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96화 (96/367)

095-10-빌드업 히어로즈

어? 이게 아닌데?

경완이 버둥거리며 언성을 높였다.

“이보쇼! 보쌈을 해가도 사전 교감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오?”

과부를 보쌈해도 사전에 일단 눈인사부터 하는 것이 예의였다.

남자가 대꾸했다.

“교감도 일단 얼굴을 마주해야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가자!”

경완이 멀어지는 TV와 게임기를 보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내 게임기!”

엄밀히 따지면 경완의 소유가 아니라 연구소의 비품이었지만 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그렇게 경완이 독방 밖으로 실려 나오자 때마침 남동건이 나타났다.

“인질을 풀어줘라!”

주변은 이미 총기로 무장한 교도관들이 반원으로 그들을 포위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매우 태연했다.

“우리는 인질을 잡지 않았어요.”

“그럼 그 사람은 뭔데!”

남동건이 근육남의 어깨에 짊어져있는 경완을 가리키자 의문의 남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손님이랍니다.”

“지랄.”

세상 어느 손님이 저렇게 짐짝처럼 옮겨지나?

하지만 경완이 사로잡혀있는 상황이라 쉽게 총을 쏠 수가 없었다. 결국 남동건이 나서야 했다.

“그 인간 내놔!”

흠.. 그 인간이라?

경완은 자신을 지칭하는 단어에 남동건의 내심이 어떠한지 추론해 보았다. 그리고 그사이에 평범한 체격의 남성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우람한 덩치의 괴력 능력자와 평범한 체격의 대결은 그 결과가 뻔해 보였지만 일이 요상하게 돌아갔다.

남자는 상체를 살짝 뒤로 젖히며 다리를 쭉 내밀었다.

안에서 바깥으로, 아래에서 위로 사선을 그리는 발끝은 마치 택견의 발차기와 비슷했다.

남동건은 남자의 발등이 자신의 목을 노리고 날아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비리비리한 몸뚱이가 발차기를 해봤자 자신에겐 아무런,

“켁!”

남동건의 생각이 중간에 멈췄다. 그것은 가벼울 것만 같았던 남자의 발차기는 마치 거대한 납덩이마냥 육중한 느낌이 들었다.

남동건이 아차! 하는 생각에 경시했던 마음을 버렸지만 방심했던 것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는 가벼운 듯한 발차기에 맞고는 옆으로 한 바퀴나 나뒹굴었다.

발차기에 어느 만큼의 운동량이 담겨있었는지 나타내는 지표였다.

믿었던 탱커(?)가 쓰러지자 교도관들은 당황했다. 총을 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소장님! 쏠까요?!”

[잠깐 기다려봐!]

홍 소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교도소의 높다란 담을 뛰어넘어 들어오는 이들이 있었다.

그 수는 다섯 명.

바로 부설 연구소를 경비하는 일성경비의 경비원들이었다.

“인질을 풀어줘라.”

초능력 경비원들의 요구에 남자는 두 팔을 펼치며 이죽거리듯 말했다.

“오! 이게 누구신가? 위대한 운명의 선택을 받았음에도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신 분들 아닌가?”

그 말에 경완은 자신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괴력 능력자에게 물었다.

“쟤 중2병이에요?”

“.....”

하지만 근육남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묵묵하게 상황을 주시할 뿐이었다.

초능력 경비들이 남자와 근육남에게 달려들었다. 아무래도 인질을 구해야 하기도 하고 또 상대가 딱 봐도 괴력 능력자 같아서인지 근육남에게 한 명 더 많이 붙었다.

하지만 상황이 요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평범해 보이는 남자가 땅을 차자 땅거죽이 뒤집혔다.

그뿐인가? 이상하게 그리 많은 양도 아닌데 자갈과 흙더미를 뒤집어쓴 4명은 나가떨어져 버렸다.

그 모양을 보자 남은 한 명도 달려드는 걸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남자가 자랑하듯 의기양양하게 경완을 뒤돌아보았다.

“어떻습니까? 대단하지 않아요? 당신도 우리 모임에 들어오면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난 초능력자가 아닌데요?”

“아직도 시치미예요? 전 세계의 초능력자들을 규합하고 있는 우리가 당신이 초능력자인지 확신도 없이 찾아왔겠습니까?”

“···.”

“아니면 아직도 자신의 초능력이 뭔지 명확히 모르십니까?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는 그런 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충분한 도움도 제공하고 있답니다.”

“아까부터 자꾸 우리라고 하는데 도대체 너희가 누군데요?”

조금 전에 해주었던 대답은 벌써 까먹은 것인가? 하지만 남자는 조금도 섭섭해하거나 화내는 기색 없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위버멘쉬. 인류의 초월을 지향하는 모임입니다.”

언제는 권익을 지향한다며?

경완이 속으로 딴죽을 거는 사이에 남자는 말을 이었다.

위버멘쉬. 니체의 철학용어로, 한국어로는 초인이라고 번역되지만 Superman의 의미를 가진 것은 아니다.

위버멘쉬의 영어적 번역은 Overman. 한국어로 하자면 ‘극복자’에 가깝다.

위버멘쉬의 의미를 가장 단순하게 풀어쓰자면 ‘어떤 굴레를 벗어나 자신의 정신을 자유롭고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자’라고 할 수 있었다.

현대적으로 풀어쓰자면 ‘법 없이 사는 사람’과 상류층 유력자 기득권자를 합친 개념이랄까? 현실적으로 힘이 없으면 내부적이든 외부적이든 억압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 모임을 시작한 사람은 철학자인가요?”

“글쎄요. 저도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그들이 지향하는 점이 우리 사회, 우리 인류가 나아가야 할 미래라고 공감하기에 동참하게 되었죠.”

참으로 거창한 말이지 않은가?

그리고 경완은 거창하게 포장된 명분에 질려버린 인간이었다.

먼 과거, 마친 자신이 선택이라도 받은 인간인 양 자신의 입으로 얼마나 그럴싸한 헛소리들을 지껄였던가? 지금도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의 자신에게 입 좀 닥치라고 주둥이에 수류탄 하나를 까서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잠시 떠오른 수치스런 과거에 정신적 타격을 받고 있던 경완을 일깨운 것은 몸을 추스른 일성경비의 경비원과 남동건이었다.

“헛소리 그만하고 얌전히 잡히시지?”

이에 남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너희는 날 잡기에는 너무 약해.”

다시 한번 전투가 일어났다. 남동건과 일성경비가 의문의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홀로 6명을 감당하는 것은 너무 무모해 보였지만 남자는 그것을 해냈다.

날아오는 주먹이나 발차기, 삼단봉은 너무나 가볍게 쳐냈고, 자신을 붙잡는 이는 스티로폼 던지듯 가볍게 던져버렸다.

“말도 안 돼!”

나가떨어진 경비원 한 명이 소리를 질렀다. 상대는 괴력 능력자도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염동력인가?”

한 경비원의 물음에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해 주었다.

“그건 아니고. 내 능력이야. 힉스장 간섭 능력이라고 명명했지.”

“힉스장? 그게 뭐지?”

“쯧쯧. 과학상식이 이렇게 모자라서야. 물질에 질량을 부여하는 입자도 몰라?”

그는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지식을 뽐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경완은 남자가 중2병이 걸릴 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힉스장 간섭 능력. 물체의 질량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은 중2병이 걸려도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강력한 능력이었다.

힉스남이 설명을 이어갔다.

“충격량은 질량과 속도의 곱이지. 하지만 그 질량을 솜털처럼 가볍게 만드는 내 능력 앞에선 너희가 아무리 때려봤자 깃털로 때리는 수준밖에 안 돼. 총알이나 대포도 마찬가지야. 질량이 먼지 수준이 된 총탄이 내 살가죽을 뚫을 수 있을까? 옷도 못 뚫을걸?”

한 마디로 물리내성을 갖추고 있다는 말이었다.

“테이저건.”

사수의 말에 한 경비원이 바람처럼 움직여 테이저건을 동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총알도 깃털이나 다름없다고? 하지만 전기 바늘맛은 짜릿할 것이다.

그 판단력에 남자는 감탄했다.

“역시 일성경비. 아무나 뽑는 건 아니란 말이지? 하지만 내가 이 능력을 방어적으로만 활용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테이저건을 쥔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친 초능력 경비원들은 그들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바람이 모이는 것을 느꼈다.

싸한 느낌이 목덜미를 스치자 누가 먼저 외쳤다.

“피해!”

과연 초능력자인지 급히 그 자리를 피했고 그들이 있던 자리에서 펑 하고 폭발이 일어났다.

“역시 빨라.”

남자는 그들의 몸놀림에 감탄했지만, 공격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의 시야에 닿는 일정범위 안에서 공기가 뭉치고 폭발하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피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벅찰 정도였다.

다행히 지표상에서만 폭발이 일어나서 망정이지 아니면 몸이 재빠른 초능력 경비원들도 피하지 못할 정도로 폭발이 많이 일어났다.

경완은 그 현상을 보며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남자에게 물었다.

“중력 구배, 아니 힉스장 구배를 이용한 중력 폭탄이에요?”

“오! 이걸 한눈에 알아보시다니! 역시 모임에서 초청하고 싶은 능력자답습니다!”

남자는 감탄했다.

그가 일으키는 원거리 폭발은 지표면에 강력한 힉스장을 거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영역 안에 들어오는 공기 분자의 질량은 증가되고, 무거워진 기체분자는 중력의 도움을 받아 그 지표면에 뭉쳐지게 된다. 그리고 기체분자가 충분히 모이면 순간적으로 힉스장을 거둬서 뭉쳐있던 기체분자를 해방해 폭발을 일으키는 것이다.

질량을 조절하는 힉스장과 지구의 중력을 이용한 콜라보레이션이다.

“한계점은 명확하지만 사람을 무력화시키기엔 충분한 위력을 가지고 있답니다.”

그 한계점이란 대기압, 기체분자의 확산속도가 정해져 있어 일정 위력을 발휘하려면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게다가 공기가 모일 때 바람이 부는 현상도 폭발 위치를 노출시켰다.

하지만 남자는 그 한계점을 무수히 많은 폭발로 커버했다. 바로 발밑에 형성하면 발이 무거워지는 효과도 있었기에 매우 효과적이었다.

“으아악!”

발밑의 폭발을 피하지 못한 경비원이 하늘 높이 날아갔다. 순간적으로 질량이 가벼워진 탓에 폭발의 규모에 비해 비정상적일 정도로 높이 날았다.

그 모습에 남자는 유쾌하게 웃었다.

“하하하! 하늘을 나는 능력이 없다면 감히 덤비지 마시죠?”

5층 높이까지 치솟았다가 추락한 경비원은 동료들이 힘을 합쳐 받아낸 덕분에 부상을 면했다. 아니 힉스남이 봐줬다고 봐야 했다. 추락하는 와중에 힉스장을 걸어 몸무게를 늘렸다면 아무리 신체강화능력자라도 감당하기 힘든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탕!

그때 울리는 총소리. 교도소의 저격수가 남자를 노리고 총알을 쏜 것이다. 하지만 총알은 형태조차 뭉개지지 않고 튕겨나갔다. 아무리 음속의 속도로 날아와도 힉스남이 통제하는 힉스장 안에서 깃털처럼 가벼워진 질량으론 얇은 옷조차 뚫지 못했다.

다만 총알이 음속을 가르며 만들어진 소닉붐만이 거센 바람을 일으켜 그의 옷자락을 흔들었을 뿐이었다.

“이제 알았죠? 당신들은 아무것도 못 합니다. 그러니 더는 방해하지 마시죠. 그럼 경완 씨. 갑시, 응?”

위버멘쉬 멤버의 우월함을 선보인 남자는 만족하며 경완을 데리고 돌아가려고 했지만 의외의 상황에 당황하고 말았다.

동료인 근육남이 경완에게 목이 졸려 눈을 까뒤집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술이 얼마나 잘 들어갔는지 몇 초 후엔 아예 눈을 까뒤집고 실신해버렸다.

보아하니 남자가 주변에 자신의 능력을 자랑할 때 일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폭음 때문에 두 사람의 다툼을 듣지 못한, 그 잠깐 사이에 일이 이렇게 되다니..

경완은 근육남이 실신해 쓰러지자 손을 탁탁 털며 말했다.

“안 간다니까. 나 바쁜 사람이에요.”

미국에 가는 일이 바쁘다는 말은 아니었다. 그가 바쁜 이유는 김마리아 소장이 새로운 감방을 만들어주며 제공한 게임 타이틀 클리어 계획 때문이었다.

일단 다 한 번씩 엔딩을 본 후에, 재밌는 게임은 도전과제를 수집할 계획인데 위버멘쉬니 윗집에 쉬야니 하는 소리가 귀에 들어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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