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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06화 (206/367)

무한전생-더 빌런 206화

20-오버맨 엔트리

“재밌어?”

“하도 어이가 없으면 웃음이 나오잖아.”

“그건 그래.”

경완이 고개를 끄덕이자 미연이 고개를 올리며 물었다.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

“뭘?”

“가소롭다거나 뭐 그런 거?”

“그냥 귀찮지. 제발 헛소리하는 걸로 끝냈으면 좋겠어.”

경완은 심드렁하게 대꾸했지만, 그런 그의 바람은 가볍게 무너졌다. 며칠 후 미국 히어로 컴퍼니의 마케팅 AE(Account executive)라고 하는 사람이 찾아온 것이다.

[반갑습니다. 제이슨이라고 합니다.]

[왜 왔어요?]

[어…… 그전에 문 좀 열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얼굴을 마주 보면 말이 길어질 것 같아서요. 용건만 말씀하시죠.]

문도 안 열어주고 인터폰으로 들려오는 말에 제이슨은 곤란함을 느꼈지만 최선을 다해 입을 털었다.

[돈 많이 벌고 싶지 않습니까?]

[질문하지 말고 용건을 얘기하라니까요.]

[명예는 어떻습니까?]

딸깍.

끊어진 인터폰에 제이슨은 황당하면서도 난감해하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한국 히어로 컴퍼니에서 붙여준 매니지먼트팀 팀장 오기준이 쓰게 웃고 있었다.

이경완이라는 초인의 괴팍함을 모르는 관계자들은 없었고, 히어로 컴퍼니에서 일하는 오기준도 나름 관련자라면 관련자였다.

뭐, 솔직히 관련자가 아니라도 국회의사당에 쳐들어가 국회의원 허리에 칼침을 꽂은 인간을 정상인이라고 볼 사람은 없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는 곤란해하는 제이슨 대신 초인종을 눌렀다.

[또 헛소리하면 말로 안 끝납니다.]

그 말에 오기준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이경완은 국회의원에게 칼침 테러를 하고 원전을 폭발시키고 중국을 박살 낸 인간이었다.

오기준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입을 열었다.

“저는 한국 히어로 컴퍼니 매니지먼트팀의 오기준이라고 합니다.”

[말이 길어지네요.]

“…….”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

괴팍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직접 대하고 보니 생각보다 더했다.

“미국의 히어로 마이티 가이가 이경완 씨와 대련을 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안 해요.]

“물론 그러실 거라고 생각해서 저희도 몇 번이나 설득을 시도했지만, 마이티 가이가,”

그때 현관문이 달깍 하고 열렸다.

[들어와서 얘기해 봐요.]

“……넵.”

오기준은 열린 대문이 마치 마왕성의 정문처럼 느꼈지만 맡은 바 업무를 포기할 수 없는 직장인의 비애는 결국 그의 발걸음을 안으로 옮기게 했다.

제이슨도 오기준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앉아서 이야기해봐요. 그러니까 그 마이티 가이인가 맛이 간 인간인가 하는 초능력자가 나랑 붙어보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있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이미 비행기까지 예약했다고 합니다.”

“못 말려요?”

“매우 힘들 겁니다. 마이티 가이는 미국 히어로 컴퍼니에서도 못 말리기로 유명하거든요.”

위버멘쉬에 있다가 미국 히어로 컴퍼니 소속으로 완전히 옮긴 마이티 가이는 신체강화능력과 염동력을 가진 다중능력자로서, 질기고 단단한 신체와 강력한 재생능력, 그리고 수십 톤을 움직이는 염동력 덕분에 근거리 원거리를 가리지 않는 강력한 초능력자, 조금 과장해서 현실 슈퍼맨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등급도 S급이었다.

그 정도로 강력한 능력자이다 보니 마이티 가이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팬은 이경완이 해낸 중국 붕괴를 그도 해낼 수 있었을 거라 믿었다.

경완은 오기준의 얼굴에 서린 피곤함에 그의 말이 진심임을 깨달았다.

마이티 가이라고? 하여간 자기가 세다고 생각하는 놈 중에 진상이 아닌 놈들이 없어.

“결국 내가 귀찮다고 피하려고 해도 놈이 어떻게든 시비를 걸 거라는 거죠?”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흐음.”

경완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의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귀찮다’와 ‘짜증’이었다. 아직은 귀찮음이 더 크긴 했지만 이성은 오기준이라는 사람의 말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더 큰 ‘짜증’이 예정되어 있을 거라 판단했다.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짜증이라고 줄여야 하지 않을까?

문득 그의 시선이 제이슨을 향했다. 제이슨은 인터폰을 통해 면박을 당했기 때문에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눈치만 살피고 있는 상황.

그때 경완의 폰이 울렸다.

띠리리리!

“잠시만요.”

전화를 확인한 그는 전화 건 사람의 이름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여보세요?”

[미스터 리, 그동안 잘 지냈습니까?]

“무슨 일이세요?”

그는 다름 아닌 위버멘쉬의 총수인 요하네스였다.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이티 가이가 주제도 모르고 설친다죠?]

“어떻게 알았어요?”

[마이티 가이는 유명인입니다. 그리고 위버멘쉬 소속이기도 했죠. 지금은 그저 이름만 올려두고 있기는 하지만 시선을 뗀 적은 없습니다.]

하긴 초능력자 연합인 위버멘쉬의 총수이니 S급 초능력자의 동향에 항상 귀를 기울여야 하긴 했다.

“혹시 처리해 주겠다고 연락한 겁니까?”

경완이 물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요하네스라는 사람은 이상하게도 경완에게 호의적인 모습을 자주 보여왔다. 요한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라고 권유한 적도 많았고 말이다.

애인도 없었기 때문에 혹시나 게이가 아닐까 의심한 적도 있었지만 위버멘쉬의 총수라는 입장에서 경완과 같은 강력한 초능력자와 우호관계를 맺으려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싶었다.

[아닙니다. 혹시나 귀찮아서 선택을 망설이고 계신다면 그자와 대련 한 번 해보십사 권유하기 위해서 연락한 겁니다.]

“왜요?”

경완은 위버멘쉬의 총수라는 사람이 굳이 전화까지 하면서 이런 제안을 꺼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그전에 자신을 너무 잘 파악하고 있는 거 아닌가?

[간단합니다. 사람에게 겸손은 미덕이지만 마이티 가이는 그러한 미덕을 모르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는 걸 미스터 리가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왜요?”

이번 왜요는 그게 위버멘쉬의 총수인 요하네스와 무슨 관련이 있냐는 뜻이었다.

이에 요하네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더 발전 가능성이 있는 인재가 교만에 젖어 정체된 모습이 안타까운 거죠.]

과연 그런 걸까? 경완은 자신에 대한 요하네스의 이유 모를 호의에도 여전히 그에 대한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아마 그가 감추고 있는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일 것이다.

경완이 잠시 고민하느라 대답을 미루자 요하네스가 말했다.

[이번 일로 빚진 거 깐다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뭘 이런 거 가지고.”

경완은 찜찜하지만 어렵게 수락했다. 위버멘쉬와 요하네스에게 신세 진 것이 많기 때문이었다.

신세진 이유의 대부분은 중국과 얽혀 있었다.

이경완이 중국의 수뇌부들을 참수하는 동안 중국은 어떻게 단 한 발의 핵미사일도 날리지 못했을까?

그건 순전히 미국과 위버멘쉬 덕분이었다. 몰래 핵미사일에 장착한 시한폭탄이 터져 핵미사일을 파손시키거나, 핵발사 코드와 전달 계통을 해킹하거나 교란해 핵미사일의 발사 명령을 멈추기도 했다.

덕분에 참수작전 내내 어떻게든 핵보복을 하려고 했던 중공 지도부의 노력은 허사가 되어 버렸다.

요하네스는 경완이 초기에 순식간에 주요 상층부를 참수해서 발생한 혼란 덕분에 가능했다고 겸양을 떨었지만, 핵잠수함은?

미리 포섭이라도 해놨는지 핵잠수함은 핵보복을 포기하고 얌전히 수면 위로 떠올라 무장을 해제했다. 그 함장과 핵잠에 타고 있던 장교들은 현재 지중해 해변에서 인생을 즐기고 있다나?

경완이 날뛰는 동안 위험요소를 관리해준 위버멘쉬의 도움은 고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무시무시하기도 했기 때문에 경완은 요하네스의 부탁 같은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목숨 걸고 싸우는 것도 아니고 고작 대련인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지면 지는 대로 나름 장단점이 있었기에 경완은 굳이 승리에 연연하지 않았다. 요하네스는 아무래도 그의 승리를 장담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그럼 잘 부탁합니다.]

“예~예.”

경완은 참 오지랖 넓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전화를 끊었다. 이렇게 오지랖이 넓어서 그 많은 초능력자들을 회원으로 규합할 수 있었던 걸까?

전화를 끊은 그는 시선을 돌려 오기준과 제이슨을 보았다.

“그쪽 계획을 한 번 들어보죠.”

아무 계획 없이 왔을 리 없을 테니 말이다.

경완의 태도가 바뀌자 두 사람은 안심한 태도로 자신들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마이티 가이가 이경완과 대련하고자 고집 피우는 것을 막을 수는 없으니 차라리 이걸 이용해 홍보 효과를 노리자는 것이다.

“홍보의 목적은?”

경완의 질문에 오기준은 제이슨을 보았고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초능력자에게 강하다는 것은 일종의 명예죠. 그리고 명예가 생기면 부귀는 자연히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일단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를 받는다는 말과 맥락이 같았다.

하지만 경완은 부와 명예에는 관심이 없어서 듣기만 했다.

[미스터 리의 입장에서도 나쁠 게 없습니다. 국제적으로 퍼진 부정적 이미지를 해소할 기회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이슨은 경완이 자신의 말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자 애써 초조함을 참으며 솔직한 목적을 털어놓았다.

[저희는 이번 기회에 히어로 컴퍼니의 이미지를 재고하길 바랍니다. 강력한 초능력자가 소속되어 있다는 건 각국 정부에게 상당히 강한 인상을 줄 수 있거든요.]

일종의 무력시위라는 걸까?

“부정적 인상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부정적 인상도 나름의 쓸모가 있습니다. 마케팅에서 가장 최악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무관심이죠.]

거기까지 들은 경완은 자신이 제안을 내밀었다.

“나는 좀 다른 걸 제안하고 싶은데요.”

[뭔가요?]

경완의 대답이 뒤를 이었고 제이슨의 표정은 굳어졌다.

경완과의 대화를 마치고 돌아오는 오는 길에 제이슨은 한숨을 섞으며 오기준과 대화했다.

[하아~ 어떡하죠?]

[어쩌긴요. 별 수 없지 않아요?]

오기준의 대꾸에 제이슨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히어로 컴퍼니의 마케팅 AE로서 제이슨은 이번 일, 마이티 가이와 이경완의 대련을 통해 히어로 컴퍼니의 국제적 위상을 재고하려 하였다.

승패는 중요하지 않았다. 대련 과정에서 마이티 가이가 충분히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이런 강력한 초능력자가 히어로 컴퍼니 소속이라고 광고하는 것이 제이슨의 목적이었다. 그러는 것이 그나마 마이티 가이의 옹고집을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

하지만 경완의 역제안은 그러한 의도를 기초부터 파괴했다.

‘대련 영상은 대외비로.’

관계자 및 비밀취급인가를 받은 자에게만 대련 시의 자료를 취급할 수 있다는 조건은 제이슨의 목적과 상충(相衝)했다.

하지만 제이슨에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미국에게 있어 경완은 중국에서의 무제한 참수 작전 이후 더욱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중요국외자산이었고, 단순히 잘 싸우는 마이티 가이와는 달리 독심술, 웜홀 능력까지 있어 활용 분야가 무궁무진했다.

무엇보다도 다른 초능력까지 습득하여 계속 성장할 수 있는 미래성까지 고려하면 미국이 마이티 가이와 이경완 중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는 자명했다.

히어로 컴퍼니가 그런 정부의 입장을 외면하고 마이티 가이만 밀어주다간 미정부에서 태클을 걸어올 가능성이 100%였다. 괜히 친미인사에게 미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끼얹지 말라고 말이다.

[대련 장면 녹화를 금지하지 않은 것만 해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하시죠.]

오기준의 말에 제이슨은 고개를 끄덕이며 욕심을 버렸다. 하긴 S급 초능력자의 대련이 쉽게 성사될 리는 없었으니 귀중한 자료가 될 건 분명했다.

마이티 가이는 다음날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하루쯤 호텔에서 묵으며 여독을 빼낸 뒤 움직였다.

그 옆에는 제이슨이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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