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01-누가 내게 돌을 던지는가
그런 놈을 병신으로 만들었으니 분명 조직 차원에서 보복이 들어올 것이다. 어차피 소년교도소에 들어올 정도로 힘도, 빽도 없는 새끼니 1차로 합의금을 거하게 뽑아먹고 그것도 모자라면 중국 원양어선에 팔아버려서 손해를 충당할 것이 분명하다나?
하지만 경완은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아니.”
난 모르겠는데?라는 표정이 송철호에게는 그렇게 병신 같이 보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래서 더 좋았다. 멍청한 새끼는 이용하기 좋으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너한테는 지금 비를 피하기 위한 우산이 필요하단 말이야.”
“필요 없는데?”
자신이 직접 이렇게 야부리를 털면서 나섰는데도 대번에 거절당하자 송철호의 표정이 단번에 굳었다.
“너 후회한다.”
“뭐 어때? 인생은 원래 후회하는 거야.”
이 세상에 후회 없이 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결혼한 걸 후회하고, 결혼 안 한 걸 후회하고, 결혼 못 한 걸 후회하고.
후회는 사대성자라 불리는 성인들도 피해갈 수 없는 번뇌였다. 후회 없는 사람? 그건 인두겁을 쓴 괴물에 불과했다.
경완의 대답에 송철호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뭐, 나중에 보면 알겠지. 그때 가서 울고불고 매달릴 생각하지 마라.”
“울고불고 매달리면 선심 베푸는 척 도와줄 거면서 새침 떨기는.”
“···.”
경완을 보는 송철호의 표정이 살짝 멍해졌다. 이 새끼가 그걸 어떻게 알았지?라는 표정이었다.
사람의 심리란 참 요상해서 병 주고 약 주면 원망보다 고마움을 더 강하게 느낀다.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를 더 미워한다. 피해자가 가해자 편을 드는 스톡홀름 신드롬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모순성을 대표하는 사례였고 경완은 그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송철호의 수작질이 너무나 잘 보였다. 결국엔 선심을 베푸는 척 자신을 호구잡고 이용하려는 심리를 감추지 못했다. 아직 어려서 그런 모양이었다.
경완이 말을 이었다.
“그렇게 날 도와서 네가 원하는 건. 아마 내 실력?”
“안 도와준다니까.”
속내를 정확히 꿰뚫린 송철호가 시치미를 뚝 떼 보았지만 경완에겐 통하지 않았다.
“난 그쪽 세계에 몸담을 생각 없거든. 제안은 고맙지만 거절한다.”
“이 새끼야. 그럼 앞으로 뭐해 먹고 살 건데?”
송철호는 쏘아붙였다. 아쉬웠지만 내심으론 포기했다. 이 새끼 싸움도 잘하고 머리도 잘 굴린다. 이용하려다가 오히려 자신이 잡아먹힐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앞날을 걱정하는 척 물어보는 것은 놈이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 혹여나 자신의 걸림돌이 될 것인지 확인하고 혹여나 걸림돌이 된다면···. 미리 제거해 버릴 생각이었다.
과연 이것이 미성년자의 생각일까? 하지만 소년범죄는 갈수록 그 연령대가 낮아지고, 그 잔혹성도 심각해지는 것이 현실이었다. 애들도 알 건 다 안다. 촉법소년이 뭔지도 알고 이를 이용하는 놈도 있었다. 인터넷이란 정보화의 홍수 속에서 아이들의 순수함은 유지되기 힘들었다.
경완이 대답했다.
“그냥 남한테 피해 안 주고 조용히 살 건데?”
“그러니까 어떻게?”
“적당히 일하다가 귀찮으면 산에라도 들어가지 뭐.”
사람들의 선의로 먹고 사는 노숙자가 목표지만 눈앞의 어린 악한에게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정도로 경완은 어리석지 않았다.
놈은 경완의 대답에 심히 흡족했는지 안심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한 번 선심 쓰듯 당부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찾아와.”
“고맙다.”
고맙진 않았지만 경완은 마치 송철호가 선의를 베푼 듯이 고맙다고 해주었다. 입에 발린 말 몇 마디로 일신의 평온을 얻을 수 있다면 수지맞는 장사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송철호와의 만남은 끝났다. 그리고 소장이 다시 경완을 불렀다.
“아무래도 계속 독방에 있어야 할 것 같다.”
“김진태. 맞죠?”
“하아..”
교도소장은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긍정을 표했다. 경완의 말대로 윤경석이 청부를 받은 것도 맞고 녀석의 뒤를 김진태라는 조폭이 봐주는 것도 맞았다. 증거는 없지만 교도소장도 나름 범죄자들을 오랫동안 상대해본 경험이 있었기에 정황만으로 확신을 가지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그 확신은 경완을 어린 예비 조폭들로부터 분리해야 한다는 판단으로 이어졌다.
“이제부터 계속 독방 생활이다.”
힘들 거라는 뉘앙스에 경완은 어깨를 으쓱했다.
“산책 횟수를 늘려주시면 괜찮습니다.”
이미 언약했던 바라 소장은 고개를 끄덕였고 경완은 하루에 세 번 식사 후 30분씩 야외 공터에서 바람을 쐴 수 있게 되었다. 상당한 특혜였으며 소장이 예외적으로 배려해준 것이기도 했다.
소장도 사람이었다. 죄 값을 얌전히 받는 놈을 건드렸다면 얄짤도 없겠지만 예비 조폭을 손봐준 것이 아니던가? 직업윤리 때문에 인정하진 못하지만 솔직히 통쾌한 것이 사실이었다. 소년교도소의 소장을 맡고 있다보면 요즘 애새끼들은 애새끼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해마다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경완은 한동안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좀 심심했지만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거나 내면에서 기어 올라오는 번뇌를 다스리는 건 나름 어려운 일이라 심심함을 죽이기에 괜찮은 수단이었다.
그러다가 지치면 신체를 단련했다. 좁은 독방 안이라도 효과적으로 신체를 단련할 수 있는 방법은 있었고, 경완은 하루에 한 번 있는 샤워시간을 고려하여 땀을 흘렸다.
인정하긴 싫지만 인간이 느끼는 상쾌함과 쾌적함은 땀을 흘리지 않으면 얻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독방에서 지낸 한 달 동안 경완은 제법 충실한 시간을 보냈다. 명상을 하고 신체를 단련하고 책이나 인터넷을 하면서 자신이 살아갈 세상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
교도소의 밖의 정보에 접촉할 수 있는 시간은 짧았지만 어차피 긴 시간이 주어져봤자 필요이상으로 열심히 할 마음은 없었다. 다만 요령이 있었기 때문에 단시간에 최고효율을 뽑을 줄 알았다.
그런 말도 있잖은가? 놀고 싶었기 때문에 빨리 공부해버리는 방법을 습득했다고.
기만 같은 소리지만 요령을 터득한 사람에겐 그 말은 사실이었고 경완은 그 요령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 물론 그런 요령을 아무나 터득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한 요령은 재능을 바탕으로한 일종의 깨달음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 한 달의 시간동안 경완의 육체 역시 꽤나 단련되었다. 근육이 건강하게 붙었다고나 할까? 젊음이 단련에 따라 육체의 강건함을 촉진시켰다. 그리고 한층 건강해진 육체는 한층 안락한 기분을 보장했다. 육체는 곧 정신을 가둔 감옥. 잘 꾸미고 가꾸면 그만큼 정신 역시 편안해지는 것이다.
경완은 그렇게 출소 때까지 아무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어느 날의 점심시간. 경완은 배식을 받고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다른 재소자들도 배식을 받고 자리에 가서 식사를 했다.
그런데 어떤 감각이 날카롭게 곤두섰다. 예리한 무언가가 목을 향해 날아오자마자 여태껏 무시했던 육감이 활성화되었다.
경완은 팔뚝을 올려 목을 가리는 동시에 상체를 뒤로 젖혀 목을 노리는 공격을 피해냈다.
하지만 팔뚝에 꽂히는 날카로운 통증은 그가 공격을 완전히 피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죽엇!”
살기 어린 목소리가 재차 공격할 의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지만 반대편에 있던 경완의 손이 흉기를 쥔 손목을 붙잡고 잡아당겼다.
이름 모를 놈은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경완의 머리통을 붙잡고 버텼지만 그간 단련된 경완의 힘과 허리까지 동원해 원을 그리듯 균형을 빼앗는 요령을 당해내지 못하고 경완의 허벅지 위에 쓰러졌다.
서로의 얼굴이 마주한 순간.
놈은 아직 앳된 얼굴에 살기를 담고 있었고, 그것을 내려다보는 경완의 표정은 무심했다. 마치 컨테이너 벨트에서 작업하는 노동자의 표정같달까?
그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하는 듯이 그대로 플라스틱 젓가락을 놈의 안구에 꽂아버렸다.
“아아악!”
경완은 흉기를 놓치고 젓가락이 꽂힌 안구 주변을 갈퀴처럼 벌어진 손가락으로 가리는 놈의 머리칼을 쥐고 쓰레기 버리듯이 옆으로 치워버렸다. 그리고 엉망이 된 자신의 식판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씨. 다 못 먹었는데···”
중얼거리듯 불만을 토하는 그 말은 상황에 비해 너무나 평범했기에 도리어 이질적이었다. 그리고 그 이질성은 급히 다가오는 교도관의 발걸음마저 주춤거리게 만들 정도의 힘이 있었다.
하지만 직장인의 비애가 흔히 그렇듯 자신의 관할 아래서 벌어진 사고는 수습해야 했기에 그들은 얼른 안구에 젓가락이 꽂힌 재소자를 병원으로 보냈고, 경완은 의무실로 보냈다. 동시에 습격자가 사용한 흉기를 서둘러 회수했다.
경완의 팔뚝에 피를 흘리게 만든 흉기. 그것은 날카롭게 날을 세운 약 3센치 정도의 타일 조각을 손가락만 나무토막에 붙여 만든 칼이었다.
= = = = =
“야! 내가 사고치지 말랬지!”
익숙한 훈계다. 경완이 대꾸했다.
“세 번째로 듣네요.”
“사람이 말을 하면 알아 처먹어야지!”
역정을 내는 소장에게 경완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다고 제가 죽을 수는 없잖아요.”
“어후···.”
소장은 나름 합리적인 사람이었고 일의 전후사정을 파악했기 때문에 경완에게 책임을 더 미루진 않았다. 다만 골치가 아플 뿐이었다. 경완을 공격한 놈이 몰래 흉기를 소지한 일도 수습해야했고, 흉기를 소지했던 그 새끼가 경완의 손에 애꾸가 된 일도 수습해야했고 아주 그냥 골치가 아팠다.
“꼭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니?”
소장은 화를 다스리며 경완에게 물었다. 솔직히 흉기로 공격을 당했다지만 다짜고짜 안구에 젓가락을 찍어버리는 경완의 손속은 너무나 잔혹했다.
경완은 이렇게 대꾸했다.
“반사적인 행동이었어요.”
“어이가 없군.”
사람의 눈알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젓가락을 꽂아 넣는 게 반사적인 행동이라니?
그런 소장의 말에 경완은 뻔뻔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렇게 생겨 먹은 걸 어쩌겠어요?”
“비겁한 변명이다.”
“소장님은 그렇게 생각하세요. 전 생겨 먹은 대로 살랍니다.”
“그러다가 또 교도소 온다.”
“제가 이래봬도 준법시민이라서요.”
“지랄.”
소장은 황당했지만 경완은 자신이 나름 준법시민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면 벌써 도망쳐서 수배자가 되었을 걸요?”
“애당초 법을 지키면 되는 거 아니냐?”
“그게 안 되더라고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대머리는 불법이다 따위의 법률이 제정되어서 대머리들이 열심히 머리를 심을 때 저는 에라 모르겠다 돈도 없고 머리 심을 마음도 없으니 대머리로 살련다. 벌금을 먹이든 감옥에 집어넣든 알아서 해라..라는 거죠.”
경완이 그렇게 말하며 소장의 이마를 슬쩍 보았다. 소장은 자신이 가발을 쓴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 태연한 척 경완의 말을 받았다.
“그런 법이 제정될 리가 있나?”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거죠. 타인을 해할 목적으로 흉기를 휘두른다면 자신도 똑같이 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게 제 기본 원칙이거든요.”
“그 기본 원칙을 바꿀 생각은 없니?”
“그게 그리 쉽게 바꿀 수 있는 거라면 제가 여기에 들어왔을까요?”
대화가 쳇바퀴처럼 맴돌았다. 사회의 일부가 된 사회인과 그것을 거부한 비상식인의 대화는 마치 멀쩡한 톱니바퀴가 톱니가 다 마모된 톱니바퀴와 맞물린 듯 맞물려 돌아가는 듯하다가 종종 핀트가 어긋나 헛돌았다.
한숨 쉬는 소장을 위해 경완이 위로의 말을 남겼다.
“그래도 이제 교도소 내에서 저에 대해 청부를 받는 놈들은 없을 거예요. 애꾸가 되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