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346화 (346/357)

346. <복수(2)>

“진 단주, 이것도 예측하신 겁니까?”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전쟁터에서 수많은 가상의 상황을 세워 그에 대한 대비를 하지만, 정작 그런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진 않으니까.

아니, 정확히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거지만.

“아직 확실하지 않은 거잖아.”

속으로 아니길 빌고 또 빌었다.

이게 진짜 신령이면, 진짜 좆된 상황이니까.

“……아니겠지요?”

내 곁으로 다가온 양자평에게 간절한 마음을 담아 물어보았지만.

“…….”

꾹 다물린 그의 입은 도무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양……대협?”

당신, 왜 눈동자가 그렇게 격하게 떨리는 건데?

“빌어먹을…….”

“만년토웅 맞습니다.”

내 욕지거리에 정신을 차린 양자평이 확인 사살까지 해버렸다.

만년토웅.

다른 신령들의 외형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태양후에 비하면 만년토웅의 외형은 그다지 특별할 게 없었다.

특별한 점이라면.

“크다…….”

무지막지하게 크다.

웅크리고 있을 때는 집채만큼 컸다.

근데 놈이 몸을 일으키니.

“시바…….”

고개가 끝도 없이 꺾인다.

이(二) 장을 훌쩍 넘기는 큰 키.

대체 하루에 뭘 얼마나 처먹어야 유지할 수 있는지 가늠하기조차 힘들 만큼 두꺼운 신체.

발끝엔 중도 크기의 검은 발톱들이 묘하게 광채를 빛내고 있고, 사람과 달리 흰자가 없는 눈동자에선 은은하게 살광이 번져 흐른다.

마물 중에서도 이무기나 뱀과 같이 허물을 벗어대는 놈들의 몸집이 큰 거야 이해가 가지만, 가죽을 벗는 것도 아닌 한낱 곰 새끼가 이런 커다란 덩치를 가진다는 게 쉬이 믿기지 않았다.

옆에선 압도당한 듯, 혼자 중얼대는 일각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야말로…… 자연의 신비로군요.”

지금이 감탄이나 하고 있을 때냐?

‘이상한데.’

양자평의 말대로라면 신령은 평생 묵림을 돌아다녀도 찾기가 힘든 존재라 했다.

달리 신령이라 불리는 게 아닐 터.

그런데 태양후가 모습을 드러냈고 지금은 만년토웅까지 나타났다라…….

‘마교와 뭔가 연관이 있는 게 확실하군.’

마교가 묵림을 점거한 이때에 만년토웅이 적개심을 풀풀 풍기며 우리 앞을 막아섰다.

과연 이걸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그렇게 재수가 없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씨바, 진짜.

“어, 어쩔 생각이냐?”

남화성이 만년토웅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몸을 덜덜 떨었다.

“어쩌긴 뭘 어째, 작전대로 가야지.”

“…….”

남화성의 얼굴이 똥빛으로 물든다. 왜냐면 남화성도 이 작전의 참가 인원이니까.

“양 대협, 길 안내를 부탁합니다.”

“……보중하십시오.”

내 손짓에 다시금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본래 작전은, 신령을 보자마자 지정된 인원들이 선빵을 날려 신령을 이끌고 무리에서 최대한 멀어지는 것이었는데.

“…….”

거체며 풍기는 기운이며 도저히 선빵을 날려서 해결된 기미가 안 보인다.

내공의 유무나 무공의 수위와는 전혀 상관없는, 피식자로서의 공포가 이성을 지배해 버리는 기분이었다.

크워워워워워!

커다란 울음소리가 숲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던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바짝 얼은 채로 걸음을 멈췄다가, 뒷사람의 신호에 겨우 다시금 발걸음을 옮긴다.

“준비해.”

“아, 아직 다 안 모였는데…….”

“일단 여기서는 떨어뜨려 놔야지. 언제까지 기다릴 건데.”

목표는 어디까지나 신령을 본대와 떨어뜨리는 것.

느긋하게 사냥할 상황도 아니고, 절반 이상이 부상당한 지금 신령을 사냥한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그런데, 저 무거워 보이는 놈을 밀어내는 건 가능할까 싶다.

그래도 어쩌겠어, 무조건 해야지.

“첫수에 최대한 밀어낸다.”

“…….”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내공을 끌어올리는 것이 느껴진다.

합장을 한 일각의 어깨에선 허연 연무가 올라왔다.

다들 알고 있는 것이다.

저 거체가 난동을 부리는 순간 엄청난 피해가 추가로 일어날 것임을.

“허…… 미친…….”

뒤늦게 합류한 당기한과 모용재화도 만년토웅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한다.

“혀, 형님. 어떻게 상대하시려고요.”

나도 몰라.

저런 곰은 처음이라서.

#

신령이랑 일반 영물이랑 결정적으로 뭐가 다를까?

내 경험(一회)에 따르면 영민하다는 점이 제일 큰 차이다.

조사 대상의 표본이 워낙 적기에 학문계에 발표는 못 하겠지만, 지금만 봐도 그렇다.

우리와 대치하고 있는 곰 새끼가 왜 행렬의 선두와 후위를 둘러보며 대열을 가늠하는 눈빛인 건데?

“온다…….”

“네? 아직…….”

“준비해!”

몇몇은 저 곰이 지켜보다 그냥 지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은 모양인데.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걸 그냥 우둔한 동물로 보면 안 된다.

태양후 그 새끼는 천연진을 제멋대로 조정하고 말도 했잖아.

크워워워워워워워!

아니나 다를까, 부상자들이 모여 있는 육(六) 대 대원들을 발견하자마자 이 곰 새끼가 돌진하기 시작했다.

“쏟아부어!”

우르르릉.

나는 손안 가득 모아두었던 광천신장을 퍼부었다.

콰과과과과광

이어 남화성의 녹각철운장이 힘을 보태고 소림의 일절인 대력금강장이 뒤이어 힘을 쏟는다.

파파파파파파팡!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자 특무조로 뽑힌 인원들 모두가 각자 자신들의 무공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콰콰쾅!

덩어리가 큰 만큼 조준에 대한 부담은 덜었다.

그냥 내던지면 어디든 맞겠지라는 심경.

숲 일부가 통째로 도려내질 정도의 엄청난 힘이 일대를 휩쓸었다.

“달려!”

신호가 울리자마자 조심스레 지나가던 학관생들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한다.

여기서 전투에 휩쓸려 버리면 정말 답도 없으니까.

퍼퍼퍼퍼퍼퍼퍼펑!

녹빛의 삼양신장이 연이어 추가되고, 모용재화의 양손에서 건곤수리장이 쏘아져 나간다.

폭발의 여파가 어찌나 큰지, 옆을 지나가는 이들 중엔 핏물을 토하며 달리는 이들도 있었다.

특무조는 그들에 신경 쓸 여력도 없이 만년토웅을 응시하고 있었다.

사방에 부서진 나무며 뒤덮인 흙더미로 인해 뿌옇게 먼지가 가득했다.

시야가 가려진 탓에 만년토웅의 상태가 어떤지 정확히 보이지 않는다.

“주, 죽었나?”

남화성이 내뱉은 재수 없는 말과 함께, 뿌연 연기 사이로 뚜렷한 만년토웅의 거체가 확연히 보인다.

“빌어먹을…….”

특무조 누군가 내뱉은 욕지거리와 함께 잔뜩 성이 난 만년토웅이 커다란 울음을 터트렸다.

크워워워워워!

먼지가 걷히고 드러난 만년토웅의 피부에는 자잘한 상처가 가득했지만, 그걸 보고 환희에 젖은 특무조 인원은 없었다.

심각해 보이는 부상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그래도 나는 조금의 희망을 품었다.

태양후처럼 뭔가 특별한 능력은 없어 보였으니까.

하긴, 불과 달리 흙을 내뱉거나 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

씨바, 진짜 뱉는 건 아니겠지?

쿠어어어어!

상처를 입은 게 화를 더 돋웠음인가?

만년토웅이 갑자기 번쩍 손을 들었다.

‘거리가 안 될 텐데…….’

만년토웅과 특무조 인원들 간의 간격은, 아무리 거체라도 한 팔 길이론 닿을 수 없는 거리다.

그런데.

꿍─

만년토웅이 바닥을 내려친다.

꿍꿍─

위협을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이 무슨!!!!!”

바닥이 너울 치듯 울럭거리며 들썩이기 시작했다.

이 압도적인 진동에 넋이 나갈 지경.

폭풍이 칠 때의 강처럼 울럭거리던 땅이 특무조를 지나 행렬에 닿아 폭발하듯 터진다.

펑!

이내 흙더미들은 파도가 되어 학관생들을 통째로 뒤덮었다.

“으아악!”

“이, 이게 뭐야!”

“커흑……!”

행렬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어버리고, 학관생들은 흙 속에 파묻힌 인원을 꺼내느라 정신이 없다.

크워워워워워!

그사이.

승리를 자축하며 울음을 내뱉은 만년토웅의 모습에도 변화가 생겼다.

“혀, 형님……. 저거, 상처가…….”

그나마 생채기라도 냈던 상처들이.

“…….”

서서히 수복되기 시작했다.

시발 뭐냐고 진짜.

#

크워워워워워!

쿵, 쿵, 쿵, 쿵,

상처를 회복한 만년토웅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막아!!!!”

일각이 금강불괴신공을 끌어올렸는지 온몸에 금빛 기류가 어른거렸다.

그래, 저 정도 호신기라면 아무리 만년토웅의 발톱이라도…….

그 순간.

“허…….”

일각이 바닥에서 튀어 올라 만년토웅과 눈을 마주치는 걸 보고 기가 찼다.

아니 높이 뛰어서 뭐 어쩔 생각인데.

퍽!

쾅!

눈앞까지 튀어 오른 일각의 신형에 곰 새끼가 앞발을 휘두르자 황금색 신형이 화살처럼 튕겨 나간다.

“저, 저 쓸모없는…….”

금강불괴신공을 펼쳤으니 심각한 부상은 입지 않았겠지.

나는 남화성에게 외쳤다.

“놈의 몸이 우리 세 배는 된다는 걸 잊지 마!”

“누굴 바보로 아냐!”

대머리는 남화성보다 바보였다.

남화성이 호신기를 두르고 만년토웅의 발에 찰싹 붙는다.

만년토웅은 자신의 발치에 달라붙은 남화성이 걸리적거리는지 발을 털어내려 하지만, 남화성의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삼원문의 천근추를 무시하지 마라 이 곰탱…… 으아악!”

만년토웅은 몇 번 발을 털다 도저히 남화성이 떨어지지 않자 그대로 발을 땅에 처박아 버렸다.

퍽! 퍽! 퍽! 퍽! 퍽!

그 거대한 몸체로 몇 번이나 바닥을 내려치자.

쿠웅.

단단한 흙바닥에 큰 구덩이가 생겨나고 그 안에 결국 만년토웅을 놓쳐버린 남화성만이 남았다.

크워워워워워!

남화성까지 처리한 만년토웅이 흙더미 속에서 빠져나오려 애를 쓰는 학관생들을 덮쳤다.

“으아아악!”

“커흑!”

손을 휘두르고 발을 내디딜 때마다 시체가 하나씩 늘어간다.

화려한 검식에 검기를 휘둘러 보지만, 작은 생채기만 날 뿐 만년토웅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타다다다다닥.

나는 전력으로 만년토웅에게 달려가며 바닥을 힘껏 박찼다.

그리고 정확히 만년토웅의 머리 위 일 장 높이에 다다른 순간.

검강과 함께 천근추를 사용하며 그대로 머리를 내리꽂았다.

부부북.

모든 걸 썰어버리는 검강이건만, 억지로 살점을 파고드는 소리가 들린다.

이렇게라도 잡았다면 좋았겠지만, 문제는 뼈가 잘리는 소리가 아닌 살점이 잘리는 소리만 들렸다는 것.

‘이걸…… 피한다고?’

마지막 순간에 급하게 고개를 꺾은 만년토웅.

덕분에 적광검은 녀석의 어깨를 조금 깊숙하게 찔렀을 뿐이었다.

크워워워워워!

녀석이 고통스러운지 마구 몸을 뒤흔든다.

그 와중에 날카로운 발톱을 세운 반대 손을 뻗어왔고, 나는 재빨리 검을 뽑아 다시금 높이 뛰어올랐다.

아슬아슬한 차이로 녀석의 날카로운 발톱이 발끝 아래로 휘둘린다.

방어력은 무식하게 강력하고 칼은 제대로 박히지도 않는다.

자연 재생력은 또 얼마나 좋은지 상처는 금방 회복되어 버린다.

더구나 놈은 자신의 회복력을 믿는 건지, 강력한 특무조를 무시하고 부상자들을 향해 일방적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돼……. 뭔가 수가…….’

그 순간 혈광이 가득한 녀석의 눈이 보였다.

그리고 녀석이 손을 내리는 순간.

태양후를 잡고 얻은 양가기공을 끌어올려 다시금 천근추를 시전했다.

퍼퍼퍼퍼퍼퍼퍼퍽!

비처럼 쏟아져 내린 뜨거운 열기가 만년토웅의 털을 태우며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녀석도 칼에 베이는 것보단 화상의 고통이 더욱 큰지 마구 손을 휘둘렀다.

녀석의 발톱을 아슬아슬하게 지나쳐 바닥으로 내려온 뒤 가랑이를 통해 뒤로 몸을 뺀 후.

비룡조를 쏘아 다시금 녀석의 뒤로 올라섰다.

그러곤.

치지지지직.

양손에 태양기를 가득 머금은 채 그대로 녀석의 양 눈을 지졌다.

크워워워워워워워워!

그 어느 때보다 고통스러워하며 양발로 두 눈을 감싸는 만년토웅.

그 틈을 타, 그대로 비룡조를 놈의 목에 감은 채, 전력으로 뒤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천근추를 이용해 만년토웅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쳐!!”

다시금 사방에서 장력이 폭사되고, 여전히 두 눈을 가리고 있는 만년토웅은 서서히 비룡조에 끌려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선 자리에서 거의 미동도 않는 만년토웅.

그때, 숲속에서 거력의 장력이 만년토웅을 때렸다.

떠어엉─

마치 종을 때린 듯 공기를 타고 느껴지는 커다란 진동.

“……토웅 시주, 그대를 그저 동물이라 볼 수 없겠구려.”

일각의 건조한 시선이 흙더미에서 죽은 학관생들로 향한다.

“육식동물은 배가 고플 때만 사냥을 할 뿐이니.”

합장한 일각의 손이 번갈아 만년토웅에게로 향한다.

떠어엉─

떠어엉─

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종의 울림이 묵직하게 퍼지며, 태산과 같이 꼼짝 않던 만년토웅의 신형이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떠어엉─

떠어엉─

크워워워워워워워!

만년토웅이 저항해 보지만, 눈에서 손을 떼지 못한 채로는 계속 뒤로 밀려날 뿐이었다.

떠어엉─

떠어엉─

드디어 만년토웅의 신형이 행렬에서 한참이나 벗어나고.

일각의 두 주먹에 황금빛 권강이 어린다.

퍼퍼퍼퍼퍼퍼퍼퍽-

만화무적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일각이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이(二) 장 거리에 위치한 만년토웅의 살점이 터져나간다.

만년토웅은 처음으로 막대한 양의 피를 흘리고 살점을 떨군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당기한이 독이 발린 비도를 상처에 쑤셔 박았고.

“흐아아앗!”

마지막으로 내가 검강으로 녀석의 팔을 잘라내려 했다.

퍽!

하지만 살점이 움푹 파여 뼈가 드러났음에도 정작 뼈는 잘려나가지 않았다.

크르르르르르.

뭔가 이상하다 생각된 순간.

“…….”

불로 지져버린 만년토웅의 두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휘이익-

단지 가벼운 휘두름에 불과할진대.

퍽!

온 내부가 격동하며 흔들렸다.

나무 두어 개를 박살 내고 겨우 멈춰선 뒤 바닥을 박차고 일어난 순간.

“꾸엑.”

핏물이 울컥 차오른다.

분명 호신기를 두르고 있었는데.

……일각과 남화성은 이걸 어떻게 버틴 거지?

뒤집어질 것 같은 내상을 억누르며 다시금 만년토웅에게 달려갔다.

내가 마지막에 본 광경이 현실이 아니길 바라며.

크워워워워워워─

흉포한 울음을 터트리며 위협을 하는 만년토웅의 두 눈은 본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개 같은 재생력.

“씨바…… 강시냐고.”

그나마 특무조의 모든 내공을 쏟아부어 입혔던 상처들도 순식간에 회복되고 있다.

“…….”

특무조원들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진다.

흙더미 속에 파묻힌 부상자들을 찾고 있는 학관생들도 마찬가지.

“이, 이걸 어떻게…… 상대해…….”

“대체 뭔데…….”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 절대적인 힘의 차이에 다들 굳어버린다.

하아, 이런 위험 부담까진 지지 않으려 했는데.

척.

적광검을 집어넣고, 특무조를 뒤로 물렸다.

“지금부터 흙더미 속에 갇힌 사람들 먼저 구출해!”

“지, 진 단주?”

“어서!”

만년토웅과 대치하던 특무조원들이 하나둘 슬금슬금 뒤로 물러선다.

크워워워워워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한 건지, 다시금 학관생들에게 달려들려 하는 만년토웅.

우르르릉.

놈을 향해 손안에 깃든 광천신장을 쏟아낸다.

콰과과과과광

장력이 가시기 전에 성화멸마수를 끌어올려 만화무적권을 펼친다.

퍼퍼퍼퍼퍼퍼퍼펑

단전에 찬 내공이 순식간에 소진되어 버리고.

만년토웅의 온몸엔 불길이 치솟는다.

하지만.

“씨바…….”

매캐한 연기와 함께 이내 불길이 서서히 잦아든다.

피해가 회복되며 화상의 흔적마저 꺼트려 버린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다.

나는 아주 잠깐 흙더미 쪽으로 시선을 준 후, 그대로 만년토웅의 몸을 타고 올라 비룡조로 녀석의 목을 팽팽하게 휘감았다.

“진 단주! 다 구했소!”

“그럼 빨리 움직여!”

“하지만…….”

“명령이다! 빨리!”

내 외침과 동시에, 부상자를 구한 학관생들이 장내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사이 청룡환을 전력으로 발동시켰다.

‘회복력이 대단한 만큼 미라가 되진 않겠지.’

이렇게 많은 인원들 앞에서 청룡환을 쓰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다.

하지만 도저히 이것 말고는 생각나는 방법이 없었다.

“어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청룡환을 타고 막대한 내기가 단전으로 흘러들어 온다.

기경팔맥을 비롯한 혈맥 전부가 터저버릴 것만 같은 거대한 내기가.

#

“으……으으…….”

얼굴을 비롯한 온몸의 핏줄이 터져버릴 듯 부풀어 오른다.

얼마나 강대한 힘을 가진 건지, 오 갑자를 넘어섰던 단전이 금방 꽉 차버린다.

“끄아아아악!”

한때 청룡환만 있으면 어떤 적도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제금학을 상대하며 깨달았다.

그저 오만이었다는 걸.

단전도 혈맥도 기맥도 모두 한계가 있다.

인간의 몸은 단단한 현철이 아니다.

거칠게 흡수한 기운은 결국 몸을 소모시킨다.

기운이 차오르고, 차오른 만큼 그대로 분출한다.

성화멸마수건 공멸권이건, 타격을 줄 수 있다면 뭐든 쏟아붓는다.

놈이 태양후처럼 온몸으로 불길을 내뿜지 않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크워워워워워워

만년토웅이 괴로워하며 비명을 내질러 대지만, 나 또한 멀쩡하지 않다.

단전은 물론이고, 온몸의 혈맥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가, 끊어질 듯 단숨에 수축한다.

쾅! 쾅! 쾅!

만년토웅이 나를 떨쳐내려 하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자, 사방으로 구르며 몸을 거대한 나무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커흑!”

입에서 또다시 한 바가지에 달하는 핏물이 터져 나온다.

결국 비룡조를 풀고 벗어나려 시도했지만.

“젠장…….”

함께 구르면서 꼬여버린 건지, 천잠사가 풀리지 않는다.

당황할 필요 없다. 차분하게 내공을 조절하면…….

퍽! 퍽! 퍽!

그사이를 못 참고 만년토웅이 다시금 바닥을 구른다.

비룡조에 팽팽하게 묶인 손 때문에 만년토웅의 몸에서 떨어질 수 없었다.

다시금 청룡환을 발동시키며 흡수한 내기로 성화멸마수를 펼친다.

금방 회복되었던 만년토웅의 새살 위로 다시금 성화멸마수가 닿자 놈이 자지러질 듯 비명을 내지른다.

하긴 나라도 머리 피부를 계속 태워 먹으면 미쳐버릴 것 같긴 하다.

놈의 정신이 혼미한 틈에 머리로 접근했다.

우드득.

타버린 채 쭈글쭈글 우그러진 피부를 뜯어내자 검은색 두개골이 보인다.

시벌, 이게 뼈야 강철이야.

꿍-

꿍-

성화멸마수로 뼈를 아무리 내리쳐도 도저히 뚫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계인가……’

믿기지 않지만 조금만 더 하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단전에 내력은 충분한데, 어쩐지 팔에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누가 한 방만 내리 꽂아주면 좋으련만…….

“누가 여기…….”

고개를 돌려보니, 이미 생기를 잃어버린 시체만이 남아 있다.

아, 청룡환을 쓰겠다며 다 도망치라 했지.

나도 이젠 도망쳐야 하는데…….

천잠사를 풀기가 여간 쉽지 않고, 푼다고 해도 머리끝까지 열이 받은 만년토웅이 나를 그냥 놔줄 리가 없다.

그런 기대는 버렸다.

내가 만년토웅이라면 팔 한 짝이 날아가도 끝까지 쫓아가서 갈기갈기 찢어발길 테니까.

결국 내 혈맥이 너덜너덜해지다 못해 신력이 다해 죽거나, 만년토웅의 회복력이 다 소진돼서 죽거나 둘 중 하나일 텐데…….

만년토웅이 먼저 죽을 것 같진 않단 말이지.

이거 봐, 지금도 또 살점이 회복되고 있잖아?

부디 사활단이 제때 도망갈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최소한 내가 만년토웅을 잡고 있는 동안…….

“진 단주!”

그때, 부상자들과 함께 대피해야 했을 일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간신히 고개를 돌리니 반짝이는 대머리 하나가 이편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거 더럽게 말 안 듣네.’

그래도 다행인가.

피식 웃음이 내뱉다, 재빨리 만년토웅을 바라봤다.

조금 수척해지긴 했지만, 미라가 되진 않았다.

이걸 보고 흡성대법을 의심하진 않겠지.

“일각! 백보신권이다!!”

“으, 응?”

“대가리! 대가리 뼈만 부숴!”

어지간한 무공으론 부술 수 없을 것이다.

성화멸마수를 아무리 때려박아도 꼼짝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런 면에서 말을 더럽게 안 듣는 인간이 일각인 게 얼마나 다행인가.

소림의 칠십이종절예라면, 충분한 파괴력을 보여줄 테니까.

“하지만…….”

뭐 때문에 머뭇거리는지 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다.

“빨리 이 대머리야!!!”

머뭇거리던 일각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한다.

이어 그의 승복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른다.

“진 단주, 조심하시오…….”

왠지 열받은 거 같은데…… 실수하진 않겠지?

그렇게 불안에 떨고 있는 사이.

우우웅.

공멸권처럼 공간이 일그러지며 강대한 기운의 권경이 허공에 생성되었다.

소림 칠십이종절예 중 가장 높은 수준과 파괴력을 자랑하는 권법.

백보신권.

쐐액-

권경이 유성처럼 궤적을 남기며 떨어진다.

그리고 정확하게 만년토웅의 머리뼈에 작렬한다.

뻐어엉──

엄청난 권격에 일순간 몸이 뒤로 끌려갈 뻔했지만, 천잠사가 몸을 고정해 놓은 탓에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진 단주, 되었소?”

지친 기색으로 물어오는 일각을 향해 나도 모르게 회심의 미소를 보였다.

빠직-

강철보다 단단해 보였던 만년토웅의 머리뼈에 작은 틈이 생겼다.

성화멸마수를 꽂을 만한 충분한 틈이.

말 안 듣는 대머리.

“처음으로 쓸모 있네.”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손을 깊숙하게 찔러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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