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338화 (338/357)

338. <절망(2)>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누군가의 물음에 생존자는 그의 어깨를 부여잡고 피를 토했다.

“진소운만 죽으면…… 진소운만 죽으면……!!!!”

덜덜덜덜덜덜.

피거품을 물고 격렬하게 몸을 떨던 생존자.

어느 순간 우뚝 멈춰선 그의 신체가 마치 줄이 뚝하고 끊어진 나무인형처럼 뻣뻣하게 바닥으로 쓰러졌다.

“…….”

“…….”

“…….”

소름 끼치는 일련의 사태에 사위에는 무거운 정적이 가라앉았다.

생존자를 지켜보던 이들은 숨소리마저 죽인 채, 하나둘 시선을 옮긴다.

‘하아.’

무거운 시선이 내게로 쏠린다.

입을 꾸욱 다문 채로 복잡한 감정을 담아 응시한다.

아마 본인들도 모를 것이다.

그 감정 속에 원망, 질책, 원한, 의문, 살의, 후회, 분개, 부정 등의 온갖 감정이 혼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고인 감정은 언제든 출구를 찾아 쏟아져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안 좋게 흘러가는군.’

인간이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겪을 때 필사적으로 그 이유를 찾는다.

누구든, 어떤 의미든, 어떤 원인이든 상관없다.

어떤 이유라도 갖다 붙여야만 실체 없는 공포감에 무력하게 휩싸이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렇기에 평생 탕마멸사를 외치며 도의 극한을 좇는 이들이 신령의 저주라는 말도 안 되는 개소리에 격렬하게 반응하고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무인이기 전에 그들 또한 모두 인간이고, 인간은 본디 그런 동물이니까.

이런 혼란이 길어진다면.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채로 시간이 흘러간다면.

생존은 더더욱 어려워진다.

잘못된 정보의 전달로 원한이 나에게로 쏠리는 건 더더욱 맞이해선 안 되는 상황이고.

지금은 잘못된 정보를 정정하고 정확한 현상을 파악하는 것만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다.

빨리 녀석들을 정신 차리게 해야 하는…….

“갈!!!!”

씨바, 깜짝이야.

와, 방금 고막 터질 뻔.

이 대머리는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말도 안 되는 소리외다!!!”

얼이 빠져 방금 전까지 뭔 말을 해야 하나 잠깐 말을 잊은 사이.

일각 이 대머리가 사자후를 계속 내질렀다.

“진 시주가 죽어야 우리가 산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

우리가 산다……?

아니, 그런 소리는 하지 않았다.

“이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란 말이오! 진 시주가 이번 사태의 원인일 리 없지 않소!”

원인……?

그런 소리도 안 했어, 이 대머리야 왜 자꾸 사족을 붙여!

“자, 잠깐 일각…….”

“가만히 계시셔 보시오, 진 시주!”

지금 미륵삼천해로 내 손을 막은 거야?!

소림사 최고의 금나수를 이렇게 견식하다니. 감개무량하네.

“공자께서도 절대 괴력난신을 언급하지 않으셨소. 무도를 익히는 우리 또한 세상의 삿되고 혼란스러운 것을 타파하기 위해 매일매일을 정진하고 있지 않습니까! 근데 인신공양이라니요!!!”

“…….”

일각은 맨들맨들한 두피까지 붉게 물들이며 말했다.

“세상에…… 인신공양이라니…… 이 얼마나 야만적이고 비이성적인 방법입니까! 더구나 진 시주를 인신공양한다 한들! 우리가 살 수 있다는 증좌라도 있답니까!”

“그, 그…… 혹시 모르는 거 아닌가?”

지랄났다.

아주 염병들을 하네.

“설사 인신공양으로 모든 일이 해결된다 한들!!!”

척!

별안간 일각의 손가락이 내게로 향한다.

……이 대머리가 누구한테 삿대질이지?

“진 시주가 순순히 받아들일 것 같습니까!!! 교관들의 압박에도 그들을 정면으로 받아버리는 이 미친…… 아니, 인간이! 흑도의 왈패들도 한 수 접어주는 흑염룡이! 정말 순순히 인신공양의 대상이 되어줄 거라 생각하냔 말입니다!”

와, 일각이 이렇게 말 잘하는 줄 알았으면, 진작 대변인 시킬걸.

저 봐, 혼란으로 정신이 혼미하던 눈깔들이 아주 살기를 등등하게 띠고 있네.

“더불어!!! 저는 절대 진 시주를 인신공양하는 일을 돕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더 나아가 여러분들이 합공하는 것을 최대한 방해할 것입니다.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행위이니까요!!!”

“…….”

“…….”

다시금 사위로 정적이 내려앉았지만, 역설적으로 장내의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이유를 찾던 놈들이 이젠 나를 어떻게 제물로 바칠지 고민하기 시작했거든.

나는 붉게 달아오른 일각의 머리통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했냐?”

“진 시주! 걱정 마십시오. 내가 그대의 곁에서 끝까지 그대를 지킬 테니!”

“다했냐고.”

“어, 어찌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오. 내가 뭘 어쨌다…….”

“닥치고 나와.”

“…….”

대머리의 어깨가 추욱 처졌다.

이번엔 대머리가 흔들어 놓은 학관생들을 깨울 차례.

나는 일각의 앞으로 나선 후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짝.

내공을 가득 담은 손뼉 소리에 학관생들이 움찔거렸다.

“여기 대머리 말대로 날 제물로 바칠 생각 있는 놈들 있어?”

“…….”

스르릉.

동시에 적광검을 꺼내어 내기를 불어넣었다.

끄아아아아아악!

연원을 알 수 없는 소름 끼치지는 비명과 함께 검신의 중앙에서 붉은빛이 쏟아져 나왔다.

“난 순순히 죽을 생각 없거든. 이 숲속에서 우릴 죽이려는 놈들에게 죽든지, 내 손에 죽든지 하나를 선택해.”

척.

챙.

채챙.

내 말이 끝나자마자, 우리 조원들이 일제히 내 뒤에 서며 병장기를 꺼내 들었다.

피부를 따끔하게 하던 살기가 조금씩 옅어지고, 나를 죽일 듯 노려보던 학관생들이 하나둘 눈을 피하기 시작했다.

“뭐 해? 덤비지 않고!”

“…….”

내가 한 걸음 다가가자 두 걸음 뒤로 물러나는 학관생들.

그때, 학관생들 사이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 대표. 그만하지. 지금은 장난칠 때가 아니니까.”

학관생들이 목소리의 주인을 위해 자리를 비켜섰고, 그 사이로 종추악이 걸어나왔다.

“이곳에 진 대표를 인신공양하러 나설 이들은 없다는 사실을 알지 않는가.”

그거 아닌 거 같은데.

얼굴 벌게지면서 시선 돌리는 꼬락서니가 어떻게든 날 말뚝에 박아 올리고 싶은 표정인데.

이윽고 종추악이 매서운 눈초리로 뒤를 돌아보았다.

“천하의 무림학관에 소속된 자 중에 그런 멍청한 소릴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된단 말인가!”

종추악의 말에 학관생들이 하나둘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방금 머릿속으로 떠올린 생각이 얼마나 멍청한지 깨닫고선 얼굴을 붉히는 자도 있었고.

몇 놈을 패놔야 정신을 차릴 줄 알았는데, 종추악의 말 몇 마디에 금방 이성을 찾았다.

물론 그 광경이 그리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소속을 넘어서는 소통은 결국 모두가 망한 다음에나 시작되는가.’

나에겐 그것이 또 다른 벽처럼 보였으니까.

“일단, 일단은 좀 쉽시다. 다들 꼴이 말이 아니지 않소.”

종추악의 말대로 전투가 끝난 지 반나절도 되지 않은 시간.

또 다른 피를 보기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나 피곤한 상태였다.

“그, 그러지.”

“사실 아까부터 너무 졸렸어.”

“누구 금창약 가진 사람 있소!”

모여 있던 이들이 하나둘 흩어졌다.

무림학관에서처럼, 묵림에 올 때처럼, 전투 때처럼, 각자 자신의 세력을 나눠서 저들끼리 모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무래도 이곳에서……다 죽겠군.”

“뭐가 말입니까?”

검을 뽑은 채 아직 경계하고 선 은호의 물음.

나는 고개를 무겁게 내저었다.

“왠지 어디서 본 그림이다 싶거든.”

이번 생이 아닌 전생의 기억.

“……근데요?”

너무도 익숙한 광경.

나는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나직이 대답했다.

“그들 모두 죽었다.”

“…….”

아무리 꾹꾹 누르려 해도 절망적 기억은 선명하게 도드라졌다.

#

첫 번째 생존자가 나타난 이후로, 다시금 정찰조를 구성해 주둔지 주변을 탐색하려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화산의 제자들이다!”

곧바로 두 번째 생존자들이 나타났고.

“초 형!”

또다시 세 번째 생존자들이 나타났으니까.

이후에 귀환한 생존자들 입에선 나를 죽여야 한다는 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대부분 정신이 나간 듯 멍한 상태로 주둔지로 돌아왔다.

“……진 시주, 정말 정찰조를 보내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생존자들이 하는 말의 진위도 확인해야 할 텐데요.”

생환한 이들이 공통적으로 중얼거렸던 말은 ‘포위’였다.

“아마 포위당했다는 말은 확실할 거야.”

“……왜 그리 확신하십니까?”

총집결의 신호탄을 쏘긴 했지만, 그 신호탄을 보고 주둔지로 돌아올 수 있었으리라곤 생각지 않는다.

애당초 길잡이가 있었다면 신호탄이 쏘이기 전에 모였을 것이고, 길잡이가 없는 상황에서 신호탄만을 보고 찾아오기엔 묵림은 너무도 험한 환경이지 않은가.

나는 턱 끝으로 생환자들을 가리켰다.

“저들이 돌아왔으니까.”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으로 앉은 학관생들.

누더기로 변한 옷가지와 무인에게 무가지보인 무기마저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 모습을 함께 응시하던 일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포위와 무슨 상관입니까?”

“일각, 천연지 경험 안 해봤어? 길잡이 없이 그걸 통과해서 길을 찾는다는 게 가능할 것 같아?”

연기를 코앞에 두고도 길을 찾지 못했던 정도회 인원들이 떠오른다.

“여기까지 왔단 건, 다른 이들이 이끌어 줬다는 말이야.”

“이끌어 주다니요……. 대체 누가 말입니까?”

“누구긴 누구겠어.”

“…….”

“우릴 죽이고 싶은 놈들이지.”

일명 ‘시체 던지기’.

마기와 살기에 절여져 정신이 나간 포로를 상대측 진영에 귀환시켜 부대 내부에 혼란을 야기한다.

“진 시주……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적의 정체에 대해 상상조차 못 할 일각의 입장에선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처사일 것이다.

그의 사고방식 근본에는 ‘상식’이라는 바닥이 존재하니까.

굳이 죽일 사람을 적진에 생환시켜 두 번 죽일 수고를 감수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을 터.

나는 턱짓하여 주변을 가리켰다.

“굳이 이해할 필요 없어. 저길 봐봐.”

간밤의 기습에서 살아남았다는 기쁨도 잠시, 이미 주둔지에 모여있던 학관생들은 하나둘 돌아오는 생존자들의 상태를 보며 자신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인지해 버렸다.

“흑…… 흐흑.”

고고한 자존심을 부리던 이들이 어린애처럼 눈물을 흘리고.

“이거 내 꺼야! 당장 내놔!”

“그건 공동물품이야…… 놔둬!”

당장 눈앞의 생필품에 눈이 돌아가 칼부림을 서슴지 않는다.

“우, 우리 살아갈 수 있겠지? 그렇지? 무림맹에서 우릴 보호해 줄 거야……. 안 그래?”

세상 무서울 것 없던 이들은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기습으로부터 딱 하루가 지났는데, 인원들이 이렇게 개판이 되어버렸어. 네가 보기엔 어때? 며칠 뒤면 더 쉽게 죽일 수 있지 않겠어?”

“…….”

이 상태로 며칠만 더 지나면, 착란을 일으키는 이들이 더 많아질 것이고, 필시 사람들 사이에선 칼부림이 일어날 것이다.

높은 육체적 성취가 곧은 정신적 상태를 담보하진 않으니까.

‘특히나, 사문의 투자로 몇 단계나 건너뛰며 훈련받은 학관생들이라면.’

뛰어난 오성으로 발탁되어 벌모세수와 갖은 영약을 받아, 노력 대비 높은 성취를 쉽게 이룬 이들은.

한 줄로 쌓아 올린 돌탑 수준의 심계 밖에 가지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위태한 돌탑은 작은 충격에도 충분히 떨어져 내려 버린다.

“움직여야 해.”

“……어디로 말입니까?”

“어디긴 어디야. 묵림을 나가야지.”

“……하지만 다들 움직이기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더구나 교관을 기다리고자 하는 이들도 많고요.”

이미 나왔던 이야기의 반복.

하지만 나는 안다.

교관들은 아마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살아있었다면, 주둔지로 돌아왔을 것이고.

밖으로 도움을 요청하려 한다 해도 최소한 몇의 인원이라도 이곳에 남겨두지 않았겠는가.

오지도 않을 사람을 기다리며 시간 낭비하는 것은 그나마 남아있는 생존 가능성마저 버려버리는 것이다.

“이대로 다 죽을 수도 있는데?”

머뭇거리던 일각이 잠시 생각 끝에 입을 열었다.

“……그래도 최소한 부상을 치료할 시간은 필요합니다. 모두를 들쳐메고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

나는 대답하는 대신 조원들을 바라봤다.

다른 학관생들에 비해 멀쩡한 모습.

아마 묵림 내에 한해선 정도회의 인원들보다 더 훌륭한 기량을 보여줄 것이다.

나는 무림정시 때를 생각하며 저들만을 데리고 탈출할 방법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마교를 상대했던 수많은 별동대들이 펼친 작전들.

그 성공과 실패를 분석하여 우리 조원이 마교의 포위망을 뚫을 수 있는 확률을 계산한다.

의식 속으로 침잠하니 주변 소리도 모두 차단된다.

“……시주.”

끝없이 머릿속으로 회로가 돌아간다.

하지만.

실패, 실패, 실패, 실패.

머릿속으로 구상한 모의 작전 모두가 경고의 신호를 보낸다.

“……진 시주!”

나는 잠깐 고개를 들어 시끄러운 대머리를 바라봤다.

“……나도 알아. 지금 당장 움직일 수 없다는 것 정도는. 그래도 최대한 빨리 움직여…….”

그때.

등골을 타고 싸늘한 소름이 느껴졌다.

일각도 느꼈는지 두 눈이 부릅떠졌다.

“!!!”

“!!!”

느린 연기가 흩뿌려지듯 발치에 슬며시 차오르는 꺼림칙한 느낌.

그것은 다름 아닌 살기였다.

“지, 진 시주 이건…….”

이런 류의 환경 변화가 나타내는 것은 단 하나.

“처, 천라지망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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