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286화
27-권력은 잠들지 않는다
국정원도 있고, CIA도 있고, 그 외에 러시아나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보내온 첩보요원들이 도감청을 시도하고 있었다. 창문에 레이저를 쏴서 목소리의 진동을 읽어내는 첨단장비는 기본이었고, 심지어 에스퍼 등의 초능력자까지 동원한 상태였다.
그만큼 여기서 이경완과 정호태의 대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었다. 독고다이하던 최강의 초능력자에게 세력이 생긴다는 건 어찌 보면 무시무시한 일이었으니까.
경완은 급하기 입을 열지 않고 천천히 커피를 홀짝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길어지는 침묵이 불편해진 듯 정호태 지부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소란을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왜 그러셨어요?”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뭣 때문에요?”
“판검사 연쇄 살인 사건을 아십니까?”
“네, 알죠.”
“…….”
“…….”
정호태 지부장은 경완이 그에 관해 질문하길 기다리는 듯 뜸을 들였지만 경완은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잠시의 침묵 끝에 정호태 지부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검찰이 그 배후로 저희 위버멘쉬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명확한 증거가 없었기에 언론에 밝혀지진 않았지만, 이미 내부적으로는 일단 위버멘쉬부터 털어보자는 것에 중론이 모이고 있었다. 금융법, 외환법 등의 혐의로 압수수색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그러다가 증거가 안 나오면 어쩌냐고? ‘아님 말고’는 언론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경완이 되물었다.
“그래서요?”
“맞습니다.”
“네?”
“저희가 한 짓이 맞습니다.”
“…….”
솔직한 대답에 경완은 살짝 놀랐다. 이렇게 순순히 사실을 밝힐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아니지, 충분한 이유가 없진 않았다. 판검사 연쇄 살해의 실행범을 붙잡고도 고이 놓아주지 않았던가? 주모자로선 경완이 심정적으로 자신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되니 조금은 마음 편하게 고백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경완에게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그래서요?”
“네?”
“그래서 그거랑 기자회견 한 거랑 무슨 상관이 있냐고요.”
그 물음에 정호태 지부장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소가 닭 보는 듯 관심 없는 경완의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것일까?
정호태 지부장은 커피를 홀짝이며 당황을 가라앉힌 다음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원래는 다 끝나고 기자회견을 할 생각이었습니다.”
“네?”
그 말에 경완이 당황했다. 그러니까 정호태 지부장의 말은.
“우리를 방해할 저항세력을 완전히 무너뜨린 다음 경완 씨를 왕좌에 올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법 카르텔을 뭉개든 말든 상관없이 경완의 산하에 들어올 예정이었다는 소리 아닌가?
경완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정호태 지부장의 기자회견이 검찰의 표적수사로부터 시간을 벌거나 주의를 환기하기 위한 것이라고 추측했기 때문이다.
즉, 판검사 연쇄 살해를 모의한 위버멘쉬 한국지부의 내부자들이 자신을 이용하기 위한 모략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하는 말은 그러한 추론과는 거리가 있지 않은가?
경완이 정호태 지부장의 말이 과연 진실인지 의심하는 동안 정호태 지부장은 설명을 이어나갔다.
“어차피 사법 카르텔의 청소는 예정된 일이었습니다. 저희로서는 한국지부가 경완 씨의 산하에 들어간 뒤에 일을 벌이는 것보다 미리 청소해 놓는 편이 여러모로 이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여러모란 뭐죠?”
“…….”
잠시 뜸을 들인 정호태 지부장이 말을 이었다.
“일단 피해의 크기가 줄어듭니다.”
이경완과 위버멘쉬 한국지부의 결합은 대한민국 기득권을 무척이나 불편하게 만들다 못해 두려움에 떨게 할 것이다.
그 상황에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짓수는 많지 않았고, 최선의 수는 최대한 자신들의 이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타협하는 것이었다. 싸운다거나 굴복한다는 건 승산도 낮고 잃을 게 많아서 선택이 어려운 선택지였다.
“적당히 서로 양보하고 협상하면 되잖아요.”
“그게 가능한 사람이 있고 불가능한 사람이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경완 씨라면 타협하기 싫은 자도 테이블에 억지로 끌고와 앉혀서 협상하게 할 수 있겠죠. 제가 말할 불가능이란 당신을 기준으로 이야기한 겁니다. 당신은 과연 어디까지 참아낼 수 있습니까? 겨 묻은 개도 있고 똥 묻은 개도 있는데 똥 묻은 개도 포용할 수 있습니까?”
“똥 묻은 건 씻으면 되잖아요?”
“하지만 씻지 못한다면요? 광견병에 걸려서 미쳐 날뛰며 사방에 전염을 퍼뜨리는 개도 포용하실 수 있습니까?”
경완은 입을 다물었고 정호태에겐 그것으로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이 나라는 상상 이상으로 썩은 놈들이 많습니다. 당신의 눈앞에 나오면 당신이 직접 손을 쓰고 싶을 정도로 썩은 놈들이요.”
경완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러니까 왜 내 밑으로 들어온다는 겁니까? 안 그러면 굳이 청소할 필요도 없지 않아요?”
“그런 경우는 어떻게 될까요? 위버멘쉬 한국지부가 저들과 타협하고 서로 양보하고 그러다 물들게 되고 썩어버리면. 그때도 경완 씨와 계속 영원히 서로 웃으면서 지낼 수 있을까요? 아니요. 저는 그때가 되면 서울 참사와 비견될 정도의 비극이 일어날 거라고 봅니다.”
“……사람을 믿지 않는군요.”
반드시 위버멘쉬가 타락할 거라고, 정호태 지부장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정호태 지부장은 진지한 얼굴로 대꾸했다.
“아니요. 사람을 믿습니다. 사람의 욕심을 믿으니까 그런 미래를 그릴 수 있는 거죠.”
경완이 대답 없이 머릿속으로 정호태 지부장이 그린 미래상의 타당성을 점쳤다.
가능성이 없는 일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되면 경완과 충돌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초능력 공학의 발전은 결국 그것이 적용된 무기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고, 돈과 권력에 이어 무력까지 쥐게 된 이들은 감히 넘어볼 생각을 하지 못하고 눈에 거슬렸던 존재를 치우려고 움직이게 될 테니까.
슬프지만 경완 역시 정호태 지부장과 결론을 같이했다.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느끼고는 있었지만 귀찮다고 애써 외면했던 미래였다.
폭력, 권력 그리고 돈, 이 셋은 항상 모이게 되어있었다. 그리고 경완은 폭력을 가지고 있었다. 힘을 감추고 누군가 밟으면 밟히는 삶을 살지 않는 이상, 이 권력과 욕망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인간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니까.
정호태 지부장은 계속 말했다.
“초능력 각성 이전에는 시스템이 타락하면 최후의 수단으로 혁명이 가능했습니다. 썩어버린 시스템을 청소하고 재시작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대중의 손에 있었죠. 하지만 초능력 각성이 벌어진 이후 그런 혁명은 불가능해졌습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따라서 모두가 방아쇠를 당기는 것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총기가 보급된 이후에야 비로소 진정한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어떤 독재자도 총탄을 맞고도 살진 못하니까.
하지만 이제는 총알을 맞아도 꿈쩍하지도 않는 이가 존재하는 세상이 되었다. 총기도 없이 사람을 수십 수백을 죽일 수 있는 자가 존재하는 세상이 되었다. 시스템이 썩어버리면 민중이 아니라 힘을 가진 누군가가 나서야 하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었다.
정호태 지부장은 미래를 그렇게 보고 있었다.
“그래서 저를 선택한 건가요?”
정호태는 대답했다.
“선택이 아닙니다. 필연이죠. 불필요한 희생과 비극을 피하기 위한 필연.”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단언했다.
경완이 물었다.
“왜 저를 그렇게나 믿죠?”
“경완 씨의 지난 행적을 보세요. 당신은 힘에 취하지 않고, 부귀영화에 흔들리지 않으며, 인간의 추악함을 혐오하고, 약자를 동정하며, 강자의 겁박에 분노하죠. 이런 당신을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겠습니까?”
한 인간을 믿기 위해선 그의 행적을 봐야 한다. 아무리 입에 발린 말을 해봤자 행동보다 강력하지 않고 진실하지도 않다.
정호태는 왜 사람들이 후보자의 과거도 살피지 않고 무지성으로 투표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면서 사족을 달았다.
그 와중에 경완은 생각을 정리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다. 무르고 싶다고 해도 물러지지 않는다. 아무리 경완이 기자회견의 내용을 철회시켰다고 해도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보지 않을 거다. 이미 이경완이라는 최강의 초능력자에게 위버멘쉬라는 강력한 초인집단이 붙을 우려가 머리에 각인되어 버렸다.
쿠데타로, 무력으로 권력을 장악당한 역사가 두 번이나 있는 이 나라에서 강력한 무력을 갖춘 사조직을 어떻게 볼까?
더구나 그 머리가 될 사람이 차량으로 국회의사당에 돌진하는 테러를 저지른 전적이 있을 정도며 정부와 딱히 상의조차 하지 않고 제멋대로 이웃 나라에 원전테러까지 저지른 미친놈이다.
걱정을 하고 싶지 않아도 도저히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 아닌가?
이런 지경에 이른 것에 정호태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었기에 경완은 정호태가 도저히 곱게 보이질 않았다. 기사회견만 없었다면.
그렇다고 여기서 정호태를 내치는 것은 병신같은 짓이었다. 경완을 보호해 줄 울타리를 치우는 짓이었기 때문이다.
“정리해 봅시다. 일단 저는 위버멘쉬 같은 조직을 거느리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경완 씨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정호태 지부장은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그는 혓바닥이 길었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는 않아요. 저도 이런 역할을 맡기는 싫었습니다.”
세상에는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게 마련이었다. 내 잘못은 아니지만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나의 의지에 상관없이 부여된다.
마치 나도 모르게 상속된 빚처럼 강제적인 의무를 부여하고, 거기에 화가 나서 그 의무를 외면하려고 하면 벌을 주는 것이 불합리하게 돌아가는 이 세상의 구조였다.
재벌 집안에 태어나지 못한 것도 억울한데 내 부모가 진 빚이나 갚으라고?
이 불합리함에 징징거려봤자 귀 기울이는 이는 없었다. 징징거리고 회피할수록 현실은 시궁창을 넘어 지옥으로 변할 뿐.
이럴 때 유일한 방법은 두 가지였다. 당장 자살하던가 아니면 이 불합리한 현실에 맞서 싸우든가.
경완은 자살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이 불합리함에 맞서 싸운다고 세상 전체를 불태워 버릴 생각도 없었다. 외로움과 현실의 고통에 찌들어 총기난사 사건이나 벌일 정도로 경완은 나약하지도, 악의가 가득 차 있지도 않았다.
생각을 정리한 경완이 입을 열었다.
“댁과 그쪽의 입장은 이해해요. 불가피한 미래라고 하니까. 그러니까 잠깐 일어나 보실래요?”
그 말에 정호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왜 일어나라고 하는 걸까?
경완이 말을 이었다.
“가드 올려요.”
“네? 컥!”
묵직한 정권이 기습적으로 명치를 올려치자 정호태의 입에서 혀가 튀어나왔다.
경완은 주먹을 허리춤으로 당기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가드 올리라고요.”
“왜, 왜?”
정호태는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지도 못하고 물었다. 저절로 뒷걸음이 쳐졌지만 염동력이 그의 뒤도 막아버렸다.
경완이 대답했다.
“가능성이 높은 미래라지만 결국은 미래잖아요? 댁이 한 짓은 어차피 죽을 운명인데 왜 사냐고 깐족대는 거랑 똑같거든요.”
“깐족댄 적 없, 쿠엑!”
“일단 제가 화난 상태니까 맞읍시다.”
“자, 잠깐! 켁!”
“가드 올리라니까요.”
경완의 주먹이 광대뼈를 가격하고 리버블로를 날리고 명치도 치고 내장도 울리게 하는 등 화려한 콤비네이션을 보여줬다.
그렇게 주먹질을 좀 해서랄까 경완의 화는 빨리 풀렸다. 상대의 호르몬 시스템에 영향을 가해 호감을 유발하는 정호태 지부장의 필사적인 노력 탓에 동정심이 일어난 것도 20%쯤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