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4-07-더 빌런 라이징
그런데 경완이 폭탄을 던지듯 툭 말 한마디를 던졌다.
“딱 보니까 인체실험각 같은데요?”
“인체실험이라니!”
홍 소장은 벌떡 뛰었다. 윤동주와 마루타의 아픈 역사적 기억을 배운 그에게 인체실험이란 단어는 자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경완이 말을 이었다.
“초능력 연구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어딜까요? 결국 초능력자를 모아둔 곳이겠죠?”
“설마 명색이 민주국가인 이 나라인데 그렇게까지 할까?”
“뭐, 인체 해부나 이상한 주사까지 놓지는 않겠지만 최대한 다른 나라, 특히 미국의 눈총을 사지 않는 수준에서 연구는 하려고 하겠죠.”
“··· 국민적 비난은?”
“국민을 개돼지로 여기시는 분들이 많은데 설마 국민 눈치를 살필까요? 선거철도 아니잖아요?”
국민의 삶은 본인 스스로가 책임져야지 왜 정부가 책임지나 같은 소리를 하는 분도 대선후보랍시고 설치고 다니는 세상이다. 그럼 세금은 왜 걷는데? 국민을 개돼지 노예 취급하지 않고서는 하기 힘든 말이다.
홍 소장은 눈알을 굴리며 애써 개돼지란 단어를 한 쪽 귀로 흘렸다.
“.. 그래도 힘들지 않을까?”
“글쎄요. 북한에서 초능력 특수부대 같은 걸 만든다고 소란 피우면서 반드시 만들 것 같은데요?”
북한. 군사력을 확장하기 좋은 핑계다.
일본이나 중국이 한국 국방비 지출이 너무 많다고 지랄하면 고개 들어 대포동을 보게 하라!
경완의 예측에 홍 소장은 전전긍긍했다. 잠시 다른 교소도의 부담을 안게 되는 대신에 정부에 잘 보이는 건수라고 생각했는데 졸지에 국내 최초 초능력 범죄자 교도소의 소장을 맡게 될 판이다.
뭐든 처음엔 시행착오가 많은 법.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은 결국 관리자가 책임져야 하지 않는가? 따로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격려 전화를 받아 헤벌쭉했던 자신을 떠올리니 이렇게 바보스러울 수도 없었던 홍 소장이었다.
물론 경완의 말대로 진행된다는 확증은 없었지만, 그 논리 전개가 무척 개연성이 있어서 마치 그의 말대로 진행될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뒤 정말 그렇게 될 거라는 정황 증거가 홍 소장의 눈에 들어왔다. ○○교도소 옆의 부지를 확보한 정부가 교도소 증축을 시작했던 것이다.
홍 소장의 눈썰미에 잡힌 부지의 규모가 보통이 아니었다. 저 큰 부지를 죄다 감방으로 만들겠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자 자연스레 경완의 말이 떠올랐다. 초능력 연구소 말이다.
물론 초능력을 각성한 재소자만으로 S입자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은 어불성설. 홍 소장은 한국 정부 차원은 물론 민간 기업에서도 초능력자 모집 및 특채를 진행한다는 뉴스를 볼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러한 대대적인 움직임은 그만한 롤모델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그것은 미국이었다.
히어로에 열광하는 나라답게 미국은 초능력자의 민간 도입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나라였다. 그렇다고 미정부 차원에서 민간 초능력자를 수수방관하고 있을 리도 없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경완은 다시 한번 FBI의 방문을 받았다.
“많이 바쁘셨어요?”
“.. 과로사 하는 줄 알았습니다.”
경완의 질문에 대답하는 김준의 얼굴은 눈 밑이 시커먼 것이 누가 봐도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 기색이 역력했다.
“하도 소식이 없기에 이제 미국도 제가 필요 없어진 줄 알았어요.”
“각종 사건 사고를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미스터 리의 힘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죠.”
“오호라~.”
그러니까 그동안은 용의자만 쫓는다고 딱히 심문할 시간조차 없었다는 말인가?
“초능력 범죄가 꽤나 많았던 모양이네요?”
“많다기 보다는 체포가 곤란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골격과 근육, 피부색과 질감을 어느 정도 변형시킬 수 있어서 다른 사람으로 위장해 살인을 저지른 이, 전직 마이너 리거로서의 경험 덕분인지 평소에 앙심을 가진 직장 상사의 머리에 뚜껑을 따지 않은 페트병을 멀리에서 던져 상해를 입힌 이, 각질 경화로 NIJ 레벨 4 정도의 방탄 능력을 갖춘 채 마약갱단을 대거 살해한 이 등 그 수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기존의 방식대로 수사했다면 결코 용의자조차 특정조차 할 수 없었던 사건들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어찌어찌 다 잡아들였나 보네요?”
“네. 이번에 새로 신설된 부서의 공이 컸습니다.”
“무슨 부서인데요?”
“초능력 요원으로 구성된 부서죠.”
“그거 비밀 아닌가요?”
“대외비이기는 하지만 어차피 알려질 일이기도 해서 말해줘도 괜찮습니다.”
경완은 왠지 조금 귀찮은 기분을 느끼며 이어지는 김준의 설명을 들었다. FBI 국장 직속의 대(對) 초능력 범죄 수사부가 신설되었으며 거기에 특별한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들을 대거 영입했다는 것이다.
굳이 설명하자면 에스퍼. ESP(ExtraSensory Perception) 계열로, 초인적인 완력이나 순발력 같은 것보다는 촉감이나, 시각, 청각 등의 감각이 기이할 정도로 발달한 초능력자들이 주를 이루었다.
물론 그중에는 기존의 오감만이 아니라 육감이란 특별한 감각이 발현된 이도 있다고 김준은 설명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감각이 미세한 증거들을 찾아내고 용의자를 추적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 정도면 말해주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경완의 물음에 김준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미스터 리에게 이야기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당신의 능력, 진실의 스무고개를 우리 초능력 범죄 수사부의 요원들에게 전수해 줄 수 있을까 물어보기 위해서입니다.”
“음.. 그런 거라면 이미 핫 리딩이라든지 콜드 리딩이라든지 체계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걸 가르치는 것이 빠르지 않을까요? 저는 아무래도 재능빨로 터득한 거라.. 이론적인 부분이 약해서요.”
게으른 천재를 이기는 것은 결국 이론이다. 인류 문명이 위대한 이유는 이론적 체계를 통해 여러 사람의 지혜를 집중시켜 천재를 따라잡을 수 있는 길을 닦아주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경완이 무한전생자라고 하나 발달한 문명과 학문의 총아는 능히 그의 역량을 따라잡거나 혹은 뛰어넘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경완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결국 가르치기 귀찮기 때문이었다. 이미 잘 조직된 학문 체계와 교육 체계가 있는데 ‘굳이 내가?’란 생각이 드는 건 당연했다.
한편, 겸양으로 포장한 귀찮음을 꿰뚫어 보지 못한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 그에 관련된 교육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실습과 경험이 필요하더군요.”
“그건 굳이 제가 없이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경완은 다시 한번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 정도면 거절의 의사를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 아닌가? 좀 알아듣지?
그런데도 김준은 웃었다. 어딘지 어색했지만 자연스런 미소를 지어보려 노력하는 기색이었다.
“미스터 리 수준의 독심술을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또 없다는 게 저희의 결론입니다.”
“흐음..”
에이 설마라며 미심쩍어하는 듯한 경완의 태도에 김준은 조금 초조해졌다.
초능력 범죄 수사부에서 본격적인 독심술사를 양성하려고 시도하고 나서야 FBI는 경완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자인지 실감할 수 있게 되었다. 경완이 그저 기술일 뿐이라고 말한 '진실의 스무고개'를 소속 요원들이 조금이나마 흉내 내보려고 했지만 그 난이도에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귀하시다는 육감 능력자조차 10번째 질문을 던지고는 진이 빠져서 하루를 쉬셔야 할 정도였으니까.
오죽하면 일각에서는 조심스럽게 경완이 혹시 오래전부터 S입자에 영향을 받아온 에스퍼가 아닐까라는 의심을 할 정도였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그의 기행도 어느 정도 납득이 되었다. 감각이 다른 사람은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기에 생각하는 방식도 많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경완은 자신의 얼굴에 금칠하는 김준을 향해 영혼 없는 어투로 대꾸했다.
“그거 대단하네요.”
이보세요. 본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남 얘기를 해도 저렇게 흥미가 없을 수가 있을까? 김준은 한마디하고 싶은 마음을 외면하고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다.
“··· 그래서 암튼 일정을 잡아보겠습니다.”
“귀찮은데...”
“이번에 일본에서 고생했으니 좀 푹 쉬다가 갈 수 있도록 일정을 잡아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그렇다면야 나쁠 것 없죠. 그런데 이번엔 하이짹크 같은 사건은 없겠죠?”
다소 장난스런 말에는 약간의 우려가 묻어났다. 설마 또 그럴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싶겠지만,원래 삶이란 종종 사람을 엿먹이기도 한다. 저번 하이재킹도 자신을 노린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또 그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잖은가?
병신 쓰레기를 조지는 일은 즐겁지만, 신념에 가득한 미치광이를 상대하는 건 피곤한 일이었다. 병신 쓰레기는 구더기처럼 땅바닥을 기어 다니게 만들어주면 자신의 주제를 깨닫고 후회와 (가끔) 반성의 눈물을 흘리지만, 미친놈들은 좀처럼 자신이 저지른 짓에 반성하는 일이 없기에 오히려 순교자로 만들어 주는 우를 범할 수도 있었다.
경완의 물음에 김준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번에는 그런 일이 없을 겁니다.
경완이 유린(Urine) 히어로로 이름을 알린 사건 이후 공항과 항공회사의 보안 상태에 대대적인 재점검이 시행되었다. 그리고 X레이 투시 검사 장비의 데이터베이스도 업그레이드해서 총기가 될 수 있는 그 어떤 형태의 물건도 기내에 반입을 금지하도록 만들었다.
비자 발급도 까다로워지고 검문 검색도 강화되었다. 그로 인해 발생한 불편함에 짜증이 난 사람들이 무슬림에 대한 편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김준이 말을 이었다.
“이번에 가게 되면 정말 많은 것이 다를 겁니다.”
“뭐 세상 자체가 바뀌었잖아요?”
초능력 각성자, 그리고 S입자. 그걸 생각하면 FBI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김준이 말한 다르다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미스터 리!]
[여기 봐줘요, 미스터 리!]
공항에 들어서자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경완이 고개를 돌려 짜게 식은 표정으로 김준을 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이미 유린 히어로 유행은 끝난 줄 알았는데?
그때야 해프닝으로 끝났으니까 웃음으로 넘겨짚었는데 이렇게 떨어지지 않는 딱지가 붙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머지않은 미래에 어느 인간쓰레기가 그의 손에 조져질 때 반항한답시고 오줌 히어로, 히어로 오줌 운운하며 조롱하게 되면 그의 예민하고 섬세한 멘탈(...)에 무슨 작용이 일어날지 본인조차 감히 예측할 수 없었다.
김준이 변명했다.
“많이 다르다고 했잖습니까?”
일이 이렇게 돌아간 맥락은 사실 경완과 하룻밤을 함께했던 콜걸이 토크쇼에 나왔던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완이 비록 비행기 납치 사건에 관련된 인터뷰를 하긴 했지만 결국 그건 글줄로 된 문장에 불과하지 않은가? 영상매체에 중독된 대중은 TV화면에서, 스마트폰에서, 유튜브 등에서 그의 얼굴과 목소리를 듣고 싶어 했다.
하지만 경완은 대한민국의 교도소에 갇혀있었으며,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을 병신으로 만든 희대의 범죄자였기 때문에 높으신 분들이 그의 영상매체 출연을 허락하지 않으셨나니, 그나마 인터뷰가 기사로 나올 수 있었던 것도 글로만 전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와중에 최근에 CNN이 FBI를 취재한 일이 있죠.”
그 취재에서 국제작전부(IOD) 책임 특별수사관이며 차분한 백인 엘리트 느낌의 흑인인 스티븐은 ‘안타깝지만, 현재 미스터 리만큼의 역량을 보이는 멘탈리스트는 미국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셨고, 대(對)테러부 책임 특별수사관이자 롸끈하신 데이비드는 ‘그 Fucking GOOD BADASS는 세계 제일의 독심술사!’라고 공언하셨다.
덕분에 식었던 경완에 대한 관심에 다시 불이 붙은 상황.
하지만 경완은 납득하기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