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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03화 (203/367)

무한전생-더 빌런 203화

19-서울 참사

돈만 있으면 전관특혜, 아니 전관예우로 솜방망이 처벌을 받을 수 있는 건 범죄조직도 마찬가지였다. 의뢰인이 애미애비랑 하반신을 도킹한 호로자식이든, 어린애만 골라 겁탈하고 죽인 짐승 새끼든, 조폭 카르텔 나부랭이든, 일단 변호하는 것이 변호사의 직업윤리 아니겠는가? 게다가 전관변호사라면 검사와 판사가 알아서 예우해 주고 말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아무리 남에게 별 관심 주고 싶지 않은 경완이라도 선제적 대응이 덜 귀찮다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집주인이 집주변에 냄새나는 쓰레기가 방치되어도 어쩔 수 없다고 수수방관한다면 결국 임차인이 나서서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불법투기하지 마세요.’라고 미리 경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치사하고 더럽지만 원래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이다.

그래서 국정원을 기다리고 있던 그에게 한 사람이 찾아왔다.

“이관영 씨가 웬일이세요?”

“…….”

“아. 저와 국정원 사이의 연락책을 맡았나 보군요.”

“그렇습니다.”

이관영은 딴에는 호의적으로, 경완의 시선으론 간사하게 웃었다.

이관영 본인에게 솔직히 달갑지 않은 일이라는 게 티가 났지만 본인도 별수 없었다. 청와대의 지엄하신 명령이었으니까.

어찌 보면 실적을 올릴 기회일 수도 있었지만 상황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국내에서야 경완에 대한 평판이 워낙 좋지만 국제적으로는 학살자, 살인마 빌런 정도로 그 인식이 추락해버린 상황이었다.

그만큼 이경완이 중국 내에서 벌인 학살이 다른 나라에도 충격적이라는 의미였다. 그 충격은 한 마디로 ‘위협적’이라는 한 마디 외에는 할 수 없었다.

이경완이 앙심을 품고 국가 수뇌부들을 찾아 죽여대기 시작하면 도대체 어떻게 막으라는 것인가?

미친 척 핵지뢰가 쫙 깔린 함정을 파볼까? 하지만 이미 웜홀 능력이 있는데?

국정원 소속인 이관영은 미국이 한국에 대대적 투자를 하기로 한 이유 중 하나가 이경완과 우호적인 관계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이관영 자신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경완을 치안 유지를 위한 불법 비밀작전에 투입하는 걸 좋아할 국제 여론은 없었다.

만일 비밀작전이 들통 나서 시민의식이 투철한 나라, 인권이 지켜지는 나라 운운하면서 뒤로는 호박씨 깐다고 국제사회의 비난이 일어나면 청와대에서 어디서부터 꼬리를 자를지 장담할 수 없었다.

아니 중요한 일이랍시고 차장급 이상이 나서서 챙겨야 한다고 국정원장이 자신을 콕 찍어 이야기한 이상 9할로 그 꼬리가 자신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절할 수도 없었던 이유가 차장급 인사 중에서 그나마 이경완과 연이 있고 대화가 통하는 인간이 이관영 자신이었던 것이다.

이관영은 과거 이경완과의 관계가 우호적으로 회복되었다고 다른 차장들에게 자랑한 자신에게 병신같은 새끼라며 쌍욕을 날렸다.

“일단 건당 수는 차차 논의하기로 합시다. 솔직히 이런 일이 전례가 없었으니 비용 책정하기가 어렵잖아요.”

“그렇습니다.”

경완의 말에 이관영은 일단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영수증을 남기지 않는 국정원 특활비라고 해도 예산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일단 국정원의 정보력을 보여주세요.”

“네?”

“가장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놈들부터 리스트를 쫘악 뽑아봐요.”

“언제까지…….”

“편하신 대로요. 뭐 시간을 끌수록 상황이 나빠지는 건 제가 아니거든요.”

그 말에 이관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한 후 서류가방에서 태블릿 하나를 꺼내 문서 파일을 열었다.

그러고는 그 태블릿을 경완에게 보여줬다.

경완은 태블릿에 놓인 자료를 보고는 입을 열었다.

“역시 북쪽이 가장 큰 문제네요.”

“네. 러시아 마피아와 중국 삼합회 때문이죠.”

불법입국, 마약반입, 밀매 등의 불법이 이들의 가장 큰 사업 수단이었다.

연변 조선족을 한창 개발 중인 북한에 북한 주민으로 위장해서 밀어 넣는 정도까진 용인할 수 있지만, 그 와중에 마약중개상을 비롯한 범죄조직원을 끼워 넣는다는 게 심각한 문제였다.

“마약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데 비협조적인 구 북한 주민도 많은 데다가 치안인력이 부족해서 단속이 어렵습니다.”

적법한 방법으로 단속하기엔 여력도 시간도 부족했다. 그래서 이경완이 알아서 손을 더럽혀주겠다는 제안은 청와대로선 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놈부터 찾아서 조져야겠네요.”

경완가 태블릿 위로 검지를 미끄러뜨리자 라한수라는 자의 사진과 프로필이 떴다.

조선족 출신, 삼합회 소속의 범죄자로 북한에 마약 밀반입을 하는 중개상이었다.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이관영이 할 수 있는 대답은 그것밖에 없었다. 최대한 신속하고 조용하게 처리하는 것이 그에게도 이익이었으니까.

국정원의 협조로 라한수가 출몰하는 위치를 확인한 경완은 출장 준비를 했다. 북한 근처에 웜홀 마커를 찍어둔 것이 없어서 부지런을 좀 떨어야 했다.

빠르게 일을 처리할 생각이라 거추장스러운 안내원이나 수행원을 둘 생각은 없었다.

다만 북한 전역에 인프라가 잘 깔린 게 아니라서 적어도 위성통신이 가능한 스마트폰을 통신 및 위치정보 확인용으로 요구했다.

거기에 더해 쾌적한 활동을 위한 거점까지. 중국에서야 노숙과 전투식량으로 버텼다지만 적어도 한국 땅에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잖은가?

야간에 북한의 상공을 비행하던 경완은 평양 상공을 지나는 와중에 아래를 보았다.

어두운 땅에 별빛처럼 박힌 불빛들. 북한 개발과 경제 발전을 위해서 밤늦게까지 야근하는 이들이 저 불빛 아래에 있겠지.

물론 평양의 야경은 서울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존재는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런 불빛은 평양을 지나면 좀 밀도가 떨어지기는 했지만 없어지진 않았다. 북한을 제대로 써먹긴 위해선 평양만 개발할 순 없었으니까.

열심히 마약을 파는 놈들도 그 불빛 아래에 있었다.

“차~암 열심히도 산다, 열심히들 살어.”

“누구야?!”

평양 북쪽에 있는 한 허름한 창고에서 경완은 한 무리의 사내들과 마주했다.

비닐과 랩으로 쌓인 덩어리 몇 개와 봉투에 든 현금 뭉치를 확인하고 있던 무리는 경완을 보며 총기를 겨눴다.

“아이고, 총이네? 여기 한국은 총기 소지 금지 국가인 거 아냐?

“한국은 니미럴.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우.”

구수한 평양 사투리에 경완은 생각보다 치안이 더 엉망인 걸 느꼈다. 아마 평양 대폭발 직후의 혼란기에 대량으로 유출된 총기인 모양인데 아직 다 수거가 안 된 모양이었다.

경완은 자신을 향한 총구와 적의 어린 시선을 보면서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 내 누군지 몰라?”

“허! 알아야 하니?”

어이없다는 대꾸에 경완은 다시 한 번 물었다.

“이경완이라는 이름 몰라?”

자기 입으로 자신이 대~단히 유명한 누구누구라는 걸 밝히는 건 솔직히 중2병 걸린 중년 같은 쪽팔림을 유발했지만, 경완은 본인의 두꺼운 낯가죽과 악명에 의존해 일을 편하게 처리하고 싶은 마음에 낯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행히 그런 뻔뻔함은 효과를 발휘했다.

“이… 경… 완?”

“그 미친…… 학살자?”

경완을 부르는 별칭은 여럿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미친’이라는 형용사가 붙었다. 거기에 최근엔 중국에서 벌인 짓으로 학살자라는 빌런명(?)을 얻었다.

사내들은 잔뜩 굳은 표정으로 서로 눈빛을 교환하다가 사방으로 튀기 시작했다.

“스탑.”

경완이 그 꼴을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다.

그의 몸에서 피어난 검은 연기가 대여섯 명쯤 되는 마약판매상을 둘러싸 붙잡았다.

“으아아아!”

그중 한 놈이 소리를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그러자 몸이 흐릿해지며 경완의 염동력을 벗어났다.

유체화? 아스트랄체? 소설이나 게임에 흔히 나오는 설정 같은 능력으로 물리력에 대한 면역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 염동력을 벗어나지.

경완은 놈을 그냥 보내줄 수 없었다. 놈의 면상을 보니 하필 이번에 목표로 하고 있던 라한수임이 확실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놈들을 놔줄 순 없었기 때문이다. 경완은 바로 손을 썼다.

콰드득!

으아아악!

검은 연기가 마약중개상들과 똘마니들의 사지를 꺾었다.

곧장 경완은 국정원에 연락을 남기고는 반투명한 상태로 날듯이 도망가는 라한수의 뒤를 쫓았다. 사지가 부러져 도망치지도 못하는 놈들은 국정원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어이어이. 이제 그만 멈추면 안 될까?”

경완은 반투명한 상태로 날듯이 뛰는 라한수의 옆을 나란히 뛰며 권고했다.

하지만 그런 경완의 모습에 라한수는 히익!하고 기겁하면서 더 바쁘게 다리를 놀렸다. 그의 뜀박질은 마치 체중이 깃털처럼 가볍고 공기저항이 없는 듯 보폭이 넓고 길었다.

경완은 라한수와의 거리를 유지하며 유체화 능력을 운용하는 것을 세심하게 살폈다.

유체화 능력의 원리는 육체라는 범주에 있는 물질을 S입자로 보호, 고립시켜 외부와 상호작용을 못하게 하는 것에 있었다.

이를 분석해낸 경완의 통찰력은 금방 그 약점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느긋하게 라한수의 옆을 날았다. 라한수는 몇 번이고 방향을 틀어 경완을 따돌리려고 했지만 경완에게 초감각이 있는 이상 어림없는 시도였다.

결국 라한수는 유체화 능력을 풀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헤액! 헤액! 헤액!”

“이야~. 폐활량 좋은데?”

금방이라도 숨넘어갈 듯 호흡을 고르는 라한수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산소가 부족했기 때문이고 그 원인은 유체화 능력에 있었다. 외부 물질과의 상호작용을 막는 유체화 능력은 당연히 외부의 공기, 산소가 몸으로 들어오는 것도 막았으니까.

덕분에 거대한 물리력에 강력한 내성이 생겼지만 호흡이라는 약점이 생겼다.

“내가 뭐 했다고 이러오!”

라한수는 억울한지 소리를 질렀다.

“마약 팔았잖아, 마약.”

경완의 말에 라한수는 뻔뻔한 어조로 대꾸했다.

“남조선 자본가들에게 착취당하고 있는 인민들의 시름을 덜어주고자 하는 게 어찌 죄가 된단 말이오? 켁!”

“한 번만 더 개소리하면 주둥이 꿰매버린다?”

검은 연기로 이루어진 주먹에 좌우 싸대기를 맞은 라한수는 굳이 입을 꿰매지 않아도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경완은 그의 목덜미를 붙잡고 가장 가까운 국정원 안가로 이동했다. 이동하면서 국정원에 연락해 신문(訊問)을 도와줄 국정원 요원들을 보내달라고 미리 말해두니, 경완이 안가에 도착할 때쯤 국정원 요원들도 도착했다.

그렇게 시작된 신문은 라한수의 머릿속에 든 상급자, 하급자, 그리고 마약 유통 경로와 그 현황에 대한 정보를 낱낱이 훑었다.

라한수는 입을 꾹 다물었지만 사실을 확인하는데 그의 입은 필요하지 않았다.

중간에 견디다 못해 두 번 정도 도망쳤지만 경완에게 두들겨 처맞고 나서는 도망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중동과 동남아시아에서 생산된 아편이 중국을 지나 러시아에서 가공해서 한국이나 일본으로 들어온다는 이야기지?”

국정원 요원의 물음이 푸르딩딩한 찐빵 얼굴이 된 라한수에게 향했다.

대답은 없었지만 경완이 대신 대답해주었다.

“그렇다는데요.”

“그렇군요.”

국정원 요원은 경완의 말을 찰떡같이 믿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국정원의 기밀 데이터베이스를 뒤져 라한수의 증언을 토대로 마약 유통하는 조직들의 조직도와 세부인물 리스트를 뽑아냈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만 처리하면 일단 압록강 쪽 유통망은 싹 뽑아낼 수 있습니다.”

국정원 요원의 말을 들으며 조직도와 리스트를 보고 있던 경완이 물었다.

“그런데 러시아는 없네요?”

“중국이야 지금 혼란 상태고 전쟁 중인 적국이나 다름없으니 경완 씨가 들락거려도 문제가 없지만 러시아는 그러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안 들키면 되지 않을까요?”

“…….”

사람이 말을 하면 제발 좀 들어줘라. 꼴리는 대로 하려고 하지 말고.

국정원 요원은 속에서 튀어나오려는 말을 꾹 참고 경완을 설득하기 위해 입을 털었다.

“러시아는 민주주의의 탈을 쓴 독재국가입니다. 명확한 증좌 없이 심증만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극히 높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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