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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52화 (52/367)

051-07-더 빌런 라이징

사실 테러조직 입장에선 무려 넉 달 동안 탈탈 털린 꼴이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 내에 조직한 눈과 귀, 모집책 등의 귀한 조직망이 거의 깡그리 털린 꼴이었으니 그 조직망을 다시 구성하려면 도대체 얼마만큼의 시간을 더 들여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입장에 처했는데 원인을 모른 채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던가?

도대체 미국에서 무슨 짓을 했기에 이렇게 큰 손해가 발생했는가?

이에 관해 조사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경완이 심문한 여러 인물을 통해 경완의 존재가 알려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극동 아시아계열로 보이는 동양계 독심술사.

그렇게나 능력이 출중하다면 분명 유명할 것이라는 테러조직의 추측은 그대로 들어맞아 갱완 리라는 존재를 특정할 수 있게 되었다. 경완이 국회의원을 습격한 일로 국제적인 뉴스를 탄 것도 여기에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사실 이번 비행기 납치는 겸사겸사 그를 노린 것이었다.

물론 실행범들은 그 사실을 알 순 없었다. 그들에게 비행기 납치는 그들의 신앙을 증거 할 지하드 활동일 뿐이었으니까.

이 일련의 사실들은 경완이 비행기 납치범들을 심문한 걸 바탕으로 FBI가 붙잡은 윗선을 다시 경완이 심문해서 알아낸 사실이었다. 그래서 돌아오기 직전의 일주일은 상당히 빡빡했다.

솔직히 미정부의 입장에선 그에게 표창장 및 미국 시민권을 줘도 모자랄 정도로 막대한 안보적 이득을 얻은 것은 분명했다.

다만 경완이 동맹국인 한국의 범죄자, 그것도 정치인에게 테러를 가한 범죄자라는 사실 때문에 동맹국의 체면을 고려해 잠잠히 있는 것일 뿐, 아마 경완이 ‘미국과 계약하여 건실하고 성실한 준법시민이 되겠어요’라고 한마디 한다면 단번에 미 시민권을 주고 경완의 신분을 세탁해 미국으로 데려올 정도로 미국, 특히 FBI 등의 수사기관은 경완을 이미 주요 수사자산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경완은 함부로 대하기 힘든 거물이 되었다. 교도소장이 직접 이렇게 마중을 나올 정도로 말이다.

홍 소장은 청와대 수석비서관으로부터 받은 전화 내용을 떠올렸다.

'그는 비록 범죄자지만 주요한 외교적 자산이 되었습니다.'

'진실의 스무고개라고 했던가요? 법정에서 증거 능력은 없더라도 수사에 막대한 도움을 주는 그의 능력은 분명 국가에 기여할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국회에 테러를 가한 범죄자라는 것에 있어요. 대통령의 사면권으로 거래를 하려고 해도 국회에서 반발할 겁니다.'

'그렇다고 그가 흔쾌히 협조하도록 내밀 수 있는 조건이 없어요. 가족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프로파일링을 보면 그는 돈이나 명예, 권력에도 연연하는 성격도 아닙니다. 프로파일러들은 그의 정체성이 범죄자보다는 오히려 수행자에 가깝다고 하더군요. 사법 거래는 그에게 매력적인 조건이 아닙니다.'

'국가가 그의 앞에 내밀 수 있는 협상 카드가 몇 개 없다는 소립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그가 지내고 있는 교도소입니다. 홍 소장님. 당신의 책무가 막중합니다.'

홍 소장은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여태까지 들은 소리 중에서 가장 개소리가 아닐까? 눈앞에서 저 뻔뻔한 낯가죽으로 격조했냐고 인사하는 미친놈이 수행자라니?

아니면 수행자들은 다 미친놈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 개소리가 청와대 수석비서관의 입에서 나온 이상, 마냥 개소리로 치부할 순 없었다.

“아주 그냥 너 때문에 난리가 났다.”

“저도 알아요.”

자칭 유튜버라고 하는 유튜브 렉카들이 지나가는 외국인을 붙잡고 '두유 노우 갱완 리?'라고 하는 꼬라지가 참으로 가관이었다.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 걸까?

“들어가자.”

“아직 저녁 식사 전이죠?”

“그래.”

“오늘 저녁은 뭐에요?”

“삼계탕.”

“와우.. 웬일이래? 높은 분들이 더위 드셨어요?”

“그러게 말이다.”

홍 소장은 속으로 쓰게 웃었다. 과거 귀휴 나갔다가 그대로 탈옥한 무기수가 경완을 두고 언터처블이라고 했는데 진짜 그렇게 되어버렸다.

무슨 재벌회장님도 아니고 교도소장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재소자를 뭐라고 부르겠는가?

홍 소장은 세상 참 요지경이라고 생각했다.

= = = = =

07-더 빌런 라이징

-범인에게 오줌을 갈기는 장면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것이 부끄럽지 않나요?

-제가 좀 낯가죽이 두꺼워요.

-굳이 그런 방식이 아니라도 주의를 끌 수 있지 않았나요?

-잔뜩 긴장해서 언제든 방아쇠를 당길 준비가 되어 있는 상대에게서 안전하게 주의를 끌려면 단순히 주의를 끄는 것만이 아니라 동시에 혼란도 가해야죠. 그리고 눈앞에서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는 것만큼 사람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도 없죠.

-다 계산된 행동이라는 건가요?

-그렇죠. 제가 변태거나 미친놈이라서 바지를 까고 오줌을 갈긴 게 아니라니까요?

“아니긴 뭐가 아냐?!”

홍 소장은 경완이 외신 기자와 접견해 인터뷰한 기사를 보더니 일갈했다.

속이 시커먼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런데 그 사람이 그 시커먼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평생 착하게 살았다고 치자. 그러면 그 사람은 속 시커먼 사람이 아니라 그냥 착한 사람이다.

경완이 멀쩡한 사람이라고? 멀쩡한 놈이면 멀쩡한 짓을 해야지 왜 미친 짓을 하는데?!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도 경완의 변명은 그냥 변명일 뿐이었다. 하물의 노출을 망설이지 않는 미친 변태놈이 자기를 멀쩡한 놈이라고 포장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홍 소장의 견해였다.

하지만 기사의 댓글난은 온통 홍 소장을 복장 터지게 하는 것들뿐이었다.

-횽! 횽은 다 계획이 있구나!

-체면 따윈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보다 못하다는 신념! 멋있어!

그중에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댓글은 이것이었다.

-양승태 조질 때부터 알아봤지만 참 치밀한 사람이다. 원래 천재는 미친놈처럼 보인다고 하잖아?

미친놈은 그냥 미친놈이지 천재는 무슨 천재야!

교정직 세월만 수십 년인 홍 소장의 입장에서 천재라서 미친놈은 본 적이 없었다. 그냥 미친놈이 천재인 척할 뿐이지.

홍 소장은 짜증 나는 메인뉴스난을 닫고 스포츠난으로 넘어갔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국위 선양을 얼마나 하셨나 궁금한 건 홍 소장뿐만은 아니었다.

그가 기사들을 읽어보니 그동안 스포츠 과학에 무슨 패러다임의 혁신이라도 불어닥쳤는지 신기록이 쏟아졌다. 육상 단거리 100m에서 8초대의 세계 신기록이 나왔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흑인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졌던 바로 그 종목에서 무려 흑인이 아니라 백인이 세운 기록이라는 것이다.

그뿐일까? 높이뛰기, 멀리뛰기, 투창, 투포환 등 예술점수라는 심판의 주관성이 전혀 개입될 여지가 없이 오직 숫자로만 승부하는 종목에서도 타이기록, 신기록 등이 쏟아졌다.

한국 양궁도 미국과 접전을 벌였는데 한국 선수가 동일한 한 점에 화살 세 대를, 그것도 이미 정중앙에 박힌 화살을 가르고 박히는 신기를 연속 두 번을 보여줄 정도로 이번 올림픽에는 대단한 장면이 많이 연출되었다.

혹시 약물 때문인가 급히 조사했지만 그 어떤 정황 증거도 찾지 못했다.

홍 소장은 진기명기한 이번 대회의 하이라이트를 챙겨보며 혀를 내둘렀다. 역시 사람의 한계란 극복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극복이 꼭 선수들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니었다.

[귀금속 매장 연속 절도!]

[범인의 완력은 고릴라 수준? 보안장치의 신뢰성은?]

[10층 아파트 독신녀의 집에 창문으로 침입한 강간범!]

[갭투기 400채 모녀 전세금 떼먹고 잠적했다가 처참한 시체로 발견.]

홍 소장은 아직 모르는 일이지만 일선 경찰들 사이에선 범인들의 신체능력이 강해져서 비상이 걸렸다.

무슨 특별한 약물이라도 이용한 것일까? 기존의 상식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범죄들이 늘어났다. 비상이 걸린 것은 그러한 비상식성 때문에 초동수사가 잘못되면 사건이 미결이 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일선 수사관들의 골치를 아프게 만든 사건은 400채 갭투기 모녀 살인 사건이었는데 잔혹한 현장이 인터넷에 올라오고 관련 기사들이 쏟아지자 인력을 집중 투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지 한쪽이 찢겨나가고 목이 270도 돌아간 시체를 만든 인간 같지 않은 범인이 밖에 돌아다니고 있다고 하는데 국민들이 불안해하지 않겠는가?

경찰은 갭투기 모녀가 전세금을 떼어먹은 사람들 중에 용의자가 있을 거라고 보고 수사를 진행했지만 용의자만 400명이 넘었다. 남의 돈인 전세금 가지고 갭투기를 하다가 결국 이자를 틀어막질 못해서 죄다 떼어먹은 것이다.

피 같은 전세금을 떼어먹힌 사람들을 모녀 살인 사건의 용의자라고 수사하던 일선 경찰서는 폭탄을 맞은 듯이 난리가 났고 기자들은 좋다고 그 장면을 찍어댔다.

“이 짭새 새끼들아! 내가 그년들을 찢어 죽였으면 얼마나 좋았겠냐?!”

“그년들이 죽었다고? 내 돈은?! 뭐? 어차피 알거지년들이었다고? 이 씨발놈들아!”

잡히지 않는 집값, 나날이 증가하는 전세가격 앞에서 임차계약이 끝날 때마다 전세금을 어떻게 구할까 전전긍긍하는 예비 홈리스들에게 자신들의 돈으로 400채나 갭투기한 모녀는 죽어 마땅한 썅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게 다 공급을 줄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탓입니다!]

[날조하지 마세요! 주택 공급량은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모든 정권 동안 계속해서 증가해왔어요! 핵심은 양극화입니다! 지방은 청약이 미달 나는데 수도권은 완판됐죠. 2주택자보다 3주택자가, 3주택자보다 4주택 이상의 다주택자 증가율이 해마다 더 높아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보다 더 많이 공급하면 자연히 시장논리로 가격이 낮아질 거 아닙니까? 그런데 곳곳에 규제를 깔아놓아서 수요를 충당 못 하니 집값이 폭등하는 게 아닙니까?!]

[사람들이 원하는 건 죄다 돈이 되는 재건축이죠. 하지만 무턱대고 용적률을 높이면 나중에 그 일대의 교통혼잡은 어떻게 할 겁니까? 그리고 재건축을 하는 동안 거기에 살던 사람들이 또 새로운 수요층이 되어서 전셋값 폭등의 원인이 되지 않겠습니까?! 마냥 규제를 푸는 게 정답이 아니에요! 그리고 그렇게 재개발해봤자 뭐합니까? 투기꾼들이 끼어들어서 실수요자들이 집 살 엄두도 못 낼 정도로 집값을 올려버리잖아요!]

[투기라니요! 그렇게 따지면 주식도 투기니 막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주식투기는 방치하고 주택투기는 안 된다는 논리가 이 자본주의 사회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게 따지면 대형 재난에 앞선 식료품 사재기는 왜 문제가 되고 왜 정부에서 막으려 하는 거죠? 그런 식량 투기가 가져오는 커다란 혼란과 사회적 해악 때문이 아닙니까? 의식주라는 단어도 몰라요? 주식과 의식주가 어디 비교나 됩니까?! 사람은 주식 없어도 맘 편히 살 수 있지만, 주택이 없으면 언제 집주인에게 쫓겨날지 매일 전전긍긍하게 됩니다! 하다못해 주식도 재무제표는 공개합니다. 그런데 아파트는요? 원가라도 공개합니까? 비교할 걸 비교하세요! 요즘 청년들이 연애도 안 하고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는 것이 돈 없고 집 없기 때문이 아닙니까?! 다주택자들이 원하는 건 결국 청년들로부터 월세 받아먹는 불로소득, 영끌족을 이용해 커다란 시세차익을 누리려는 투기 심리 때문이 아닙니까? 투기꾼들이 자기들 이득만 생각하지 이 나라 청년들, 이 나라 미래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생각하겠습니까?]

[그렇게 다주택자들에 대해 마녀사냥을 하니까 사람이 죽어 나가죠?! 이번에 살해된 다주택자 모녀의 살해 사건은 다주택자에 대한 혐오를 부추긴 정부 탓이에요!]

토론 프로그램에선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갑론을박을 벌여댔고, 정부를 비판하는 시위, 경찰에 대한 민원 등이 들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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