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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13화 (213/367)

무한전생-더 빌런 213화

20-오버맨 엔트리

단순한 회복능력이 아니었다. 초재생도 아니었고.

저것은 차라리 기계적 복구능력에 가까웠다. 세포가 파괴됐을 때 세포분열로 파괴된 세포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아닌, 파괴된 세포를 복구하는 방식.

S입자에 의존하여 텔로미어와 열량의 소모를 막는 고속의 신진대사로는 흉내도 낼 수 없는 능력으로, 신체강화계열 능력을 벗어난 무언가였다.

하지만 경완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고, 오히려 한 발 전진했다. 그 배경에는 은밀하게 깔리고 있는 염동력이 있었다.

몸의 보호를 절단 능력에 맡긴 그는 염동력을 안개처럼 바닥에 깔았다. 바닥에 깔린 검은 연기의 염동력은 진짜 안개처럼 스멀스멀 보야에게 다가갔다. 염동력은 마치 진짜 안개처럼 연신 체모에 꿰뚫려도 아무렇지 않았다.

의도 모를 한 수에 놈은 다가오는 검은 연기를 경계하며 현재의 불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수를 썼다.

바로 옥상에 설치했던 설치형 초능력의 작동이었다.

놈의 머리에서 S입자의 지향성 파동이 위로 향했다.

경완의 초감각은 그러한 S입자의 움직임에 주의하였고 머리 위, 옥상에서 활성화되는 S입자 구성체를 느낄 수 있었다.

경완의 어깨에서 급히 피어오른 검은 연기가 위를 반구 형태로 덮는 동시에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옥상이 터져 내려앉으면서 발생한 충격파가 뒤늦게 창문을 흔들었다.

꺄악!

뭐야! 뭐야!

마치 포탄이라도 터진듯한 폭음에 놀란 주민들이 깨어나 비명을 질렀고, 경완과 보야가 있는 아파트의 주민들은 급히 계단을 따라 건물 밖으로 도피를 시작했다.

“[email protected]#%”

몸을 완전히 복구한 슬라브 계열의 갈색머리 백인 남성이 경완을 향해 뭐라고 소리쳤다.

“뭐래?”

설치형 초능력을 터뜨린 건 놈에겐 회심의 한 수였을 것이다. 하지만 경완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고,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

놈이 함성을 질렀다.

“크합!”

[넌 누구냐!]

그 함성엔 질문이 정신파로 실려 있었다.

하지만 경완은 대답 없이 묵묵히 놈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강철 체모를 잘라냈다. 마치 풀이 무성한 밭에 대낫으로 낫질하는 농부처럼 기계적인 모습이었다. 단지 그 속도가 어마무시할 뿐.

어차피 시간은 경완의 편이었고 야밤에 폭음이 났으니 미하일의 보야 척살대가 곧 도착할 것이다.

경완이 반응하지 않자 놈이 작정했는지 다른 수를 섰다. S입자 한줄기가 번개같이 뻗어 나와 경완의 머리에 달라붙은 것이다.

그것이 경완이 몸에 두른 염동력장에 걸리지 않고 접근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정신계 능력자의 패스였기 때문이다.

짧은 순간. 서로의 표면 의식이 연결되었다. 서로의 정체가 확인되자 놈은 놀람, 흥분, 긴장 단계를 빠르게 진행했고, 경완은 그 와중에 놈이 추스르지 못한 놈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보야 사노비치.

인생의 밑바닥을 전전하던 그의 이야기는 경완에겐 너무 통속적인 이야기라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학대, 착취, 배신, 경멸, 고통으로 점철된 인생. 간신히 얻었던 인생의 희망조차 사실은 밑바닥 밑에 밑바닥이 있다는 현실을 알려주기 위한 운명적 장치에 불과했고, 이러한 깨달음은 그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타인을 죽여 초능력을 빼앗는 능력을 각성 이후엔 그의 행보를 결정하는 배경이 되었고.

강자존.

세상은 결국 힘에 의해 돌아간다.

그 앞에서 선악의 구별은 무의미하며, 오직 고통만이 판단의 기준이니, 고통이 만일 악이 당해 마땅한 운명이라면, 약한 것이 곧 악이다.

그러므로 본인은 강자가 될 것이다.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한 강자가 되어서 누구도 나에게 고통을 주지 못하게 하리라. 그리고 이 깨달음을 무지몽매한 가여운 자들에게도 알려주리라.

참으로 밑바닥에서나 얻을 법한 깨달음이었다.

하지만 바보였다. 그 광기 앞엔 아무것도 없고, 그 길을 걷는 것조차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못한다. 그저 어리석음을 품에 안고 익사한 추락해 버린 초라한 인격만이 있을 뿐.

경완은 한 번 그러한 길을 걸었던 경험자로서 그 사실을 알려주기로 했다. 그것이 머리와 연결된 패스를 바로 끊어내지 않은 이유였다.

보야는 그의 정체를 깨닫고 바로 패스를 끊어버린 후 도주를 시도하려고 했지만, 경완이 뿜어낸 S입자가 패스의 제어권을 탈취하고 연결을 유지했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기억의 파도가 놈의 시냅스를 점령했다.

죽여라죽여라죽여라죽여라죽여라죽여라죽여라죽여라…….

살려라살려라살려라살려라살려라살려라살려라살려라…….

죽여줘죽여줘죽여줘죽여줘죽여줘죽여줘죽여줘죽여줘…….

살려줘살려줘살려줘살려줘살려줘살려줘살려줘살려줘…….

도망쳐도망쳐도망쳐도망쳐도망쳐도망쳐도망쳐도망쳐…….

멈춰안돼더줘가질래빼앗자그만해…….

내가 한 말인가, 내가 들은 말인가?

비명과 웃음소리가 교차했다. 경계선 성격장애가 있는 것처럼 우울, 기쁨, 분노, 허무의 감정이 가슴을 어지럽혔다.

혼란하다. 공허하다. 무섭다. 도망치고 싶다.

별빛 한 점 없는 우주에 버려진 느낌이 이런 것일까?

막막하다. 언제 이 두려움이 멈출지 예상할 수 없었다.

그 압도적인 허무 앞에서 보야 사노비치는 본인보다 강한 초능력자를 사냥하고 비웃으며 그들의 능력을 빼앗던 사냥꾼으로서의 자신을 떠올리지 못했다.

세상을 냉소하며 약자들에게 세상의 진실, 약한 것은 곧 죄라는 진리를 알리던 냉엄한 전도사로서의 광기조차 무한한 기억의 흐름에 마모되어버렸다.

보야 사노비치는 이 공황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알고 있었다.

퍽!

“어이쿠야!”

경완은 급히 검은 안개를 전면에 펼쳐 자신에게 흩뿌려지는 뇌수를 막아냈다. 놈이 스스로 자신의 정수리를 터뜨린 것이다.

그리고 뒤늦게 미하일과 척살단이 도착했다. 엑소스켈레톤 같은 초능력 확장 장비를 착용하고 스파이더맨처럼 벽을 탄 그들은 부서진 창문으로 들어오며 사방을 경계했다.

하지만 그들이 발견한 것은 머리 없는 시체와 그 앞에 서 있는 경완뿐. 그와 보야의 교전은 너무 빨리 끝나서 그들이 도착하기 전엔 이미 모든 것이 끝나있었다.

미하일이 경완에게 다가와 물었다.

“이놈입니까?”

“네.”

“죽었네요.”

뭔가 할 말이 많은 것 같은 뉘앙스였다.

살려서 잡아가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직접 죽이고 싶었던 걸까?

의도를 알 수 없는 한 마디에 경완은 놈이 죽은 방식을 전달했다.

“자살했어요.”

“네?”

“스스로 자기 머리를 퍼엉!”

“왜요?”

“제가 좀 무서웠나 봐요.”

한국어를 할 줄 아는 미하일이었지만 도대체 그 의미를 알 수 없어 어리둥절했다.

일단 얼굴은 남아 있었기 때문에 구분은 할 수 있었지만, 이 시체가 정말 그 추운 시베리아를 떨게 하였던 보야 사노비치란 말인가?

묻고 싶은 건 많았지만 거기서 시간을 더 낭비할 순 없었다. 저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울렸기 때문이다.

이번 작전은 국정원과는 이야기가 되어 있었지만 경찰과는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 출동하는 경찰과 얽히면 곤란해진다.

일행은 더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듣기로 하고 서둘러 보야 사노비치의 시신을 시체가방에 담고는 자리를 떴다.

놈이 설치해 놓았던 초능력은 놈이 죽고 나서는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딱히 경찰이나 국정원에 경고할 필요를 느끼진 못했다.

뒤늦게 도착한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지만 발견한 건 천장이 부서져 밤하늘이 보이는 아파트와 피칠갑이 된 현장이었다.

* * *

“!%[email protected]?”

“!%!”

일행과 거점으로 돌아온 타냐는 시체가방을 두고 미하일과 뭐라뭐라 대화를 나누다가 경완을 보았다.

“What?”

경완이 묻자 소녀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예의를 표했다. 보야 사노비치를 잡은 그의 공에 감사를 표하는 것이다.

경완은 소녀와 미하일의 대화가 끝나자 자신의 용건을 해결하기 위해 끼어들었다.

“이제 끝났죠?”

“뒤처리가 남았습니다.”

얼굴이 멀쩡하다지만 외형을 변형할 수 있는 능력자였기에 혹시 몰라 DNA검사로 확인도 한 번 거쳐야 하고, 죽은 보야 사노비치 시신의 러시아 송환을 두고 한국과 러시아 사이에 협상, 혹은 신경전도 벌어질 예정이었다.

21세기에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보야 사노비치는 위험등급 S의 빌런이었고, 그런 초능력자의 시신은 초능력 연구에 귀중한 자산이었다.

물론 경완이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내가 할 건 아니잖아요. 그쵸?”

“……그렇긴 합니다.”

“그럼 저는 이제 가도 돼죠? 할 일도 다 했으니까?”

“네.”

“그럼 가볼게요.”

“수고하셨습니다. 한국 땅에선 동원 가능한 화력이 제한되어서 걱정이었는데 경완 씨 덕분에 큰 피해 없이 잡았습니다.”

러시아에선 중기관총, 헬기와 장갑차까지 동원했었다지? 미사일은 락온 문제 때문에 쓰지 못했다고 하던가?

경완이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유~ 뭘. 서로 돕고 사는 거죠.”

그렇게 말한 후 일어나자 미하일이 정중하게 한국식 인사로 허리를 숙였다. 다른 이들도 급히 일어나서 허리를 숙였다. 한국어를 모르지만 경완이 떠난다는 건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타냐도 경완에게 인사를 하러 다가왔다. 하지면 소녀는 다른 이들이 한국식 인사로 경완을 배웅하는 것 대신 그의 품에 푹 안겼다. 약 일주일 동안 같이 돌아다녀서 알게 모르게 정이 쌓인 모양이었다.

경완은 그런 소녀의 머리를 헝클어주고는 미간을 찌푸린 소녀를 향해 작별인사를 해주었다.

“굳럭.”

작별인사에 적절한 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러시아의 파견인원들과 헤어진 경완은 이관영에게 상황을 전달하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미연이 자고 있었기에 경완은 소파에서 잤지만, 잠에서 일어났을 땐 그녀의 몸무게를 느꼈다.

“깼어?”

그녀는 그의 몸 위에서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잠에서 깨길 기다리고 있었다.

“출근은?”

“오늘은 쉬는 날. 세수하고 나와. 아침 차려줄 테니까.”

그녀는 경완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는 일어나서 주방으로 향했다. 중간에 ‘야앙!’하고 울며 밥 달라는 치즈에게 캔도 하나 따주었다.

경완은 시간을 확인했다. 아침이라기보다는 아점에 가까웠다.

잠기운이 다 가시지 않아서 멍하니 TV를 켜는데 스마트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해보니 위버멘쉬 총수였다.

“여보세요.”

[요한입니다.]

“네, 총수님.”

경완은 요하네스를 요한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총수, 아니면 양보해서 요하네스였다. 권력자와는 너무 멀어져도 문제지만 너무 가까워져도 문제였다. 본인은 권위에 개의치 않는 털털한 모습을 보인다고 해도 위버멘쉬의 총수라는 자리는 국가정상급 귀빈 대접을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보야 사노비치를 사살했다고 들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뭘요. 그리 어렵지도 않았습니다.”

[모두 다 그가 본 실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제압한 경완 씨의 판단력 덕분이겠죠.]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보야 사노비치의 능력이 죽은 초능력자의 능력을 빼앗는 거라는 건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그에게 죽은 이들은 염동력자, 신체강화계열 두 명, 염화술사, 연금술사, 텔레파시스트 등 종류별로 따져도 확인된 것만 9가지가 됩니다. 하지만 현장을 보면 많아 봐야 세 가지 능력의 흔적만 나왔다고 하더군요. 경완 씨가 얼마나 신속하게 놈을 제압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경완은 혀를 내둘렀다. 이 정보력 봐라.

새삼스럽게도 또 놀라고 말았다.

그는 새삼스러운 것보다는 새로운 단어에 호기심이 돋았다.

“연금술사는 뭐죠?”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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