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341화 (341/357)

341. <사활(2)>

학관 대표단의 임원 남궁선화.

현재로선 진소운 조원으로 활동하는 그녀는 동료들과 함께 주둔지 중심에 있었다.

진소운을 매번 따라다니기엔 그의 활동량이 너무 많았으며, 그렇게 움직였다간 피로를 회복할 틈도 없을 테니까.

‘대체 체력이 얼마나 좋은 거지?’

단지 체력이 좋고 내공이 많다 해서 가능한 일은 아니리라.

인간의 신체란 자고로 아무리 뛰어난다 한들, 그 한계가 있지 않던가.

신검(神劍)이라 불리는 그녀의 할아버지도 잠을 자지 않고 수련하면 눈에 띄게 수척해진다.

진소운이라고 피곤하지 않을 리 없었다.

그저 참아내고 있는 것이겠지.

“선화 누님, 조심하세요.”

남궁선화는 물건들을 쌓아 그 위를 밟고 올라서서 정도회 진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관찰했다.

뭘 하는지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먼 거리였지만, 이 중 가장 많은 내공을 지닌 자신이라면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는 정도는 대략이나마 들을 수 있을 테니까.

“선화야 뭐래?”

“포위망을 뚫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런데 부대를 만들겠다는데요?”

남궁선화는 단편적으로 들리는 말소리들을 동료들에게 전해주었다.

하지만 워낙 뜬금없는 이야기 파편들이었기에 그 내용이 제대로 전달될 리 없었다.

“부대? 그게 무슨 소리야……? 각자 도생하자는 거야, 지금 이 순간에? 정도회 놈들 미친 거 아냐? 지들만 살겠다고?!”

“아니요. 이야기를 꺼낸 건 진 공자님 쪽이에요.”

“엥?”

뜨문뜨문 들려오는 말소리.

남궁선화는 그 조각들을 놓치지 않으려 더더욱 귀를 기울였다.

“공자님이 조건을 내걸었어요.”

“무슨 조건?”

“상명하복이요.”

“……대체 무슨 생각이야, 누가 그걸 따른다고…….”

각자 자신의 사문, 가문, 그리고 동맹 등이 있는 만큼 복잡한 상관관계가 얽힌 집단이다.

누구 밑에 들어가는 것도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도, 모두 복잡한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야만 선택할 수 있을 터.

더구나 그들의 자존심은 쉽게 구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생각해도 불가능해 보이는 일.

그런데.

“그래도 의견이 안 맞는 사람과 함께 헤쳐나가는 것보단 낫겠죠.”

저도 모르게 오히려 잘된 일인 양 말했다.

평소와 다른 행동이었다.

그녀는 헛된 희망 같은 것에 기대를 품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래도.

‘진 공자님이라면 뭔가 계획이 있는 거겠지.’

지금껏 그래왔듯.

그때.

“어?”

“왜? 무슨 일이야?”

불완전하지만 그 뜻만은 확실히 알 수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각 스님이 함께하겠다는데요?”

결의에 찬 그의 목소리.

“응? 그 양반이 왜? 정도회는 분명 그 사람을 중심으로 뭉칠 텐데…….”

“모르겠어요. 진 공자님과 얘기를 하다 진 공자님의 명령을 받들겠다고 했고, 그 때문에 지금 정도회가 난리예요.”

잠자코 듣고 있던 모용재화가 반색하며 외쳤다.

“그럼 잘된 거네요? 남궁 누님!”

“어, 그건 그런데…….”

남궁선화는 얼떨떨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 소림사의 일각이 정도회를 이끄는 게 아니라 진소운의 밑에 들어오다니.

‘정도회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이런 조건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을 텐데…….’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일각 스님이 왜 우리 쪽에 붙기로 결정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성모란에게 묻자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진 공자는 특별하니까. 그건 선화 너도 잘 알잖아.”

“특별함……때문이라고요?”

확실히 특별하긴 하다. 그가 보여주는 것들은 보통의 백도 무사들이 보이는 행실이나 사고방식과는 다르니까.

하지만 그것만으로 설명이 된다는 말인가?

“지옥이 열렸잖아. 흑염룡을 찾는 건 당연한 일이지.”

남궁선화는 문득 술자리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용봉이 구름 위를 노닐 때.

흑염룡은 지옥에서 포효한다.

현 용봉지회와 비교하면 그 행보 하나하나가 고된 길 위를 걷는 진소운을 조롱하는 소문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학관 정시에서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마령고원에서의 은혜를 갚기 위해 진소운 일행을 도우려 합류했지만.

‘도움을 주기는커녕 되려 도움을 받아 본래 예상했던 것보다 더 높은 점수로 학관에 입학했지…….’

그 이후에도, 어려운 상황을 맞닥뜨린다 할지라도 진소운과 함께라면 당연하게 그 역경들을 헤쳐나왔다.

“우리만 봐도 그렇잖아. 사실 너나 나나 백도회에 있어야 하는데, 너무 당연하게 여기서 자리를 지키고 있잖아?”

“……맞아요.”

남궁선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어느샌가 이곳에 있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만약 진소운에게 어떠한 특별함도 느끼지 못했다면, 남궁세가의 직계인 그녀가 태을문의 제자 밑에 있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상황도 그렇다.

밀려드는 천라지망의 살기로 인해 좌절하고 절망하던 학관생들을 하나둘 일깨워 내지 않았던가.

그가 이 자리에 없었다면 자신들끼리 우왕자왕하다 결국 모두 죽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 조심스레 은호가 끼어들었다.

“그냥…… 대사형한테 사기당한게 아닐까요? 워낙에 말주변이 좋은 양반이니.”

“…….”

“…….”

이상했다. 분명 반박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입이 열리지 않았다.

성모란과 남궁선화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어쩐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던 것이다.

“대사형이라면 충분히…….”

“크흠…….”

다시금 정도회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린 남궁선화.

갑자기 그녀의 미간이 잔뜩 일그러졌다.

“응? 왜 그래?”

성모란의 물음에 남궁선화가 떠듬떠듬 대답했다.

“부대에 들어오겠다는 사람을 진 공자가…… 걷어찼어요.”

“에?!?”

“역시 대사형이네요.”

“그리고…… 욕을 하는데요?”

“아니, 함께하겠다는 사람에게 왜 욕을 하는데?!”

“대사형이니까요.”

“시끄러 이은호!!!”

남궁선화는 더더욱 집중해 상황을 파악하려 해보았으나.

“그건…… 모르겠어요.”

“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은 거야.”

성모란의 투덜거림에 다들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스스로가 그렇게 행동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지만.

그때, 남궁선화의 얼굴 위로 오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런데…… 걷어차인 사람이 다시 들어오겠대요.”

“응?”

“명령을 따르겠다고.”

성모란의 입이 떡 벌어졌다.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그것이 시작이었다.

[나도 명령에 따르겠소! 데려가 주시오.]

[시키는 건 뭐든지 하겠소.]

[어차피 대표님 아닙니까. 따르게 해주십시오.]

[하긴 대표와 학관생들은 무림맹에 가도 한 직급 정도 차이가 나니 상관없겠지.]

그 고고한 자존심을 부리던 사람들이 진소운을 따르기 시작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욕을 해대고 손가락질하던 이들이 마치 엄마를 잃어버릴까 겁먹은 아이처럼 필사적으로 그의 뒤를 쫓고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조금도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그게 본래의 모습이었던 것처럼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자신도 모르게 엷은 웃음이 입가에 스며든다.

“우리가 이상한 게 아니었네요.”

“아니지, 선구안이 있었던 거지.”

밝은 낮에는 보이지 않는 별처럼.

난세와 혼란이란 어둠 속에서 그 진가를 드러내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명령만 제대로 따라라. 그럼 너희가 발버둥 칠 수 있도록, 무엇이라도 할 테니까.]

사람들은 ‘영웅’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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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소운의 명령에 따르겠다는 인원이 절반을 넘어서자 남은 이들에게도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남권문이 진소운을 따라가겠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 사람들은 우리 학관생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인데…… 한 사람에게 다 가버린다니요……!”

“그래서 가는 거랍니다. 진소운이 학관 대표니까. 교관이 없는 상황에선 결국 최종 결정권자 아니겠습니까.”

자신들끼리 뭉쳐서 뭔가를 해보려 해도 이미 글러 먹은 지 오래다.

일각이 가장 먼저 진소운 밑으로 들어가면서 소림사와 그 속가 문파들가 진소운의 밑으로 들어갔고.

버림받은 무당과 공동, 제갈가와 악가의 인원들이 모두 진소운을 택하면서 정도회도 백도회도 자신들끼리 뭉치기 애매해진 상황.

이쯤 되자 결국 눈치를 보던 이들이 하나둘 진소운의 부대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진소운은 기다렸다는 듯, 들어오겠다는 이들을 갈가리 찢어서 각기 다른 조에 배치했고, 부대는 이전에 단 한 번도 구성되지 않았던 형식으로 짜여졌다.

정도회와 백도회, 12봉성의 인원들이 서로 혼재되어 있고, 사제가 사형에게 명령을 내리는 등 서열이 역전된 부대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만이 터져 나오지는 않았다.

이미 상명하복을 명시한 순간부터는 그들은 그저 한 명의 부대원에 불과했으니까.

결과적으로 모든 학관생들이 참여하게 되었지만, 동시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부대가 편제된 것이다.

여덟 개의 대대로 부대를 편성한 진소운은 곧장 대주들을 소환했다.

“한 장씩들 받아.”

문방사우를 옆에 둔 진소운은 그 자리에서 작전명령서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학관에서 이미 작전명령서에 대해 배웠기에 그 자체로 놀랄 일은 아니었다.

진짜 놀라운 건, 바로 진소운의 거침없는 행동이었다.

“……꼭 이미 작전을 치러본 사람 같군요.”

작전명령서를 보는 일각이 감탄을 금치 못했고, 철순직도 고개를 끄덕였다.

“부대 편성 후엔 대주들과 회의부터 할 줄 알았는데, 이미 작전을 다 세워 놓았다니……. 더구나 그 작전에 빈틈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진소운은 과거에 이런 일을 겪어 보기라도 한 걸까?

철순직은 머릿속에서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옆에 선 일각은 다른 면에 감탄을 하고 있었다.

“철 시주, 이거 봤습니까? 지금 보니 부대 편성도 그냥 세력을 쪼개 놓기가 아니었습니다.”

철순직은 자신이 받은 작전명령서와 일각이 받은 작전명령서를 비교하며 바라봤다.

각 부대가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비상 상황에서 어떤 대처를 해야 하는지.

어떤 인물을 주로 활용하고 어떤 이들을 중점적으로 보호해야 하는지.

각 부대별로 인원 구성과 상황에 맞춰 제각기 상세히 써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일각이 하는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부대 편성 자체가…… 각 개인의 특기와 무공을 고려해 이뤄진 것이었군요.”

첫 번째로 합류한 자신이 삼(三)대주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로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다 외우고 있다는 게…… 진정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런가?

학관 대표는 학관생들의 정보를 모두 열람할 수 있으니까.

그것을 토대로 자신이 보고 파악한 것들까지 종합하면, 이 정도 수준의 정보를 모으는 일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진소운이라면.

“타고난 기억력이 있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에게는 별것 아닌 일이겠지요.”

“아무리 그렇다 한들, 그 사람의 특기와 무공 수위까지 외우고 있다는 건…… 결국 학관생들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애정, 애정이라.

“그간 반목하는 와중에도 진 시주는 부처님의 마음으로 학관생들을 생각해 왔다는 방증이겠지요.”

철순직은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천하의 진소운이 정녕 ‘애정’하는 마음으로 학관생들의 정보를 외우고 있었다고?

자신이 아는 그라면.

“언젠가 적이 될 때를 대비해서 외운 것 아니겠습니까. 진 대표는 학관생 전체와도 싸울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래, 분명 그럴 터다.

진소운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니까.

문득 대화가 끊긴 걸 알고 고개를 돌리니 일각이 자신을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다.

뭐야, 왜 사람을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거지?

“철 시주, 언젠가 한번 말씀드리려 했습니다만…….”

일각은 진짜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세상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갑자기 무슨…….”

“악마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지옥이 되니까요. 부처의 마음을 가지십시오. 그럼 세상이 극락정토가 되는 법입니다.”

“…….”

누구더러 악마라는 거야.

진소운이 고운 마음씨를 가지지 않았음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가 열 가지도 넘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애당초 그런 한가로운 이야기를 할 틈도 없을뿐더러.

“제 얼굴에 뭐가 묻었습니까?”

일각의 눈동자가 지나치게 반짝거리고 있었으니까.

……머리보다도 더.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왠지 일각이 매번 진소운에게 휘둘리는 이유를 알 것 같은 철순직이었다.

#

부대 편성을 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바로 부상자들이었다.

명문 대파 부상자들의 경우, 운기요상결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회복이 된 이들이 많았지만, 반대로 운기요상결을 가지지 못한 문파들은 최대한의 응급처치로 상처를 봉했다.

뛰는 데 문제가 없고 부상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사람들은 직접적 전투에 참여시켰고.

거동이 가능한 사람에겐 거동이 힘든 사람을 업고 이동하는 임무만 주었다.

거동이 불편한 이들의 무기는 모두 회수했다.

회수한 무기는 전투 중에 무기를 잃어버리거나 무기가 망가진 이들에게 돌아갔다.

무기를 회수당한 이들에겐 비도와 만약의 경우 사용할 호신용 중검이 쥐어졌다.

물론 이들이 중검을 쓰기 시작한다면 우리 부대가 끝장났다는 뜻이나 다름없기에, 부디 쓰지 않길 바랐지만.

평소 무림학관에서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상명하복의 맹세를 한 상황에선 수월하게 일이 흘러갔다.

‘명예를 중시하는 놈들이 이럴 땐 다루기 편하다니까.’

탈주자들이 도망친 지 한 시진 하고 반이 지났다.

나는 부대원들을 대기시킨 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그런데 단장!”

이(二) 대주 남화성이 갑자기 손을 번쩍 들었다.

이(二) 대가 무슨 일을 맡게 될지도 모르고 헤벌쭉 웃던 녀석이 이제와 근엄한 표정으로 하는 질문이란 게.

“부대 창설했는데 이름은 있어야 하지 않소!”

“이름?”

“기껏 학관생이란 신분을 버리고 부대원이 되었는데, 자신이 어디 소속되어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지!”

뭐 일리는 있는 말인가.

하긴 고기방패 부대원들도 ‘작게나마 정의를 이룬다’는 이름에 꽤 애착을 뒀으니까.

하늘을 바라봤다.

어스름하게 해가 지고 있었다.

빛이 터지면 확연하게 보일 것이 분명했다.

“알아서 지어.”

“내, 내가 지어도 되겠소? 으흠.”

남화성은 중요한 일이라도 되는 듯 제법 진지하게 고민을 하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크흠…… 자생단 어떻소?”

“…….”

내가 남화성의 머리를 너무 믿은 건…….

“자생단은 자살단이랑 어감이 비슷하군. 차라리 생환단이 어떤가?”

얜 또 왜 이래.

안 그럴 것 같은 철순직이 진지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이게 지금 그렇게 중요한 일인…….

“그건 꼭 이미 죽은 이들이 살아돌아오길 바라는 느낌인데……. 흐음, 정도단이 어떻습…….”

“에라잇!”

“닥쳐!”

뒤이어 사(四) 대주 곽수산이 의견을 냈다가 핀잔을 듣고 입을 다물었다.

그때.

“저…….”

지원조인 육(六) 대주 남궁선화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사활(死活), 사활단 어때요?”

일순 정적이 주위에 내려앉았다.

이윽고 저마다 입속으로 그 단어를 굴려보는지, 중얼거리는 소리가 노랫소리처럼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놓인 우리 처지에 아주 어울리는 이름이네.”

“좋다!”

“난 육(六) 대주 의견에 찬성!”

하나둘 손을 들며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그렇게 부대의 이름이 정해졌다.

다들 한 번씩 부대 이름을 되뇌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것도 잠시, 숲속을 울리는 불온한 소리가 들려왔다.

삐이이이익-

펑.

붉은색의 빛이 희미하게 반짝이다 금방 사라졌다.

저 빛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곳에 있는 이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것이 무색하게, 다시금 절망이 공기 중으로 스며들려 한다.

나는 붉은빛의 잔상이 남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출발한다.”

그리고 고개를 내려 부대원들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했다.

“사활(死活)단.”

절망이 내려앉으려던 눈빛들에 자그마한 열기가 피어오른다.

“존명!”

“존명.”

“존명!!!”

그 신호를 시작으로 부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죽느냐 사느냐 그 갈림길에 놓여 있다고?

어디 한번 해보자.

죽기 살기로 벗어나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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