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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18화 (18/367)

017-01-누가 내게 돌을 던지는가

그런 일을 계기로 풋풋한 로맨스가 꽃피는 일 따윈 없었다. 경완은 이런 저런 일에 많이 질려버린 무한전생자였고, 다음날 그를 구속하러 경찰이 왔으니까.

유치장에 들어간 경완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홀로 감방을 썼다. 맞은편에 있는 며칠 안 깎은 수염의 사내는 그런 경완을 보고 물었다.

“너는 무슨 일로 여기 들어왔냐?”

“양아치랑 싸웠어요.”

“그런데 혼자 들어왔냐?”

쌍방이 아니냐는 남자의 말에 경완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전 잘 피했는데 상대방들은 안 피해서 저만 잡혔어요.”

요컨대 쌍방이라는 경완의 주장이 묵살된 것이다. 경완도 굳이 그 주장을 고집하지 않았다. 계속 그 주장을 고집하려면 필연적으로 인질이 된 선미를 끌어들여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상대가 과연 선미에게 합의금을 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경완의 입장에선 벼룩의 간을 빼 먹는 짓이었다. 자신과 다르게 이 좋은 세상 건실하게 살아갈 고아에겐 더러운 돈이라도 그들이 주는 합의금은 적잖은 힘이 되리라..

잘 피했다는 말에 남자는 짐짓 감탄했다.

“오! 싸움 좀 하나 본데?”

“싸움이 아니라 그냥 속임수 좀 썼어요.”

불시에 사용한 무기로 심리적 허점을 공략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당한 건 경완이었을지도 모른다. 상대는 그냥 폼 재는 게 중요한 일진 양아치가 아니라 깡패 선배들에게 싸우는 방법을 수박 겉핥기로나마 배운 진짜 조폭이었으니까. 더구나 칼까지 소지하고 있지 않았던가?

경완은 맞은 편 유치장의 남자와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 남자는 사기로 잡혀왔는데 금방 나가서 다른 남자가 들어왔다.

유치장엔 참 다양한 죄목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사기, 절도, 성범죄, 폭행 등 다양한 이들이 재판 결과를 기다렸다.

경완도 그중 하나였고 오래지 않아 판결을 받았다. 판사는 경완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이미 소년원까지 다녀올 정도의 폭력 전과가 있었고 피해자가 심하게 다쳤기 때문에 가중처벌을 받은 것이다. 경완이 주장한 쌍방폭행은 묵살 되었다.

판사는 무슨 판타지 소설을 봤는지 모르겠지만 한 사람이 세 명을 개패듯 팰 수 있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판사 아저씨. 판타지 소설 읽어요? 읽는 건 좋은데 저 같은 어린애가 건장한 사내 셋을 일방적으로 개패듯 두들겨 팰 수 있다고 믿는다면 좀 책상에서 벗어나서 세상으로 나오세요.'

아니면 이렇게 말한 경완의 자기변호가 심히 기분에 거슬렸던지 말이다.

판결이 떨어졌으니 유치장에서 교도소로 이감되야 했다. 경찰이 창살을 열며 말했다.

“가자.”

“가기 전에 탕수육 좀 시켜주면 안 돼요?”

점심때라 적잖이 배가 고픈 경완이었다. 하지만 그의 태연한 태도를 경찰은 뻔뻔함으로 받아들였고 꽤나 불쾌해했다.

“이 새끼야. 니가 뭐가 이뻐서?”

경완의 부탁에 경찰이 어이 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나중에 교도소 가서 일이 터지면 탕수육 못 먹어서 꼴 받았다고 할래요.”

“교도소 가서 사고를 치겠다?”

“제가 친다는 말이 아니라 혹시 뭔가 일이 벌어지면 아저씨 탓을 할 거라는 거죠.”

“와. 너 같은 새끼는 협박도 잘하는구나.”

조롱하는 건지 감탄하는 건지 모르는 말투였지만 경완의 다이아몬드 멘탈에 흠집을 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아니죠. 합리적 변론이죠. 아저씨도 알다시피 제가 가는 곳은 싹수 노란 쓰레기들을 모아두는 곳이잖아요?”

“용케 주제를 아는 구나?”

경완은 다시금 경찰의 조롱을 한 귀로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 곳에 신입이 처음 가면 으레 벌어지는 일이 있잖아요.”

“신고식?”

“뭐 텃세 같은 거겠지만 제 성질 머리가 언제까지 그런 불합리한 대우를 참을지 모르겠네요.”

“그러니까 탕수육을 사주면 참겠다?”

“참겠다는 게 아니라 탕수육 안 사준 걸 핑계 삼지 않겠다는 거죠.”

경완의 혓바닥은 참으로 매끄러웠다. 경찰은 감탄했다.

“대~단하다. 네가 이겼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경찰은 결국 경완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런 미친놈하고 엮이면 손해는 자신만 본다.

“탕수육은 대짜고 짜장면은 곱배기요.”

다행히 경찰이 협상(?)을 받아준 덕분에 경완은 어린 쓰레기들이 모이는 곳에 들어가기 전에 거하게 배를 채울 수 있었다.

= = = = =

○○소년교도소.

경완은 자신이 8개월 간 생활하게 될 교도소의 이름 따위 머리에서 지웠다. 어차피 나간 뒤엔 나이 때문이라도 다시 올 일이 없는 곳이었다.

“문제 일으키지 마라.”

교도소장이 새로 들어온 경완에게 경고했다. 그 말이 경완에게 기시감을 들게 했다. 소년원장도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문제 인물들을 모아놓는 시설의 책임자가 으레 하는 말인 모양이었다.

경완은 혼거실에 배정을 받았다. 혼거실이란 4명에서 5명이 같이 쓰는 방을 뜻했다.

아이들은 새로운 얼굴인 경완에게 무슨 일로 들어왔는지 물었다.

경완은 간단히 대답했다.

“폭행.”

“폭행?”

한 소년이 코웃음을 치며 되물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기색이었다. 고작 폭행가지고 여기에 올 리 없었다. 때리다가 누구 한 명 죽였겠지.

“얼마나 때렸는데?”

“많이 안 때렸어. 전치 2주에서 3주 정도?”

피멍이 들기는 했지만 뼈가 부러진 것도 아니고 음낭이 파열 된 것도 아니었다. 경완의 기준으론 매우 손속이 자비로웠다.

그런 경완의 말에 모두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랄. 저기 저 새끼가 여기에 왜 들어 왔는 줄 알아?  찐따쉑 좀 때렸다가 식물인간이 됐다고 들어왔어. 저기 저 새끼는 가출한 애새끼들 모아서 꼰대 작업 치다가 걸려서 들어왔고. 그런데 고작 폭행? 2주? 개소리하지 말고 솔직히 말해봐.”

방장으로 보이는 아이가 재촉하자 경완은 그를 잠시 살폈다. 방장의 옆에 있던, 그래 꼭 일진 대가리의 옆에서 호가호위하는 2류 양아치 같은 느낌의 아이가 끼어들었다.

“너 지금 야리냐?”

“어디까지 얘기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

경완은 순순히 이야기하기로 결정했다. 불가피하게 당분간 얼굴 맞대고 지낼 사이였으니 자신이 양보하기로 했다. 원래 다른 사람과 원만히 지내려면 양보하는 정신이 필요했다.

“예전에도 한 번 폭행으로 소년원 간 적이 있어.”

경완의 말은 상습 폭행으로 결국 소년교도소로 들어왔다는 의미였다.

방장이 물었다.

“거기선 얼마나  받았는데?”

“장기.”

“그럼 여기는?”

“8개월.”

그 말에 모두는 석연치는 않았지만 납득한 듯이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상습적으로 사람 패는 분노조절장애라면 교도소에 처박힐 수 있었다. 8개월이라는 다소 약한 형량이 그걸 납득시켰다. 교도소에 들어오는 소년들은 몇 년씩 형량을 받은 악질이 많았으니까.

“그래서 몇 살인데?”

호가호위 2류 일진이 대뜸 물었다. 경완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너보단 많아.”

“그래서 몇 살이냐고?”

“너보단 많다고.”

“아 이 씨발새끼가! 똑바로 대답 못해?!”

놈이 으르렁 거리듯 이빨을 드러냈다.

경완은 놈의 아둔함에 답답해하면서 그답지 않게 친절하게 설명했다.

“멍청한 새끼야. 말귀를 그렇게 못 알아 처먹냐? 나이 좀 몇 살 더 처먹었다고 대접 받을 생각 말라는 뜻인 걸 모르겠냐? 나이가 벼슬도 아니고.”

나이를 얼마나 처먹었기에 벌써부터 꼰대질을 하려고 드는지 참.

경완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작게 혀를 차자 놈이 붉어진 얼굴로 일어났다. 금방이라도 싸움이 날 듯 분위기가 험악해졌지만, 방장은 흥미롭게 구경만 할 뿐이고 다른 음침한 놈은 구석에 짱박혀 관심도 주지 않았다.

경완은 지금 이 순간이 싸워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 여태까지는 순순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경계심을 많이 풀었겠지만 계속 순순히 수긍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호구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아는 것이 인간의 습성인데 소년교도소에 들어올 정도의 품성을 가진 놈들이야 오죽하랴?

호구가 되면 하루하루 생활이 힘들 뿐더러 호구가 될 성미를 가진 경완도 아니었다.

그가 덤비라는 듯이 2류 양아치를 향해 손을 까딱 거렸다. 놈이 흥분해서 달려들었다. 제법 싸워본 티가 났지만 그대로 경완의 카운터펀치를 턱에 먹고는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런 경완을 보며 방장이 감탄했다.

“좀 치는데?”

“이 씨발 놈이!”

그런 감탄을 흘려들은 2류 양아치가 눈에 독기를 품고 덤벼들려고 할 때 방장이 그를 제지했다.

“준원아. 그만해라.”

“하지만,”

“야이 씹새야. 나한테 맞은 건 벌써 까먹었냐?”

방장이 지그시 노려보자 준원이라 불린 2류 양아치가 씩씩거리면서도 눈을 내리깔았다.

그런 소년을 만족스럽게 본 방장이 경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윤경석이라고 한다. 잘 지내보자.”

방장의 이름은 윤경석, 씩씩거리는 호가호위 양아치의 이름은 이준원, 그리고 구석에 짱박힌 음침한 놈의 이름은 여민이었다.

이준원은 미성년자 성매매 알선 및 갈취, 협박으로 들어왔고, 여민은 갈취, 폭행, 상해 및 과실치사로 들어왔다. 그리고 윤경석은 살인으로 들어왔다.

혼거실의 질서를 유지하는 윤경석은 분명 리더쉽이 있었다. 게다가 살인도 그냥 살인이 아니었다.

청부살인.

재판에서는 담배 피는데 뭐라하는 꼰대질에 순간 열을 받아 찔렀다고 진술했지만 감방에서 썰을 풀어놓을 때의 뉘앙스는 그것이 아니었다.

본인이 무용담처럼 조폭 형님들과 형 아우 하는 사이며 학교(교도소)에서 나오게 되면 형님들 밑으로 들어가서 생활하게 된다며 자랑질하는 것과 결부시키면 청부살인이라는 의심을 피할 수 없었다.

본인의 입으론 열 받게 해서 죽였다지만, 평소 윤경석의 태도를 봐도 분노조절장애와는 거리가 멀었는데 담배 좀 피지 말라고 했다고 칼질을 했다? 믿기 힘든 진술이었다.

그런 윤경석의 말은 자신은 사람도 죽여 봤고 뒷배에 조폭이 있으니 알아서 기어라라는 경고의 의미임을 다른 아이들이 모를 리 없었다.

경완은 그런 방장에게 반항하지 않았다. 악당도 악당 나름의 품격이 있는지 쓸데없는 똥군기를 잡지도 않았고 규칙도 다행히 나름 적응할만했다. 경완은 쓸데없이 일 벌이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었고 윤경석은 무한전생자의 반발을 사지 않아서 다행이었으니 나름 윈윈 관계였다.

나름 괜찮은 혼거실에 배정받은 경완은 빠르게 교도소에 적응했다.

교도소의 생활을 무탈하게 보내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하지 말라는 거 안 하고, 하라는 거 하면 되니 이 얼마나 편한가? 군대나 회사에서 '넌 시킨 거만 하냐??', ‘왜 니 맘대로 하는데?’ 같은 앞뒤 안 맞는 개소리를 듣지 않는 점은 확실히 교도소가 더 나았다.

그러길 한 달 쯤, 경완은 방장인 윤경석으로부터 이런 새삼 이런 말을 듣게 되었다.

“너 밖에서 무슨 일 있었냐?”

“왜?”

경완의 물음에 윤경석은 다른 걸 물었다.

“혹시 김진태라는 이름 들어봤어?”

“첨 들어 보는데?”

첨 들어보는 이름은 아니다. 뉴스에 종종 나오는 이름이니까. 하지만 윤경석이 말한 김진태가 뉴스에 나오는 그 김진태일리는 없었으니 경완이 모르는 김진태라는 뜻이다.

“그래?”

“그 사람이 나한테 해꼬지라도 해달래?”

초월적인 경험이 만들어낸 통찰력 어린 질문에 윤경석의 눈알이 이리저리 돌았다.

“.. 아니 그건 아니고.”

그는 그것을 끝으로 말을 더 꺼내지 않았다. 경완도 굳이 캐묻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있다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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