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127화 (127/367)

128-12-아무도 나를 말릴 수 없음

“그리고 방사능도 너무 걱정 마세요. 이런 세상인데 어디선가 방사능 제거 능력자가 떡하니 튀어오지 않겠어요?”

그의 속 편한 개소리를 외교부 장관은 한 귀로 흘려버리고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너를 중국 측에 인도하기로 했다.”

뭐가 그래서인진 모르겠지만 일단 그렇다고 치고,

“그럼 그러면 되지 굳이 왜 저를 굳이 여기까지 불러서 통보해요?”

“…….”

“흐흐흐. 미국이랑 이야기된 거 아니구나?”

경완이 정확히 맥락을 짚어내자 외교부 장관은 저절로 마른침을 삼켰다. 속마음을 읽히는 듯 등줄기가 서늘했다. 이상하다? 신체접촉도 안 했는데?

“그래서 날 여기까지 불러서 구구절절이 설명한 거네요? 내 입에서 수용하겠다는 식의 대답을 받아내려고요.”

일단 중국에 가겠다, 뭐 그런 비스무리한 말만 경완에게서 받아내도 미국 측에 면피할 핑곗거리로 삼을 순 있을 테니 말이다.

어차피 미국도 그가 미국 시민권자인 탓에 강하게 나올 수 없었다. 그 미국 시민권자가 중국 원전을 두 기나 날려버렸으니까 국제 사회에서도 이 사건에 관해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는 곳이 거의 없었다.

뭐 속으로는 고소해할지 몰라도 세상엔 명분과 체면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외교부 장관이 강요하듯 말했다.

“가라.”

“네.”

응? 정말?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경완이 선뜻 동의하니 모두가 의외라고 놀라며 그를 쳐다보았다. 뭔가 꿍꿍이속이 있지 않을까 의심하면서 말이다.

그런 그들의 시선에 경완은 비웃는 표정으로 아니나 다를까 이렇게 물었다.

“그리고 중국에 가서 깽판 치고 오면 되는 거죠?”

“무슨 개소리야!”

서울고검장이 소리를 질렀다.

“분명 중국이 저를 죽이려고 들 텐데 얌전히 죽어줄 순 없거든요. 설마 저보고 죽으러 가라는 거예요? 제가 왜 그런 말을 들어야 하죠?”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서울고검장이 끼어들었다. 경완은 그를 보며 대꾸했다.

“애당초 그 죄와 벌이라는 것도 댁들 입맛에 따라 정하는 거잖아요? 말해봐요. 왜 검사는 똑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형량이 낮거나 기소조차 안 되는 거죠? 왜 판사는 개 같은 판결을 내려도 책임을 지지 않는 거죠? 왜 재벌들은 항상 기소유예를 받거나 사면을 받는 거죠?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같은 말을 하고 싶으면 법을 공평히 적용하든가. 아니면 내가 만만해요? 가만히 교도소에 있어주고 예예 해주니까 우습죠?”

“크흑!”

경완이 말하는 것에 따라 힉스장이 퍼졌다.

외교부 장관 등 높으신 분들이 무거워지는 몸과 머리 무게에 신음을 흘렸고 그들을 경호하는 초능력자들이 경완에게 달려들었지만 그들은 특히 더 강한 힉스장에 걸려서 경완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무릎이 꿇렸다.

“그, 그만!”

법무부 장관이 외치자 경완은 초능력을 거두면서 말을 이었다.

“내가 귀찮아서 가만히 있는 거지 마냥 호인이라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거든요? 사람이 얌전히 지내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꼭 처맞아봐야 정신을 차릴래요? 고리원전 한 번 박살 내야 이 미친놈은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걸 깨닫겠어요?”

“그, 그런 짓을 국민들이 용납할 것 같아?!”

“어차피 수시로 사고 난 걸 감추는 고리원전인데 박살 내면 좋아라 하지 않을까요?”

미친놈이 하는 미친 소리에 모두의 표정은 암울해졌다. 방금 경완이 보인 능력에 믿었던 초능력 경비들이 무릎까지 꿇은 걸 보니 두려움이 솟구쳤다.

정말 이경완이라는 빌런을 제어할 방법은 없단 말인가?

그들의 그런 속을 하는지 모르는지 그가 말을 이었다.

“아무튼, 언제 중국에 가는데요? 아니 중국에 갈 수는 있대요?”

“무슨…….”

“제가 중국 공산당이라면 저 같은 또라이가 자기네들 영토에 내려앉기 전에 미사일이든 포탄이든 쏴서 비행기든, 배든 폭발시켜 버릴 것 같은데요? 어차피 사형시킬 놈이잖아요?”

자기객관화를 잘하는 미친놈의 추론은 미친 소리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그럴듯했다. 어차피 경완이 저지른 짓은 평범한 사람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었지 않은가?

“뭐, 그런 상황에도 핵미사일이 아닌 한 제 한 몸 간수하는 건 자신이 있거든요. 문제는 그다음이죠. 그런 짓을 당한 제가 과연 가만히 있을까요?”

아니겠지. 경완이 중국에서 무수히 많은 이들을 죽이고 심지어 원전까지 테러한 이유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니 절대로 가만있지 않고 앙갚음을 하려고 들 것이다.

그런데 설마 중국이 진짜 그럴까?

중국이 그런 무도한 짓을 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도 그다음이 문제였다. 경완이 중국에 간다는 것이 결코 얌전히 판결과 사형을 받기 위해 가는 거라고는 추호도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리 치러 가는 거라면 몰라도…….

드디어 외교부 장관을 비롯한 모두는 뭘 선택하든 X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경완을 중국에 보내면 분명 이 미친놈이 사고 칠 것이고, 그렇다고 보내지 않으면 중국의 갑질, 꼬장질이 시작될 것이다.

뭘 선택하든 대한민국으로서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경완이 그들의 속내를 짐작하고 혀를 찼다.

“쯧쯧. 그러니 뇌물과 향응은 함부로 받는 게 아니에요. 저를 중국에 보내기 전에 미국에 문의라도 한 번 했다면 이 사달이 나진 않았을걸요? 명색이 미국 시민권자인 저를 댁들 마음대로 다루다가 이 꼴이 난 거니 제 탓하지 마세요.”

“그게 말이라고,”

“그럼 제가 거기서 얌전히 죽어야 했다는 거예요? 한 번만 더 그따위로 말하면 아래위로 임플란트를 네 개씩 박게 만들어 줄 거예요.”

그거 아는가? 임플란트는 빠진 이 하나마다 하나씩 심는 게 아니라는 걸.

임플란트를 적당한 간격으로 박은 다음에 이가 연속으로 붙은 모양의 구조물을 임플란트에 고정하는 것이 임플란트 시술의 진실이었다.

즉, 경완의 말은 윗니 아랫니 옥수수를 죄다 털어주겠다는 경고였다.

그 말을 알아들은 모두는 침묵했다. 그의 말은 사실상 중국에 보내면 절대로 얌전히 있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래서 저는 언제 중국 가요?”

“……..”

재차 반복된 경완의 물음에 모두는 표정을 일그러뜨린 채 입을 다물었다.

* * *

한중범죄인 인도절차는 중지되었다. 중국은 당연히 강력하게 항의했고 중국 내에선 혐한감정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물론 이번에도 한국은 싫지만 한국 상품은 좋아하는 이중성을 보여주는 혐한시위대였다.

한국에선 비공식적인 외교라인을 통해 경완을 중국에 보내고 싶지만 놈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 엄포를 놓았다고 해명했다.

그러자 돌아오는 중국의 요구는 가관이었다. 그렇다면 경완을 한국에서 재판해서 사형을 선고하고 신속한 집행까지 하라는 것이다.

명백한 내정간섭에 한국 정부는 곤란해하고 당혹스러워했다.

이경완 같은 희대의 빌런을 죽일 수 있는 역량이 있냐 없냐는 둘째치고, 한국의 사형제는 비록 존속 중이었지만 집행 자체가 정지된 건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곤란해하는 그때 미국이 끼어들어 중국 보고 뭐라뭐라했다. 한국 정부가 비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당연히 중국은 노발대발했다. 아주 그냥 미국이 테러범 편을 든다면서 난리를 피웠다. 그러면서 이경완이 원전을 터뜨릴 때 사용한 폭발물의 입수경로가 상당히 수상하다면서 미국을 배후로 지목했다.

미국은 뜨끔했지만 미국의 눈을 피해 미국 시민권자를 중국으로 데려간 건 오히려 중국이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도대체 테러범의 제압과 체포,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던 이경완이 왜 중국에서 그런 큰일을 저질렀는지 캐물었다.

그런 양방의 공세가 커지는 와중에 특종에 몸을 달은 기레기들에 의해 경완의 입장이 공개되었다. 역시 개똥도 쓸데가 있는 법이었다.

경완의 말은 좀 길었지만 핵심만 추리면 다음과 같았다.

[중국은 현재 초능력 인체실험을 하고 있으며 본인은 그 희생양이 될 뻔했다. 중국은 인권과 자유를 파괴하는 악의 축이며 나는 그런 중국을 용서하지 못해 경고와 응징의 의미로 원전을 폭파했다.]

사실 본인을 죽이려 했기 때문에 그랬지만 그건 원전 테러의 핑계로 삼기에는 너무나 약하지 않은가?

나치나 일제 731부대 수준은 되어야 명분이 생기지.

솔직히 인체의 신비전에 수감자 시신을 팔아먹는 중국이 초능력 인체실험을 정말 안 할 리가 있겠는가? 폐쇄적인 중국에서 인체실험으로 신비해진 인간의 수는 아마 상상 그 이상일 것이다.

아무튼, 경완은 입장 발표의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중국인들이여! 천안문을 기억하라! 그것이 너희 중국인의 진실한 기상일지니!’

칭찬하면서 맥이는 것이야말로 해학이 아닌가? 경완도 명색은 한국인이었다.

아무튼, 중국과 미국이 힘겨루기에 들어가면서 경완의 이번 중국 출장(?) 사건은 소강상태에 빠졌다.

그로 인해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은 중국은 이를 갈았지만 미국의 탱킹은 견고했고, 한국도 말을 처들어 먹질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한국 내에 중국이 깔아놨던 꽌시와 인맥이 드러나 한국 내 첩보활동이 움츠러들었다. 한국 내 친중 세력의 운신이 어려워졌다고나 할까?

한국 정부로서는 중국 시장이 너무나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이경완에게 쉽사리 손을 댈 수 없었다. 명색이 법치국가이자 인권과 자유를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아닌가? 국제 기득권인 서양 세력이랑 한 편을 먹거나 적어도 외교적 우호를 다지려면 그 틀은 유지해야지, 암! 그렇고말고.

그래서 그런지 사형판결은 내려도 정작 집행하지 않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즉, 경완이 교도소에 얌전히 있는 이상 초법적으로 그의 생명과 건강에 위해를 끼칠 순 없다는 뜻이었다.

덕분에 경완은 자신의 감방에서 푸욱 쉬면서 그동안 못 잡은 패드를 붙잡을 수 있었다.

그래, 이 맛이지.

팔다리 잘라내고 아구창 박살 내는 손맛보다는 패드 손맛이 더 온건하고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는 일 아니겠는가? 모두가 총 대신 패드를 쥔다면 세상이 얼마나 평화로워질까?

패드로 드론병기를 조종할 수 있다고요? 아몰랑 안 들려.

아무튼, 다시 찾은 평화에 한 가지 불만스러운 점이 있다면 저 밖에서 이경완을 규탄하는 시위가 담벼락을 넘어와 계속 몰입을 해치는 것이었다.

[테러범 이경완을 처벌하라!]

[처벌하라! 처벌하라!]

대한민국에 방사능을 뿌린 이경완을 척결하라든지, 살인마 이경완에게 사형을 집행하라든지, 아주 그냥 확성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이 양반들아! 그런 걸 요구하려면 국회의사당 앞이나 법무부 앞에서 이래야지 왜 그에 대해 아무런 권한도 없는 교도소 앞에서 그러는데? 그냥 내 기분 나쁘라고?

그리고 방사능 문제에 대해서는 경완도 좀 억울한 감도 있었다. 중국이 만든 원전, 그들이 관리하는 원전이 정말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이 관리하는 원전에서도 연일 비리가 벌어져서 안전 문제가 발생하는데 폐쇄적인 일당독재 국가가 관리하는 원전은 오죽하랴? 예전에 중국 원전의 핵연료봉에 문제가 생긴 걸 미국이 지적한 적도 있지 않았던가?

그리고 일본산 방사능 해산물이 국적 세탁해서 한국에 버젓이(?) 유통되고 있지 않은가? 적발 건수만 한해 100여 건이었다. 적발 안 된 건수까지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규모가 아닐까?

그런데 자신에게만 핵물질을 유출했다고 비난하니 조금 억울했다. 어차피 자신이 아니라고 해도 좌중국 우일본이며 노후화된 본토 원전 덕분에 알게 모르게 방사능을 먹고 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억울함을 호소해봤자 성난 시위대에게 먹힐 리는 없었고 일일이 설명하기도 입 아프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뭐?

129-12-아무도 나를 말릴 수 없음

경완은 필요한 물건을 얻기 위해 감방에 비치된 전화로 핫라인을 연결했다.

뚜루루룩! 뚜루루룩! 뚜루루룩! 뚝!

[여보세요. 오랜만이네요, 경완 씨.]

“김 소장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돌아와서 이제 연락한 것 때문에 섭섭한 거 빼고는요.]

“아이고, 제가 저지른 일이 일이잖아요. 괜히 연락했다가 폐를 끼칠까 봐 그랬죠.”

경완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있잖은가?

“아무튼, 요즘 시끄러워서 그런데 헤드셋 하나 사주실 수 있나요?”

김라에몽! 내게 필요한 걸 줘!

듣기 싫은 건 안 들으면 된다. 단순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세상의 진리! 그리고 헤드셋은 이 단순한 진리를 구현하는 인류 최고의 물품!

그런 그의 요청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어머 대뜸 요구사항부터 말하니까 더 섭섭하네요.]

“에이, 우리 사이에 이 정도로 섭섭할 게 있나요?”

줄 거 주고 받을 거 받는 비즈니스 관계에 불과하지만 다시 말하자면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

경완의 매끄러운 혓바닥에 마리아는 비음을 흘리며 말했다.

[흐으음. 그럼 잠시 연구소로 와줄 수 있나요?]

“어…….”

이걸 빌미로 호기심을 채우시겠다? 경완은 거 헤드셋 참 더럽게 비싸다고 생각하면서 수락했다. 세상은 기브 앤 테이크니까.

“그러죠.”

[교도소에는 제가 연락해 놓을 테니까 빨리 와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어조에는 애인을 기다리듯 다정하면서도 애타는 심정이 적나라하게 있어서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냥 취소할까?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여기서 뒤집는다고 해도 이미 빌미를 제공한 상태라 마리아 소장이 얌전히 수긍할 리가 없었다.

결국 경완은 팔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돋아난 소름을 가라앉히고 비밀문을 통해서 연구소에 방문했다.

경완이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경비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든 그를 만나고야 말겠다는 마리아 소장의 집념이 엿보였다.

경비의 안내를 받아 경완이 도착한 곳은 측정실이라는 곳이었다. 예전에도 한 번 와보기는 했지만 그때보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장비들이 더 많이 늘어난 상태였다.

“어서 와요!”

“네, 오랜만이네요.”

경완은 마리아가 내민 손을 잡고 악수를 나누고는 그녀가 권한 의자에 앉아서 그녀가 내려준 커피를 홀짝이며 잠시 서로 간에 안부를 나눴다.

“이번 일로 인해 경완 씨의 능력이 비약적으로 발달했어요. 맞죠?”

“네.”

그녀가 말하는 이번 일이란 중국에서의 일이었다.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아니라고 말하기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이었다.

“새로운 능력도 각성했고요. 맞죠?”

그렇게 질문하는 김마리아의 눈에는 이미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아니라고 부정하면 증거를 들이댈 기세였기에 경완은 맥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무슨 능력인지 물어봐도 되나요?”

“아니요.”

“왜요? 제가 알면 여러 방면으로 도움을 줄 수 있어요.”

“절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요.”

경완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을 적대하는 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데 괜히 자신의 역량을 노출하는 건 바보였다.

“제가 보호해 드리겠다고 말해봤자 별로 신빙성은 없겠네요.”

한영미인가 미일중인가 하는 여자도 연구소에 있다가 결국 납치되지 않았던가?

“그럼 초능력 장비는 어때요? 개발에 도움을 주면 근사한 거로 한 벌 선물해 줄게요.”

“에이. 제 상황이 그런 신외지물에 의존할 법한 상황이 아니거든요.”

경찰이 총을 빼앗기면 다른 경찰이 출동한다. 한국에선 안 그렇다고요?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아무리 마리아 소장이 근사한 물건을 만들어줘도 경완은 재소자인 입장이다. 있어봤자 사용하는데 이런저런 제약이 생기고 눈치도 봐야 한다면 차라리 없는 편이 속 편하다.

“그보다 헤드셋은 언제쯤…….”

경완이 말꼬리를 흐리자 김마리아가 미소를 지으며 에둘러 말했다.

“거기는 좀 시끄럽죠?”

“방음이 좀 그렇네요. 그런데 여기는 조용하네요.”

경완이 뼈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이건 뭐 공공임대주택도 아니고 새로운 감방을 만들어 줄 때 왜 방음에는 신경 쓰지 않았나?

마리아 소장이 대꾸했다.

“사람들이 화난 이유 중 주된 이유는 방사능이죠.”

“우리나라 원전도 사고 잦은데 왜 저만 가지고 그래요?”

고리원전 앞이나 한수원 앞에서는 왜 시위 안 하는데? 형평성에 안 맞지 않은가?

“정도의 차이죠. 당신이 저지른 원전테러에 얼마나 많은 방사능 물질이 유출되었겠어요?”

“뭐 그렇긴 하지만 그건 그 사람들이 감당해야죠. 절 미국 몰래 중국에 보낸 사람들에게 표를 준 책임이 있잖아요?”

경완은 저번에 만난 고위 공직자에게 했던 논리(궤변)를 그대로 풀어놨다.

하지만 김마리아는 그런 정치적 이야기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제게 그러한 비난을 낮출 방안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그럼 좋죠.”

경완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방안에 경완 씨의 협조가 필요하다면?”

“어…… 과연 그 협조가 얼마나 귀찮고 피곤할지가 문제겠죠.”

경완이 솔직하게 말하자 마리아가 고혹적인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말고 한 번 해보죠. 해보고 힘들면 그때 멈추면 돼요.”

“멈추고 싶다고 멈출 수 있기는 한 겁니까?”

“안전은 확실해요.”

“…….”

그래. 멈추어야 할 때 멈출 수 있으니까 안전하다고 했겠지?

경완은 눈웃음을 짓고 있는 마리아와 눈빛을 교환했다. 그녀의 눈빛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대중의 비난을 감소시킬 건수와 헤드셋을 줄게요. 당신은 뭘 줄 거죠?’

경완은 눈빛으로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 집 협상 잘하네.’

그가 작고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입자 제어 장치로 가죠.”

“그건 또 뭐예요?”

“최근에 개발한 장치예요. 염동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죠.”

경완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계열이 다른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벌써 그런 수준까지 초능력 기술이 발달했단 말인가?

어쩌면 예전에 그녀가 한 말대로 물밑에서 초능력 기술 개발 및 기술 탈취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경완이 중국으로 가게 된 일을 생각하면 상상 이상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 않을까?

“자 그럼 들어갈까요?”

“그냥 앉아있으면 돼요?”

“저번에 천리안 장치를 사용했던 때를 떠올려 보세요. 그와 비슷할 거예요.”

이번에도 전자기 유도로 생체전류를 뇌에 유도하는 방식인가?

어디서 염동력자의 뇌활성 데이터라도 얻은 모양이었다.

딱히 유명한 염동력자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을 보면 흑연처럼 유명한 건 아닌 모양이니 빌런이 아니거나 그 힘이 매우 미약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국가기밀로 은폐되어 있거나.

경완은 마리아의 지시에 따라 염동력을 발휘했다. 장치 앞에는 추가 여러 개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는 염동력 장비를 이용해 500kg의 무게를 들 수 있었으며 전단력을 발휘해 직경 3센티의 철근을 끊을 수 있었다.

사용한 당사자의 입장에선 흑연의 염동력과 상당히 그 결이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흑연의 염동력은 상상으로 만들어내는 가상의 손이라는 느낌이라면 이 장비로 사용하는 염동력은 일종의 역장, 포스필드를 만들어낸다는 느낌이 강했다.

마리아는 예상보다 좋은 결과에 손뼉을 치며 놀라워, 아니 좋아했다.

“대단하네요! 여태까지 가장 좋았던 기록보다 3배는 더 강한 출력이에요! 혹시 능력 사용이 부담스럽거나 생각만큼 출력이 안 나오진 않았나요?”

그녀의 질문에 경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그녀는 눈을 반짝였다.

“그 말은 경완 씨의 초능력 잠재력이 아직 충분히 남아 있다는 뜻이에요! 그 잠재력을 다 개발하면 얼마나 대단한 초능력자가 될지 상상만 해도 두근거리네요!”

경완이 대꾸했다.

“상상만 해주세요.”

“왜요? 경완 씨는 남들이 모두 부러워할 정도로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싶지 않아요?”

“글쎄요. 능력은 결국 수단에 불과해서요.”

무한전생자인 그이기 때문에 자신의 말에 더 확실하게 실감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능력을 갖추길 원하는 이유가 뭔가? 결국 능력 자체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닌가?

하지만 능력과 더 나은 삶 사이에는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지만 ‘반드시’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능력을 가졌지만 스스로 가시밭길을 걷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상의 험난함에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고 꺾인 이들도 있었다.

결국 중요한 건 두 가지였다. 어떤 삶을 살고자 마음먹을 것인가, 그리고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는 운이 따라 주는가?

능력은 그다음 문제였다.

물론 무한전생자로서 수많은 경험을 쌓은 경완은 마음먹고 노력만 한다면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이고 능력이라는 걸 갖출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딱히 불편한 게 없는데 굳이?”

그런 경완의 인생관에 김마리아는 그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경완 씨의 문제는 향상심이 없다는 거네요.”

“향상심 없는 사람이 어딨어요?”

“어머? 있어요?”

“도전과제 수집을 위해 피지컬을 단련하자거나 어떻게 하면 더 몸 편하게 소파에서 뒹굴 수 있을까 궁리하는 향상심이 있죠.”

경완의 이번 대답에는 항상 미소 짓던 김마리아도 미소 그대로 굳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그에게 게임기를 순순히 사주고 소파까지 마련해준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오고 있지 않을까?

아무튼, 경완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거랑 저에 대한 비난을 낮추는 거랑 무슨 관련이 있나요?”

“모르겠어요? 이 장치를 이용하면 방사능의 영향을 받지 않아도 방사능 물질을 다룰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후쿠시마 같은 곳엔 가고 싶지 않은데요?”

중국에서 날아올 방사능 물질은 넓은 범위에 퍼진다. 아무리 염동력으로 방사능의 영향을 받지 않고 방사능 물질을 다룰 수 있어도 후쿠시마 같은 곳이 아니라면 크게 소용이 없었다.

마리아가 대답했다.

“일본에 보낼 생각은 없어요.”

“그럼 저야 좋죠.”

저번에 그 난리를 피웠는데 또 갈 필요가 있나? 도발하러 가는 게 아니면 굳이 왜?

“경완 씨. 제가 요즘 연구하고 있는 게 뭔지 아세요?”

“아니요.”

굳이 알고 싶지 않은데요?

하지만 그녀는 굳이 알려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능력의 복합이랍니다. 그래서 경완 씨에게는 아주 큰 기대를 걸고 있어요. 현재 가장 능숙한 복합 능력자잖아요.”

“아유~. 별로 그렇지도 않,”

“소총으로 전투기도 격추하고, 미사일도 격추하고. 그게 과연 온전히 저격 능력으로만 가능할까요?”

“흐음…….”

“당시 전투를 훔쳐본 나라는 다 알고 있을걸요? 그때 경완 씨가 쏜 총알의 총구 속도는 명백히 이상하다고요.”

단순한 저격 능력이 아니라 뭔가 다른 능력이 가미된 것이 분명하다는 마리아의 말에 경완은 오리발 내미는 걸 포기했다.

“아무튼, 그렇다고 치고. 그래서요?”

“탐지 계열의 초능력과 염동력장을 결합해서 넓은 범위에 흩뿌려진 방사성 물질을 걸러내는 일종의 초능력 역장 필터를 만들 거예요. 그거라면 경완 씨에 대한 비난도 많이 줄어들겠죠.”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습할 수 있는 사고를 치는 거랑, 수습할 수 없는 사고를 치는 거랑은 비난의 수위가 다르긴 했다.

“어때요? 한 번 참여해 볼 마음이 들어요?”

“제가 하는 겁니까?”

“어머? 자기가 싼 똥은 자기가 치운다. 다큐에서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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