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226화
22-뉴 오더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다크넷으로 의뢰를 받는 다른 청부업자에게 보내는 경고이기도 했다.
이경완이 붙어 있으니 바스티앙에 대한 청부는 포기하라는 경고. 그가 중국에 저지른 짓을 보고도 간 큰 짓을 할 청부업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또 한 가지 중요한 사항은 대(對)초능력 탄환의 출처인데, 놀랍게도 부패한 경찰이나 군 조직에서 빼돌려진 것만 있는 게 아니라, 범죄집단이 사적으로 생산한 것도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생각보다 훨씬 더 음지의 기술력이 좋은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 음지와 결탁한 양지 기업이 있다든지.
아무튼 슈퍼 요트로 돌아온 경완이 바스티앙에게 물었다.
[혹시 행선이 노출되어 있나요?]
그러면서 다가오던 배가 바스티앙을 노리러 왔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바스티앙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에 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알려고 하면 얼마든지 알 수 있습니다.]
해양사고를 예방하고, 사고가 일어났을 때 신속하게 조치하기 위해 대부분의 선박은 추적시스템이 탑재되어 있었다. 이는 바스티앙의 슈퍼 요트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또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네요.]
[그러니 경호를 요청한 거죠.]
바스티앙의 대답에 경완이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 있던 김봉남은 그걸 탐탁지 않아 하는 걸로 받아들였는지 경완을 달랬다.
[걱정하지 마세요. 다음엔 제가 나서죠.]
지금 귀찮아서 이러는 줄 알아?
솔직히 정답이었다.
[그러세요.]
그리고 다시 경호 겸 휴양 일정이 시작되었다.
미연과 그녀의 지인들은 밤늦게까지 즐겁게 놀았다. 별이 총총하게 뜬 밤바다의 하늘, 매너 좋은 미남, 유쾌한 유머 담당, 그리고 슈퍼 요트 위라는 환경까지.
하지만 마냥 좋은 건 아니었다. 다음날 오후쯤 되니 날씨가 안 좋아졌기 때문이었다.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냥 있으면 안 돼? 배도 좋잖아.”
귀가를 권유하는 경완에게 미연이 부탁했다. 그러자 경완은 바스티앙을 보았지만 그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파도치는 바다는 위험합니다. 특히 경험이 없는 여성분들에겐 더 그렇죠. 얌전히 방 안에만 있어도 힘들 겁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
“일단 집에 가서 쉬고 있어. 날씨 좋아지면 부를게.”
경완의 말에 미연은 더는 고집을 피울 순 없었다. 혼자라면 모르겠지만 다른 두 명도 나름 컨디션을 조절해야 하는데, 비바람에 거친 풍랑이 이는 배에서 뱃멀미라도 하면 스케줄이 꼬일 수 있었다.
그렇게 여성 세 명을 웜홀로 집으로 돌려보내고 집에서 쉬고 있으라고 접대용 게임도 켜주고 돌아온 경완은 요트로 다가오는 검은 먹구름을 보았다.
생각보다 비바람이 강하게 올 것 같았다.
[설마 침몰하진 않겠죠?]
[요즘 배를 그렇게 허술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무려 100억짜리 슈퍼 요트다. 그런데 태풍이나 암초도 아니고 고작 비바람에 침몰할 정도로 약하게 만들었겠는가?
하지만 비바람이 만만하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억! 죽겠어요!”
바람에 너울거리는 파도에 김봉남이 멀미가 나는지 안색이 창백해졌지만 경완은 태연했다. 왜냐면 그는 중력 능력으로 몸을 동동 띄우고 검은 연기를 몸 주변에 쿠션처럼 둘러서 거친 파도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었다.
경완은 호들갑을 떠는 김봉남을 보고는 혀를 찼다.
“쯧쯧. 초능력은 뒀다가 뭐해요?”
“경완 씨처럼 능력을 세밀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게 사기라고요! 웃!”
김봉남이 경완처럼 몸을 띄웠다가 배가 반대로 기울어지는 바람에 그를 후려치듯 다가오는 벽을 발바닥으로 급히 막았다.
바스티앙은 동물들과 부대끼며 단련된 강인한 체력으로 조타키를 붙잡고 파도에 대처했다.
바다의 날씨는 변화무쌍했고 금방 날씨가 개었다. 김봉남은 그제야 비치 의자에 앉아 쉴 수 있었다. 바스티앙도 진이 빠졌는지 드러누워서 심호흡을 했다.
하지만 초능력을 이용해 최대한 체력을 보존한 경완은 약속대로 미연과 친구들을 도로 데려왔으니, 그들은 누워 있는 두 남자를 보며 의문을 품었다.
“왜 저래?”
“비바람을 견디느라 피곤해져서 그래.”
“그래? 그럼 저녁은 내가 해줘야겠네?”
미연은 자신의 요리 실력을 뽐낼 시간이 왔다며 손을 걷어붙였다.
“바스티앙 씨 피곤해요?”
“마사지 해드릴까요?”
“헛짓거리들 하지 말고 이리와.”
그리고는 피곤한 남정네들 마사지를 해주겠다며 바스티앙의 탄탄한 육체를 만져보고자 하는 음흉한 속내를 드러낸 두 처자를 반강제로 주방으로 데려가서는 보조를 시켰다.
평화로운 한때였다.
“그런데 바스티앙 씨는 뭐 하는 거야?”
이른 저녁을 먹고 난 바스티앙은 다시 배에서 내려와 고래들과 교감을 나누었다. 그 와중에 새로 온 고래의 몸에 손바닥을 대고 가만히 있기도 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미연이 경완에게 질문을 하는 건 이상하지 않았다.
그녀의 물음에 다른 두 여자도 경완의 대답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들의 일정은 2박3일. 내일은 떠나야 했으니 바스티앙을 꼬실 기회는 오늘뿐이라 내심 초조하기도 했다.
미연의 질문에 경완은 간단히 대답했다.
“동물강화. 비스트 마스터의 능력이지.”
“그럼 지금 고래를 강화하는 거야?”
“응.”
“왜 하는데?”
“어…… 취미?”
뭔가 거대한 프로젝트라는 걸 솔직하게 말하기 그래서 일단 얼버무리며 말을 아꼈다. 프로젝트의 당사자는 바스티앙이었으니 그 내용을 공개하는 것 역시 그의 권리였다.
미연의 눈이 가늘어졌다.
“흐응~ 오빠도 잘 모르는구나?”
“나야 경호하러 왔으니까 그 외에 딴 걸 신경 쓸 필요는 없지.”
하지만 경완의 말에 두 여자는 뭔가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이 기회에 동물을 키워보는 건 어떨까?
“저기 미연아. 고양이 키운다고 했지?”
“응. 저기 바스티앙 씨가 준 고양이야.”
지능이 강화되어서 상당히 똑똑하고, 상당히 애교도 많다고 자랑하는 미연에게 윤혜정과 이영미가 자기들도 똑똑한 펫을 키워보면 어떨까 운을 띄웠다.
그때 김봉남이 한마디 했다.
“혹시 바스티앙 형님께 애완동물을 받으려고 한다면 그만두세요.”
“왜요?”
윤혜정이 의아한 듯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바스티앙 형님은 아무에게나 자신이 강화한 동물을 양도하지 않아요. 왜냐면 진한 교감을 나누어서 친구나 마찬가지거든요.”
“하지만 언니는 받았잖아요.”
“그건 미연 씨에게 준 게 아니라 경완 씨에게 준 거예요.”
“경완 씨는 어떻게 받았는데요?”
“총수님이 부탁했다고 들었어요.”
“무슨 총수님이요?”
“위버멘쉬 총수님이요.”
“아하~”
윤혜정이 알겠다고 하면서 아쉽지만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위버멘쉬의 총수 정도 되는 사람이 부탁해야 강화한 동물을 분양해 준다니. 아니 그전에, 위버멘쉬의 총수가 그렇게 신경을 쓸 정도라는 사람? 저기 형부라는 사람이?
새삼 저 시큰둥한 얼굴의 남자를 다시 보았다.
윤혜정은 이경완의 유명함은 알지만 막연하게 대단하다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지 이렇게 피부로 실감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러한 감상은 이영미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연예인 아니랄까 봐 그녀들에겐 국회에서 막가고 중국에서 깽판 칠 수 있는 힘보다는 어떤 셀럽과 어떤 관계이냐가 더 와 닿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경완의 영향력이라든가 대단함은 그녀들이 바스티앙과 인연을 이어나가는 일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일순간 이성을 잃고 낸 용기만이 도움이 되었을 뿐.
[저기 연락처 교환해요!]
[여기 제 SNS에요! 맞팔해요!]
바스티앙은 웃으면서 그녀들과 연락처를 교환했고, 김봉남은 기회다 싶어서 끼어들었다.
물론 그녀들은 웃으면서 그와도 연락처를 교환했지만 바스티앙 때와는 기온 차가 확연해서 미연이 가여운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경완이 속삭이듯 그녀의 귀에 한마디 했다.
“모른 척해.”
때론 동정이 더 아프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에게 두 여인이 다가왔다. 좋은 경험을 준 것에 대한 감사인사와 또 하나를 약조(約條)받기 위해서였다.
“언니. 정말 잘 쉬었어. 고마워. 다음에 또 이런 기회가 오면 다른 사람 말고 나 불러줘. 알았지?”
“나도 이하동문.”
솔직히 연예인인 그녀들이지만 슈퍼 요트와 S급 초능력자, 그리고 고래와의 경험은 특별했으니, 또 이런 경험을 할 기회가 다시 생긴다면 놓치고 싶지 않았다.
미연이 대답했다.
“그건 그때 가서 얘기해.”
“어우~ 깍쟁이.”
“미연아. 이 언니는 네 편인 거 알지?”
“영미 언니. 이렇게 뒤통수치기야?”
투닥거리는 두 여자 사이에서 결코 미래가치를 지금 값싸게 팔지 않겠다며 도도하게 서 있는 미연의 모습은 경완에게 제법 인상적이었다. 비싼 년이 되라는 그의 조언을 여전히 뇌리 한구석에 간직하고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자신의 조언이 누군가의 삶에 이렇게 깊고 넓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모습은 경완에겐 귀한 현상이었다.
[그럼 가볼게요!]
[연락하고 지내요~!]
경완이 세 여자를 웜홀로 서울에다가 데려주고 오니 김봉남이 서러워했다.
“바스티앙 형님이 있는 곳에서 여자를 꼬시려고 했다니……. 판단 실수였어요.”
“이제 자기 객관화가 좀 되나 보죠?”
경완의 말이 매운지 김봉남은 오만상을 찌푸리면서 경완을 비난했다.
“자기는 탑여배우가 여자친구라고 너무 남 일처럼 말하는 거 아니에요?”
솔직히 객관적으로 봤을 때 바스티앙 옆에서 쭈꾸미가 되는 건 어차피 경완도 마찬가지라는 뜻이었지만 남이 봐도 인생의 승리자인 경완에겐 별로 타격이 없었다.
“남 일이죠. 전 그런 거에 신경 안 쓰거든요.”
경완은 진심이었다.
김봉남처럼 여자에게 인기 있어 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남자들을 보면 새삼 자연의 가혹함이 실감 났다. 그런 가혹함에서 경완이 경험적으로 습득한 흔한 전략은 해탈이었다.
포기하면 편해요.
이성에 대한 열망은 마치 부귀영화처럼 같아서 영원하지도 않고 막상 얻는다고 해도 완벽히 충족되지도 않는다.
수컷은 항상 더 많은 암컷을 찾고, 암컷은 항상 더 우월한 수컷을 찾는다.
그것이 성선택이란 진화전략을 취해온 종의 본능에 박힌 것이며 욕구는 결코 완벽히 충족되지 않는다. 완벽히 충족되었다는 생각이 든 순간 본능적으로 다른 여자, 더 잘난 남자에게 눈이 돌아가기 마련이고, 이것을 막는 것이 사회적으로 학습된 규범과 거기에 따르는 이성이었다.
남자와 여자가 평생 서로만 바라보고 살기 위해선 남자와 여자라는 카테고리를 아우르는 또 다른 가치를 울타리처럼 쳐야 했다.
김봉남은 경완의 말에 어이없어하면서 바스티앙하고 떠들었다. 그 두 여자 중에서 누가 더 예쁘고 누가 더 마음에 드냐고 말이다.
이에 바스티앙은 이렇게 대답했다.
[음……. 다들 예쁘시지만, 전 지금 할 일이 있습니다.]
그 말에 할 말을 잃은 김봉남의 어깨를 경완이 가볍게 두드리며 이렇게 말했다.
“저게 여자가 아쉽지 않은 수컷의 발언이에요. 명심하세요.”
* * *
여자들의 휴양이 끝나자 바스티앙은 더 바빠졌다. 태평양 공해상으로 나아갈수록 더 많은 고래가 찾아왔던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고래가 찾아올 수가 있죠?]
김봉남이 감탄하며 물었다. 속된 말로 물 반 고래 반이었다. 종류도 다양해서 혹등고래, 범고래, 돌고래, 심지어 거대한 향유고래까지 있었다.
바스티앙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친구가 친구를 데려오는 거죠.]
경완의 입은 그러한 설명에 저절로 한 마디를 내뱉었다.
“다단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