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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99화 (299/367)

무한전생-더 빌런 299화

28-쿠데타

모든 친일파가 매국노가 되고 싶어서 된 것은 아닐 것이다. 독립운동가였다가 변절한 자들도 처음부터 변절을 생각하고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신념을 지킨다는 건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이 어려운 이유는 눈앞에 높인 쉬운 길의 유혹보다는 가혹한 희생이란 고통을 요구하기 때문이었다.

희생을 기꺼이 감당할 각오가 있다고? 경완이 장담컨대 막상 그 희생을 겪게 되면 삶에 회의를 느낄 인간들이 99%였다.

대통령의 표정을 살핀 경완이 말을 이었다.

“대통령님, 이렇게 합시다. 세상엔 공짜가 없는 거니까. 제가 원하는 걸 알려주시면, 저도 대통령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죠.”

“좋군.”

“아, 하지만 착각하시면 안 돼요. 고작 말 한마디에 거창한 걸 들어줄 생각은 없으니까요.”

경완의 말은 밝아지던 대통령의 표정은 곧바로 어둡게 만들었다. 경완은 실망하는 대통령을 다독였다.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생각하세요. 제가 대통령님께 듣고자 하는 이야기는 대통령님이 아니라도 들을 수 있다는 걸. 날로 먹으려고 하시면 제가 곤란해요.”

“그렇군. 알겠네. 계엄 사령관의 위치가 궁금하다고 했지?”

계엄 사령관은 오대산 국립공원에 있었다.

“국립공원에요? 거기엔 왜요?”

“초능 특수전 부대의 훈련소, 아니 수용소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지.”

“수용소요?”

대통령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국가 안보란 미명 아래 행해진 인권 억압의 그림자랄까?

하지만 경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따지고 보면 수용소가 아닌 군대가 있기는 한가요?”

제대로 외출도 못 하고, 시간당 최저시급도 안 주고 부려먹히고, 온갖 악폐습에 의문사가 수시로 벌어지며, 병신 되면 남의 아들, 죽으면 누구세요라며 안면을 몰수하니 솔직히 교도소보다 더한 게 대한민국 군대의 현주소 아니겠는가?

교도소는 죄지으면 가지면 군대는 대한민국에서 신체 건강한 남성으로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죄였으니까.

“자네는 군대도 안 갔잖은가? 그들이 느낀 걸 똑같이 느낄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러는 대통령님은 군대 가셨어요?”

“…….”

말은 없었지만 대답은 들은 걸로 칠까?

경완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아는 척하실 수 있어요?”

“……계엄 사령관 덕분이지.”

대통령이 설명하길 계엄 사령관 정청완 준장은 정신계 텔레파시 능력자였다.

그렇기에 초능 특수전 부대의 책임자로서 부대원들을 잘 다독이며 충실한 국가의 인재로 육성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쿠데타를 일으키고 말았다나?

대통령은 씁쓸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면서도 한 가닥 그들을 위한 옹호를 감추지 않았다.

“그들이 받은 부당한 대우를 진즉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그거 세뇌 아니에요?”

경완이 툭 던진 말에 대통령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세뇌라니?”

“계엄 사령관이 정신계 능력자라면서요? 거기에 당해서 쿠데타를 옹호하는 거 아니었어요?”

“…그렇지 않네.”

대통령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공감했기 때문이겠지.”

“뉴타입인가?”

“뉴타입? 그게 뭔가?”

“아, 그렇게 있어요.”

뉴타입을 모르니 건담도 모르겠지. 신인류의 공감능력이 세계평화에 어쩌고저쩌고를 설명해 줘봤자 재미도 없을 거다.

계엄 사령관이 대통령에게 무엇을 했는지 가늠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텔레파시 능력으로 억울함을 경험할 때의 감정과 생각을 공유했겠지. 인간은 상대를 이해하는 만큼 용서하고 관용을 부릴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저는 들을 만큼 들었으니 이제는 대통령님 차례예요.”

“흐음…….”

대통령은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

“자네는 계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에게 손해인지 이득인지 따져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죠.”

“…자네는 민주시민이 아니었던가?”

“제가요?”

대통령과 경완은 서로 놀라서 눈을 떴다.

먼저 말을 이은 건 경완이었다.

“무슨 오해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시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딱히 민주시민이 아니에요. 제가 민주주의에 투철한 인간이었다면 지금 바로 쿠데타를 막으려고 이리저리 움직였을걸요?”

“그럼 계엄 사령관을 왜 만나려는지 알려줄 수는 있겠나?”

“대화가 목적이라고 제가 말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무슨 대화인지 알려달라는 말일세.”

“그거 중요한가요?”

“그 대화가 우리나라의 운명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을 것 같아서 말일세.”

그렇게 되는 건가?

경완은 대화의 향방과 그것이 가져올 결과의 파급을 생각해 보니 대통령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군대도 안 갔다 와서 아무나 대통령으로 뽑은 줄 알았는데 최소한의 머리는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런 파급력까지 그가 고려해야 할 의무는 없었다.

“어…… 딱히 나라의 미래를 논하는 자리는 아니에요. 그냥 제 이익과 제 주변 사람의 안전에 관한 걸 논하는 자리가 되겠죠.”

“그런가?”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고, 경완은 더는 이야기할 것이 없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불청객은 이만 갑니다.”

“잘 가게.”

대통령은 경완이 사라지자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래, 그가 왔다 갔다네. 그래, 자네 위치도 알려줬지. ……내가 비록 자네에게 협조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믿는 건 아니라는 걸 이해하게. 사람의 마음은 변하는 거라는 걸 난 잘 알고 있다네. 그러니 보험이 필요하잖나? 그래, 알았네. 그렇게 하지.”

통화를 마친 대통령은 담배에 불을 피우고 입에 물었다. 그리고 희뿌연 연기를 내뿜고는 고개를 젖혀 천장을 보았다.

계엄 사령관의 위치를 경완에게 발설하면서 계엄 사령관에게 진 빚을 무엇으로 갚을까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소속정당원들을 좀 단속해 주는 것이 적절한 카드로 보였다.

세상은 공짜가 없으니까.

세상살이는 결국 주고받는 것이 다였다. 은혜도 원한도 언젠가는 돌려줘야 하는 것이 세상살이의 이치였다. 그리고 그렇게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운도 따라줬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 운을 시험해봐야 할 때가 왔다. 그 운에는 이 나라의 미래가 걸려 있었다.

대통령은 다시 한 번 담배를 빨았다.

* * *

강원도에 있는 오대산 국립공원.

경완은 높은 고도에서 내려다보면서 오대산 국립공원에 있는 인위적인 시절과 구조물들을 탐색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국립공원의 북쪽 지역 산기슭에서 군부대로 보이는 시설을 발견했다.

공병대를 이용해 건설한 듯 투박하다 못해 허름해 보이기까지 한 건물들은 약 천 명가량을 수용할 수 있어 보였다.

그런데 경완이 가까이 내려가 보니 좀 이상한 장면이 눈에 보였다. 중장년의 남성들이 군 활동복을 입고 유격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전투복을 입은 군인들이 감시하고 있었고 말이다.

경완은 유격을 시키고 있던 조교 앞에 착륙했다.

“비상!”

누구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바로 비상을 때리는 태세를 보아하니 참군인이다 싶었지만 경완은 싸울 생각이 없었다.

“잠깐잠깐잠깐! 나 누군지 알고 싸우려는 거예요?”

“여기는 군시설입니다! 민간인은 함부로 들어오시면,”

“나 이경완이라는 사람인데 모르겠어요?”

“……이경완?”

“중국 핵발전소 터뜨리고, 국회의원에게 칼침 놓은 이경완이요.”

그제야 경완의 얼굴을 알아봤는지 조교의 눈이 부릅떠지더니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비상! 비사아~~앙!”

“아우 시끄러!”

경완은 인상을 찌푸렸고, 초능력을 가진 병사들이 서둘러 그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다들 초능력 무효화 영역을 전개할 수 있는 확장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다들 초능 특수전 부대 소속인가요?”

“군시설을 함부로 침입한 이유는 뭡니까?!”

“계엄 사령관님을 좀 만나고 싶어서요.”

그 대답에 경완을 향한 경계가 적의로 바뀌었다. 그러자 그는 얼른 두 손을 머리 위로 들며 병사들을 진정시켰다.

“아, 그냥 건설적인 이야기나 좀 하고 싶을 뿐이에요.”

“아, 안 돼!”

그 말에 안타까움이 가득한 비명을 지르는 건 유격을 받고 있던 중년의 남성들이었다.

그 비명에 경완이 그들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그중 누군가가 급히 입을 열었다.

“쿠데타에 굴복하지 마시오!”

“우리를 이렇게 잡아두고 가혹행위하고 있는 것이 이들의 참모습,”

“닥쳐, 이 새끼들아! 법꾸라지 새끼들이 말이 많아!”

조교가 중년 사내들을 발로 차며 입을 다물게 했다.

맞은 사내들은 경완에게 도와달라, 왜 보고만 있냐 애원했지만 경완은 귓구멍을 파며 들은 척만 척했다. 말하는 본세를 보니 어떤 부류의 인간들인지 짐작이 되었기에 더 얽히기는 싫었다.

하지만 이용가치가 전혀 없진 않았다.

“저기 계엄 사령관님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치들을 여기서 빼내면 놀라서 나오실까요?”

“저들은 사법체계를 제 입맛대로 휘두르며 법치를 흐트린 자들입니다! 아무리 당신이 이경완이라고 하더라도…….”

“그만.”

경완의 협박에 병사들이 저항하려는 순간 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경완의 기억에 있는 음성이었다. 계엄 사령관의 발표를 꼼꼼히 들었으니까.

“계엄 사령관님. 이렇게 직접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경완입니다.”

“내게 용무가 있다고요?”

계엄 사령관 정청완 준장은 탐색하는 눈빛으로 경완을 살폈다. 경완이 그를 공격하지 않을 거라 믿는 것인지, 아니면 경완의 공격이 그를 해하지 못할 거라 믿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두려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경완은 눈을 껌벅이며 대답했다.

“왜 이러세요? 먼저 제게 용무가 있었던 건 계엄 사령관님이 아니세요? 제집에 군부대까지 보내셨던데?”

“그건 당신을 이용하려는 자들로부터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호~ 그러셨어요?”

“믿든 말든 당신이 판단하십시오.”

경완은 더는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지 않기로 했다. 정청완 준장의 태도를 보니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였다. 하긴, 보통 사람이 쿠데타 따위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얘기 좀 합시다. 좀 건설적인.”

“그러죠. 따라오시죠.”

경완이 정청완 준장을 따라 도착한 곳은 부대장실이라는 명패가 걸린 방이었다.

내부로 들어가 보니 정청완 준장이 예전부터 사용한 것 같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쿠데타 사령관 정도 되면 어디 아방궁 같은 곳에서 향후 즐길 권력의 달달함을 시음하거나, 아니면 불온 세력을 색출할 때까지 벙커 같은 곳에 처박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정청완 준장은 그런 상식(?)과 달리 예전부터 사용하던 집무실을 계속 사용하고 있었다. 책상에 높인 명패에 정청완 준장의 이름이 박혀있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었다.

“커피?”

“감사.”

정청완 준장의 제안에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두 사람은 믹스커피가 담긴 종이컵 두 잔과 함께 이야기를 시작했다.

먼저 입을 연 건 정청완 준장이었다.

“이 시설이 어떤 곳인지 아십니까?”

“대통령 각하는 수용소라고 표현하던데.”

“그럼 아까 만났던 남자들은 누군지 짐작이 됩니까?”

“숙청 대상이겠죠. 사령관님께서 언론에 발표했던 내용에 따르면요.”

정청완 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법 카르텔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권한이 있으면 그 권한을 쟁취하려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죠.”

권력과 권한이라는 이름의 트로피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항상 착각하고 사는 것이, 경쟁이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시장이 굳어지면 기업들은 자연적으로 경쟁을 기피하게 되고, 말 없는 담합을 시작하게 되니, 이는 권력과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경쟁도 마찬가지다.

그 치열한 경쟁에서 혼자의 능력으론 탐나는 감투를 쓰기도, 그것을 지키기도 힘드니, 결국 동지를 모으고 연대해서 감투를 돌려 쓰는 것. 이것이야말로 카르텔의 탄생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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