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12-아무도 나를 말릴 수 없음
그 한 마디에 김준은 입을 열며 아! 하고 소리 없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상한 몰골로 죽은 이울 교단의 교주. 온몸에 종양이라도 난 듯이 울퉁불퉁한 혹이 전신에 난 사체로 발견되었다.
그 모습이 워낙 기괴했던 터라 경찰 내에서도 분명 초능력이 개입한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마땅한 용의자를 찾지 못해 미결로 남은 사건이었다.
그런데 보아하니 그의 죽음에 한영미가 개입되어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혹시 그녀가?
김준은 이렇게 말하면 실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명색이 수사관이라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영미 씨가 죽인 겁니까?”
“내가 그랬다고 하면요?”
그렇게 반문하는 그녀의 얼굴엔 비웃음이 가득했다.
이제 와서 네가 뭘 어쩌겠냐는 표정에 김준은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법은 생각보다 한계가 명확했다. 미국인인 김준이 한국에서, 한국 사람이 피해자인 사건을 공론화하는 건 한계가 역력했다.
더구나 그것이 미국의 국익과 상충되는 일이라면 더욱 말이다.
그의 입을 닥치게 만들었다는 것에 의기양양해서일까? 그녀의 뾰족한 입담이 스테이크를 써는 경완에게 향했다.
“그쪽도 날 비난할 건가요?”
“왜 이러셔? 나 경찰도 아니고 FBI도 아니여. 내가 중국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몰러?”
마치 재담꾼처럼 어설픈 사투리도 말하는 것이 마치 놀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녀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경완이 그녀를 비난하기 않겠다고 에둘러 말하는 것이기도 했고, 비난할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비난할 것인지 묻는 그녀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말이기도 했던 것이다.
경완은 김준을 보며 말을 이었다.
“저 여자에게 신경 꺼요. 보아하니까 전미 초능력 협회에서 잘 보호하고 있는 것 같은데 굳이 우리까지 신경 쓸 필요 있나요?”
“하지만…….”
김준이 말꼬리를 흐리자 경완이 말했다.
“이미 오늘 있었던 일은 보디가드나 FBI를 통해서 다 위에 보고됐을 거예요. 그러니 뭔가 조치를 취하겠죠.”
과연 그의 말대로 조치가 취해졌다. 전미 초능력 협회에서 새로운 경호원을 보낸 것이다. 뿐만 아니라 FBI 초능력 수사대의 요원도 같이 왔다.
[오랜만이에요, 미스터 리.]
[오랜만이오.]
한 사람은 익히 자주 만나서 얼굴을 알고 있던 스테이시였고, 또 한 사람은 과거 갱단을 모조리 죽인 경력이 있는 찰스 아메드였다.
경완은 찰스와 악수를 나누고는 김준의 옆구리를 찔러 물었다.
“저 사람 완전히 전향한 거예요?”
“네.”
“살인죄를 사면하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요?”
“그래서 정식적인 FBI요원은 아니고 가석방을 조건으로 활용 중입니다. 마치 경완 씨처럼요.”
“오홍.”
이미 경완이라는 용례(?)가 있었기 때문에 찰스 역시 그와 비슷하게 활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반대하는 목소리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희대의 테러범도 활용하는데 갱단 좀 죽인 이를 활용하는 게 뭐가 그리 큰 문제랴? 오히려 경완보다 더 협조적이라 결과적으로는 흡족해하는 상황이란다.
경완이 속삭였다.
“본인은 불만 없대요?”
나라가 부르면 나와서 일하고 일 없으면 독방에 들어가 있는 생활은 평범한 사람에겐 답답해서 딴생각이 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준은 찰스를 믿는 듯했다.
“그는 FBI와 함께 일하면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어요. 먹는 거 외에는 딱히 불만을 표하지도 않고요. 초능력 수사부에선 이미 그를 동료로 받아들이고 있죠.”
범죄자를 증오하면서도 통제에 착실히 잘 따르는 찰스와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잘됐네요.”
경완은 무던히 고개를 끄덕인 후 새로 온 한영미의 보디가드와도 인사를 나누었다.
새로 온 보디가드 두 명은 한 쌍의 남녀로, 보디가드의 스테레오 타입을 온몸으로 표현이라도 하듯 과묵하고 비사교적이며 주변 경계에 신경을 쏟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분위기가 괜히 경완마저 신경 쓰이게 하고 불편하게 만들자 결국 한 마디하고 말았다.
[너무 그렇게 긴장하고 있으면 비상상황이 발생했을 때 오히려 몸이 굳지 않을까요? 여기 스테이시도 경계에는 일가견이 있는 능력자랍니다. 이 호텔은 안전한 곳이기도 하고요.]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기껏 신경 써줬지만(?) 돌아온 건 단칼의 거절이었다.
그러한 모습에 경완은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꼭 무슨 일이 벌어지리라 확신하는 태도랄까?
경완은 김준에게 조용히 한국어로 말했다.
“뭔가 일이 벌어질 것 같은데요?”
“……근거는요?”
“저쪽에서 대비를 하고 있으니까요.”
경완의 눈이 가리키는 곳은 한영미의 보디가드였다.
“보디가드가 하는 일이 원래 대비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사람이 긴장하는 데도 에너지가 들거든요. 베테랑이라면 적절히 이완할 줄도 알아야 필요한 순간에 전력을 낼 수 있다는 걸 알지 않을까요? 김준 씨 생각해봐요. 당장 지금 우리가 있는 상황이 긴장할 필요가 있는 상황인가요?”
그 물음에는 김준도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 보니 경완의 말대로 이상했다.
근처에 잡은 나쁘지 않은 호텔은 한영미를 경호하는 업체 측에서 선정하고 FBI에서 안전을 확인한 장소였다.
새로 체크인하거나 낯선 종업원에 대한 경계만 해도 부족하진 않을 텐데 경완의 말대로 고도의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는 건 좀 이상한 면이 있었다.
“우리가 모르는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겁니까?”
“그야 저도 모르죠.”
흐음. 김준은 고민했다. 경완을 대하는 태도를 보아 물어봐도 순순히 말해 줄 것 같진 않았다.
그래서 김준은 이쪽도 나름 대비를 하기로 했다.
[스테이시. 찰스.]
김준은 두 사람에게 경완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전달했고 두 사람은 흥미로워하면서도 납득하며 나름 비상사태가 터질 것에 대비했다.
스테이시는 수시로 S입자를 사용해서 주변을 탐색하며 에스퍼로서의 면모를 보였고, 찰스는 플레이트 캐리어와 워벨트를 착용하고 탄창을 점검했다.
[어디 전쟁 나가요?]
경완의 물음에 찰스는 씨익 웃었다. 미백이라도 받았는지 새하얀 이빨이 검은 피부와 유난히 대조되어 보였다.
스테이시가 웃으며 말했다.
[찰스는 우리 초능력 수사부의 대표적인 화력 담당이에요. 최소한의 탄약으로 최대한의 적을 무력화시키죠.]
찰스의 능력인 각질경화는 매우 우수한 방탄능력을 부여했다.
그 단단한 방어력을 바탕으로 침착하고 확실한 사격을 가하는 것이 그의 방식이란다.
경완이 물었다.
[방탄 능력을 가진 범죄자는요?]
[해당 초능력을 방해하는 특수탄이 있어요. 그거면 어느 정도 대응이 돼요.]
[그런 총알도 있어요?]
[모르고 있었어요? 당신이 드나든다는 그 연구소에서 원료를 생산하고 있잖아요?]
[오호라~]
대한 세립 연구소. 생각보다 굉장한 곳인 모양이었다. 하긴 이런 실적들이 있으니 그 여자가 그렇게 자기 멋대로 운영할 수 있는 거겠지.
고개를 끄덕이는 경완을 보며 스테이시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방탄능력을 가지고 있는 초능력자라도 강한 화력을 경시할 순 없죠. 화력이 강할수록 능력 소모가 심해지거든요. 거기에 특수탄이면 소모가 더 커지죠.]
[그런 총알이라면 찰스도 위험한 거 아니에요?]
[어차피 그 특수탄은 엄중하게 관리되고 있고 그나마 생산량도 적어요. 찰스도 필요한 순간이 아니라면 아껴 사용하고 있죠. 그리고 찰스의 능력은 2차 간접능력이라 지금의 특수탄도 평범한 탄이나 다름없어요.]
간접능력이란 초능력이 발휘된 결과로서 효용이 발휘되는 능력을 칭했다.
찰스의 능력은 엄밀히 말해 방탄능력이 아니라 방탄이 될 정도로 단단한 키틴질 갑각을 발현하는 능력이라 초능력을 약화하는 탄에 맞아도 이미 발현된 결과로서 존재하는 각질 갑옷에 막힌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도 있어요.]
스테이시가 자신을 가리키자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탐색 능력 말고 다른 능력이라도 생겼어요?]
[네, S입자를 강제로 주입해 웬만한 능력의 발현을 막을 수 있게 되었죠. 물론 사정거리 안에 들어가야 하지만요.]
그녀는 매우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분명 매우 유용하면서 대단한 능력을 하나 개발했지만 경완은 고개를 갸웃하며 김준을 보았다.
[이번에 만난 놈은 그런 방법으론 능력이 파훼가 안 된다고 보고하지 않았어요?]
김준의 표정이 굳었다.
[저도 이번에 보고하면서 알았습니다. 초능력 방해 기술도, 또 거기에 저항성을 가진 초능력자가 있다는 것도요. 기밀로 취급되고 있더군요.]
초능력 방해 능력이 아니라 방해 기술이라는 건 S입자를 일정 수준 이상 다룰 수 있는 초능력자라면 누구나 익힐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그러한 기술에 내성 및 저항력을 가진 초능력자도 있고.
김준의 표정에 걱정이 서리자 스테이시는 그리 우려하지 말라고 그를 안심시켰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런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는 많지 않을뿐더러 그렇다고 초능력 방해 기술이 전혀 소용이 없다고 할 수도 없어요. 적어도 초능력의 발현을 어렵게 하거나 발현된 능력의 위력을 줄일 순 있거든요.]
경완은 글랜과 닥터 콥슨을 조종하던 정신계 초능력자를 능력에 제약을 가했던 것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준은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저는 초능력의 수준이 이렇게나 높아졌을 줄은 몰랐습니다.]
전쟁이 기술과 과학의 발달을 가속하는 것처럼, 분쟁과 다툼 역시 초능력자들의 초능력 기술에 비약적인 발달을 불러왔다.
단순히 초능력을 발현하고 다루다가 S입자를 느끼고, 자신의 능력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이해하며 그것을 개변하는 초능력자들이 속속들이 포착되고 있었다.
S입자를 상대의 S입자 구성체에 밀어 넣어 능력의 발현을 방해하는 건 어떤 경지를 넘은 이들에겐 그리 어렵지 않은 테크닉이었다. 그들은 그러한 수준에 이른 것을 벽을 넘었다고 표현했다.
스테이시가 위로하는 어조로 말했다.
[자책할 필요는 없어요. 그러한 사실은 일선에 있는 소수만 알고 있는 극비 정보거든요. 대중에겐 혼란을 우려해서 막고 있죠.]
[하지만 자신의 강한 능력을 자랑하는 이들도 있을 텐데요?]
[그렇기는 하지만 단순히 자랑하는 정도는 문제가 아니에요. 중요한 건 얼마나 혼란이 일어나느냐죠.]
스테이시는 초능력을 개발하고 발달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어차피 초능력에 대한 연구와 발달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었으니까.
진짜 문제는 그 속도였다.
[상상 이상으로 강력한 초능력자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정부가 힘이 부칠 정도죠.]
일각에서는 보수적이라고 비난도 받지만, 정부로서는 어떻게든 질서를 유지하고 혼란이 번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혼란은 곧 정부 기능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기에 초능력으로 촉발된 급속한 변화에 사람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정부 기능의 마비는 약자에겐 재앙이나 다름없음으로.
그래서 초능력에 대한 정부의 방침은 그 핵심이 이러했다. 사람들이 변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다방면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공개하는 정보를 조절하는 것도 그 일환이었다.
아무리 로비가 있었다지만 히어로 컴퍼니가 승인된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치안이란 공권력의 영역을 어느 정도 민간에 내어주는 히어로 컴퍼니 같은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핵심은 초능력으로 인한 세상의 변화가 정부의 통제 안에 있으니 안심하고 일상을 영위하라는 메시지가 대중에게 얼마나 먹혀드느냐에 있었다. 그러니 최근에 공권력에 위협을 끼칠 정도로 강력한 빌런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걸 최대한 감추려는 것도 당연했다.
이야기를 듣던 경완은 박수를 치며 주의를 환기했다.
[골치 아픈 이야기는 여기서 그만하죠. 윗사람들도 대가리가 있을 텐데 알아서 잘하지 않겠어요?]
무한전생-더 빌런 13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