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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136화 (136/367)

12-아무도 나를 말릴 수 없음

솔직히 경완은 그리 말하면서도 자신이 말한 내용에 내심 동의하진 않았다. 판사들이 판결 내리는 꼬라지를 보면 공부 잘하고 똑똑하다는 양반들의 판단력이 영 신뢰가 가지 않는 것이 사실이지 않은가?

그런데 어쩌겠는가? 그게 자신과 무슨 상관이라고.

확실한 건 경완이 책임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원흉이라면 혹시 또 몰라도.

그 말에는 김준도 동의했다.

[다음 일정이 얼마 안 남았으니 그때까지 충분히 쉬어둬야겠죠.]

경완의 추론대로 뭔가 일이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면 지금 충분히 쉬어두는 편이 좋았다.

마인드 브레이커에 의한 피해자는 계속해서 나타났다. 대부분 워싱턴 근교라서 당국이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일행은 차량을 두 개로 나눠 타고 움직였다. 한영미와 보디가드 둘, 찰스가 한 차, 나머지가 또 한 차.

아무래도 비전투 요원인 한영미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몸빵 겸 화력 담당인 찰스를 그녀에게 붙였다.

스테이시 쪽은 지원담당의 의미가 더 컸다. 물론 경완이 엄청난 사격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가 경호도 잘할지는 미지수였다.

[전면에 이상 없음. 계속 가세요.]

스테이시는 S입자의 초감각을 돌리며 위험 요소를 파악했다.

S입자를 이용해서 수상한 것을 찾아내는 그녀의 능력은 경완의 초감각과 원리적으로는 흡사했지만 형태적으로는 많이 달랐다.

경완은 감각을 열어 그녀가 S입자를 다루는 방식을 관찰했다. 그녀는 S입자를 응축해서 터뜨리듯 방사했다. 펄스파처럼 주변으로 빠른 속도로 퍼진 S입자는 미리 설정된 정보에 따라 반응하며 그녀에게 신호를 전달했다.

스테이시가 능력을 사용할 때 구성되는 S입자 구성체는 상당히 정교하게 짜여 있어서 아무리 경완이라고 할지라도 단시간에 흉내 내기 힘든 수준이었다.

[레이다 같네요.]

[맞아요. 그래서 저는 이 능력을 펄스 레이다라고 부르죠.]

S입자 자체를 느낄 정도로 감각이 뛰어났던 그녀는 탐색과 탐지라는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궁리하다가 결국 그러한 기술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그녀가 퍼뜨린 S입자 파동은 그녀의 심상과 연결되어 그녀가 마음속으로 설정한 사물이나 사람이 걸려들면 그녀에게 그 방향과 위치 신호를 전달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경완의 경우 들어온 정도를 뇌에서 필터링하는 거라면 그녀는 애당초 반응할 대상을 설정해놓고 그에 맞는 S입자 파동을 발산하는 방식이랄까?

상황에 대한 유연성은 경완 쪽이 더 나았지만 부담은 스테이시 쪽이 압도적으로 적었다. 대량의 모래를 걸러내며 일일이 금속 조각을 찾아내는 것과 금속에만 반응하는 금속 탐지기를 이용하는 차이로 비유될 수 있었다.

[와. 그걸로 광맥 탐색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돈을 벌겠는데요?]

경완의 말에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그런 쪽으로는 생각을 못한 모양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경완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들리지 않아요?]

[뭐가요?]

[지질 탐사 장비 만드는 회사들 주가 떨어지는 소리요.]

그 말에 그녀는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그렇게 웃던 그녀는 다시 한번 펄스 레이더 기술을 사용했는데 갑작스럽게 표정이 굳더니 서둘러 통신을 넣었다.

[공격이 와요! 3초 전! 2초 전! 1초 전!]

콰앙!

도로 앞에 충격음을 내며 떨어진 것은 자동차 한 대였다. 진행경로 바로 앞에 떨어진 차량 때문에 앞 차량이 급히 핸들을 꺾었다.

그 바람에 속도를 줄인 차량 위로 한 명의 초능력자가 떨어져 내렸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위장복을 입은 건장한 사내였다.

방탄 차량이라 지붕이 무너져 내리진 않았지만 사내의 손가락이 지붕에 박혔다. 머슬러 계열의 강력한 초능력자로 보였다.

운전자가 핸들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지붕에 올라탄 괴한을 떨쳐내려고 했지만 괴한은 고래에 붙은 빨판상어처럼 안정적으로 달라붙은 채 떨어지지 않았다.

괴한은 창문으로 얼굴을 들이밀었지만 짙게 썬팅된 창문 때문에 안을 보진 못했다. 놈은 창문을 깨기 위해 주먹을 쥐고 어깨 뒤로 당겼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가 노리는 창문이 바로 너머 한영미가 앉아있는 쪽이 아닌가? 창문이 깨지면 그녀가 바로 노출될 거라는 자명한 상황.

찰스가 서둘러 움직였다. 창문을 열고 상체를 내민 그의 손엔 12게이지 반자동 샷건이 들려있었다.

탕탕탕탕탕탕!

마구 갈겨지는 한국에서 공수한 초능력 간섭 재료로 만든 플레셰트 탄환이었다.

[어때?! 따끔하지?!]

찰스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겼다. 아무리 방탄능력자라도 초능력 간섭 재료로 만든 탄환을 맞으면 꽤나 아픈 법이다. 활성화된 방탄능력의 소모도 극심해지고 말이다.

보라. 총알이 아픈지 창문을 깨던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놈의 모습을.

신나게 방아쇠를 당기던 찰스는 샷건의 탄창이 다 빌 때쯤을 노려 화력에 공백이 생기지 않게 바로 다음 총을 꺼내 들었다. 이번에는 PDW가 불을 뿜었다.

트르르륵!

납탄 중심에 뾰족한 철심이 박혀있는 특수탄에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바닥이 뚫려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놈은 그대로 맞고만 있지 않았다. 수 초 만에 비어버린 탄창 때문에 찰스가 새로운 총을 꺼내는 순간 그에게 달려들어 팔뚝을 붙잡아 당겼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으스러질 정도로 강력한 악력이었지만 순간 발현된 각질 경화 능력은 팔근육과 뼈를 거뜬히 보호했다.

찰스는 놈이 자신을 차에서 뽑아드는 순간을 노려 호주머니에 숨겨둔 격발장치를 눌렀다. 그러자 그의 가슴에 장착되어 있던 크레모아가 놈의 얼굴 바로 앞에서 터졌다.

방탄 능력과 내충격 성능이 상상 이상으로 뛰어난 각질경화 능력이기에 떠올릴 수 있는 전술이었다.

[크아악!]

놈이 얼굴을 덮치는 파편에 놈의 입에선 결국 비명이 터져 나왔고, 크레모아가 터지는 폭발력에 차에서 떨어져 나갔다. 찰스도 같이 떨어졌다.

비척거리며 일어서는 두 사람 사이로 경완 일행이 탄 차량이 지나갔다.

[이대로 놔두고 가도 돼요?]

[버티는 거 하나만큼은 최고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스테이시가 딱 잘라 말하며 악셀을 밟았다. 그녀의 말대로 찰스는 버티는 거 하나만큼은 출중하니 지원군이 올 때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그녀에게 풀악셀을 밟게 한 건 우려할 걱정이 없는 찰스의 능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펄스 레이더 능력에 감지된 더 많은 습격자 때문이었다.

방금 떨어져 나간 육체파 초능력자는 선봉에 불과했다.

[그보다 중국에서 저질렀던 솜씨 좀 발휘해 봐요!]

스테이시의 타박에 경완은 그 말에 소총 조정간을 단발로 하고는 창문 밖으로 상체를 내밀었다.

그도 S입자 초감각을 펼쳤다. 깔때기 모양으로 멀리 방사된 S입자가 한 바퀴 돌자 습격자들의 수를 알 수 있었다.

오프로드 차량을 타고 오는 삼인조, 트럭을 타고 후위를 쫓고 있는 이인조, 그리고 하늘을 날아오고 있는 심상찮은 분위기를 풍기는 한 놈, 이렇게 총 여섯 명으로 방금 낙오한 머슬러까지 치면 총 일곱 명이었다.

목적이 뭔 진 알 수 없었다. 최근에 일어난 일과 마인드 브레이커로 의심되는 정신계 초능력자와의 조우를 생각해보면 치유능력자인 한영미를 노리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만, 납치가 목적인지, 살해가 목적인지는 알 수 없었다.

“워싱턴이 지척인데 이 난리를 피우다니…… 미친놈들인가?”

“저기! 스테이시 말대로 빨리 실력 좀 보여줘요!”

경완의 태연한 태도와는 반대로 김준은 초조해져서 누가 누구한테 미친놈이라고 하냐고 딴죽 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딱히 초능력이 없는 그로서는 지금처럼 초능력자들이 습격한 상황에서 자신이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도움이 안 되는 정도라면 차라리 낫지만 오히려 방해될 수도 있다는 점이 그의 자존심과 양심을 찔렀다.

경완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는 김준의 목소리에 대답하지 않고 소총을 견착했다.

눈으로 조준기를 볼 필요는 없었다. 초감각으로 만들어낸 가상의 선이 총구로부터 뻗어나는 연장선을 그리고 경완은 그저 그 연장선을 적에게 인도할 뿐이었으니까.

탕! 탕!

중력과 바람의 영향으로 휘는 정도를 고려해야 했기에 초탄은 빗나가고 말았지만 두 번째부터는 정확히 원하는 곳에 맞았다.

지프차를 타고 다가오던 놈들은 타이어가 터지고 운전석이 공격받아 핸들을 틀었다. 뒤에 쫓아오는 트럭은 조우하기엔 시간이 좀 남았으니 급할 건 없었지만 가장 골치가 아픈 건 하늘을 날아오는 초능력자였다.

딱 봐도 염동계열로 보였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염동력으로 본인의 육체를 공중에 띄워 움직일 수 있다는 건 많은 점을 시사했다.

몸을 공중에 띄울 수 있는 정교함, 어디서부터인지 모를 저 멀리부터 날아올 수 있었던 지구력, 그리고 온갖 지대공, 공대공 무기가 넘쳐나는 현대전에서 그런 무기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저렇게 맨몸으로 날아다닐 정도의 확실한 자신감.

염동능력자는 분명 여러 격전을 경험한, 만만하지 않은 놈임이 분명했다.

경완은 입술에 침을 바르며 방아쇠를 당겼다. 힉스장 간섭능력으로 인해 몇 배로 가속하고 S입자까지 응축한 총알이 하늘을 날아오는 적을 향해 날아갔다.

초탄필추! 웅비방공!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총알은 빗나갔다. 주변에 처진 염동력장이 총알의 궤도를 슬쩍 비틀어버린 것이다.

일반적으로 염동능력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총알을 감지하고 즉시 초능력을 발휘할 정도로 반사신경이 좋은 건 아니었기에 아마 총알의 궤도가 어긋나도록 미리 몸 주위에 염동역장을 펼쳐둔 모양이었다.

경완은 방금 쏜 총의 궤적을 통해 조준점을 수정하고 한 번 더 총알을 쏘아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총알의 궤적이 다른 곳으로 비틀렸다.

놈이 몸 주위에 쳐둔 염동력 역장의 방향이 바뀐 것이다. 이는 총기의 영점이 지 꼴리는 대로 바뀌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러면 아무리 사격술이 좋은 사람이라도 놈을 맞추기는 힘들었다. 경완은 거기서 총기를 여러 번 상대해 본 놈의 능숙함을 느꼈다.

경완이 착잡함에 입맛을 다시며 차 안으로 들어갔다.

“이거 상성이 안 좋은데요?”

“네?”

“지금 날아오는 놈이랑 원거리에서 싸우려면 총이 아니라 대포나 미사일이 필요해요.”

지근거리에서 폭발하는 폭발물이 아니면 총알도 빗나가게 하는 상대를 위협하긴 힘들어 보였다.

아니면 쉽게 궤도를 비틀지 못하도록 가까이서 쏴야 하는데 영화처럼 건카타를 출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때 김준이 딴죽을 걸었다.

“그런데 경완 씨는 근접전의 달인 아니었어요?”

김준은 꾸준히 경완의 능력에 대한 업데이트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원래부터 타고난 근접전의 달인인 걸 알고 있었다. 총도 없던 교도소 시절(?) 그가 언터처블이라는 별명을 얻은 기반이 타고난 싸움실력 아닌가? 더구나 근력강화능력도 있었다.

경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원거리에서 싸우기엔 상성이 안 좋으니 근거리에서 싸우면 된다는 소린가? 이건 뭐 빵이 없으면 케이크 먹으라는 소리와 뭐가 다른가?

“다가가기도 전에 염동력에 날려갈 텐데요?”

경완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반박했다.

상성이 그렇다. 인지영역 내에 영향을 끼는 염동능력자에게 비벼볼 만한 능력자는 같은 염동능력자나 저번에 만났던 정신계열 정도? 그 말고 특수한 능력자가 몇 떠오르기는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신체강화계열만으로는 염동능력자를 상대하기란 매우 까다롭다는 것이다.

김준이 미간을 좁혔다.

“그럼 어떡하죠?”

“어떡하긴요? 상황 봐서 뒤통수나 칩시다.”

경완이 전략을 내놨다.

총기를 사용하는 이라면 총기의 효용성을 극대화한 전술을 사용하는 게 최선이 아니겠는가?

한영미의 옆에 있는 보디가드들이 그녀를 생각한 전미 초능력 협회에서 보내준 인재들인 만큼 저 염동술사와 드잡이질할 역량 정도는 있길 바랄 뿐이었다.

대신 저 염동능력자 말고 고용된 용병, 혹은 범죄조직의 행동대원 같은 놈들은 이번 기회에 말끔히 치워버리거나 쫓아오지 못하게 만들어야 했다.

무한전생-더 빌런 1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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