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10-빌드업 히어로즈
민간인이 스스로 치안을 확보하는 활동이 자경활동이라면, 기업이 치안을 확보하는 활동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확실한 건 한층 더 보장된 안전을 위해 돈을 쓸 부자는 널렸다는 것이다. 지금도 경호나 경비를 업으로 삼은 기업이 즐비하지 않은가?
강우빈이 말을 이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초능력 범죄가 발생했을 경우 전미 초능력 협회와 디트로이트 시가 협의해 만든 민간 초능력 조직이 신속히 나서서 제압한다는 거죠.”
“디트로이트시는 무슨.. 메트로폴리스나 고담시라도 될 생각이래요?”
“히어로 없는 고담시보다는 낫겠다고 판단한 모양이죠. 사실 디트로이트 상황이 정말 안 좋거든요.”
한때 미국 경제를 이끌었던 러스트 벨트에서도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였던 디트로이트는 국제적인 경쟁에서 밀려 자동차 산업이 쇠퇴한 후로 여전히 어려운 경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경제가 어려우니 그냥 모든 게 다 어려웠다. 빈부격차나 인종갈등은 경제적 문제의 다른 표현일 뿐이었다.
안 그래도 워낙 치안이 안 좋아서 경찰들이 일하기 싫어하는 동네인데, 시에서도 예산이 적어 경찰들 주급 지급이 종종 밀리는 경우가 있을 정도라, 초능력을 이용한 범죄가 치솟는 요즘 같은 시기에 전미 초능력 협회와 같은 곳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으리라.
“이거 잘하면 히어로라는 직업이 생길 수도 있겠는데요?”
“불가능하지는 않죠. 아마 전미 초능력자 협회도 그걸 노리는 것일 수 있어요. 히어로라는 직업이 공인되면..”
강우빈은 말꼬리를 흐렸지만 경완은 충분히 그 흐려진 말이 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초능력이란 힘을 더 이상 국가가 독점하지 못한다. 총기를 국가가 독점하지 못하듯이.
경완은 전미 초능력자 협회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그들이 원하는 사업은 최종적으로 초능력자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인력 파견 사무소였다.
히어로든 뭐든 좋은 말을 다 가져다 붙이며 초능력자들을 꼬드길 것이다. 실제로 뛰어난 자질을 가진 초능력자는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경완은 미래가 눈앞에 미래가 그려지는 것 같았다. 초능력이란 힘을 얻은 자들이 자유를 위해 법이란 쇠사슬을 벗어버리는 혼란 와중에 재능 있는 초능력자들을 히어로로 포장하는 매니지먼트 산업과 히어로를 꿈꾸는 이들을 초능력 파견 노동자로서 여기저기 파견하는 인력 사무소들이 난립하는 미래가.
이번 전미 초능력자 협회와 디트로이트 시 사이에 맺어진 MOU는 본격적인 초능력 산업의 시작을 알리는 효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가장 먼저 초능력 사업을 본 궤도에 올린 나라는, 의외로 미국이 아닌 한국이었다.
[사설 경비업체와 그에 관한 포괄적 업무 협약에 관한 법률개선안]
국회에서 통과된 이러한 이름의 법안에 여러 경호업체나, 경비업체의 주가가 펄쩍 뛰었다. 주식을 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주목할 정도였다.
그 내용은 경찰과 민간 경비업체 사이에 치안요원의 파견을 가능하게 하는 업무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초능력 범죄가 일어났을 경우 경찰은 신속하게 그들의 관할지역에 따라 계약한 초능력 경비업체에 초능력 범죄자를 제압할 수 있는 초능력자의 파견을 요청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쯤 치안의 민영화라 민영화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대중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한 번 통과된 법을 취소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현실적으로도 그러한 법이 필요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왜냐면 행정부가 늘어나는 초능력 범죄에 대응할 충분한 초능력자 확보에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경찰의 총기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나라라서 그런가 이 문제는 더 심각했다. 초능력자가 아닌 경찰에게 초능력을 사용하는 범죄자를 잡으라는 건 너무 큰 위험을 감수하라는 말이 아닌가?
제대로 된 대응을 위해선 소총같이 높은 화력을 지급해야 하는데 여러모로 걸리는 게 많은 모양이었고, 결국 초능력자는 초능력자로 대응한다는 깔끔한 논리가 승리한 것이다.
몇몇 관련자들은 이게 다 대기업 놈들이 초능력자들을 채가서 이렇게 되었다고 분통을 터뜨렸지만 국가에 불려가 애국충정 열정페이로 싼값에 일하는 공노비보다는 몸값 비싸게 불러주는 기업체로 가서 사노비로 사는 편이 개인에겐 더 나은 것이 현실이었다.
청년들을 징병해서 군대에 끌고 가서는 최저시급만도 못 한 월급으로 부려 먹으니 각성한 초능력자도 그래도 되는 줄 알았나? 청년들은 결코 등신이 아니었다. 그들은 참전용사라는 애국충정 열정페이의 결과물을 똑똑히 보고 있었다.
한편, 언론의 전방위적인 포화는 초능력 산업에 대한 장밋빛 미래를 강조했다.
[대기업들. 줄줄이 초능력 산업에 대거 투자!]
[앞으로는 반도체도 초능력으로 만든다?]
[정부와 기업. 초능력 연구에 대거 투자계획 발표!]
이러한 긍정적인 내용의 보도들은 생각보다 훨씬 대중에게 더 잘 먹혔다.
치안의 민영화라든지, 초능력의 사유화 같은 골치 아프고 내게 한 푼 이익 안 되는 논쟁보다 내 입에 더 맛있는 음식이 들어가고, 더 잘 입고, 더 좋은 집을 얻게 해주는 경제적 희망이 사람들의 관심을 더 끄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환해지고,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뚜렷해지는 법.
불합리하고 엉망인 세상에 증오심을 품은 이들이 초능력이란 힘을 쥔 이상 큰 사건이 벌어지는 것은 예정된 일이었다.
퍼엉!
광양의 한 제철소가 폭발했다. 범인은 최근에 초능력을 각성한 한 청년.
그 청년은 오염물질 때문에 조부모님이 암으로 사망해서 그 원한으로 공장을 부숴버렸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그가 사는 동네에선 그 제철소가 운영을 시작한 이래 천수를 누리고 간 어르신이 거의 없었다.
나이가 들면 잔병치레가 많은 건 당연하지만 사망 원인의 80% 이상이 암인 건 이상하지 않은가?
제철소는 원인을 알 수 없다며 책임을 부인하고 있지만 동네 바닥을 자석으로 훑으면 쇳가루가 수북하게 들러붙는 상황인데 책임이 없다는 소리는 개소리였다.
뭐, 피해자의 수가 적으니 오리발을 내민 것이고 법원에서도 책임이 없다고 땅땅땅 봉을 두드릴 가능성이 높았다. 이런 은근한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는 그 역학조사도, 그로 인한 피해의 입증도 쉽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런데 제철소 측에선 운이 좋지 않았다. 하필 피해자의 가족이 초능력을 각성할 게 뭔가?
자신을 버린 부모님 대신 부모처럼 키워주신 조부모를 잃은 청년의 분노는 컸다.
그 분노가 제철소를 향한 분노라서 그런지 청년은 자력을 다루는 능력을 각성했다. 자성을 띨 수 있는 물체에 신체를 접촉하면 그 물체가 강력한 자석이 되는 능력이었다.
그 능력이 철제 구조물이 즐비한 공장에 펼쳐졌다. 강력한 자기력이 만들어낸 강력한 척력과 인력이 철제구조물들 사이에 작용해 공장의 구조적 안정성을 무너뜨렸다. 공장의 파손은 끝내 용광로까지 번져 폭발까지 일으키고 말았다.
다행히도 현장을 관리하기 위해 설치한 CCTV 덕분에 그 청년이 용의자로 특정되고 끝내 체포되고 말았다.
제철소 하나를 결딴내 많은 이들을 실직하게 만든 청년은 자신이 한 짓을 인정하고 얌전히 교도소에 들어왔다.
김한철.
환경오염을 일으킨 기업 때문에 병으로 죽은 조부모의 복수를 한 청년의 이름이었다.
“얌전한데요?”
세간에서 큰일을 저지르고 들어왔지만 얌전히 수속을 밟고 들어오는 김한철의 모습에 남동건은 자신의 첫인상을 경완에게 말했다.
순박한 청년의 모습에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망과 복수심이 생겼지만 사람은 상하게 하지 않고 원인이 되는 공장만 부쉈잖은가?
경완 같았으면 윗대가리부터 족쳐서 책임 추궁을 철저하게 했겠지만 김한철이란 청년은 순박한 건지 호구인 건지, 아니면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는 건지 사람을 상하게 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힘에 취해 날뛸 품성은 아니라고 가늠할 수 있었다.
경완과 남동건은 청년에게서 눈을 떼고 다음에 들어오는 초능력 재소자들을 주시했다. 둘이 이러는 것도 홍 소장으로부터 허락의 형식을 띤 부탁을 받고 하는 일이었다.
경완은 이번에 세간에 크게 알려진 김한철이라는 청년보다 뒤따라 들어오는 남자들이 더욱 신경 쓰였다.
“쟤들 보이냐?”
“네.”
“조심해라. 저 새끼들 보통이 아닌 것 같다.”
“뭐가요?”
“단련이 되어 있어.”
경완의 예리한 눈썰미에 그들의 손에 난 흉터와 굳은살은 물론, 귀나 얼굴, 목 등에 자잘하게 남은 예리한 흉터가 눈에 들어왔다.
살벌한 싸움을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얻을 일이 없는 흔적들이었으며 눈빛도 재소자답지 않게 고요하고 침착했다.
뭔가 믿는 바가 있는 자의 눈빛이었다. 그것이 혹시 자신의 실력은 아닐까?
경완의 말에 남동건의 표정이 굳었다가 경완이 지적한 이들이 초능력 재소자 줄이 아니라 일반인 줄에 서자 확 풀렸다.
“에이, 싸부도. 각성도 못 한 일반인 가지고.”
“나도 일반인이거든.”
“···.”
초능력자도 방심하면 일반인에게 처맞을 수 있으니 방심하지 말라는 충고였지만 남동건은 짜게 식은 눈빛으로 '어디서 개구라야?!'라는 눈빛을 보냈다.
다만 거기까지였다. 경완에게 엉엉엉 울 때까지 처맞은 기억 때문인지 감히 따지지는 못했다.
입소 절차가 끝나고 김한철이라는 청년은 초능력자 수용소로 향했다. 경완이 보기에는 얼마 전 완공된 부속건물, 초능력 연구소로 들어갈 것 같았지만 말이다.
그로부터 사흘쯤 지난 밤.
웨에에에엥~!
사이렌이 울렸다. 북한이 적화통일의 야욕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남침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교도소에 사건이 생겨서 사이렌이 울렸을 뿐.
한참 꿀잠을 자고 있던 경완은 잠은 깼지만 눈은 그대로 잠을 채로 생각했다.
또 지랄이구만.
교도소에 사이렌이 울릴 정도의 일이 발생한 게 이번이 벌써 세 번짼가? 홍 소장도 참 재주도 좋지. 진즉에 징계를 받아 다른 곳으로 발령을,
[경완아! 뭐해?! 얼른 나와봐!]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경완이 막 홍 소장에 대한 상념을 하고 있을 때 독방 안에 달린 스피커로 홍 소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쟤 방문 안 열었냐?!]
이어진 목소리에 작게 '확인해보겠습니다!'라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섞여 들어왔고 철컹하고 경완이 있던 독방의 잠금장치가 풀렸다.
하지만 경완은 누운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 모습에 홍 소장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경완아! 습격이다, 습격! 연구소에 초능력자 새끼들이 쳐들어왔어!]
아, 그렇군요.
경완은 그렇게 생각하며 손가락을 들었다. 어차피 방에 마이크가 있는 건 아니라서 말해봤자 소용없었다.
활짝 펼친 왼손과 승리의 V자를 그린 오른손.
홍 소장은 예전에 교도소에서 소요사태가 일어났을 시에 경완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또 기꺼이 협조할 자세가 되어있는지 물어본 면담의 내용을 반추해 그것의 의미를 이해했다.
손가락의 의미는 이러했다.
'국내 귀휴 일주일.'
[야! 뭔 귀휴를 일주일이나 받아! 그냥 이틀만 갔다 와!]
경완의 손가락 하나가 접혔다. 급박한 상황에 이런 협상이나 하고 있으니 답답해진 홍 소장이 발을 동동 구르며 욕설을 섞었다.
[3일!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이 새끼야!]
하지만 경완은 뚝심 있게 왼손을 펼친 채 오른손을 내렸다. 협상에서 자유로워진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치며 아예 모로 누워 자신은 느긋하다는 걸 전신으로 표현했다.
[4일! 더 이상은 못 줘!]
여기까지인가?
홍 소장의 목소리에서 마지노선을 캐치한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열린 독방문을 나섰다.
그가 독방을 나서자 그가 가야 하는 방향이 이쪽이라는 듯이 복도 철창이 하나씩 열렸고 경완은 그 방향을 따라 속보로 움직였다.
꺾이는 구간에서 한 교도관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