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19화 (19/367)

018-01-누가 내게 돌을 던지는가

그 뒤로 며칠 후, 밤이었다.

복도의 환한 불빛이 창살을 통해 들어오는 밤. 경완이 기거하는 혼거실에선 아이들의 잠에 빠진 숨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왔다. 이준원은 코까지 골았다.

하지만 그중에 조용히 몸을 일으키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윤경석이었다.

그는 여민과 이준원을 차례로 깨웠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되었는지 윤경석이 깨워도 왜 깨웠냐고 묻지도 않고 조용히 입을 다문 채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윤경석의 손짓에 따라 조용히 움직였다. 이준원은 경완의 머리맡으로, 여민은 발밑으로, 그리고 윤경석은 손을 풀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했다.

이준원이 경완의 팔목을 붙잡는 그 순간 잠든 줄 알았던 경완이 벼락같이 움직였다.

그는 이준원에게 붙잡혀 들어올려진 손으로 옷깃을 잡아채 당기며 몸을 새우처럼 웅크렸다. 다른 한 손과 다리가 마치 나팔꽃 줄기처럼 이준원의 다리를 휘감는 동시에 팔뚝에 놈의 발목이 끼었다.

그 모습은 마치 독사가 먹잇감을 휘감듯 민첩하고 유연했으며, 또한 독했다.

우드득!

“끄아악!”

이준원의 발목과 무릎이 정상적이지 않은 각도로 비틀렸다. 경완은 발로 놈을 윤경석에게 밀어버린 후 벌떡 일어나 여민에게 달려들었다.

놈이 당황하며 주먹을 뻗었지만 주먹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기엔 경완은 이미 너무 가까웠다. 그는 얼굴을 한 대 맞으며 팔꿈치를 베어올리듯 쳐들었다. 그 끝에 여민의 턱끝이 걸렸다.

뇌가 흔들려 비틀거리는 놈을 마무리하려는 찰나 윤경석이 달려들어 뒤에서 경완을 붙잡았다. 하지만 경완은 집요하게 여민을 공격했고 놈의 사타구니를 발등으로 올려쳐 무력화시키는 것에 성공했다.

“끄억!”

그 와중에 윤경석이 경완의 목에 팔을 두르고 힘을 주었다. 경완은 아찔해지는 시야를 통해 위험함을 느끼고 힘껏 몸을 뒤로 밀었다.

“큭!”

벽에 강하게 부딪힌 윤경석이었지만 경완을 풀어줘선 안 된다는 확신에 고통을 참고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경완의 시야가 뿌예졌다. 하지만 무한전생자의 경험은 자신을 죽이려는 상대를 확실히 제압할 방법을 순식간에 구상했다.

창살과 문의 방향, 방의 구조가 머리에 떠올랐다. 계획이 세워졌다.

그는 오른발을 들어 발꿈치로 윤경석의 발등을 찍었다. 보복으로 목을 조이는 힘이 더 강해졌다. 하지만 하체의 균형이 흐트러져 경완의 몸부림에 몇 걸음 이동했다.

그것으로 조건은 충분히 만족했다.

경완은 뒤로 몸을 밀며 놈의 발을 걸었다.

오른발.

놈이 경완의 발을 피했다.

왼발.

이번에는 발을 피하지 못했다. 경완의 손이 놈의 허벅지 자락을 붙잡아 당겼기 때문이다.

몸이 넘어진다. 윤경석은 땅바닥과의 충돌을 대비하며 팔과 손에 더욱 단단히 힘을 주었지만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충격이 그 모든 각오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둘이 넘어지는 곳, 그곳엔 변기가 튀어나와있었다. 윤경석의 머리가 떨어지는 바로 그곳에.

퍽!

변기가 깨지는 동시에 윤경석의 의식이 흐릿해졌다. 뇌진탕에 정신이 몽롱해지며 경완의 목을 조르던 팔에 힘이 빠졌다.

경완은 서둘러 빠져나와 호흡을 골랐다.

후흡! 후흡!

혈류에 빠르게 산소를 공급하는 방법도 다 요령이 있었다.

뇌에 산소가 공급되자 흐려지던 정신이 또렷해졌다. 또렷해진 정신은 분노보단 기계적인 냉철함을 품었다. 경완은 윤경석의 발목을 팔뚝과 다리로 휘감듯 잡고 비틀었다. 마치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우두둑!

“끄아악!”

악마의 기술이라는 힐훅이 십자인대를 확실하게 끊어버렸다. 운이 좋아 절름발이 신세를 면해도 비 올 때마다 시큰거려서 견디기 힘들 것이다.

다음은 팔이었다.

“아, 안 돼!”

“돼.”

“삼공오이! 멈춰!”

뒤늦게 교도관들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지만 윤경석의 어깨에선 파열음이 일어났다.

우드득!

“끄아아악!”

윤경석의 비명소리가 잠에 빠진 소년교도소를 깨웠다.

= = = = =

“내가! 사고! 일으키지! 말랬지!”

소장은 서류철로 수갑을 찬 경완의 머리를 연신 후려치며 분기를 달랬다.

경완은 도 닦는 스님의 심정으로 소장의 분기를 받아주었다. 부탁할 일이 있어서였다.

“넌 두 달간 독방이다!”

경완의 처분을 결정하는 소장에게 그가 조심스레 말했다.

“부탁 하나만 해도 돼요?”

“부탁?! 부타아악?!”

“사소하면서도 중요한 부탁이에요.”

평소에 가볍던 경완답지 않았던 태도였기에 소장은 언성을 높이며 물었다.

“뭔데?!”

“윤경석한테 최근에 누가 면회 오거나 밖에서 연락 온 적 있어요?”

“그건 왜?”

“김진태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 있어요?”

“정치인 아니냐?”

“정치인 말고 윤경석이 아는 동명이인이 있어요.”

“그래서?”

“아무래도 윤경석 이 새끼가 저를 조지라고 청부를 받은 것 같아서요.”

김진태. 그리고 또 하나 떠오르는 이름이 김태구였다. 자신이 교도소에 들어오게 된 가장 큰 이유.

둘은 필시 어떤 식으로든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청부?”

“그게 아니었다면 제가 왜 세 명하고 싸웠겠어요?”

그 말에 소장은 이렇게 대꾸했다.

“내가 듣기로는 네가 밤에 일어나서 다짜고짜 공격했다던데?”

“소장님. 여기에 들어온 애새끼들은 죄다 싹수 노란 새끼들이잖아요. 그 말을 믿으세요?”

“네 말은 믿고?”

소장이 어이없어했다. 싹수 노래 보이기는 경완도 마찬가지였다.

“저만 의심하지 말고 그 녀석들도 의심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대가리 수가 많다고 진실을 이야기하진 않거든요.”

경완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던 소장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경완의 말이 사실이라면 골치 아픈 일이다 싶었던 것이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넌 계속 독방일거다.”

문제의 원인이 바깥에 있으니 청부가 반복될 위험이 있었다. 소장은 자신의 관할 아래에서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경완을 격리해서 보호할 의무가 있었다.

경완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럴 경우엔 산책만 자주 시켜주시면 돼요. 햇볕을 쬐야 잠이 잘 오거든요.”

“고려해보도록 하지.”

그렇게 경완과 소장 사이에 작은 약속이 맺어졌고 경완은 독방으로 들어갔다.

독방은 독방이었다. 좁았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 답답함에 폐쇄 공포증에 걸릴 정도라 충분한 징벌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의 성향에 따라 다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경완에게 독방은 그리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무한전생자로서 수행을 위해 일부러 고행을 해보기도 한 그에겐 독방은 훌륭한 수양의 장소였다.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는 범죄자들에겐 형벌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

경완의 의식이 내부로 침잠해 들어가며 육감이 깨어났다. 뇌를 간질이는 것 같은 감각을 무시하고 명상에 잠겼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말이 맞다면 생각은 어디에서 탄생하는가? 경완은 그 해답을 알고 있었다. 생각은 바로 자극과 반응에서 탄생한다. 두 객체의 상호작용이야 말로 모든 정보의 기초이자 생각의 시작이었다. 뉴런이 자극받느냐 받지 않느냐. 그것은 마치 컴퓨터의 기계어와 같았다.

그렇기에 경완은 뇌를 간질이다 못해 전신을 간질이며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는 육감을 무시하고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완전한 죽음을 원하는 그의 처절한 고뇌가 생각의 죽음을 위해 자극을 통해 자아를 일깨우려는 일체의 감각을 거부했다.

아니, 거부라는 단어보다는 무시라는 단어가 적절했다. 그는 깨어나는 육감을 무시했다. 육감이란 더듬이에 더듬어지던 것들이 그 더듬이와 상호작용을 했지만 육감마저 무시해버린 경완의 자아를 일깨울 순 없었다.

좁은 창문이 전부인 독방 안에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교도관들은 이 신기한 현상을 볼 순 없었다. 바람이 CCTV에 보일 리는 없잖은가?

경완이 육감마저 무시하고 완전히 외부세계와 단절하자 독방 안에 불던 바람이 잦아들었다. 하지만 육감에 반응하려한,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무언가는 그를 중심으로 안개처럼 퍼지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냄새도 없는 그것은 오직 육감을 가진 이들만이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농도가 너무 옅어 육감을 가진 이들마저도 잘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경완이 육감을 무시하며 생각의 죽음, 자아의 죽음이란 화두를 궁리하는 동안 그가 있는 독방 안엔 계속 바람이 불었다 멈췄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이 반복될수록 현대 물리학으론 검출할 수도 설명할 수 없는, 현대과학이 그 존재를 부정할 무언가는 콘크리트 벽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처럼 주변의 모든 것을 투과하며 주변으로 퍼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의 명상을 깨우고 그의 의식을 현실로 불러온 것은 일체의 인간적인 감정교류를 거부하는 듯한 교도관의 냉정한 목소리였다.

“삼공오이! 식사 시간이다!”

그 목소리에 경완은 눈을 스르르 떴다. 결국 의식이란 육체란 감옥에 갇힌 죄수일 뿐이었다.

= = = = =

경완은 어느새 소년교도소 내에서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윤경석의 명성을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약육강식의 세계랄까?

교도소라는 곳이 표면상으로는 갱생과 교화를 목적으로 하지만 냉정히 바라보면 오히려 범죄자를 육성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건 앞날이 창창한(?) 소년들을 모아둔 소년교도소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적지 않은 이들이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며 자신의 과오를 후회하기도 하지만 이미 ㅈ된 인생, 막나가자고 마음먹은 놈들에게 범죄조직은 괜찮은 대안이었다. 밑바닥 생활하는 건 좆같지만 야망 있는 놈들은 옆구리에 미녀를 끼고 즐기며 살 수 있는 꿈을 그릴 수 있으니까.

그런 만큼 소년교도소는 싱싱한 피를 수혈하고자 하는 조직들에겐 쏠쏠한 헤드헌팅 시장이었다. 깡패의 꿈을 꾸는 예비 조폭, 혹은 어린 조폭이 비단 병신이 된 윤경석만은 아니었다.

“야. 니가 걔냐?”

식사하는 중에 앞자리에 식판을 내려놓는 덩치 큰 녀석의 말에 경완은 그 녀석을 힐끔 보면서도 숟가락과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요즘엔 교도소밥이 군대밥보다 잘 나온다던데 한창 자랄 때의 청소년들을 수용한 시설이라 그것보다 더 잘 나오는 것 같았다.

“너 나 무시하냐?”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더라.”

“그럼 듣기만 해, 이 새꺄.”

그렇게 비웃듯 쏘아붙인 녀석의 이름은 송철호. 그는 경완의 귀가 솔깃한 이야기를 꺼냈다.

“너 윤경석이 누구 밑이 있는지 아냐?”

“.....”

“야, 대답 안 해?”

“언제는 듣기만 하라며?”

“섀~끼. 반응 봐라.”

그는 입꼬리를 올려 경완을 잔뜩 비웃어주면서 말을 이었다.

“넌 좆됐어, 임마.”

“이곳에 들어온 놈들 중에 안 좆 된 놈들도 있나?”

경완의 일침에 송철호의 미소가 살짝 굳더니 못들은 척 말을 이었다.

“김진태라고 알아?”

“정치인?”

“어우~, 병신 새끼. 윤경석이 말 안 하디?”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보며 송철호가 입을 열려는 순간 교도관이 끼어들었다.

“왜 거기서 그리 잡담을 하나?”

교도관의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송철호가 목소리를 낮췄다.

“나머지는 나중에 얘기해 줄게.”

그리고 경완은 다음날 점심시간에 송철호로부터 나머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미 예상했지만 김진태는 조폭건달 양아치였다. 불법의 영역에서 합법의 영역에 발을 걸친 작은 기업형 조폭이랄까?

그래서 그런지 사람을 가려 받았는데 윤경석은 그 김진태의 조직에 들어가기로 확정된 놈이었다.

설명을 다 마친 송철호는 경완을 보며 비릿하게 미소 지었다.

“이제 네가 얼마나 좆 됐는지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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