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54화 (54/367)

053-07-더 빌런 라이징

“설마 했던 힘이 나를 떠나버렸어. 설마 했던 힘이 나를 버렸어~.”

“음.. 저, 저기 잠시만!”

철문도 찌그러뜨려 뜯어내고 쇠창살도 우그러뜨리며 콘크리트 벽에도 구멍을 내던 힘이 사라지자 놈이 당황한 표정으로 경완을 향해 두 손바닥을 펼쳤지만 흥얼거리며 그를 향해 다가가는 경완의 발걸음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벌크업한 힘을 쉽게 잊을 수 없어. 늦었어 이미 벌컵 끝났어~.”

“....”

결국 안 되겠는지 놈이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경완이 흥얼거리며 그 뒤를 쫓았다.

“오 오오 오, 오 오 오 오. 독한 남자라 하지마. 오 오오 오, 오 오 오 오. 저질렀으니 책임져~.”

“아아악! 으아악!”

곳곳에 철상이 세워진 교도소에서 도망치면 얼마나 도망치겠는가? 놈은 곧 경완에게 잡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 = = = =

이른바 괴력 재소자 사건은 경완의 활약(?) 덕분에 빠르게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고 한국에서만 일어난 일도 아니었다. 온 세계가 느닷없이 나타나기 시작한 초능력 각성자로 몸살을 앓았다.

괴력같이 힘이 특히 강해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전반적인 신체 능력 상승, 감각의 강화 같은 경우도 많았다.

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싱귤러리티, 특이점의 발생이라고 규정했다. 그 시기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적어도 신기록이 쏟아진 올림픽 이전에 일어났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데 입을 모았다. 작금의 사태를 생각해보면 올림픽의 신기록 행진이 초능력 발현의 전조 증상이 아니라면 설명하기 힘들 정도였으니까.

그렇다면 이 일의 원인은 무엇인가?

가장 유력한 가설로는 싱귤러리티 입자 또는 S입자로 명명된 제5의 힘이 가득한 차원과 인류가 살고 있는 차원이 겹쳐지는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전자기력, 중력, 강력, 약력 그 어떤 것에도 포함되지 않는 이 S입자 같은 힘이 발생할 리 없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였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이 사건이야말로 다중차원론을 지지하는 강력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런 차원 충돌이란 이슈는 초능력자 각성과 엮인 각종 사건사고와 엮여 종교계까지 퍼져나갔다.

“심판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주님께서 불로 세상을 심판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이때다 싶어 사이비 종교가 창궐하여 신도들에게 전 재산의 기부를 종용하기도 했고,

“나, 난 죽이고 싶진 않았어요!”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학생이 얻어맞다가 초능력을 각성해 자신을 때리던 일진들을 죽이거나 병신으로 만들었다.

한국도 이 정도인데 외국은 어떻겠는가? 남미에선 초능력을 각성한 마약 조직이 영역 확장을 위해 전쟁을 벌였고, 빈부격차 큰 미국에선 초능력을 이용한 강도행각이 급증했다.

유럽도 난민 이민자 문제와 얽혀서 엉망이었고, 종교 및 민족갈등으로 이미 엉망인 중동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경우는 안정적이었다. 초능력자의 난동과 범죄를 다소 심하다 싶을 정도의 화력으로 현장 사살 해버린 장면을 언론으로 대서특필해 버리니 새삼 초능력을 얻었다고 감히 나쁜 짓을 할 생각을 못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전 세계 정부들은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몸살을 앓으면서도 발 빠르게 대응했다.

특히 미국은 능력을 각성한 이들을 위주로 초능력 범죄대응팀을 구성했다. 그리고 그 팀을 우선 워싱턴, 미 국회의사당과 백악관 주변에 배치였다. 아무래도 가장 먼저 걱정되는 점은 각성한 힘으로 정치에 영향력을 끼치려고 하는 시도였기 때문이다.

초능력이 없을 때도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과도한 우려는 아니었다. 그것을 지칭하는 이름이 바로 테러리즘이었다.

[백악관에 침입한 괴한 체포 성공. 하지만 마치 전쟁이라도 일어난 듯한 백악관. 초능력자. 이대로 방치해야 하는가?]

“정말이지 큰일 날 뻔했어.”

홍 소장은 외신 기사가 올라온 인터넷 창을 닫으며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경완이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진 음식을 음미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홍 소장은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더 먹고 싶은 거 없나?”

“아니요. 이걸 제가 혼자 어떻게 다 먹는데요? 이거 백퍼 남아요.”

“남으면 다른 사람들 주면 되지.”

경완의 앞에 놓인 음식들은 교도관이 나름대로 감사의 표시를 한 것이었다. 그가 괴력을 발휘한 범인을 붙잡아두고 마침내 제압까지 하지 않았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다른 교도소에서는 사상자가 나와서 결국 소총까지 사용했다지 않는가?

그런 교도소에 비교하면 ○○교도소는 정말이지 경완 덕분에 무사히 사건을 막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이 정도 성의 표시가 대순가? 범인의 사지 뼈가 부러지고 박살 나서 몇 달 동안 침대에서 요양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런데 정말 어떻게 제압한 건가?”

“그거 CCTV에 다 나와 있지 않아요?”

독방에는 재소자들의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서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물론 홍 소장도 경완이 어떻게 놈을 상대했는지 보았다. 하지만 본다고 모두가 다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칠판에 써진 교수님의 판서를 본다고 학생들이 다 이해하면 석박사란 감투는 왜 있겠는가? 경완이 영상 안에서 보여준 몸놀림은 가히 스턴트 배우나 무용수, 곡예사, 파이터들이 교수님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봐도 납득이 안 돼서 그렇지. 혹시... 자네도 각성했나?”

“초능력이요?”

“그래.”

“모르겠는데요?”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제6감을 통해 요새 학자들이 명명한 S입자라는 것과 상호작용을 해보고 있기는 하지만 딱히 눈에 띌 정도로 완력이 강화되는 것 같진 않았다.

다만 감각이 좀 더 예민해지기는 하는데 그것이 초능력인지는 긴가민가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 했다.

그런 그를 보며 홍 소장이 말을 이었다.

“그놈의 주먹이 다쳤다는 게 이해가 안 돼서 그래. 그놈이 능력을 발휘할 땐 주먹도 단단해지거든. 그런데 자네를 상대할 때 주먹이 다쳤단 말이야. 혹시 자네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어.”

“타당한 의문이기는 한데..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저는 모르는 일이라는 거예요.”

진짜다. 농담이 아니고 왜 놈의 주먹이 다쳤는지는 경완도 알지 못했다. 관심조차 없었으니까.

경완이 화제를 돌렸다.

“우리나라는 초능력자 연구를 얼마나 진행하고 있대요?”

“얼마 전에 국회의사당에 트럭 몰고 돌진한 사람 있지?”

“네.”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기억에는 초능력을 통해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자 한 한국 최초의 범죄자로 남아있었다. 그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었든 반쯤 맛이 갔던 중요하지 않다.

그의 의도가 단순 분풀이에 불과하더라도 그것이 입법권자에게 폭력이란 형태의 직접적인 영향을 가하려 했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보수적인 부류는 이런 점을 우려하여 여러 규제안으로 초능력자에 대한 제재 및 통제를 시도하려 하겠지만 경완은 한 가지 만큼은 말할 수 있었다.

힘은 힘이다. 그리고 힘은 결국 돈과 권력과 밀접하게 얽힐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초능력이란 형태의 새로운 힘일지라도 예외일 순 없었다. 공권력이란 것도 결국 일반인들이 항거할 수 없는 물리적 완력, 즉 폭력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혼란은 있겠지만 어차피 엉망진창으로 굴러가던 세상이라 크게 의미 있는 변화는 없을 것이며 결국 사람들은 뉴노멀에 잘 적응해서 살아갈 것이란 게 경완의 생각이었다. 인간의 적응력은 생각보다 대단하니까.

홍 소장이 말을 이었다.

“그 최필수라는 자의 능력이 좀 특이해. 조건부 발현이라나?”

“뭔데요?”

“술에 취한 상태여야 괴력이 나온대.”

그 갭투기 모녀를 찢어 죽인 것도 술에 취한 채 인사불성으로 벌인 짓이란다.

하긴 술에 취하면 자제력이 줄어드는 것이 맞다. 그런데 그걸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도 주취(酒臭) 사고가 끊이질 않는 건 법이 좆같기 때문인가 아니면 판사새끼님들이 지 꼴리는 데로 판결을 내리기 때문인가?

요새 판례를 보면 아무래도 후자 같기는 했다. 판결 좆같이 내린다고 짤리기를 하나, 징계 먹기를 하나? 지 꼴리는 데로 판결 내리는 것에 대한 마땅한 반대급부가 없을 때부터 지 좆대로 판결을 내리는 법관의 행태는 예고된 일이었다. 재판은 개입했지만 개입할 권한이 없어 무죄라는 말장난 같은 판결이나 내리는 것이 요즘 판사들의 수준이니까.

“흐음.. 그럼 이 교도소에서 난리 친 그놈은요?”

“아직 조사중인데..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일정 시간 동안 괴력을 쓸 수 있는 타입이라더군.”

충전식, 혹은 쿨타임인 모양이었다.

“다들 바쁘겠네요.”

많은 의미가 함축된 말에 홍 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교도소장인 그에게는 초능력 재소자들 때문에 골치 아픈 다른 교도소에 관한 말로 받아들여졌다.

“감금 체계 바꾼다고 다들 정신이 없다. 그래서 말인데...”

“왜 또 그러세요? 불안하게 시리..”

말꼬리를 흐리며 뭔가 부탁할 기색을 보이는 홍 소장을 보며 경완은 귀찮음을 직감했다.

홍 소장이 결국 입을 열었다.

“초능력을 각성한 재소자들을 우리 교도소로 이감시킬 계획이라더라.”

“그런데 그게 왜요?”

그게 뭔데 저한테 말하세요? 라는 순진한 표정을 짓는 경완이었지만 홍 소장도 나름 그가 어떤 놈인지 파악했다. 순진한 척하는 모습의 의미는 결국 듣기 싫은 말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이 좀 사교적이면 상대가 뭔가 어려운 부탁 같은 걸 할 기색을 보일 때 말하기 편하게 운을 쫌 떼주고 그러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그런데 저렇게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순진한 척 모르쇠를 한다는 건 눈치가 없는 것인가 아니면 뻔뻔한 것인가? 더구나 내가 더 연장잔데!

홍 소장은 자신의 꼰대성은 모른 채 뻔뻔하고 냉정한 놈이라며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말을 이었다.

“급히 교부금이 나와서 감방을 개조하고 있지만 그동안 시간이 걸리지 않니? 그동안 초능력자가 사고 치더라도 수습할 수 있는 교도소에 수감하기로 했지.”

그 말에 경완은 홍 소장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홍 소장은 은근슬쩍 시선을 돌렸다. 자신이 한 말이 얼마나 개소리인지 자신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초능력자? 총기는 뒀다가 국 끓여 먹나?

“이쯤 되면 제가 재소자인지 교도관인지 모를 지경이네요.”

“커흠!”

“헛소리는 그만하고 사실을 말해 봐요.”

“진짜야! 공문에 그렇게 쓰여 있어!”

홍 소장은 자신의 무고를 주장했지만 경완에게 통하진 않았다.

“공문에 뭐라고 적혀 있었는데요?”

경완의 말에 홍 소장은 공문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했다. 일단 초능력 재소자들을 ○○교도소에 수감하는데, 거기에 들어갈 재정적, 인적 자원을 정부차원에서 지원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초능력 범죄자 전용 수용시설을 만들려고 하는 것 같은데요?”

“진짜?”

홍 소장은 눈썹을 치켜떴다. 자신도 솔직히 정부의 지시가 이해되지 않았다. 초능력자들을 한 대 모아놨다가 그들이 의기투합이라도 하면?

범죄를 저지를 범죄자들이 의기투합한다는 말이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지만, 원래 사람이라는 동물이 별것 아닌 것으로 싸우면서도 그만큼 별것 아닌 것으로 의기투합하기도 한다.

국내에선 생판 남이었다가 외국에서 만나기라도 하면 같은 한국인이라는 것만으로 마치 친한 친구인 양 서로 반가워하고, 얼굴도 본 적 없었던 선후배 사이인 주제에 그저 같은 학교 동문이라는 이유만으로 회사에서, 사회에서 밀어주고 당겨주는 사례들을 살펴보면, 단지 초능력을 각성했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동료 의식을 가질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은가?

더구나 모두 죄를 짓고 들어온 재소자들이니 공감대 형성은 생각보다 더 쉬울 수도 있었다.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