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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92화 (92/367)

091-10-빌드업 히어로즈

“여기 테이저건 받아 가세요.”

“소총 없어요? 기관총이면 더 좋고.”

“권총이라도 주고 싶긴 한데 위에서 발작을 해가지고..”

교도관이 말꼬리를 흐렸다. 경완이 일본에서 권총으로 저격수를 저격한 일을 다 아는 모양이었다.

하긴 총 한 자루 없이 세단 한 대와 사시미 한 자루로 국회에서 그 사달을 낸 인물에게 총을 쥐여 줄 정도로 간 큰 인물도 없을 것이다. 일본에서 경완이 저지른 짓을 생각하면 허락해 주는 놈이 미친놈이다.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테이저건과 인이어 장치를 받아들고는 움직였다. 인이어로 홍 소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완아! 시간만 벌어주라. 오분 내로 경찰이 온단다.]

“그런데 꼬라지보니 오분 안에 끝나겠는데요?”

경완이 부속건물이 있는 쪽을 보니 교도소와 부속건물을 격리하고 있던 벽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상태였고 재소자들이 그리로 도망치고 있었다.

총기를 들고 나섰던 교도관들은 누군가의 습격이라도 받았는지 모두 쓰러져 있었는데 다행히 다들 숨은 쉬고 있었다.

경완이 구멍을 통해 도망가던 어떤 재소자 목덜미를 낚아챈 다음에 그대로 훅을 날렸다.

정확히 관자놀이를 강타한 주먹에 쓰러진 놈을 바닥에 내버려 두고 다른 재소자들이 멈칫한 사이에 그가 벽에 난 구멍을 통과하니 가관이었다.

귀퉁이가 무너져 내린 연구소 건물에서 뭔가를 부지런히 실어내고 있는 괴한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주변에서 그들을 보호하려는 검은 복장의 초능력자들과 '일성경비'라는 조끼를 입은 초능력자들이 연신 흐릿한 잔상을 남기며 부딪치고 있었다.

최근에 통과한 법률 덕분에 설립된 초능력 경비회사에서 연구실에 파견해 놓은 용역인 모양이었다.

경완은 예감했다. 눈앞의 장면이야말로 미래에 비일비재하게 벌어질 장면이라고.

그가 다시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선 남동건이 괴력능력자와 난투극을 벌이고 있었다.

“씨벌! 덤벼! 덤비라고! 으아아아!”

경완은 기척을 죽이고 다가가 남동건과 힘을 겨루는 괴한의 목덜미를 향해 테이저건을 발사했다.

“끄륵!”

초능력자 대응용으로 강화된 테이저건의 효과는 끝내줬다. 바로 눈을 까뒤집고 경직된 괴한은 그대로 남동건에게 아구창을 맞고 날아갔다.

남동건은 별안간 벌어진 일에 놀라다가 경완을 발견하고는 어찌 된 일인지 파악하고 엄지를 척 들었다.

“넌 쟤들이나 막아라.”

경완이 가리키는 곳은 뚫린 구멍으로 나오고 있는 재소자들이었다. 방금 초능력 괴한이랑 싸운다고 식겁한 남동건은 경완의 지시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소리를 지르며 탈옥을 시도하는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센 놈보단 약한 놈 상대하는 쪽이 여러모로 편안했다.

“야 이 새끼들아! 동작 그만!”

남동건이 엄포를 놓으며 재소자들의 탈옥을 막는 동안 경완은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연구실 쪽으로 향했다.

동료가 한 명 쓰러진 것을 본 침입자 중 한 명이 경완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 자신 있나!”

경완이 자세를 잡으며 도발하자 복면의 괴한이 한 층 더 지면을 강하게 밟았다.

하지만 그가 경완의 앞에 도달하는 일은 없었다. '일성경비'라는 이름이 적힌 조끼를 입은 이가 사이에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병신아! 얼른 감방으로 꺼져!”

그는 경완이 이번 교도소 테러로 탈옥을 시도하는 재소자라고 생각하고 욕설로 위협했다. 상부의 지시는 탈옥이 아니라 연구소의 기밀을 보호하는 거라 연구소 벽에 뚫린 다른 구멍과 출입구로 죄수들이 탈옥해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지문과 얼굴, DNA까지 죄다 등록된 상황이라 오래 도주하지도 못한다. 논란이 많았던 DNA 등록은 혹시나 있을지 모를 변장과 위장능력이 있는 초능력자에 대한 대비 때문이었는데, 이에 관한 인권 문제 제기는 아마 오늘 일로 많이 가라앉을 것이다.

초능력 경비, 장래에 히어로라고 불릴지도 모르는 사람의 말에도 경완은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하게 테이저건의 카트리지를 교환하고는 잔상을 남길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던 침입자를 향해 재차 조준했다.

탁!

“켁!”

마치 미래를 보는 듯 침입자가 경비와 부딪히는 정확한 타이밍에 날아간 테이저건의 바늘은 잔상을 남길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침입자가 대응할 틈도 없이 살결이 드러난 목덜미에 박혔다.

그 틈을 타 쉽게 범인을 제압할 수 있었던 초능력 경비는 멍하게 경완을 보다가 그가 건넨 말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내가 방금처럼 보조해 줄 테니 한 번 붙어봐요.”

경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얼른 범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뽕맛을 본 사람이 쉽게 그 맛을 잊지 못하듯 만만하지 않은 괴한을 손쉽게 제압한 경비는 경완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다.

침입자 중 또 한 명이 경비를 막기 위해 다가왔다. 한꺼번에 달려들기엔 초능력 경비가 혼자만은 아니었고, 또 진짜 빼내야 하는 것들이 있는 핵심기밀시설에서 경비들이 농성 중이라 인력을 빼낼 수가 없었다.

경비는 달려드는 놈을 유인해 경완의 근처에서 싸웠다.

충돌할 찰나에 날아든 전기 바늘이 범인을 경직시켰고 경비의 어퍼컷이 놈의 턱에 적중했다.

그렇게 또 한 명의 동료가 제압되자 범인들은 경완의 존재를 눈여겨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하십시오!”

‘병신 꺼져’라고 말했던 과거는 이미 잊은 경비가 경완을 향해 공손하게 경고했다. 그를 보호하기엔 자신에게도 달려드는 괴한이 있었다.

경완을 자신의 머리를 향해 떨어지는 삼단봉을 향해 마치 관수로 찌르기를 하듯 손을 내밀었다.

둥근 삼단봉의 표면이 손톱 끝에서부터 미끄러지기 시작해 손등을 타고 하박을 따라 내려가더니 순발력으로 비틀리는 팔꿈치 끝에서 튕겨 나갔다.

그로 인한 궤도의 비틀림은 상대의 상체균형을 흩트리기에 충분했다.

시간을 되돌려, 삼단봉이 손등을 타고 하박을 스치는 와중에 구부러진 검지가 덤벼든 놈의 가슴 쪽 옷깃에 걸렸다.

그리고 삼단봉이 튕겨나 균형이 흐트러지는 순간 경완의 발바닥이 놈의 정강이 아랫부분에 단단하게 대어졌다.

상대는 균형도 잃은 상태라 빠르게 달려온 체중의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훽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놈은 어떻게든 균형을 잡아보려고 했지만 옷깃에 걸린 검지 하나가 마치 물고기 입에 걸린 낚싯바늘마냥 그의 상체를 땅으로 끌어 내렸다.

퍽!

“꺼억!”

허공에서 뒤집어진 몸이 등부터 땅에 처박혔다. 유술가들이 봤으면 '스승님!'하고 부를 정도의 깔끔한 기술이었지만 경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상대의 움직임을 보니 딱 봐도 신체강화계열의 능력자라 금방 회복되어 일어날 것이다.

경완이 그대로 놈의 얼굴을 향해 테이저건을 발사했다. 눈꺼풀에 바늘이 박히자 정신을 차리려던 놈이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경직되었다.

파지직!

“케렉!”

경완은 그 틈을 타서 놈이 떨어뜨린 삼단봉을 들어 전기에 바들바들 떠는 놈의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그렇게 자신에게 달려든 놈을 제압한 경완은 태연하게 카트리지를 교환하고는 경비와 싸우고 있는 괴한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고 그 결과는 뻔했다.

이번에도 경완의 도움을 받아 침입자를 제압한 경비는 경완과 그의 발치에 쓰러져 있는 괴한을 멍청한 표정으로 번갈아 보았다.

경완이 다시 카트리지를 교환하며 연구소를 향해 턱짓했다.

“뭐해요? 갑시다.”

“네, 네.”

경비는 마른침을 삼키며 경완이 걷는 속도에 보조를 맞추어 나아갔다.

하지만 더 이상의 전투는 없었다. 연구소에 침입한 괴한들이 길쭉한 자루를 짊어지고 나와서는 철수를 외쳤기 때문이다.

“됐다! 가자!”

그 말에 싸우다 말고 모이는 초능력자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쫓는 일성경비의 초능력 경비원들.

하지만 경완은 그들을 쫓아갈 생각이 없었다.

그는 인이어를 누르며 상황을 보고했다.

“상황종료. 침입자들은 도주.”

[쫓아가야지! 뭐 하고 있어!]

홍 소장의 목소리에 애가 타는 심정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었지만 경완은 심드렁했다.

“아니 제가 신체강화능력도 없는데 어떻게 쫓아가라는 거예요?”

[흥! 그럼 있으면 쫓아갔고?]

“그렇게 잘 아시면서 쓸데없는 말은 왜 하세요? 입 아프게.”

[....]

말이나 못 하면 밉지나 않지. 홍 소장은 말문을 닫았고 경찰이 도착해 벽에 뚫린 구멍을 통제했다.

경완은 교도관에게 테이저건과 인이어를 반납하고 잠자기 위해 감방으로 돌아갔지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홍 소장의 사무실로 출두해야 했다.

사무실에 들어오니 홍 소장과 지적인 스타일 가진 미모(美貌)의 중년 여성이 있었다.

홍 소장보다 그 여성이 먼저 나서서 경완을 맞이했다.

“이렇게 만나서 반가워요, 이경완 씨. 저는 대한 세립 초능력 연구소의 소장 김마리아라고 해요.”

자기관리가 투철한지 여줌마나 여사님이라기보다는 눈나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스타일이 좋은 그녀는 아예 경완의 손을 두 손으로 잡고 흔들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 반가움이 수갑이 절그럭거리며 요란하게 소리를 낼 정도였다.

경완은 떨떠름한 어조로 그녀의 인사를 받았다.

“아, 네, 반갑습니다.”

자신을 향한 그녀의 미소가 부담스러웠다. 마치 새내기에게 집적거리는 복학생 같은 느낌이라서가 아니라, 자신을 향한 그녀의 미소가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어딘지 사물을 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자면 자신이 치맥을 앞두고 짓는 미소랄까?

그런 기분 탓인지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으마으마한 썅년의 냄새가.

경완이 홍 소장을 보며 말했다.

“왜 불렀어요?”

“왜 불렀겠냐?”

홍 소장이 어딘가 까칠해 보이는 태도로 대꾸했다.

경완은 김마리아를 힐끗 보는 홍 소장의 시선을 확인하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남자의 질투는 추한 거 알죠?”

“뭔 소리야?!”

홍 소장은 큰일 날 소리를 하는 경완을 향해 언성을 높이며 얼굴을 붉혔다. 홍 소장은 유부남이었다.

경완은 태연한 태도로 대답했다.

“당연히 제 풍성한 머리에 대한 질투를 얘기한 거죠.”

“···.”

황당해서 한참이나 할 말을 잇지 못하던 홍 소장은 김마리아의 시선에 정신을 차리더니 경완에게 자리부터 권했다.

“커흠! 흡! 헛소리하지 말고 이리 와서 앉아라. 널 부른 건 김 소장님의 요청에 의한 거니까.”

그 말에 경완이 자리에 앉자 김마리아가 다리를 꼬며 맞은편에 앉았다. 하얀 가운과 하얀 블라우스, 그리고 검은 스커트와 검은 스타킹에 잘 관리된 다리의 각선미가 흑백의 완벽한 조화에 포인트를 주었다.

경완을 향해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세립 연구소는 명목상으로는 ○○교도소의 부속시설이지만 사실상 독립기관이에요.”

당연히 그러시겠죠.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연구소는 이 나라의 초능력 연구에 매우 크게 이바지했어요. 그런데 어젯밤 우리는 우리의 가장 큰 연구 자산을 도둑맞고 말았답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경완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달랐다.

“그렇군요.”

“납치된 연구 자산의 이름은 한영미. 치료능력을 가진 초능력자랍니다.”

“···.”

“···.”

경완의 물끄럼한 시선과 그런 경완의 반응을 기다리는 김마리아의 시선이 교차했다.

경완은 뒤늦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 그것참 애석합니다.”

사람을 연구자산으로 분류하다니 으마으마한 썅년이라는 예감이 맞았다.

썅년, 아니 김마리아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경완 씨가 예전에 저희 연구소에서 보낸 제안을 거부한 게 참 아쉬워요. 만일 그때 수락을 했으면 저희에게도, 또 경완 씨에게도 참 많은 기회와 가능성이 열렸을 텐데 말이죠. 이렇게 침입자에게 한영미 씨가 납치될 일도 없었을 거고요.”

“그거야 모르는 일이죠. 그보다 이렇게 저를 보고자 하신 이유는?”

경완이 김마리아를 보며 본론을 요구했다. 그를 부른 건 홍 소장이었지만 용건이 있는 사람은 이 여자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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