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12-아무도 나를 말릴 수 없음
웁웁! 쭙쭙!
들어가 보니 가관이었다. 씻지도 않고 물고 빨고 서로의 옷을 벗기고 있지 않은가?
두 사람은 눈을 감고 서로의 혓바닥이 무슨 맛인지 음미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완이 기척을 죽이고 다가가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퍽!
경완은 여자의 목덜미를 가격해 그대로 기절시키고는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뜻밖의 상황에 매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경완은 그런 그에게 그동안 열심히 외운 중국어로 물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email protected]#$!%@!”
남자는 당황하며 뭐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경완은 알아듣지 못했고 질문은 자동응답기마냥 일정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남자가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경완을 향해 삿대질했다.
언성을 높이며 뭐라뭐라 말을 길게 하는 것이, 느낌상 자신은 공안의 높은 사람이니 큰일 치르기 싫으면 얼른 꺼지라는 것 같았다.
왜 이러는 걸까? 경완이 묻는 것은 고작 그의 이름일 뿐인데 말이다.
짝!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 크아악!”
경완이 따귀를 때리며 묻자 열이 받았는지 아니면 실력행사 외에는 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중년남성이 뱃살을 출렁이며 달려들었지만…… 역시나 가볍게 제압당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짝! 짝! 짝! 짝!
경완은 따귀를 때리며 데자뷔를 느꼈다. 왕샤홍, 그도 이랬었지?
그래서 그런지 경완은 자신이 선택한 수단이 효과가 분명 있을 거라고 믿었다. 눈앞의 남자도 왕샤홍과 같은 지위에 있는 남자가 아닌가? 분명 통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과연 그의 생각대로 연속으로 따귀를 맞으며 질문을 받은 남자는 끝내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야 말았다.
“으이시쪼옹! 으시이조옹!”
뺨을 맞는 와중에 급히 말해서 그런지 발음이 좀 늘어졌지만 경완의 짧은 중국어 실력으로도 그가 자신의 이름을 말했음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내 경완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스크를 벗었다.
“으아아악!”
그러자 튀어나온 반응이 가관이었다. 마치 지옥의 나찰을 만난 것 마냥 의시종이라는 남자가 기겁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경완을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중국어 섞인 발음으로 ‘이경완?’이라고 이름을 묻는 것이 아닌가?
뺨이 얼얼하도록 맞아서 정신이 없을 텐데도 곧장 경완의 얼굴을 알아본 것을 보니 그의 존재감이 공산당의 높으신 분들에게 꽤나 대단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경완은 이렇게나 중국 고위 공무원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에 부담을 느꼈다.
내 얼굴을 숙지하면 뭐 어쩔 건데? 기억해 놨다가 나중에 해코지하려고?
경완은 이번 기회에 확실히 사고를 쳐서 자신이 어떤 지랄을 할 수 있는지 그들의 대가리에 똑똑히 박아놔야 할 필요성을 한층 더 강하게 느꼈다.
그래야 건들기 전에 한 번이라도 머뭇거리겠지.
그러면서 한편으론 괜히 손 아프게 따귀를 때렸나 싶었다. 이렇게나 반응이 격할 줄 알았으면 얼굴부터 보여주는 건데 괜히 힘만 빼지 않았는가?
‘그래, 의시종 씨. 내가 누군지 안다면 내가 왜 찾아왔는지도 알겠지?’
그렇게 말하려고 했던 경완은 문득 그런 말을 중국어로 어떻게 말하는지 외워오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이럴 경우에 외워온 중국어를 말했다.
「휴대폰 잠금 해제하세요.」
경완의 말에 의시종은 그의 눈치를 살폈다. 딱 봐도 뭔가 대가리를 열라 굴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경완은 몸이 편하면 잡념이 많아진다는 진리를 떠올리며 손바닥을 휘둘렀다.
쫘악!
“커흑! $%[email protected]#!%”
「휴대폰 잠금 해제하세요.」
쫘악!
“어흑! [email protected]$!%”
「휴대폰 잠금 해제하세요.」
그대로 말을 안 듣는 의시종을 향해 경완이 다시 한번 손바닥을 치켜들었다. 이래도 안 되면 손가락을 자르겠다고 협박해야지.
그런데 그런 그의 행동에 의시종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한쪽을 가리키고는 황급히 쏼라쏼라 말했다.
경완은 그 가리킨 현관의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바지에서 휴대폰이 반쯤 튀어나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미안해서 슬쩍 시선을 돌렸다.
하긴 막 응응하려고 팬티 바람이 된 사람에게 휴대폰이 있을 리가 있나?
때리기 전에 휴대폰이 손닿는 곳에 없다면 없다고 말할 것이지 사람 민망하게…… 아, 어차피 중국어 듣기가 약해서 못 알아듣나?
아무튼 경완은 미안하기도 해서 몸소 직접 휴대폰을 가지러 움직였다. 그런데 그가 바지를 들어 휴대폰을 꺼내는 순간 놈이 쥐새끼처럼 발 빠르게 움직여 다른 방에 들어가 문을 닫는 것이 아닌가?
“하. 하. 하.”
이런 새끼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은 내가 병신이지.
경완은 차갑게 웃으며 바로 방문을 밀어 찼다. 문은 근력 강화를 발현한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경첩째로 떨어져 나갔고, 그 문을 뒤에서 등으로 밀고 있던 의시종도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엎어졌다.
엎어진 그의 손엔 내연녀의 폰이 들려 있었는데 긴급전화로 공안을 부르려고 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걸 용납할 경완이 아니었다.
퍽!
“컥!”
파삭!
경완은 의시중의 얼굴을 걷어차 휴대폰을 놓치게 만들고 그대로 휴대폰을 밟았다. 휴대폰이 중국제라서 그런 건지, 경완의 밟는 힘이 강한 건지 휴대폰은 완전히 박살났다.
박살나다 못해 배터리까지 충격을 받았는지 폭발하듯 불길이 치솟았다.
경완은 서둘러 불을 끌 소방관을 출동시켰다. 그가 바로 의시중이었다. 응? 언제부터 공안이 화재(火災)진압을 했냐고?
바로 지금.
“아아악!”
졸지에 포동포동한 자신의 뱃살로 휴대폰 화재를 끄게 된 의시중은 벗어나 보려고 몸을 버둥거렸지만 경완이 억누르자 고통에 눈물을 흘리며 불을 끌 수밖에 없었다.
연기가 더 이상 나지 않자 경완은 털이 없는 그의 정수리 대신 옆머리를 움켜쥐고 당겨서 꿇어 앉혔다.
배에 시커멓게 눌어붙은 자국과 시뻘겋게 달아오른 피부 사이로 진물이 흘렀다. 후덕한 얼굴엔 눈물이 흘렀다.
경완은 그런 의시종을 내려다보면서 심문을 시작했다.
「너희가 날 죽여서 능력을 빼앗으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아요?」
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그는 표적으로 삼아야 하는 이름을 하나하나 알아갔다.
다행스럽게도 의시중은 알고 있는 바가 많았다. 윗선에 인맥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 인맥 덕분에 이번에 잘못을 저지른(?) 왕샤홍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의 입에선 경완의 표적이 될 이들이 튀어나왔다.
경완의 능력을 빼앗아 초능력 굴기에 공을 세우자는 발상을 내놓은 상무위원 2명이 직접 일을 계획하고, 중부전구 사령관이 지원했으며, 베이징 공안 총경감이 실행을 책임졌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알아내는 과정은 생각 외로 번거로웠다. 외워온 중국어 문장으론 부족해서 질문할 문장을 영어로 치고 구글로 번역해서 놈이 읽도록 하는 작업이 필요했는데, 이 작업이 생각보다 훨씬 귀찮았다.
하지만 경완은 인내 뒤에 과실이 있다는 생각으로 꾸욱 참았다.
대충 다음 심문할 놈의 이름을 확인한 경완은 의시종을 내려다보며 마지막 질문을 했다.
「너도 날 죽이려 한 일에 책임이 있나?」
의시종은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쉽게도(?) 그 대답이 사실이라 경완은 입맛을 다셨다. 거짓말이었다면 편하게 그냥 목을 비틀어버렸을 텐데 아니라고 하니 고민이 되었다.
솔직히 살려주려고 하니 찜찜했다. 혹시나 이 새끼가 자신을 만났다는 걸 밝히면 소란이 일고, 몰래 대가리만 조진다는 편한 계획에 애로사항이 꽃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문답무용으로 죽여 버리는 것도 찜찜했다. 그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원칙? 그럼 그의 저격에 죽어 나간 공안들은 뭐냐고요? 뭐긴 뭐야 전쟁의 희생양들이지.
그래서 전쟁이 지독한 거다. 책임질 필요가 없는 자들의 목숨까지 요구하니까.
하지만 경완은 지금 전쟁을 하러 온 것도 아닌데 굳이 쓸데없이 사람을 죽여 댈 필요가 없었다. 원전 테러할 때도 느낀 거지만 혼자 몸으로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에 전쟁을 거는 건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가 지금 하는 건 전쟁이 아니라 암살이었다. 쓸데없는 피해를 주어서 전쟁으로 몰고 가면 오히려 본인이 피곤해진다.
암살이나 전쟁이나 마찬가지 아니냐고? 일리 있는 말이기는 하지만 실제 전쟁에서도 그 규모를 규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전쟁에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은 한정적이니까.
경완은 다시 물었다.
「너는 여태 네 이익을 위해 무고한 사람을 죽이거나 몰락시킨 적이 있나?」
“…….”
그는 입을 꾹 다문 채 불안한 눈빛으로 대답하지 않았지만 경완은 충분히 대답을 들었다.
「죽이지는 않을게.」
경완이 의시종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 * *
의시종은 내연녀와 떡을 치다가 갑작스런 뇌졸중에 병원으로 실려 갔다고 알려졌다. 죽지도 않고 의식도 살아 있는 것 같았지만 눈알 외에는 움직이지 못했다.
경완이 그의 뇌에 검은 연기를 밀어 넣어 운동능력을 관장하는 부분의 시냅스를 잘라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전혀 표가 나지 않았다. 혈관보다 가느다란 굵기로 파고든 염력의 실은 겉으로 보이는 외상은 전혀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내연녀의 증언이라든지 현장에 남은 핸드폰 폭발 현장이라든지 의시종의 복부에 있는 심한 화상이라든지 수상하게 여길 만한 점이 넘칠 만큼 있었으나 증언을 해줄 의시종의 상태가 상태라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기엔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사이에 큰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해서 의시종에 관한 일은 당국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무슨 사건이냐 하면 바로 베이징 공안부 총경감이 끔찍한 몰골로 발견된 것이다.
사지는 잘려 있고, 두 눈을 파여 있었다. 살아 있는 게 용할 정도인 그저 듣고 말할 수밖에 없는 몰골이 된 것이다.
그는 누가 이랬냐는 질문에 비명을 지르듯 한 사람의 이름을 목 놓아 불렀다.
「이경완! 이경와아안! 으아아아아아!」
비통하기 그지없는 증언에 다시 북경에는 비상이 걸렸다. 종적을 감춘 이경완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군부가 이동하고 초능력 특수부대가 움직였다. 그리고 갖가지 대가나 미끼를 내밀어 뒷골목, 불법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초능력자들도 동원했다.
하지만 경완의 움직임은 은밀하고 치밀했다. 상무위원 한 명이 납치되어 총경감과 같은 몰골로 발견된 이후에야 중국 당국은 경완이 노리는 대상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내부적으론 홍무 작전이라 명명된, 이경완이라는 자의 능력을 빼앗아 중국의 것으로 만드는 작전을 계획하고 입안하고 실행한 책임자들이 바로 그가 노리는 목표라는 걸 말이다.
중국 당국은 바로 남은 인원에 대한 삼엄한 경호에 들어갔다. 중부전구 사령관과 남은 상무위원 한 명은 당연히 그럴 만했는데, 그 외의 사람에 대한 경호도 강해진 것이 경완의 흥미를 끌었다.
상식적으로 모든 공산당 고위 간부에 대한 경호를 강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중요 요인이거나, 이경완이 노릴 만한 이를 경호하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이경완과 싸우면서 경호대상을 보호할 수 있을 만큼 능력 좋은 초능력자의 수는 중국에도 많지 않았다.
즉, 저들이 경호를 강화한 대상은 경완이 한 번쯤 방문해서 질문을 던져볼 가치가 있는 자들이라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