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12-아무도 나를 말릴 수 없음
하지만 중국 당국도 그저 수동적으로 경완이 덮치길 기다리지 않았다. 삼엄한 경호와 경비를 갖춘 후 최대한 에스퍼들을 동원해 베이징을 샅샅이 훑고 돌아다녔다.
중국은 자신들의 장점을 너무나 잘 알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발휘했다.
어차피 이경완은 홀몸이었다. 제대로 휴식을 취하고 정비하지 못하도록 여기저기 들쑤시기만 해도 그를 초조하게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중국인은 결코 멍청한 놈들이 아니었다.
덕분에 다시 한번 베이징의 노숙자들이 몸살을 앓았고 이번에 이경완을 발견한다면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중국당국의 서슬 퍼런 기세는 외신에까지 알려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이 에스퍼 계열의 초능력자들을 동원해 이경완을 찾으려고 할수록 그의 잠입능력은 더욱 발달했다.
멀리서 먼저 에스퍼를 파악하고 피해 다니겠다고 그들의 능력이 어떻게 발휘되는지 그 메커니즘을 파악할 수 있게 됨은 물론, 심지어 에스퍼들의 탐지능력을 교란하거나 그들이 탐지를 위해 퍼뜨린 S입자를 흘려버려 걸리지 않게 되는 스텔스의 경지까지 올랐다.
약 열흘 동안, 비유하자면 경완은 신중하게 착실히 경험치를 쌓아 레벨업을 했다. 그리고 보스몹퀘를 깨기 적절한 레벨에 도달했다.
현실이든 게임이든 레벨, 다른 말로 역량이 깡패였다.
드디어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경완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중부전구 사령관 자택에서 습격!]
[상무위원 변표경, 동일범에게 습격당해!]
그 두 사람 말고도 두 명의 공산당 고위직이 사지가 잘리고 두 눈이 터진 채 발견되었다.
그들 모두 범인이 이경완이라고 부르짖었다.
열 받은 중국 당국이 베이징 봉쇄령을 내렸지만 경완은 이미 연변을 넘어 북한으로 들어온 상태였다.
그는 북한 땅을 가로질러 대한민국으로 넘어왔는데 중간에 먹을 걸 못 구해서 힘들었다. 그나마 해변으로 이동해서 초능력으로 물고기를 잡을 수 있지 않았다면 이틀 동안 쫄쫄 굶어야 했을 것이다.
아무튼 경완이 정겨운(?) 집(?)에 도착해 보니 밤이었다. 그는 괜히 자는 사람들 깨우기 싫어서 담벼락을 뛰어넘어 자신의 감방으로 들어갔다. 잠겨있기는 했지만 초능력으로 잠금장치를 열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샤워를 하고 안으로 들어가서 이불 속에 들어갔다. 며칠 주인이 없어서 싸늘했지만 그에겐 전기장판이란 특권이 있었다.
오죽하면 홍 소장이 이건 감방이 아니라 원룸이라고 한탄했을까?
그렇게 푸~욱 수면을 취해 피로를 푼 경완은 식사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그를 인솔하는 교도관은 없었지만 솔직히 그건 요식 행위에 불과할 뿐 필요 없는 인원이었다. 식당으로 배식받으러 가는 길은 그도 이미 알고 있었다.
경완은 졸린 얼굴로 입구를 담당하고 있는 교도관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밥 먹으러 왔는데 이 철장 좀 열어주세요.”
그의 말을 들을 교도관은 멍하게 경완의 얼굴을 보더니 꿈인가 싶어서 자신의 눈을 비비고 다시 경완을 보고는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이, 이, 이이, 이, 이…….”
“이?”
“이경완이다아아아아!”
그렇게 소리를 지른 그는 얼른 무전기로 이경완의 등장을 알렸다. 당장에 비상벨이 울리고 교도관들은 물론 초능력 경비들까지 출동해 경완을 포위했다.
교도관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총기를 들고 있었고 초능력 경비들도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경완은 황당하고 억울했다.
“아니! 밥 좀 먹자는데 왜 이러는 거예요?!”
그런 그의 말에 좌중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모두들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런 짓을 해놓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밥을 먹으러 온 그를 사이코패스 보는 시선으로 보았다.
그런 시선으로 보면 어쩌라고? 경완의 면상은 비브라늄 면상.
그는 주름살 하나 생기지 않은, 피곤하고 지루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밥 줄 거예요, 안 줄 거예요?”
“아, 안 주면?”
용감하게도 누군가가 묻자 경완은 팔짱을 끼고 선포하듯 말했다.
“그럼 나가서 먹고 오죠, 뭐.”
모두의 표정에 교도소가 네가 나가고 싶으면 나갈 수 있는 곳인 줄 아냐?라는 황당함이 서리자 경완은 이렇게 말을 이었다.
“이렇게 잘 돌아왔잖아요? 이번엔 밥만 먹고 돌아올게요.”
밥만 먹고 돌아온다고? 원전 테러범의 말을 어떻게 믿고?
현장 책임자로서는 판단이 힘들었다. 그는 윗선에 얼른 상황을 전달했고 윗선의 지시를 들은 그는 굳은 표정으로 경완에게 말했다.
“일단 옷부터 갈아입읍시다.”
“밥은요?”
“……갈아입고 먹읍시다.”
그래서 경완은 자신의 죄수번호가 박힌 죄수복으로 갈아입고 아침을 먹었다.
하지만 아침을 먹자마자 홍 소장의 사무실로 가야 했다.
경완을 보자마자 노성을 터뜨릴 거라 생각했던 홍 소장은 생각과는 다르게 그를 보더니 눈시울을 붉히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혹시 많이 걱정했던 걸까? 그렇게나 틱틱거려도 보기보다 꽤나 정이…….
“흐윽! 내가 너랑 전생에 무슨 악연이 있었길래…….”
아니었던 모양이다.
경완이 겸연쩍어서 볼을 긁적이며 물었다.
“어…… 많이 힘드셨어요?”
“여기 불려가서 한 소리 듣고, 저기 불려가서 한 소리 듣고, 찾아와서 한 소리하고 아주 그냥 미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홍 소장님 책임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너 때문이잖아!”
결국 터져 버린 홍 소장에게 경완은 이렇게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제 잘못도 아니에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그 내밀하고 위험한 사정을 모두 말씀드릴까요?”
“…….”
서럽게 흐느끼던 홍 소장은 짓궂은 미소를 짓는 경완의 표정에 위기감을 느꼈다.
치열한 눈치 싸움과 줄타기 끝에 이 자리에 올라온 오랜 공무원 경력을 무시하지 마라. 홍 소장은 경완이 말하는 ‘사정’을 들었다간 큰일 날 것 같은 느낌에 급히 말을 돌렸다.
“아무튼 사람들이 널 찾아올 거다.”
“아…… 귀찮은데……”
“귀찮으면 그런 짓 하지 말아야지!”
“제 이야기를 들어보시면 제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하시게 될 거,”
“됐다! 싫어! 안 들을 거야! 네 방으로 돌아가서 게임이나 해!”
홍 소장은 진창에 발을 들이밀지 않기 위해서 경완을 얼른 되돌려 보냈고, 경완은 좋다꾸나 감방으로 돌아가 패드를 붙잡고 그동안 못했던 게임들을 했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그를 부른 것이다.
경완은 호송차량에 타면서 불만을 제기했다.
“왜 내가 가야 하는데요? 지들이 와야지?”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좋을 거다.”
“싫다면요?”
경완의 반문에 교도관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긴장한 기색을 보였다. 하나같이 소총이나 샷건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이야~ 미국 교도소에서나 보던 광경을 한국에서 보다니…….
경완은 혀를 차며 뒤로 등을 기댔다. 이 사람들이 무슨 잘못이 있나? 그냥 자기 할 일 하는 것뿐인데?
한국에서도 일을 저지르면 많이 피곤해질 거라는 걸 아는 경완은 자중했다. 여기서도 일을 벌이면 밥은 어디서 먹고 잠은 어디서 자고 게임은 어디서 한단 말인가?
그는 이래서 의식주를 쥐고 휘두르는 새끼들이야말로 열 번 대가리 깨도 부족할 정도로 존나 치사한 새끼들이라는 뜬금없는 생각을 하며 얌전히 호송차량이 목적지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호송차량이 도착한 곳은 어느 교외 지역의 한 건물이었다. 주변엔 인가가 드물었지만, 군인들이 많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군시설이 아닐까?
경완은 공터 중앙의 천막으로 들어가며 주변에 상당한 수준의 초능력자들이 많이 포진해 있는 것을 느꼈다.
군인도 있고 경비로 보이는 이도 있고 경찰로 보이는 이도 있었다. 혹시나 자신을 붙잡기 위해 끌어모은 능력자들일까?
천막에 들어가 보니 여러 남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각각, 외교부 장관, 법무부 장관, 서울고검장, 서울고법원장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소개가 끝나자 외교부 장관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왜 여기까지 자네를 불렀는지 아는가?”
“읊어보세요.”
경완이 다리를 꼬며 들어주겠다는 듯이 말하자 외교부 장관을 비롯한 모두의 안색이 불쾌감으로 일그러졌다.
하지만 외교부 장관의 말에 끼어드는 이는 없었다.
“한중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널 중국으로 보내 달라는 요청이 왔다.”
왜 이 자리에 법무부 장관, 서울고검장, 서울고법원장 등이 있는 이유는, 그들이 범죄인 인조조약에 따라 범죄자를 인도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결정권자이기 때문이었다.
경완이 물었다.
“죄목은요?”
“절도, 상해, 살인, 테러. 더 있나?”
“강간은 없나 보네요?”
“강간도 저질렀나?!”
“푸흡! 농담도 모르세요?”
“지금 농담할 때야!”
참다못한 서울고검장이 끼어들어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경완은 그 소리를 못 들은 듯한 귀로 흘려버리며 혼잣말하듯 말했다.
“흐음…… 내가 덜 죽였나? 간도 크네요. 주석의 사지를 잘라놔야 정신을 차리려나?”
“너, 너, 너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알기나 해?!”
“으음…… 전쟁?”
“너 이 새끼! 전쟁을 장난으로 알아?!”
“대한민국은 괜찮을 거예요. 제가 알아서 중국 가서 깽판 치면 되니까요.”
“괜찮다고?! 웃기지 마! 네가 테러한 원전에서 유출된 방사능 물질은 어쩔 건데?! 중국이 대한민국에 책임을 물면 네가 책임질 거야?!”
중국은 대한민국의 서쪽에 있다. 그리고 중국의 원전은 동쪽에 밀집되어 있다.
경완이 중국 원전을 폭파했을 때 한국인들이 느낀 것은 통쾌함보다는 편서풍을 타고 자신들을 덮칠 방사능 물질에 대한 걱정이었다.
하지만 경완은 피식 비웃을 뿐이었다.
“그거야 절 중국에 팔아넘긴 대한민국이 응당 져야 할 대가가 아닐까요?”
“누가 팔아먹어?!”
“그럼 미국이 반응하기도 전에 제가 중국으로 보내진 일이 높으신 분들이 중국에 절 팔아먹지 않고도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
“하긴 중국이 절 중국땅으로 데려간 목적이 절 죽여서 제 능력을 빼앗는 거라는 걸 알고도 그럴 사람은 없겠죠. 그런 사람이 있으면 진짜 매국노죠.”
경완의 말에 외교부 장관을 비롯한 모두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놈이 드디어 중국에서 그 포악한 본색을 드러냈구나 싶었는데 중국이 그런 음흉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했기 때문이었다.
경완이 굳은 그들의 표정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쯧. 중국이 미국을 배제한 채 일을 진행했을 때부터 수상하게 생각했어야죠. 무능하기는.”
그 독설에 법무부 장관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일반 국민들을 죄가 없어.”
“뭐가 죄가 없어요? 대한민국은 투표로 민의를 반영하는 민주주의 국가잖아요? 설사 사기전과 씹팔범을 대통령으로 뽑아서 나랏돈을 꼼꼼하게 헤쳐 드신다고 해도 그 결과는 공동으로 책임지는 거 아닙니까? 그게 투표로 선출직을 뽑는 민주주의 국가 공동체라는 거죠.”
X같고 엿같고 씨발스러워도 어쩔 수 없다. 민주주의는 최선의 선택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저 단지 최악을 마주할 확률을 낮추기 위한 시스템이니까.
국민 대다수가 최악을 원한다면 그 결과 역시 최악이 될 것이고, 국민 대다수가 무엇이 최선인지 알아볼 지적 수준과 도덕적 기준을 갖추지 못한다면 최선의 선택지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선택되지 못한다는 게 민주주의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
한 마디로 국민의 통합된 수준이 정치의 수준인 것이다. 책임은 모두가 지고 말이다.
난 저 새끼 안 뽑았는데도 주 120시간을 일해야 한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그게 민주주의라는 거다.
경완이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