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12-아무도 나를 말릴 수 없음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기에 정신계 능력만큼 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정신계 능력자의 수가 초능력 각성자 중에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작다는 점이었다. 치유 능력자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희귀했다.
또한 발현된 그들의 능력이 같은 정신계 각성자에게 매우 쉽게 감지되고 발각된다는 점에서 방비가 충분히 방비가 가능하다는 점이 정부 관계자들을 안심시켜주었다.
[그래서 정신계 능력자는 정부 차원에서 매우 엄중하고 기밀로 관리하고 있어요. 하지만 세계는 넓고 모두가 정부의 감시에 있는 건 아니죠.]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만 해도 비질란스 활동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목소리의 설명에 의하면 제3세계의 독재자나 군벌에선 사람의 정신에 영향을 끼치는 정신계 능력자가 적극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단다.
조금이나마 인권을 챙기는 국가에서는 정신계 능력자를 정신계 초능력 범죄를 막아내기 위해 방어적으로 활용하고 말이다.
경완이 혹시나 하고 물었다.
[혹시 중국에서 청부라도 넣은 걸까요?]
[저는 알 수 없어요. 단지 한국에서 세뇌 능력자의 패스와 접촉했다는 것, 그리고 그 접촉을 통해 당신을 노리고 있다는 피상적인 의념을 읽어냈다는 것뿐이죠.]
그래서 이렇게 연락을 한 걸까? 누가 걱정해주면 감사하다는 생각부터 하는 것이 정상일 텐데 경완은 고작 이런 생각이나 들었다.
[패스라는 거 완전히 노출증 환자나 쓰는 거네요.]
단순히 사생활 노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노출증 환자가 옷만 벗어재낀다면 정신계 능력자가 패스를 잘못 다룰 경우 자신의 은밀한 생각과 흑역사를 포함한 기억 일체를 노출하게 되는 셈이니까.
[……그래서 정신계 능력자는 패스를 닫거나 일부만 열어두는 것부터 가장 먼저 익숙해지죠. 그 세뇌 능력자는 자신의 능력에 자신감이 넘치는 건지 막 방심하고 있었지만요.]
[그래요? 한국 정부는 알아요?]
[글쎄요. 확실한 건 한국 정부도 정신계 능력자를 갖추고 있다는 거예요. 약하긴 하지만요.]
[약해요?]
[네, 타인의 정신에 간섭할 수 있는 수준은 극히 낮으면서 다른 능력자의 패스에는 민감해요. 그래서 한국 정부가 청와대나 국회의사당에선 경보장치처럼 굴리고 있죠. 그나마 수도 적어요. 차라리 대기업 같은 곳에 고용된 능력자가 더 역량 있죠.]
[총체적 난국이구먼. 그럼 정신계 능력자가 사회에서 나쁜 짓을 하고 있으면요?]
[모든 사건을 막을 순 없지만 한국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은 샌드맨이 처리하고 있어요.]
[샌드맨이요?]
[네, 저나 사망기자가 관련 첩보를 얻으면 샌드맨이 나서서 확인하고 조처하죠. 샌드맨도 정신계열이라 정신계인지 파악할 수 있거든요.]
[죽여요?]
[아니요! 죽이다니요? 그냥 모종의 장소에 가둬놓을 뿐이에요. 한국 사법 체계에 넘기기엔 믿을 수가 없어서요.]
정신계 초능력을 이용한 범죄는 증거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검찰이 작정하고 정치검찰 수준으로 표적수사를 하거나 증거조작을 하지 않는 이상 정신계 초능력 범죄자를 기소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미국 같은 경우엔 초법적인 권한을 사용해서라도 정신계 초능력 범죄자는 일단 잡아두고 보는데 한국의 사법당국이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신뢰가 안 간다는 것이다.
경완은 이들의 노고에 감탄했다.
[아이고, 샌드맨 씨에게 정부가 표창장 줘야겠네요.]
[그런 거 바라고 그러는 사람도 아니에요.]
역시 자경단. 자신의 정의를 위해서는 열심히 일하는구나. 경완은 자신이 그러기는 귀찮은 만큼 그들의 그런 부지런함이 대견했다.
[아무튼 조언 감사해요. 그런데 그 세뇌 능력자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 저에게 도착하기도 전에 샌드맨이 처리하는 건 아니겠죠?]
[그렇진 않아요. 그는 지금 한국에 없거든요.]
아, 그래서.
정신계 초능력 범죄자를 처리하는 샌드맨이 마침 한국에 없다는 것도 경완에게 이렇게 접촉해서 경고해 준 이유일 것이다.
[그럼 저는 이만.]
[넵, 열심히 하세요.]
[…….]
불법적인 자경단 활동을 열심히 하라는 인사말에 목소리의 알 수 없는 복잡한 심경이 패스를 타고 전달되었다.
경완은 패스라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방심하면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 같은 것이 상대에게 알려지지 않는가?
* * *
비질란스의 목소리로부터 경고를 들은 며칠 후, 경완은 여느 때와 같은 일과를 마치고 잠에 들었다.
그동안 중국의 원전은 빠르게 복구되었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후쿠시마에도 장비를 공급한다는 양해각서를 체결(締結)한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스마트 포스필드 기술 덕분에 핵에너지도 명실상부 그린 에너지에 속하게 될 거라는 속보가 연신 뉴스를 강타했다.
이거이거 원전 마피아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겠는걸?
아무튼, 경제면에선 초능력과 관련된 산업과 기업의 비전, 그리고 주가에 대해서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는 와중에 사회면에선 여전히 초능력 범죄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당국의 모습을 여실히 전달하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생산되는 트위스터의 끔찍한 피해자들은 마치 죄를 저지르려는 이들에게 경고하는 듯했고, 사망기자는 토건세력-부패검찰-황색언론으로 이어지는 삼색 엘리트 카르텔의 구성원을 차례차례 그 은밀한 사생활까지 공개했으며, 흑연은 군부정권에 빌붙어 탄생한 사회지도층의 자녀들에게 상해를 입히며 말 그대로 미쳐 날뛰고 있었다.
번외로 거세남은 아직 잡히지 않았거나 출소한 유아성폭행범을 골라 양손과 아랫도리를 잘라내고 있었다.
사회적인 주목도는 트위스터가 가장 높았고, 사망기자가 그다음을 이었다.
솔직히 빌런 활동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면 트위스터는 그저 피해자가 입은 피해의 유형이 특이할 뿐 범죄에 대한 응징이라는 면에서는 특별할 것 없는 전형적인 자경단의 행태를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도 트위스터에 대한 사회적 주목도가 높은 건, 거세남이나, 흑연, 사망기자의 활동에 대한 대중의 시선을 분산시켜 보고자 하는 높으신 분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거세남은 높으신 분들의 별장 마약 강간사건과 관련되어 있었고, 흑연은 군부정권의 잔재와 관련되어 있지 않은가? 기득권 카르텔의 민낯을 밝히는 사망기자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너무나 잘 사용하는 사망기자만큼은 여전히 대중적인 관심을 그러모으고 있었다.
본인이 가진 쇼맨쉽도 컬트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던 터라 세간의 기억에서 잊히게 만들기에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그런 쇼맨쉽이 의도된 것은 아닌가라고 의심하고 있었다. 여태 잡히지 않은 사망기자의 치밀함을 생각하면 능히 그럴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세상이 갈등과 혼란으로 치열하게 움직이고 있어도 높다란 교도소의 담벼락을 세워둔 경완은 평화로운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푸욱~ 숙면을 취하는 와중에 이상한 낌새에 눈 떠보니 이상한 새끼가 간질 발작이라도 하는지 입에 거품을 물고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며 전신을 바들거리는 것만 빼고 말이다.
“히이! 히이! 히이히이! 히히이!”
“아! 씨발 깜짝이야!”
아니, 씨발 이게 뭐야?! 교도소 경비는 이 미친놈이 감방에 들어올 동안 뭘 했단 말인가?
경완은 의문의 또라이를 뛰어넘어 감방을 나섰다. 감방문은 이미 열려있었고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대체 야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람들이 다급한 얼굴로 들것에 사람들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대부분이 교도소 경비와 외주를 준 초능력 경비였다.
경완은 무전기를 들고 여기저기 지시를 내리고 있는 구급요원에게 다가가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방해하지 말고, 헉!”
구급요원은 경완에게 옆으로 비켜나 있으라고 말하려다가 그가 입은 죄수복에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가, 감방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경완은 주어가 없다고 못 알아듣는 저능아는 아니었기에 대꾸해 주었다.
“제 감방에 못 보던 사람이 있더라고요. 문도 열려 있고, 교도관들은 안 보이고. 이상하니 나와 볼 수밖에요.”
친절하게 사정을 설명해 주었더니 구급요원으로 보이는 이의 굳었던 표정이 조금은 풀리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설명해주었다.
새벽에 갑자기 다수의 사람이 광증 바이러스에 전염이라도 된 듯 이상행동 증세를 보이더니 죄다 기절해버렸다고 말이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사람도 있는데 어찌나 심각한 악몽을 꿨던지 불안장애를 보이기까지 한다나?
정신적인 안정을 취하라고 수면을 권유했는데 끔찍한 악몽을 꾸기라도 했는지 수면도 거부하고 사방이 환한 곳에서 개그 프로그램, 디즈니 만화동산 및 유튜브에 즐비한 아기와 애기동물로 점철된 힐링 영상을 보여주고 나서야 안정을 취하고 있단다.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더 캐물어 볼 생각은 없었다. 나중에 교도소 측에서 사정을 파악해서 알려 줄 게 있으면 알려주겠지.
그렇게 판단한 그는 구급요원에게 말했다.
“그럼 제 감방 안에 있는 사람부터 치워주시겠어요? 처음 보는 사람이라 좀 그렇거든요.”
“부상자입니까?”
“입에 거품 물고 있는 거 보니까…….”
“그걸 지금 말하면 어떡합니까?!”
경완의 말에 구급요원은 급히 요구급자가 있는 위치를 물어보았다. 곧 구급요원들이 경완의 감방에서 그 이상한 사람을 실어냈다.
그리고 경완은 쾌적해진 자신의 감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소파에 앉아 패드를 쥐었다.
그럼 오늘은 무슨 게임을 해볼까?
* * *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 건 그로부터 이틀 뒤였다. 정부와 수사기관에선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교도소에 일어났던 사태가 정신계 능력의 여파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피해자들은 그 능력에 의해 심각한 정신적 데미지와 트라우마를 겪게 되어서 상담치료 및 모종의 특별한 치료를 받게 되었단다.
“그래서 무슨 할 말 없습니까?”
수사관의 물음에 경완은 생뚱맞은 표정은 지었다.
“제가요?”
“네.”
“제가 관련되어 있나요?”
“네.”
“어떻게요?”
“그걸 묻고 있잖습니까?”
“저도 모르는 걸 물어보면 저보고 어쩌라고요?”
“정황이 그렇습니다.”
“그 정황이라는 거 제가 알아도 되나요?”
경완의 말에 수사관은 그를 향해 의구심 가득한 눈빛을 보내며 그를 의심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의 방에서 실려 나간 의문의 남자가 바로 정신계 초능력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는 것으로 의심되는 용의자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가 경완의 감방에서 발견되었고 주변에 마치 누가 정신계 광역기를 쓴 것마냥 피해가 일어났으니 정황상 분명 경완과 용의자 사이에 뭔가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라는 것이다.
경완은 그 말에 잠시 고민했다. 혹시 그 새끼가 목소리가 경고했던 세뇌 능력자일까? 그래서 자신에게 세뇌를 걸려다가 무한전생자의 정신세계를 접하고는 그 모양 그 꼴이 된 것이고?
근거는 없지만 이것이 가장 가능성 높은 가설이었다.
하지만 경완은 이런 자신의 추측을 말해줄 생각이 없었다. 무한전생자라고? 그걸 믿어도 문제, 안 믿어도 문제였다.
거짓말을 꾸미기도 귀찮아진 그는 시치미를 떼기로 했다.
“저는 모르는 일인데요?”
자다가 일어났더니 이미 일이 벌어져 있었다는 말에 수사관은 의구심을 지우지 못했지만 더는 캐묻지 못했다. 확실히 CCTV에도 경완은 곤히 잘 자고 있었다.
하지만 도리어 그 CCTV는 그가 이 사태의 원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강력한 증거이기도 했다. 용의자가 경완의 머리에 손을 뻗고 잠시 뒤, 발작하며 입에 거품을 물다가 쓰러졌으니까.
그리고 그 순간은 교도소 내에 사고가 난 시간대와 일치했다. 경완 본인의 자각이 없더라고 뭔가 원인이 되었다는 정황을 부정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증거는 없었고 용의자는 붙잡혔기 때문에 더 이상 경완에게 캐묻진 않았다.
이번 사건과 경완 사이의 관련성은 그렇게 모두의 기억에 잊혀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