운이 느껴졌다.
‘숲 곳곳에 천연진이 생겨나는 이유가 달리 있었던 게 아니구나.’
동물과 곤충뿐만 아니라 나무와 풀뿌리마저도 영맥의 기운을 받는다.
그렇게 영맥의 기운을 받은 존재들이 중원에선 볼 수 없는 기현상을 만들고.
그 자리에 생기는 것이 천연진.
손을 뻗어 천연진에 집어넣자 공간의 뒤틀림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러니 길을 찾으려야 찾을 수가 있나.’
한 걸음 발을 내딛자 기현상은 더욱 확연하게 느껴졌다.
발밑의 영맥은 왼쪽으로 가라 하지만, 숲의 길 모양은 일직선으로 나 있다.
주어진 시각 정보대로 발을 내딛는 순간, 방위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방향 감각이 아예 뒤틀려 버리니 무공 수준의 높고 낮음은 무색해진다.
오직 영맥만이 방향을 알려주고 올바른 길을 가리킨다.
남권문만이 묵림을 관리할 수 있는 이유.
“…………말도 안 돼…… 거짓말…….”
여전히 현실 직시를 하지 못한 양자평이 멍하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때.
퍼퍼펑!
먼 숲속에서 커다란 폭발음이 들려왔다.
이전까지 계속 기합 소리나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오긴 했지만 이렇게 크게 들린 건 처음.
멍하니 있던 양자평도 자리에서 일어나 소음이 들린 곳을 바라본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허리춤에 달고 있는 두꺼운 줄을 풀어낸 양자평은 나무에 줄을 두르더니 빠르게 나무 위로 올라갔다.
‘허, 속도가 거의 비룡조를 쓴 것 이상으로 나오네.’
기이한 벽호공을 잠시 감상하고 있자니, 잠시 후 나무 위에 올라갔던 양자평이 내려왔다.
어안이 벙벙한 표정.
“아무래도…… 신령을 만난 듯합니다.”
그러더니 살며시 내 눈치를 본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가자고 하실까 봐…….”
내 참, 사람을 뭘로 보고.
아무리 영약에 미쳤어도 목숨이 위험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더구나 이곳엔 태을문의 사제들과 조원들까지 있다.
나는 고분고분한 태도로 고개를 내저었다.
“걱정 마십시오. 양 대협께서 분명 위험하다 하지 않았습니까. 사냥에 성공할 가능성도 낮고요.”
“……그렇지요.”
“그럼 양 대협을 믿겠습니다.”
“…….”
양자평은 혹여 내가 영맥을 읽게 된 후 사냥에 나설까 봐 마음을 졸였던 모양이다.
그의 편안해진 얼굴을 보며 다시금 물었다.
“진짜 위험한 거 맞지요?”
“…….”
“사냥하기 힘든 것도 확실하고요?”
“…….”
“분명 실패할 거예요. 그쵸?”
“…….”
어쩐지 초탈한 듯한 표정의 양자평.
그래도 확실한 게 좋은 거니까.
다시금 물었다.
“못 한다고 얘기해 줘요.”
#
모두가 잠든 밤.
슬며시 눈을 떠 불침번을 확인했다. 예정대로 은설란이 번을 서고 있었다.
내가 이 시간에 눈을 뜬 것도 바로 이 때문.
설란이는 그나마 기감이 제일 약하거든.
나는 몸을 뒤집었다.
그리고 기척을 최대한 죽이고 살금살금 기어가기 시작했다.
전쟁터에서 포복 전진을 했던 게 이럴 때 도움이 되다니.
마인 새끼들이 조금 고마워졌다.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머리를 쳐 부숴 줘야지.
그렇게 십 장 정도 움직인 이후에 몸을 일으켜 귀식행보를 펼치기 시작했고, 삼십 장이 지난 이후엔 천하독행신을 펼쳐 달렸다.
‘분명 저쪽이었지.’
땅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영맥의 흐름을 따라 낮 동안 걸어왔던 길을 되짚어간다.
가뜩이나 어두운 묵림에 밤이 오면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간간이 불빛을 내는 곤충들이나 날벌레들이 있을 뿐.
하지만 이런 점이 이동을 더욱 용이하게 만들었다.
시야에 혼란이 없으니 그저 영맥의 흐름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까.
그렇게 일각 정도 전력을 다해 도착한 곳엔 오후에 사냥했던 묵홍사 사체가 놓여 있었다.
“흐흐. 이제 알아서 올 수 있다 이 말씀.”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으로 움직여 양자평이 독단을 묻어둔 땅을 파헤쳤다.
약간의 흙을 걷어내자 불온한 녹광색 빛을 발하는 독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흐흐…….”
영맥을 읽을 수 있게 된 이후로 줄곧 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제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얼마든지 독단을 흡수할 수 있게 됐으니까.
더구나 청룡환을 활용하면 독단을 녹이기 위해 운기조식을 할 필요도 없다.
독단만 꿀꺽 먹고 가니 의심을 살 일도 없을 것이고.
‘소피 보러 갔다 왔다고 하지 뭐.’
그렇게 부지런히 움직인 결과 반 시진이 안되는 사이에 비홍사, 청음독각사, 독각괴룡, 삼색독와의 독단을 모두 흡수했다.
“이것도 횟수가 정해져 있는 건가?”
나는 왼손을 쥐었다 펴며 감각을 살폈다.
어쩐지 감각이 조금 떨어지는 기분이다.
손끝과 바닥만 마비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아마 시간이 조금 흘러야 감각이 되돌아올 듯했다.
그래도 조금 불어난 단전의 내공이 느껴지며 손으로 전해지는 무감각함은 아무렇지 않게 여겨졌다.
뭐, 감각 좀 없다고 손을 못 쓰는 것도 아니잖아?
대신 내공이 그득하면 상대의 대가리를 더 쉽게 박살 낼 수 있으니까.
“후후후.”
신령에 대한 아쉬움은 이것으로 어느 정도 채워졌다.
그래, 위험한 짓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안전하게 내공을 늘리는 게 낫다.
퍼퍼퍼펑!
저 멀리 숲속에서 폭음과 함께 한순간 빛이 번쩍인다.
“…………그래, 안전 제일. 안전 제일.”
양자평의 말이 맞다.
신령은 사냥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 저놈들이 펼치고 있는 꼬라지만 봐도 그렇지 않나.
벌써 숲 전체를 울리는 폭음이 사흘째 계속되고 있다. 그것도 밤낮없이.
분명 사냥 중에 천연진에 갇혀 길을 잃은 이들도 있을 것이고, 깊은 부상을 당해 목숨이 위기에 처한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신령 때문에 차마 사냥을 그만둘 수는 없었겠지.
“…………그래, 이게 맞아. 이게 맞는 거야.”
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을 겨우 되돌려 일행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퍼퍼퍼퍼펑!
어쩐지 천하독행신을 펼칠 기분은 아니라서 그냥 천천히 걸었다.
돌아가는 길 또한 영맥의 흐름을 되뇌며 걸음을 내딛고 있었는데. 이 덕분에 신령 사냥 하는 소리에 대해선 금방 신경을 끌 수 있었다.
“진짜 지랄 맞은 숲속이네.”
분명 아까 왔던 길을 그대로 걷고 있건만, 아까와는 또 다른 길로 변해 있었다.
더구나 내가 오면서 냈던 칼질의 흔적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과연 영맥의 흐름을 읽지 않고 이 숲속을 나가는 것이 가능한지 궁금할 지경.
나는 내공을 이용해 신(神)감을 끌어올렸다.
머리에 부담은 가지만 이렇게 하면 영맥이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양자평에게 이에 대해서 물어볼까 했지만 관뒀다.
왠지 모르는 눈치였거든.
영맥에 대해서 물어볼 때마다 뭔가 회의감을 넘어서 곧 울 것 같은 표정이기도 했고.
삼 년이나 걸리다니, 난 바로 되던데 쩝.
이윽고 은은하게 느껴지던 영맥들이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 있지만 묵림 전체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음이 전해진다.
보지 않음에도 볼 수 있다는 감각이라니, 참으로 신기하기 그지없다.
그렇게 영맥을 살피면서 걷고 있는데, 오는 길에 보지 못했던 작은 별 같은 것이 땅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뭐지?’
천천히 다가가 보니 영맥의 기운이 보석처럼 옹기종기 모여 빛을 내뿜고 있는 게 아닌가.
영맥 읽기를 관두자 묵림을 가득 채우던 영맥의 기운이 사라지며 모여 있던 빛도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별처럼 빛나던 그 자리엔, 산수유처럼 생긴 열매가 놓여 있었다.
“흐음…….”
문득 양자평의 말이 떠오른다.
[묵림의 존재들은 대부분 독을 품고 있기에 아무거나 처먹…… 아닙니다.]
뭔가 말을 하다 말았던 양자평.
아마도 독에 대한 경고를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뭐, 이미 독 내성 작업을 하고 있던 내겐 크게 와닿는 이야기도 아니고.
“후후…….”
나는 청룡환으로 열매 하나를 흡수했다.
‘오오.’
손안에 따뜻한 기운이 밀려들며 단전에 흡수된다.
독단 특유의 찬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거 먹을 수도 있겠는데?’
다시금 열매 하나를 떼어내어 입에 넣자, 잠시 뒤 뜨끈한 기운이 뱃속에서 서서히 솟아올랐다.
중원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영약과 같은 효과.
“하긴 묵림의 영맥이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치는데, 이런 영약도 분명 있겠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땅속에 파묻힌 존재들에게서 빛이 나는지 살피며 조원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산삼이나 하수오 같은 영약은 주로 땅속에서 자라나니까.
‘없네.’
꽤 긴 거리를 주의 깊게 살피며 걸어왔지만 산삼이나 하수오는 한 뿌리도 발견하지 못했다.
새삼 묵림이 참 거지 같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수유 열매 같은 곳엔 영맥이 깃드는데, 그 흔한 산삼이나 하수오에는 영맥의 힘이 깃들지 않다니.
뭐 이런 제멋대로인 숲이 다 있나.
아무튼 그런 불만도 잠시.
귀식행보를 펼쳐 조심스레 야영지로 돌아갔는데.
“어딜 다녀오십…….”
“흐억, 깜짝이야.”
“……왜 그리 놀라십니까.”
양자평이 어둠 속에서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젠장.’
귀식행보의 유일한 단점. 기척은 숨겨도 모습은 숨기지 못한다는 것.
“아…… 하하, 잠시 소피를…….”
“은신술을 펼쳐 가면서 말입니까?”
“아! 혹시나 다른 사람이 깰까 봐.”
이 정도면 남을 배려하는 학관 대표의 모습으로 비춰지지 않겠나?
“……한 시진 동안이나 말입니까?”
어라?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고?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양자평의 목소리가 더욱 낮게 깔린다.
“어딜…… 다녀오시는 길입니까?”
양자평이 한 걸음 성큼 다가왔다.
매번 안전을 두고 몇 번이나 경고를 했던 만큼, 내가 마음대로 묵림을 돌아다닌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
흐음…… 이걸 뭐라 설명한다.
독단을 흡수하러 갔다 왔다고 할 수도 없고.
‘아!’
때마침 품 안에 넣어온 산수유 열매가 생각났다.
“사실 낮에 이걸 봐서, 따러 갔다 오는 길이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영맥의 기운이 어린 열매인 것 같습니다. 내공 증진에 조금 도움이 되는 것 같고요.”
“……그걸 굳이 밤중에 따러 가셨단 말입니까?”
하긴 말이 안 되지. 낮에 따도 될 걸 굳이…….
하지만 거짓말이 일상이었던 소정대에서 근무했던 경력이 얼만데, 겨우 이 정도 위기도 극복하지 못한다면 말이 안 되지.
“사실, 애들 눈을 좀 피하고 싶어서 말입니다.”
“어째서지요?”
더욱더 의심하는 눈초리가 된 양자평.
“그간 좁쌀만 한 영단이긴 하지만 그래도 양 대협은 하나도 안 드셨지 않았습니까.”
“…….”
양자평은 마물 사냥에 도움을 주지 못했던 만큼 자신은 매번 영단을 먹는 순번에서 빠졌었다.
때문에 나는 그 점을 공략했다.
의심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다른 의심을 품게 만드는 것 아니겠나.
“애들 눈치 때문에 못 드시는 것 같아서 일부러 밤에 이리 움직였습니다.”
“…….”
양자평의 사나운 눈초리가 어쩐지 미묘하게 꿈틀거린다.
“저희 때문에 고생하시는데 이런 거라도 제가 챙겨드려야 하지 않을까 해서.”
그리고 이내 부드럽게 바뀌었다.
“……전, 괜찮습…….”
“에헤이, 사람 정성이 있는데…….”
“아니, 그래도…….”
“제 정성을 자꾸 무안하게 만드실 겁니까?”
거참, 사양은 접어두고 드시라니까.
앞으로도 난 밤에 계속 움직여야 하니까.
차라리 양자평이 모른 척 넘어가도록 만들어 버리는 쪽이 더 나았다.
“……그, 그럼 하나만 먹어 보겠습니다.”
긴가민가하던 그가 열매 하나를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그러곤 이내 느낌이 오는지 눈을 번쩍 치켜떴다.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운기조식 하시죠. 애들 깨겠습니다.”
갈등하던 양자평이 이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았다.
이는 곧 앞으로 독단을 계속 흡수해도 된다는 허락이기도 했다.
#
우리는 드디어 마경에 들어섰다.
확실히 마경에 들어서자 나타나는 마물의 숫자가 더 많아졌다.
그래도 크게 문제는 없었다.
이제는 반 묵림인이 된 조원들이 숙련된 솜씨로 사냥을 하고, 배를 갈라 독단을 제거한 뒤 영단을 나눠 먹었으니까.
그 외엔 딱히 특별할 게 없었다.
본래라면, 영맥의 힘이 더 강해지면서 길 찾기가 더 어려워져야 하지만.
“이쪽입니다.”
우리 조에는 양자평 말고도 영맥을 읽을 수 있는 이가 한 사람 더 있으니까.
“은호야.”
“네, 대사형.”
“나 좀 대단하지 않으냐.”
“…….”
양자평이 헷갈려하는 곳에선 내가 도움을 주었고, 덕분에 마경 내에서도 탐사 속도는 그리 줄지 않았다.
“……그나저나 소란스런 소리가 멎었네요.”
남궁선화가 한쪽 숲속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나흘 밤낮을 울리던 소리가 어느 순간 뚝 멈추고, 더 이상 아무런 소음도 들려오지 않았다.
“……괜찮으신 거죠? 공자님.”
남궁선화가 왠지 나에게 질문을 해왔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아, 아, 안 괘, 괜찮을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아?”
“…….”
나 안 아파, 배 하나도 안 아프다고.
요식행위에 불과하지만 차차 마경의 지도도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이게 다 완성이 되면 묵림에서 할 일은 끝이니까.
이제 돌아가서 주둔지에서 남은 일수를 채운 다음에 학관으로 돌아가면 끝.
“티끌 모아 태산이라더니…… 이렇게 모으니까 진짜 양이 꽤 되는 것 같네요.”
마물에서 나온 영단들과 밤중에 내가 모은 열매들을 나눠 복용한 이들은 나름 만족스런 내공 증식을 이뤄냈다.
‘뭐, 그래도 나에 비하면 별것 아니겠지만.’
새삼 청룡환이 이질적인 존재임을 절감하는 게, 난 영단이나 열매를 하나도 먹지 않았지만 이 중에서 가장 많은 양의 내공을 증식해 냈다.
그렇게 밤이 되어 야영지를 만든 후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스르륵.
숲속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조원들 모두가 일제히 무기를 들고 경계를 취했다.
이어 잠시 뒤, 익숙한 얼굴이 수풀을 헤집고 나타났다.
“……교관님?”
성모란이 노진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며칠 전 보았던 노진하 교관과는 몰골이 사뭇 달랐으니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한쪽 눈엔 붕대가 감겨 있고, 얼굴에는 깊은 화상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는 독한 표정으로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이곳에 신령이 왔느냐?”
이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래?
“설마 네놈들이 신령을 사냥한 건 아니겠지?”
노진하와 그 일행이 나를 노려봤다.
“말해라, 진소운. 신령을 잡은 것이냐?”
“뭔…… 개 같은…….”
내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사련이 성큼 앞으로 나섰다.
“저희들은 신령 같은 건 보지도 못했어요.”
“거짓말은 용서치 않는다.”
“왜 굳이 거짓말을 하죠? 잡았다면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저희에게도 나을 텐데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사련의 말에 입술을 움찔거리던 노진하가 콧방귀를 뀌고는 돌아섰다.
“하긴 태을문의 잡졸 따위가 신령을 사냥할 수 있을 리 없겠지.”
그렇게 개소리를 지껄이곤 금세 수풀 사이로 사라지는 노진하.
성모란이 작게 감탄하듯 말했다.
“신령 사냥이 녹록지 않았나 보네요.”
“그러게요. 지금 교관들이면 다들 맹에서 당주급 이상의 인원들일 텐데…… 정도회의 인원들도 많이 동원되었고요.”
나 또한 그녀들의 말에 동의하며 안도했다.
만약 신령 사냥에 나섰다면 저 피해를 고스란히 우리가 떠안았을지도 모를 테니.
“만약 신령 사냥 중에 사상자가 발생했다면 교관들도 책임을 면치 못할 텐데…… 괜찮을까요?”
성모란의 말에 나는 흐뭇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걸 왜 우리가 신경 쓰겠습니까?”
원래 자기 삽질은 자기가 책임지는 거다.
#
다시 묵림에 어둠이 내리고.
나는 천천히 기척을 죽인 후 자리에서 벗어났다.
매번 한 시진마다 일어나는 양자평은 내가 자리를 벗어난 사실을 알아차리겠지만 이젠 크게 상관이 없어졌다.
내가 매번 구해 오는 열매로 그의 입은 걸쇠보다 더 단단하게 닫혔으니까.
마경에 들어온 뒤로 나오는 마물이 많아진 탓에, 주둔지 근처 묵림에 있을 때보다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지만 크게 힘들진 않았다.
그만큼 더 많은 독단을 흡수할 기회이기도 했으니까.
주둔지로 가게 되면 아무래도 보는 눈이 많아 밤에 돌아다닐 수 없을 터.
그러니 지금이 내공을 모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그렇기에 나는 손에서 감각이 아예 사라질 때까지 총 여덟 개에 달하는 독단을 모두 흡수하고, 태연히 조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마경에는 열매가 별로 없군.”
당최 제멋대로 자란 듯한 이 묵림엔, 일관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영맥의 힘은 더 강한데 되려 영맥의 힘을 머금은 열매는 없다.
그래도 신감을 최대한 키워서 샅샅이 마경을 살피고 있는데.
화르륵.
환한 불길이 어둠 속에서 강렬히 빛나고 있는 게 아닌가.
“응?”
순간 나는 헷갈렸다.
지금 내가 감지하고 있는 건 어디까지나 영맥의 흐름이니까.
불길 같은 게 보일 리가 없는데…… 어째서 횃불 같은 것이 빛나고 있는 걸까?
신감을 가라앉히자 횃불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설마.
순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 이 정도의 영맥이라니…….’
나는 귀식행보를 최대로 펼쳐 영맥의 횃불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지근거리에 다가가 그 정체를 확인하려 신감을 가라앉히는 순간.
화르륵.
인간 형상의 무언가가 거대한 불길을 몸에 휘감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어어어!
일반적으로 알려진 원숭이의 몇 배는 되는 크기의 존재.
그 원숭이가 온몸에서 불길을 내뿜으며 살벌한 눈으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어라?”
네가…… 왜 여기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