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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68화 (68/367)

067-08-비질란스

그는 곧 냄새의 흔적을 따라 움직였다. 그 뒤를 스테이시가 뒤따랐다. 초능력자는 일반인보다 주변에 S입자의 농도와 활성도가 무척이나 높아서 육감으로 초능력자인지 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더구나 매니 페이스는 능력을 사용해서 외형을 바꾸고 있을 테니 S입자가 더욱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을 터였다.

추적은 빈스가, 확인은 그녀가 하는 나름 훌륭한 조합이었다.

[이쪽이야?]

“Yes.”

한쪽으로 향하는 빈스에게 스테이시가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움직이는 경로는 LAPD의 스와트팀에 공유되었고 스와트팀은 그들을 경호하면서 그들이 가는 방향으로 토끼몰이를 하듯 포위망을 짜서 움직였다.

그런데 청각 능력자인 제시가 무전기로 급히 연락을 취해왔다.

[교전이 발생했어!]

[스와트팀이 발견한 거야?]

[그게 아니니까 문제지!]

제시가 전달하길 초능력자로 생각되는 이들이 전투중이란다. 총기자유의 나라답게 총을 쏴대며 말이다.

그녀로부터 연락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스테이시와 빈스 역시 총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탕! 탕!

탕탕탕!

스와트팀이 급히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려고 했다. 그들 앞의 콘크리트 바닥에서 돌가루와 불똥이 튀기기 전엔 말이다.

“We are under attack!”

스와트팀 현장지위관이 산개와 엄폐를 지시했다. 불의의 공격이었지만 단 한 명도 사상자가 없었다. 다행히 방금의 사격은 그저 그들의 전진을 막기 위한 경고사격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지휘부에 혼란이 일었다. 매니 페이스의 조력자가 나타난 것인가? 그렇다고 보기엔 방식이 좀 이상했다. 매니 페이스를 도우려면 은밀하게 놈의 도주를 도와야지 이렇게 이목을 끄는 짓을 해선 안 되는 것 아닌가?

자신들을 막는 이 정체불명의 총격 용의자(단수인지 복수인지 아직 모르지만)를 파악하기 위해서 스테이시와 시각 능력자인 케일이 나섰다.

[저기 건물과 저쪽 건물 창가에 사람이 있어요. .... 그중 한 명은 초능력자네요.]

[양쪽 다 총기 사용의 흔적이 있습니다.]

케일의 초인적인 시각은 땅에 떨어진 탄피와 벽에 남은 발포가스의 흔적, 그리고 가스 열기가 남긴 아지랑이를 발견하고 사격위치를 확인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예상외의 상황에 LA 스와트팀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총기가 만연한 나라라 철저하게 작전을 짜고 들어가도 위험한데 이런 돌발상황이 벌어지면 더 위험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LAPD는 확실한 강점이 있었다. 그것은 공권력을 가진 기관으로써 확실한 화력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스와트팀은 팀을 둘로 나누어 양 건물로 진입했다. 그 와중에 제이미는 예민한 감각을 가진 초능력 요원들에게 엄폐를 지시하면서도 매니 페이스의 추적을 위해 전진시켰다.

직접 교전을 벌여 체포하지 않아도 된다. 흔적만 끊기지 않게 꼬리만 잘 붙들고 있으면 체포는 시간문제였다. 그들의 뒤엔 미국 정부란 우월한 뒷배가 있잖은가?

건물 안에 있는 방해자들이 위협사격을 가해보았지만 곧 스와트팀과 교전을 시작해서 FBI의 추적을 막을 수가 없었다.

경완이 김준에게 물었다.

“괜찮겠죠?”

“모르겠습니다.”

대답하는 김준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계획대로 일이 되어가도 긍정적 결과를 얻기 힘든데 이렇게 돌발상황이 발생해서야..

그는 굳은 표정으로 경완에게 리볼버 한 정을 넘겨주었다. 경완이 고개를 갸웃했다.

“진짜 주는 거예요?”

총기를 쥐여준다고까지하는 신뢰를 보여줘여 따라오기는 했지만 진짜 줄 줄은 몰랐다.

“주는 게 아니라 빌려주는 겁니다.”

“그러니까요.”

왜 자신 같은 범죄자에게 지금 총기를 주냐는 의미의 물음이었다. 막말로 지금 같은 혼란 상황은 탈출도 쉽지 않은가?

이에 김준이 대답했다.

“이런 말도 있잖지 않습니까? 고양이 손도 빌려야 할 때가 있다고요.”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야 상관없긴 한데 댁은요?”

“저는 총 한 정이 더 있습니다.”

그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반자동권총 한 정을 또 꺼내보였다.

“혹시 김준 씨 총기 마니아에요?”

“원래 리볼버는 미스터 리 당신을 위해서 준비한 겁니다. 명색이 현장에 투입하는데 총기 한 자루 없으면 안 될 테니까요.”

총기 허용 국가라 더 그렇다나?

총기라도 한 정 갖고 있으면 그만큼 안정감이 들 테고 그럼 엉뚱한 생각을 하지 않고 협조에 집중할 거라는 김준의 보고서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했다. 경완의 언행을 가장 가까이서 관찰한 사람의 판단을 믿지 않는다면 탁상공론에 불과할 테니까.

경완은 김준의 대답에 혀를 내둘렀다. 이 새끼들 진심이구나. 진심으로 이 몸을 부려먹으려고 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 21세기판 검은 고양이가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뭔 소리냐고? 검온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유명한 말이 있잖은가?

복잡한 심정으로 권총을 받아든 경완은 김준의 뒤를 따랐다. 양 옆의 건물에선 계속 총성이 들리는 것이 제압이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FBI요원들이 골목을 빠져나갔지만 끝이 아니었다. FBI요원들을 가로막은 또 다른 장애물이 있었으니..

[더 이상의 접근은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짙은 회색빛 후드를 눌러쓰고 군화를 신은 거대한 남자가 요원들의 앞을 막아섰다. 바이저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남자는 척 봐도 심상찮은 분위기를 흘리며 마치 변조한 것 마냥 굵은 목소리로 요원들의 발걸음을 제지했다.

스테이시가 심각하게 굳은 표정으로 모두에게 경고했다.

[초능력자에요. 그것도 상당히 강력한..]

그녀의 육감엔 남자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치고 있는 S입자가 느껴졌다. 그 활성도와 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그 말의 뜻은 이러했다. 저 남자는 엄청나게 강한 초능력자라고..

[우리는 FBI입니다. 이렇게 방해하면 공무집행 방해죄로 체포할 수도 있어요.]

제이미가 상황 판단을 내리고 상대에게 물러가도록 제안했다. 아직 FBI의 체포조는 준비되지 않은 상황. 수사요원들을 보호하는 것은 그의 책무였다.

그의 말에 수상한 남자는 말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일을 하는 것이고, 저는 저의 일을 할 수밖에 없겠죠. 그 와중에 갈등이 생기는 건 필연입니다.]

[지금 저희를 막겠다는 겁니까?]

“Yes.”

[도대체 왜?]

제이미의 물음에 낯선 남자는 대답했다.

[매니 페이스라고 합니까? 그는 죽을 겁니다.]

[··· 당신은 누구입니까?]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느낀 제이미가 묻자 그는 의외로 순순히 답을 해주었다.

[우리는 우리를 이렇게 부르기로 했습니다. 비질란스(Vigilance)]

Vigilance. 경계, 각성, 불침번 따위의 의미를 가진 단어였다.

하지만 제이미는 그 단어에서 다른 단어를 떠올렸다.

비질란테(Vigilante), 자경단.

Vigilance는 Vigilant의 명사형이고 Vigilant는 Vigilante와 그 의미가 크게 다르지만 끝에 붙은 'e' 하나만 다를 뿐이었다.

뭔가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제이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초능력을 각성한 자들의 자경활동이 발생하리라는 건 이미 수사기관이나 치안치관에서 예상한 바였지만 이렇게나 빨리 활동을 시작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 조직적일지도 예상하지 못했다.

필시 스와트팀이 체포하러간 용의자들도 저들이 말한 비질란스의 일원이리라.. 그렇지 않다면 눈앞의 저 위험해 보이는 남자가 'we'라는 표현을 쓰진 않았을 테니까..

답답한 마음에 제이미를 블러핑을 시도했다. 현실은 마블 히어로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서로의 정의가 충돌하는 건 필연입니다.]

[그러지 말고 지금 물러나시죠. 범죄자로 수배당하고 싶지 않으면.]

사실 이렇게 말로만 하는 것도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원래라면 총을 겨누고 제압한 뒤에 수갑을 채우고 경찰에 인계했을 텐데 말이다.

이렇게 대치 상황이 이루어진 이유는 상대가 그 능력이 뭔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홀로 공권력의 앞을 막아설 정도로의 자신감을 가진 초능력자라는 것 그 하나 때문이었다.

사내가 말했다.

[이제 국가가 징벌을 독점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돈 많은 사람이 비싼 변호사를 사서 부자병으로 무죄를 선고받거나 형량을 줄이는 시대도 끝났습니다. 행정효율이라는 미명 아래 검찰의 권한만 강화하는 사법거래의 시대도 끝났습니다. 이제 돈이나 권력에 상관없이 벌을 받아야 하는 자가 마땅한 벌을 받아야하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FBI 소속인 제이미로서는 머리가 아찔해질 소리였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큰 혼란이 발생할지 알면서 하는 소립니까?!]

[본래 새로운 질서가 갖춰지기 전엔 혼란이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그 혼란 와중에 피해를 입는 자들은?]

그 말에 남자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당신은 소위 선진국이라는 우리나라와 법치가 문란한 제3세계에서 빈부격차에 따른 형량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알고 있습니까?]

[왜 딴 소리를 하는 겁니까?]

새로운 질서가 갖춰지는 와중에 피해를 입는 자들을 외면하는 것이냐? 그런 의미가 담긴 반문에도 남자는 꿋꿋이 자신의 논리를 전개해 나갔다.

[놀랍게도 차이가 '거의'나지 않습니다. 알겠습니까? 최고의 법률서비스를 자랑한다는 이 갓 블레스 아메리카나 법치라는 것이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는 나라나 결국 돈과 권력이 있는 자는 무죄나 가벼운 형량을 받고,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은 보다 더 무거운 징벌을 받습니다. 이게 이 나라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혼란을 조장하겠다?]

[당신과 같이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은 혼란이 두렵겠지만 이 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새로운 질서를 가져올 혼란을 축제처럼 맞이,]

남자는 자신의 말을 다 끝맺지 못했다. 왜냐면 총성과 함께 그의 목이 뒤로 젖혀졌기 때문이다.

“명중!”

총구를 불며 자찬하는 경완을 보며 김준은 기겁했다.

“미스터 리!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네? 쏘면 안 됐어요?”

김준은 고개를 갸웃하는 경완의 모습이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제이미가 협상을 하고 있었잖아요!”

“아, 그게 협상이었어요? 전 또 서로 싸우기 전에 간 보는 줄 알았죠.”

경완의 말은 열심히 협상해보려는 사람의 입장에선 참으로 어처구니없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더 딴죽을 걸지 못한 건 김준 또한 경완의 말대로 역시 씨움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공감했기 때문이며 또한 총을 맞고 고개를 젖힌 남자가 원래대로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Interesting.”

그는 FBI 요원들로부터 트럭 한 대 거리만큼 뒤에 있는 경완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쿵하고 땅을 박찼다. 아스팔트 바닥이 갈라지며 발자국 하나를 남았다.

그 반동에 남자는 한달음에 경완의 앞에 도착했다.

김준이 놀라 급히 그를 향해 총을 겨눴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경완을 향해 말했다.

“I know you.”

“아이 돈 노 유.”

경완이 대꾸했다.

대범하다면 대범하고 싸가지 없다면 싸가지 없는 반응에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조용히 웃는 것 같기도 했다.

“We need you.”

“아이 돈 니쥬.”

경완이 앞에 말한 것과 비슷하게 대꾸했다. 그러자 그는 결국 피식 웃으며 납치라도 하려는 듯이 경완을 향해 우람한 손바닥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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