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212화
20-오버맨 엔트리
미하일이 재빨리 타냐의 손을 잡았다. 소녀는 그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신체강화능력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건 무리였다.
“[email protected]#$!%!”
소녀가 뭐라고 소리를 치자 경완이 미하일에게 통역을 요구했다.
“왜 저래요?”
“인질을 놔두고 가는 게 싫답니다.”
하긴 본인도 보야라는 빌런의 피해자였으니 납치된 사람의 일이 남 일 같지 않을 터였다.
경완은 이 소동을 빠르게 잠재우기 위해 빠르게 논리를 짰다.
“쟤한테 제 말을 전달해 주세요.”
그렇게 그가 입을 열기를, 우리는 저 납치피해자를 놔두고 가는 것이 아니다. 주변에 함정이 깔려 있는데, 보야 그놈이 준비해 놓은 함정으로 제 발로 들어갈 필요가 없다. 놈을 먼저 붙잡는다면 자연히 저 피해자는 물론 다른 피해자들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논리에 타냐는 다시 이렇게 반론했다.
“두 마리 토끼를 쫓으려다 다 놓친다고 합니다.”
“그거야 자기 능력이 객관화 안 되는 놈들이나 당하는 일이고, 능력 되는 사람은 얼마든지 두 마리 토끼 잡을 수 있다고 말해줘요.”
미하일은 경완의 말을 타냐에게 설명해 줬지만 별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경완은 입맛을 다셨다. 소녀의 협조가 없으면 추적이 곤란해서 좋게좋게 말했는데, 그래도 못 알아들으면 따끔하게 말하는 수밖에.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놈이 알아차릴 수 있다고, 납치된 사람이 여럿인데 저기 있는 사람 한 명만 구할 거냐고 하세요.”
경완의 말에 미하일의 표정이 한층 더 진지해졌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소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얌전히 경완과 미하일의 사이로 다가왔다.
“Let’s go.”
경완의 말에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얌전히 다시 추적을 시작했다.
새로운 자취를 찾기 위해 경완은 함정이 깔린 폐가를 중심으로 원을 돌았다. 예상대로 길이 아닌 숲으로 보야가 빠져나간 흔적이 있었다.
미하일은 경완과 타냐의 뒤를 따라가다가 문득 물었다.
“그런데 함정이 뭐였습니까? 부비트랩?”
“비슷하기는 하지만 그냥 부비트랩은 아니었어요. 일종의 설치형 초능력?”
경완으로서도 처음 보는 형태의 초능력이었고, 생소한 S입자 구성체였다.
어떤 구조인지 S입자를 밀어 넣어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생각보다 민감한 것 같아서 그만뒀다. 혹시 모르지 않은가? 함정이 작동하면 보야 그놈에게 그 사실이 전달되는 구조인지.
그렇게 되면 소녀에게 입을 턴 것도 죄다 가식과 위선이 되어버린다.
경완의 말에 미하일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군사훈련을 받은 경험이 있는 그는 부비트랩 같은 것이 얼마나 위협적이고 골치 아픈지 잘 알고 있었다. 이쪽의 수가 많다고 마냥 안심할 순 없다는 의미였다.
그러는 사이에 소녀는 부지런히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켰고 경완은 그녀를 들고 날 듯이 움직였다.
황량한 숲을 가로지르는 보야의 자취는 커다란 원을 그리며 도로 청진시 내부로 향하고 있었다. 교활한 사냥감이 사냥꾼을 속이고 배후를 잡는 방식. 과연 러시아의 추적을 피해 국외까지 도망친 빌런다웠다.
소녀가 가리키는 손가락 끝이 최근 지어져 한창 분양 중인 신축 아파트를 가리킬 때 추적은 멈췄다.
경완은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려던 걸음을 멈췄다.
“왜 멈추십니까?”
미하일이 의아해했다.
경완은 피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환장할 것 같은 일이 생겨서요.”
경완의 초감각이 아파트 단지를 훑었다. 그러고는 아파트 단지 입구부터 저 멀리까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뭔지 모르는 게 쫙 깔렸네요.”
“……설치형 초능력이요?”
“네.”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치된 숫자와 위치를 보아선 작정하고 깐 것 같았는데, 하루 이틀 작업한 것도 아니었다.
아파트 단지에 지뢰밭처럼 깔아놓았다는 말은 저 설치형 초능력에 살상능력이 없다는 뜻이 아닐까? 일반인들도 자주 돌아다니니 말이다.
하지만 상대는 빌런이었다. 여러 사람을 죽이고 인질을 잡는 것도 서슴지 않는 놈이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판단해야 했다.
하지만 인질을 구하는 것보다 인질범을 응징하는 것이 더 중요한 러시아 사람이라서 그런지 미하일은 강경했다.
“강행하겠습니다.”
“잠깐만요.”
경완이 그를 붙잡았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보야라는 놈을 알아볼 수 있는 이는 타냐뿐이니 일단 경완이 그녀를 데리고 날아서 저 설치형 초능력이 잔뜩 깔린 지대를 통과한 후 놈의 위치부터 파악한다는 것이었다.
그 의견에 미하일은 타냐의 안위를 걱정했다.
“둘이서만 들어가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안 들키는 것이 목적이니까 그리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저희는 어떻게 합니까?”
“단지로 들어오지는 말고 들어오기 쉬운 곳에 있다가 무슨 일이 터지면 최대한 빨리 지원 오세요.”
경완은 초감각으로 아파트 단지를 다시 한번 훑고 첨언했다.
“옥상에도 깔려 있으니까 옥상에는 가지 마시고요, 보니까 근접팀에는 초능력 확장 장비도 지급되어 있던데 혹시 비행능력도 있어요?”
“없습니다.”
미하일은 고개를 저었다. 강력한 빌런인 보야를 상대하기 위한 보호능력과 주력기 보조능력을 위주로 세팅되어 있었는데, 그중 아쉽게도 비행능력은 없었다. 가능은 하지만 비용문제라던가 파트 추가로 인한 기동성 문제나 내구성, 실전성 문제 등이 있어서 그들 팀의 장비엔 도입하진 않았다.
경완이 말했다.
“그럼 벽을 타거나 베란다를 이용하세요. 다행히 벽에까지 설치하진 않았네요.”
“하지만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막 깔려 있다면 일반인도 걸려들잖아요.”
“모르죠. 걸린 자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작동하는 방식일지도.”
미하일은 경완이 너무 조심하는 게 아닐까 작게 불만을 가졌지만 일단 그의 의견을 수용했다. 그리고 경완은 타냐를 들고 단지 안으로 날아갔다.
소녀는 말없이 검지로 한쪽을 가리켰고, 경완은 초감각을 발동하여 주변을 샅샅이 훑다가 한 아파트 입구에서 멈췄다.
“저긴가?”
경완은 초감각으로 아파트를 샅샅이 훑었다. 입주를 막 시작한 아파트라 그런지 안에 사람이 많진 않았다.
그러나 소녀의 안내가 맞다면, 그리고 여기가 또 다른 함정이 아니라면 보야라는 놈은 분명 이 건물 안에 있을 것이다.
경완의 초감각이 건물의 맨 꼭대기 층을 훑었을 때 반응이 있었다.
정교하게 잘 짜인 S입자 구성체 덩어리가 경완이 초감각의 매개체로 뿌린 S입자에 반응했다.
그 구성체 덩어리의 중심에 있는 누군가가 손을 내젓자 초감각의 영역이 흩어졌다. 초감각의 영역에 시커멓게 안 보이는 부분이 생겼다.
경완은 입술에 침을 묻히며 마치 그러한 대응을 모르는 척 몇 번 더 초감각을 돌렸다.
두 번, 세 번.
그때마다 놈을 향해 뿌려진 S입자는 흐트러졌고, 초감각의 영역에는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경완은 초감각을 거두고 물러났다.
놈의 반응을 보니 아직 괜찮았다. 놈을 긴장하게 했지만 들키진 않은 것 같았다.
경완은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 에스퍼처럼 타냐를 데리고 신속하게 뒤로 빠졌다.
“무슨 일입니까?”
경완이 도로 아파트 단지에서 나오자 미하일과 척살단이 의아해했지만 경완은 그들에게 타냐를 맡기며 서둘러 움직였다.
“설명할 시간 없어요. 제가 먼저 놈을 칩니다.”
경완의 말에 미하일이 타냐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며 서둘러 지시를 내리는 동안 경완은 보야가 숨어 있는 아파트로 다시 날아갔다. 놈을 자극한 건 사실이었고, 그래서 시간을 주면 도망가야겠다고 변덕을 부릴 수도 있었다.
놈이 있는 곳은 최상층.
옥상도 정체 모를 초능력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경완은 잠시 허공에 뜬 채로 대기했다.
불은 꺼져 있었고 안이 보이지 않게 커튼도 쳐져 있었다. 하지만 희미하게 스마트폰의 불빛이 커튼에 어른거렸다.
경완은 하늘 높이 올라갔다. 그리고 그대로 낙하하면서 힉스장 제어능력을 더했다.
손쉽게 아음속에 도달한 경완이 염동력으로 이루어진 날개를 펼쳐 궤도를 비스듬하게 바꾸었다.
그 방향은 놈이 숨어 있는 아파트의 창문.
경완은 좀 더 정확한 강습을 위해 창문에 도달하기 직전 초감각을 뿌렸다. 초감각에 놈이 흠칫하며 대응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건 초감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S입자를 뿌리는 것이었지 창문으로 돌진해 오는 경완을 알아차리고 대비하는 것은 아니었다.
와장창!
염동력으로 몸을 보호한 경완은 창문을 깨고 그대로 놈에게 돌진했다.
“Welcome to Korea!”
워낙 속력이 빨랐기 때문에 창문이 깨지는 것과 경완이 놈과 충돌하는 건 거의 동시나 마찬가지였다.
놈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강력한 이니시에팅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경완과 그대로 한 덩어리가 되어서 벽을 뚫고 들어갔다.
하지만 놈은 여러 초능력자를 죽이고 그 능력을 빼앗은 복합능력자.
바로 대응에 나선 놈은 신체강화능력으로 커다랗게 부푼 상체로 경완을 끌어안았다. 남자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대로 압살해 버리기 위해서.
경완은 오히려 땡큐였다. 절단능력의 날이 보야의 사타구니부터 머리까지 그었다.
놈은 섬뜩함을 느꼈는지 급히 머리를 꺾었지만 사타구니부터 어깨까지 그어진 혈선을 중심으로 몸이 좌우로 나뉘었다.
털썩.
“Do you like Kimchi?”
경완이 못다 한 내한 외국인 전용 인사말을 마무리했지만 대답 대신 돌아오는 건 절단된 부위에서 뿜어진 핏줄기뿐.
혹여나 핏물이 묻을까 봐 얼른 뒤로 물러난 경완은 자신의 솜씨에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건 전투가 아니라 사냥이었고, 전투보단 사냥을 선택한 자신의 판단에 대한 흡족이었다. 무언가를 죽이거나 제압하려고 할 땐 언제나 전투보단 사냥이 더 효율적이었으니, 한 방에 처리할 문제는 두 번 세 번 나눠서 처리하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이었다.
경완은 무전으로 미하일에게 상황 종료를 알리려고 했다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몸을 두 조각으로 나눗셈했는데 출혈이 고작 이 정도다?
경완은 곧장 손을 휘둘렀다. 시커먼 절단의 선이 보야의 머리통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두개골이 두 조각 나는 일은 없었다. 머리가 붙어 있던 몸뚱이가 한 손을 바닥에 박더니 몸을 당겨 검은 선을 피해낸 것이다. 죽은 게 아니었던 모양.
놈의 행동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잘려 나가 분할된 몸과 몸 사이에 붉은 피가 끈적하게 이어지면서 두 몸이 자석처럼 달라붙었다. 붉은 피가 마치 접착제처럼 절단된 몸을 붙이는 것 같았다.
경완은 그 꼴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고 연속으로 절단의 날을 휘둘렀다. 히어로(?)의 변신장면은 구경하라고 있는 게 아니다. 훼방하라고 있는 거지. 어디 대가리가 김밥말이용 단무지 꼴이 되어서도 멀쩡한지 보자.
절단의 속성을 담은 검은 선이 마치 그물처럼 덮쳐오자, 놈의 팔뚝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동시에 체모가 가시처럼 뻣뻣하게 돋아났고, 질기고 단단한 팔뚝이 절단의 날을 견뎌내는 동안 강철 같은 가시가 경완의 몸을 덮쳤다.
염동력으로 만든 방어막을 뚫고 들어오는 관통력에 경완은 한 발 물러서며 절단의 검을 공격이 아닌 수비로 돌렸다.
전신의 체모를 강철 가시처럼 만들어 사방으로 뻗는 것은 거리를 벌리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적의 의도대로 해주지 않는 것은 승기를 유지하는 데 유리했다.
잔상을 남기며 움직이는 흑색의 선과 그것을 뚫으려고 하는 강철가시 같은 체모.
경완은 연신 잘려 나가는 놈의 체모가 놈의 몸으로 도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하고 눈을 가늘게 좁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