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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1화 (1/367)

00-프롤로그

낡은 슬레이트 지붕, 삭아버린 시멘트 벽돌, 색이 바래고 때가 낀 페인트.

21세기 대한민국에 이런 동네가 있을 수 있나 싶겠지만, 어느 사회든 소외된 곳과 소외된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다.

그 중 한 집.

대낮이었지만 불을 켜지 않은 방은 침침할 정도로 어두웠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음산한 빛이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 수는 둘.

천장에 매달린 두 그림자 중 하나가 천천히 흔들리기 시작하다가 이내 몸부림치듯 발광했다.

“컥!”

발광하던 그림자의 주인은 자신의 목이 매달려있다는 것을 깨닫고 급히 두 손을 뻗어 밧줄을 잡아 당겼다. 하지만 팔 힘이 약해서인지 도저히 빠져나오지 못했다.

숨이 막혀왔다.

시야가 흐려지고 죽음이 임박해 옴을 느낄 때 몸이 툭 떨어졌다. 밧줄이 끊어진 것이 아니라 밧줄이 고정되어 있던 천장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커헉! 커헉!”

기침을 하던 그는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폈다. 첫 인상은 허름하다는 것이었다.

노랗게 색이 바른 벽지. 구석엔 시커먼 곰팡이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고, 변변한 물건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는 머리에 떠오르는 기억을 수습하며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거울을 찾았다. 이 가난한 집구석에서 거울은 집주인이 화장실에 구색으로 달아놓은 것이 유일했다.

그는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머리칼, 왜소한 몸, 여기저기에 남아있는 폭행의 흔적들.

눈에 보이는 것들은 흐릿하게 떠오르는 기억을 선명하게 만들어주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처지인지.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누구의 몸에 깃들었는지, 몸의 주인이 어떤 처지였는지 말이다.

“이번엔 빙의인가?”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썩은 동태눈깔 같은 눈빛은 지금의 상황이 그다지 놀랍지 않은 것 같았다. 마치 익숙한 것처럼 말이다.

그는 파편 난 기억을 수습하다가 자신의 축축한 아랫도리를 인식했다. 거기에서 풍기는 구리구리한 찌린내도 말이다.

“씨발.”

저절로 욕설이 나왔다. 목이 매달린 죽음의 순간 풀려버린 방광과 항문을 통해서 내용물이 흘러나온 것이다.

그가 바지와 속옷을 벗고 찬물로 대충 씻은 뒤에 화장실을 나오니 방안에서도 비슷한 냄새가 풍겼다. 여전히 목이 매달린 늙은 사내의 발밑에 노란물과 갈색의 덩어리가 작게 고여 있었다.

닮았지만 더 늙은 얼굴. 자신이 깃든 육신의 육친임을 모를 수가 없었다. 평소에도 부단히 아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또 곤히 잠자고 있는 아들의 목에 밧줄을 걸고 천장에 직접 매단 장본인이었으니까.

이제 이경완이라는 이름의 몸에 깃든 자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 세상의 상식을 검토하며 방구석에 뒹굴고 있는 휴대폰을 들었다.

삐리삐리삐리비~

[네, 112 경찰입니다. 말씀하세요.]

“여기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죽었는데요...”

부친의 죽음을 신고하는 목소리 치고는 너무나 느긋한 목소리였던 모양이다. 경찰이 출동하고 파출소로 연행되어서는 한참 동안이나 파출소에 잡혀서 사정청취라는 것을 당했다. 아마 경찰들 눈에는 그가 부친을 죽이고 자살한 척 꾸미는 것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죽을 뻔하다가 살아나서 기억이 혼란스럽다는 진술은 오히려 의심만 키웠다. 잠정적 용의자를 병원에 보내 정밀진단을 받게 한 후에도 그러한 의심은 쉬이 풀리지 않았다. 온몸에 남은 폭행의 흔적들은 오히려 범행의 동기로 보이기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CT촬영 사진을 본 의사의 말이 이러했다.

“정말 위험했습니다. 자칫 중증 장애를 평생 짊어질 수도 있었어요.”

기억에 혼선이 생긴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는 의사의 말에 경찰은 결국 이경완의 부친이 동반 자살하려다 혼자 죽은 것으로 결론지었다. 경완에게 부친을 죽일만한 동기라고 추측했던 폭행의 흔적도 부친이 그랬는지 증명할 수 없었다. 경완이 학교 폭력의 증거라고 했고 그 또한 거짓은 아니었으니까.

집으로 돌아온 이경완은 지저분한 방을 청소했다. 오물을 손에 묻힐 때는 인상을 찌푸렸고, 오물 묻은 바지를 씻을 때는 욕설이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버리고 싶었지만 빈한한 세간살이를 보니 바지 하나가 아쉬울 것 같아 일단 대충 오물을 씻고 세탁기에 넣었다.

그런데 세탁기를 돌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디서 표독스럽게 생긴 아줌마가 찾아와 그를 불렀다.

“학생! 세탁기 돌려?”

그래 이 씨발련아.

문득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은 몸의 주인이 평소에 하는 생각일까? 떠오른 기억은 눈앞의 아줌마가 집주인이라는 걸 알려왔다.

경완은 머리에 떠오르는 욕설을 그대로 내뱉기 보다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줌마는 그런 그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보면서 따지듯 말했다.

“내가 말했지? 세탁기는 주말에만 돌리라고.”

그랬나?

경완은 기억을 천천히 더듬었다. 생각을 해보니 그랬던 기억이 떠오르기는 했다.

“네.”

“그런데 왜 지금 돌려?”

짜증이 솟구쳤다. 그럼 똥오줌을 지린 바지를 손으로 빨라고? 이 씨발련이.

하지만 이경완이라는 청소년의 몸에 깃들어 아직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그로서는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과는 다르게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띵동! 띵동!

“아이고! 이게 뭐야?! 고작 바지 한 벌이잖아!”

어느새 세탁기를 열어본 아줌마가 금방이라도 세상이 무너질 듯 소리쳤다.

“너 이거 물값 받을 거야. 알겠어?”

그러든지 말든지, 이 씨발련아.

경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집주인 아줌마가 본론을 꺼냈다.

“그런데 너희 아버지 어디 있니? 월세가 얼마나 밀렸는데 아직도 아무 말이 없어?”

월세 겨우 한 달 밀렸다, 이 씨발련아.

평소 몸 주인은 어떻게 살아왔기에 이리도 욕설이 툭툭 심상에 떠오르는 걸까? 경완은 언어중추를 확고히 제어하며 입을 열었다.

“죽었어요.”

“.. 죽어?”

“목매달았어요. 천장에 밧줄 매달고요.”

그 말에 아줌마는 기겁한 표정으로 급히 방안으로 들어갔다. 아니 들어가려는 순간에 경완에게 팔을 붙잡혔다.

“뭐하는 짓이야!”

“들어가는 건 좋은데 신발은 벗고 들어가야죠.”

기껏 청소해 놨는데 거기에 흙발을 들이밀고 싶냐, 이 씨발련아?

아무튼 집주인은 경완의 말에 진정하고 고개만 들이밀어 방안을 살폈다. 밧줄을 매단다고 구멍이 난 천장을 볼 땐 표정이 안 좋았지만 전체적으로는 안심하는 분위기였다.

“어.. 그럼 월세는 어떻게 할 거니?”

경찰과 구급차가 와서 시체를 실어가도 몰랐다는 건, 이 씨발련이 월세 받는 날 외에는 임차인이 어떤 불편을 겪는지 관심이 없다는 증거였다.

월세 얘기를 꺼내기 직전에 잠시 망설인 것이 저년이 가진 마지막 양심의 부스러기였겠지.

경완은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상념을 흘려버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몰라요.”

배 째, 씨발련아.

그런 의미인지 아는 듯 모르는 듯 집주인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하지만 양심이 일말이라도 남았는지 뭐라고 더 추궁하진 않았다.

“아, 그래.. 아버지도 돌아가셨으니까 다음에 얘기하자.”

“네.”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씨발련을 배웅했다.

그리고 나서야 차가운 장판에 몸을 뉘었다. 파출소, 병원을 갔다 왔다 하며 다소 정신없었던 일들이 지나가고 나서야 천천히, 좀 더 깊게 생각할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것이었다.

살까, 아니면 죽을까?

살아가는 것엔 별로 미련이 없었다. 끝없는 생의 반복에 종지부를 찍고자 완전한 죽음을 위해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는 체념해버렸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어느 소설의 유명한 구절은 그에게만큼은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게 문제가 되어봤자 얼마나 큰 문제가 되겠냐고.

자신의 입장에선 오히려 사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그럼에도 그 문제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삶에 지쳐버린 피곤함과 죽어도 소용없다는 회의감이 충돌하기 때문이었다.

살기 싫지만 죽어도 어차피 살아날 텐데 죽어봤자 무슨 소용인가?라는 것이 그의 심정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문장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그냥 숨 쉬는 대로 살다가 가면 그만이라는 인생방침으로 반영되었다.

그래서 그는 이틀 동안 그렇게 살았다. 정신을 차리면 일어나서 먹고, 그러고 나면 자고, 다시 일어나면 먹고, 다시 자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세상에서 고립된 상황은 마치 고승이 면벽수련과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질적으로는 완전히 달랐다.

끊임없이 머리에 떠오르는 상념을 경완은 저 깊은 심상 속으로 흘려버렸다.

극도의 명상상태. 언제 득도하여 우화등선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지만 정작 본인에겐 아무런 소용없는 그런 경지는 어느 불청객에 의해서 그 고요함이 깨어지고 말았다.

“야! 경신새끼야! 안에 있냐?!”

경신. 경완과 병신의 합성어.

그 호칭이 육체의 트라우마를 자극이라도 했는지 불현듯 기억이 떠올랐고 그 기억에 경완은 비릿하게 웃었다. 이 경완이라는 청소년의 몸에 빙의했을 때 몸에 있던 멍자국의 주인이 죽은 부친만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저기 밖에서 병신새끼와 경신새끼를 동의어로 만든 목소리의 주인들. 학교에서 가지고 놀던 샌드백이 며칠 없으니 좀이 쑤셨던 모양이다.

경완은 무시하고 그냥 드러누웠다. 가만히 있으면 없는 줄 알고 가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새끼 또 없는 척 하는 거 아냐?”

“설마. 뒤질라고.”

그들의 대화에 경완은 새로운 기억이 떠올랐다. 부친이 막노동하러 나갔을 때 저놈들의 폭력이 두려워 점심을 굶을 각오를 하고 학교에 나가지 않았던 때가, 그리고 저놈들이 함부로 집에 찾아와 감히 자신들의 손아귀를 피하려한 것에 대해 경완에게 응징이란 이름의 폭력을 행사한 것도 말이다.

그 기억이 떠오르자 경완은 불쾌해졌다. 이 몸의 주인에 대한 동정심 때문은 아니었다. 그 기억이 정말 사실이라면 놈들이 담을 뛰어넘어 자물쇠가 고장난 문을 열고 침입할 것이 뻔하다는 예측 때문이었다.

경완은 고장 난 잠금장치를 새로 해주겠다고 해놓고서는 한 달 두 달 미루기만 하던 씨발련의 얼굴을 떠올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놈들이 담을 뛰어넘고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그는 문 근처에 있는 싱크대에 들러 부엌칼을 쥐고 문 뒤에 섰다.

문이 벌컥 열렸다.

“야! 저번처럼 있는데 없는 척하면 아구창 날려버린,”

푹!

“어?”

뭐가 그리 당당한지 폭행을 행사할 거라 선언하고 들어오는 놈이 당황했다. 그야 당황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신나게 자신의 주먹에 맞기만 하던 샌드백이 갑자기 살아 움직여 자신의 배에 칼을 박아 넣으면 말이다.

“아씨놀래라강도인줄알았잖아노크좀하고들어와라.”

“끄아악!”

경완이 국어책 읽는 목소리로 칼을 쥔 손을 지그시 비틀자 놈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경완의 머리에 놈의 이름이 떠올랐다.

강인규.

자신을, 아니 이 몸의 전 주인을 괴롭힌 무리 중의 한 명이었다.

“뽑을게.”

“소소소소손 대지마!”

“몸에 칼이 박혔으면 뽑아야지 무슨 소리하는 거니?”

기겁하며 칼에 손대지 말라는 강인규의 말에 경완은 어이가 없다는 말로 사정없이 살을 비튼 칼을 뽑아버렸다.

“으아아악!”

강인규가 복부를 붙잡고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사실 그가 맞고 경완이 틀렸다. 몸에 박힌 칼은 함부로 뽑으면 더 심한 출혈이 생길 수 있었다. 물론 경완이 그 사실을 모를 린 없었다.

“이 새끼가!”

강인규가 쓰러지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친구 박태진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경완의 멱살을 채 잡기 전에 피 묻은 칼이 슬며시 가슴높이까지 들려지자 주춤했다.

그런 박태진을 보며 경완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진정해. 나 칼 들고 있어.”

협박인가?

“너만 칼 있냐, 이 씹새끼야!?”

경완의 말에 박태진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접이식 나이프를 뽑아들었다. 길이야 부엌칼이 우월하겠지만 날은 그의 것이 더 예리했다.

그런 그를 보며 오히려 경완이 황당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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