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6-10-빌드업 히어로즈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남자는 멍해져 있다 퍼뜩 정신을 차리더니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역시! 우리의 눈이 틀리지 않았어! 당신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인재입니다!”
“왜 필요한데요?”
“당신의 그 능력! 뭣도 모르는 이들은 당신을 정신계열의 에스퍼라고 오해하지요. 하지만 진짜 당신의 능력은 다른 초능력자의 능력을 제압하는 겁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제 동료를 저렇게 만들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의 말에 조용히 기척을 감추고 기회를 엿보고 있던 남동건의 머리에 아! 하고 스쳐 지나가는 일이 있었다. 괴력을 각성하고 그 힘으로 자신을 두들겨 팬 경완에게 복수하고자 갔을 때 콘크리트를 때려도 멀쩡하던 주먹이 경완이 펀치를 흘리자마자 까지고 피가 흘렀다.
정말 경완의 초능력이 초능력 제압 능력이라면 그 이유가 설명된다.
하지만 듣고 있던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남자의 비행기를 태우는 듯한 설명에도 정작 경완이 받는 느낌은 ‘고작?’이 전부였다.
그의 능력이 가진 본질은 S입자를 느끼고 제어하는 것이다. 당장 그것을 사용해 괴력이나 염동력 같은 현상을 발현시키진 못하지만 초능력의 발현 과정에 끼어들어 방해하는 정도는 경완의 역량에 따른 부수적인 효과에 불과했다.
경완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근육남이 본인의 괴력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이유는 경완의 몸을 두르고 있는 고밀도의 S입자가 경완의 의지와 집중력에 의해 활성화되고 근육남의 몸에 파고들어 그의 S입자 활성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뭐, 그것도 초능력 방해 능력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그게 경완이 가진 능력의 전부라고 할 순 없었다.
하지만 경완은 중2병 끼 있는 투머치토커인 힉스장 간섭남과는 다르게 이런 구구절절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뭐 됐고, 안 가요.”
“... 흐음...”
경완의 말에 간섭남은 경완의 주변에 능력을 사용했다. 하지만 경완이 손을 휙 하고 휘젓자 경완의 근처에 형성되던 간섭남의 S입자 구성체는 경완의 S입자 흐름에 쓸려 나가버리고 말았다.
경완이 미간을 찌푸렸다.
“적당히 합시다. 슬슬 좆같아 지고 있으니까. 내가 나온 다큐는 봤죠?”
“봤습니다만...”
“그럼 얌전히 돌아가서 그것부터 다실 열 번, 스무 번 보고 생각하세요. 내가 영입이 가능한 놈인지.”
경완은 친절했다. 왜냐면 아직까진 좆같음이 덜했기 때문이고 또 한 가지 이유는 상대의 가능성 때문이었다.
전 세계의 초능력자 규합을 꾀하고 있고, 인류의 초월을 지향한다? 그리고 모임 이름도 위버멘쉬다?
고금 이래 거창한 대의의 결과는 오직 두 가지뿐이었다.
일망타진 되거나 아니면 새로운 기득권층 형성에 성공하던가?
경완은 위버멘쉬라는 집단이 일단 전 세계 초능력자 모임? 비스무리한 걸 만들겠다는 비전에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 그 비전대로 되었을 때 저들이 가질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생각해봐라. 잘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원수를 졌다가 혹여나 성공해버리면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인생에 애로사항이 꽃필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단체생활을 하는 것도 딱 질색이었으니, 여기까지가 경완이 보일 수 있는 최대의 관용이었다.
경완의 태도가 그리 적대적이지 않아서 그런 걸까, 아니면 만사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해서 그런 걸까?
힉스남은 경완을 납치할 생각을 더는 하지 않았다.
“우리 위버멘쉬는 언제나 당신을 환영할 겁니다.”
“그건 감사합니다.”
“잘 생각해봐요.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한 힉스남은 주변을 보며 이렇게 말을 남겼다.
“하지만 저들에게 당신은 범죄자, 혹은 괴물일 뿐이에요. 지금이야 유용하니 웃는 낯으로 대하지만 언젠가 상황이 바뀌면 당신의 목에 원격 기폭장치가 달린 폭탄을 채우려고 달려들 겁니다.”
그런 우려가 힉스남이 위버멘쉬라는 조직에 몸을 담게 된 이유인가?
뭐 경완이 알 바 아니라서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얼른 꺼지라는 의미로 손을 내저었다.
힉스남은 실신한 동료의 목덜미를 잡고 번쩍 들고는 높은 담벼락을 훌쩍 뛰어넘어 사라졌다.
그 뒷모습에 경완은 황당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저럴 수 있으면서 엄한 벽은 왜 부쉈대?”
근육남의 힘자랑이었음을 경완은 아마 평생 모를 것이다.
그런 경완을 보고 일성경비의 한 경비원이 언성을 높였다.
“잡아야지 뭐 하는 겁니까?!”
“댁이 잡던가?”
“....”
심드렁한 대꾸에 경비원은 바로 입을 닥쳤다.
그래. 능력이 없으면 닥쳐야지 안 그래?
= = = = =
사실 위버멘쉬 같은 초능력자들의 사조직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이미 남미에선 초능력자들이 그 지역의 명물(?)인 카르텔을 본받아 크고 작은 조직을 형성하고 있었고, 인도나 중동은 물론 유럽과 러시아, 동남아, 심지어 중국까지 크고 작은 초능력자 모임들이 형성되고 있었다. 아프리카조차 예외일 순 없었다.
사람이 힘을 가지게 되면 쓰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지사. 그리고 새로운 힘에 기득권이 불안감을 느끼고 억누르려는 것도, 또 그런 억압에 반감을 품는 이들이 나타나는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나타난 위버멘쉬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이유는, 사망기자, 샌드맨, 거세남, 흑연 등의 빌런이 아직도 검거가 되지 않은 시점에서 또다시 마치 ‘대한민국 공권력 좆까라 그래! 쉬발!’이라는 듯이 새로운 빌런이 나타나 일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 좋다는 한국의 치안은 이젠 옛말이란 말인가? 그리고 이름이 뭐? 위버멘쉬? 인류의 초월을 지향해? 딱 봐도 반사회적이고 공권력이랑 부딪힐 것 같지 않은가?
당장에는 교도소의 벽과 문이 부서진 거 외에는 별다른 피해가 없는 상황이지만, 초월이라는 것을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기존의 질서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초월이란 억압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끊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능한 공권력에 대한 비판 여론이 형성되자 무능한 정권을 타파하자는 야당의 공세가 거세졌고, 여당은 세계적으로 초능력으로 인한 혼란기에 야당이 자기들 이익을 위해 정치적 공세를 한다고 엄중한 경고를 날렸다.
이렇듯 많은 사람이 정치권까지 번진 초능력 혼란에 많은 걱정과 우려를 표했지만 경완은 예외였다.
그는 마치 혼자만 다른 세상 사람인 듯, 요전번에 약속받았던 국내 귀휴를 위해서 절차를 밟고 있었다.
“이건 귀휴 허가서고, 신분증과 소지품은 사무실에서 받아 가라.”
“영치금은요?”
“현금으로 받아 갈래, 아니면 통장으로 받아 갈래?”
“통장으로 주세요.”
요즘 시대에 누가 현금 쓰나? 카드 쓰지.
경완이 아무리 사회생활을 교도소에서 보내는 범죄자라지만 자기 계좌와 체크카드 정도는 있었다. FBI에서 협조 수당으로 주는 돈은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경완은 개털이 아니었다.
“나가서 사고 치지 말고. 제발.”
나가는 경완을 홍 소장이 직접 배웅까지 왔다.
그는 걱정이 정말 태산 같았다. 제발 경완이 귀휴 와중에 사고를 치지 말았으면 했다. 왜냐면 경완이 이번 귀휴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그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
경완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혼자 나가는 것도 아니잖아요? 저렇게 사람들이 붙는데?”
경완은 자신의 뒤에 붙은 두 사내를 보며 말했다. 한 사람은 경찰이 ‘렛토보안’에 외주를 줘서 붙은 감시겸 경호원이고, 또 한 사람은 샌드맨 수사본부 습격 사건 때 같이 있던 제프리였다.
대외적으로 FBI소속으로 알려진 제프리는 사실은 NSA 소속이었지만 요즘같이 하도 현장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선 부처 간 협조에 따라 임시로 경완에 대한 관리역을 맡았다. 김준은 본토에서 바쁘게 업무 중이라나?
참고로 옆에 렛토보안에서 나온 사람은 초능력자였다.
저번에 위버멘쉬인가 뭔가 하는 놈들이 경완을 납치하러 와서 그에게 초능력을 무효화 하는 능력이 있음이 알려졌지만 그런데도 굳이 초능력자를 붙인 건 경완의 탈출을 막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경완을 노리고 오는 이를 잡거나 막기 위해서였다. 듣기로는 원거리 경호(감시)도 붙을 거라나?
이제 슬슬 초능력 연구가 궤도에 올라가니 정부나 기업에서도 초능력 연구에 있어서 경완의 가치를 알아보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무려 초능력 제압 능력이라니? 기득권이나 권력자에게 불만이 많은 놈이 힘 센 초능력자로 각성할까 봐 전전긍긍하신 분들에겐 이보다 매력적인 능력이 또 있겠는가?
그럼에도 경찰 대신 초능력 경비를 붙인 건 지금 경찰들이 위버멘쉬다, 사망기자다, 비질란스다 하며 죄다 조뺑이를 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 계속 일어나는 초능력 범죄는 또 어떻고?
홍 소장은 경완의 뒤에 선 두 사람을 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부탁했다.
“잘 부탁합니다.”
부디 제발 경완이 사고 치지 않게 잘 감시해 달라는 말에 두 사람은 의례적으로 그러겠다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경완은 두 혹을 달고 귀휴를 즐기러 밖에 나왔지만 딱히 두 사람을 혹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제프리 씨. 차 있죠?”
“네.”
“그럼 제프리 씨 차를 타고 다닙시다.”
혹은커녕 이렇게 편리한 운전기사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경완의 제안에 제프리는 멍해졌다.
“···.”
“왜요? 제가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면 그쪽도 따라다니기 불편하지 않아요?”
일리가 있는 말이었지만 솔직히 제프리는 이렇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려고요?”
그냥 근처 시내에서 조용히 지내면 안 될까?
차마 꺼낼 수 없었던 마음의 소리였다.
경완이 대답했다.
“맛집 투어요.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식도락을 즐기겠어요?”
“맛집 투어요?”
제프리의 눈이 커지자 경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서 눈이 커진 것 같진 않았지만 경완이 알게 뭔가?
“그럼요. 이번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려고 인터넷 좀 열심히 뒤졌죠.”
거의 다 바이럴 광고라 진짜 맛집을 걸러내기 힘들었다.
경완이 제프리 옆에 멀뚱히 서 있는 렛토경호원에게 물었다.
“박해진 씨. 고기 먹고 싶지 않아요?”
고기? 당연히 먹고 싶지.
박해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경완이 유쾌하게 검지를 들며 외쳤다.
“갑시다! 내가 쏜다!”
그 자신감 가득한 외침에 박해진은 슬금슬금 경완의 뒤에 섰다. 고기를 쏜다는데 싫은 내색을 할 수야 있나?
순식간에 2대1이 된 구도에 제프리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본인도 그리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그래서 경완을 태운 제프리가 도착한 곳은 한 고깃집.
“사장님! 여기 한우 꽃등심 5인분이요!”
“네~! 갑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세트도 아니고 비싼 한우 등심부터 시키는 고마운 손님들이라니!
사장은 미소를 머금고 얼른 테이블 세팅을 끝내고 고기를 내어왔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왜 주변 테이블의 시선이 여기로 모이는 걸까? 수군거리는 것도 그렇고 이쪽으로 휴대폰을 렌즈를 향하는 사람도 있었다.
서빙하면서도 의아해하던 사장의 귀에 세 사람의 대화 소리가 파고들었다.
“하아~. 이거 너무 유명해도 곤란한데요?”
“고기도 못 먹고 쫓겨나는 거 아닙니까?”
“일단 불판에 고기부터 올리면 되지 않을까요? 비싼 고기잖아요?”
“너무 좀.. 그렇잖아요?”
“나 나쁜 짓 한 사람인데 그래도 고기 팔아 주실래요?라고 묻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유명해? 나쁜 짓? 얼마나 나쁜 짓을 해서 유명하기까지 하, 앗!
“어? 알아봤다.”
사장의 표정을 본 경완이 솔직하게 입을 열었다. 사장은 어색하게 굳은 표정으로 눈알을 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