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300화
28-쿠데타
“밖에 있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죠.”
청와대와 국회를 제압한 정청완 준장이 다음으로 제압한 곳은 법원과 검찰이었다. 특히 검찰에서 사법 카르텔이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을 색출해서 모조리 잡아다 여기 초능 특수전 부대의 시설에다가 가둬둔 것이다.
이 명백한 납치 행위에 경완이 물었다.
“왜 그러셨어요?”
“제가 언론에 발표한 대로 행했을 뿐입니다.”
“오올~”
경완은 감탄했다. 저 말이 진심이라면 그 대단한 대의에 감탄한 것이고, 저 말이 거짓이라면 경완조차 속을 정도로 대단한 거짓말쟁이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그가 감지한 정청완 준장의 신체반응은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 않았으니까.
“경완 씨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요?”
경완은 잠시 생각을 해보다가 대답했다.
“원래 새로운 권력자가 부상하면 둘 중 하나죠. 기득권과 붙어먹던가, 아니면 기득권을 숙청하고 그 영향력을 빼앗던가? 제 생각엔 아마 후자를 택한 것이라고 봅니다.”
“……제가 사리사욕 때문에 이러는 것 같습니까?”
“사리사욕이든, 대의 때문이든 상관없어요. 권력의 속성이 원래 그렇거든요. 솔직히 대의를 위해서라고 해도 방해할 세력은 치워놔야 일을 진행하는 게 편하고 효율적이거든요.”
경완이 더 나아가 생각해 보니 대기업이나 재벌을 조지려니 경제가 뒤숭숭해져서 일단 사법권력부터 장악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이런 거다. 군부의 총칼이 강도가 협박용으로 사용하는 커다란 일본도 같은 거라면 사법권력은 세밀한 종양 절제용 메스랄까?
앞으로 한국 사회를 쿠데타 정권 마음대로 수술하려면 총칼보다 사법권력이 필요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제가 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는 겁니까?”
“아닌가요? 쓸데없는 낭비는 곧 쓸데없는 희생과 동의어일 텐데요?”
그래서 지휘관은 때론 목숨을 숫자로 다룰 필요가 있었다. 어찌 돌아갈지 알 수 없는 전장에서 불가피한 희생을 망설이면 더 많은 죽음을 감당해야 하니까.
경완의 말에 정청완 준장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제가 왜 쿠데타를 일으켰는지는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흐음. 알려주신다면 듣죠.”
경완이 대답했다. 감정적으로는 별로 궁금하진 않았지만 정청완 준장이 말해주는 내용에 담긴 정보가 혹시 앞으로의 계획에 요긴하게 쓰일지 몰랐다.
그러자 정청완 준장이 제안했다.
“말로 하기보다는 텔레파시는 어떻습니까? 주저리주저리 말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요?”
“혹시 막 서로 생각이 교환되거나 하는 건 아니죠?”
“아니요. 제 기억만 전달할 겁니다.”
“오~ 그게 가능해요?”
경완이 생각하는 패스의 효과를 생각하면 본인의 정보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텔레파시가 의미하는 건 정청완 준장의 정신계 능력이 매우 특출 나다는 것이다.
경완이 감탄하는 반응을 보이자 정청완 준장이 호기심을 보였다.
“텔레파시 능력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신 모양이군요.”
“정신계 능력을 몇 번 경험한 적 있거든요.”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제 정신계 능력이 어떻게 당신의 정신에 영향을 미칠지 모르지 않습니까?”
경완이 볼을 긁적이며 대꾸했다.
“제가 경험한 놈 중에 마인드 브레이커라는 놈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별로 걱정이 안 되네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텔레파시 능력은 가스라이팅이나 세뇌에도 응용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 정도로 깊게 연결되면 저보다는 사령관님 정신을 걱정하셔야 할 거예요.”
“…….”
“제 머릿속이 보통 비범한 게 아니라서요.”
경완이 솔직하게 주의할 점을 알려주자 정청완 준장은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경완의 소박한 경고가 호의라고 생각한 것일까, 아니면 가소롭다고 생각한 것일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의문을 흘려버린 경완에게 정청완 준장이 말했다.
“그럼 제 텔레파시 능력을 사용해도 될까요? 제가 왜 쿠데타를 했는지 그 이유가 시간의 역순으로 전달될 겁니다.”
“역순이라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괜찮습니다. 이게 뇌에 바로 넣어주는 거라 뇌에서 알아서 정리해 줍니다.”
영화 한 편을 다 보려면 처음부터 찬찬히 봐야 하지만 일단 다 보고 그 내용을 다 기억하면 영화의 내용을 떠올리는데 굳이 순서가 필요 없는 이치와 같다나?
정청완 준장의 설명은 다소 위험스럽게 느껴졌지만 경완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무한전생자인 자신의 머리에 한 사람의 기억이 다 들어와 봤자 그게 무슨 타격이 있겠는가? 더구나 거르고 걸러서 쿠데타의 당위성을 뒷받침하는 기억들만 편집해서 들어올 텐데 말이다.
경완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청완 준장이 능력을 일으켰다.
경완은 그의 머리에서 뻗어나온 패스가 자신의 머리에 붙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정청완 준장의 의식이 느껴졌다.
[제 말 들리십니까?]
그 말에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부터 집중해 주세요.]
정청완 준장의 말과 함께 이미지가 밀려 들어왔다. 경완은 집중해서 그 이미지를 받아들였다.
정보의 전달은 금방 끝났다.
“어떻습니까?”
정청완 준장의 물음에 경완은 머리로 받아들인 이미지를 찬찬히 떠올렸다.
그 이미지들은 정청완 준장이 능력을 사용하기 전에 말한 것처럼 쿠데타를 일으키기까지 그가 경험했던 것과 느꼈던 것, 그리고 결단까지의 과정이 녹아 있었다. 비유하자면 마치 1인칭 독백영화 같은 느낌이었다.
“잘 전달된 것 같아요.”
“제가 쿠데타를 일으킨 이유는 뭐죠?”
“이 나라를 망치고 있는 적폐에 대한 분노?”
경완의 대답에 정청완 준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질문했다.
“제가 군부를 제압한 방법은?”
“텔레파시를 이용해 회유하거나 그럼에도 회유하지 못한 이들을 모종의 장소에 억류했죠.”
그 모종의 장소에 대한 건 정보 보안 때문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경완은 그 사실에 적잖이 감탄했다. 이렇게 세세한 부분의 정보도 편집할 수 있을 정도로 정청완 준장이 자신의 생각과 기억을 다루는 능력이 매우 비범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정신계 능력이란 단순히 패스만을 다루는 기술이 아니라 그 내용물까지 고려해야 하는 법이니까. 예를 들자면 소프트웨어를 잘 다룬다고 할 수 있달까?
하긴 무능한 자가 쿠데타를 일으키는데 밑에서 지지할 리가 없었다.
정청완 준장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제가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나라, 대한민국의 존속과 번영이요.”
경완의 대답에 정청완 준장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경완이 건네받은 기억이 사실이라면 정청완 준장의 목적은 경완의 입에서 나온 그대로였다.
그렇다고 정청완 준장에게 한 톨의 사심도 없는 것도 아니었다.
“정말 솔직하게 전달하셨네요. 불의를 응징하고자 하는 정의감의 충족, 제2의 국부라는 명예욕, 그리고 가족들을 위한 거액의 연금까지.”
개인적인 욕구 해소와 자아실현은 물론 경제적 혜택까지 모두 고려한 것도 경완에게 전달한 이미지에 섞여 있었다.
경완의 말에 정청완 준장은 민망하게 웃었다.
“굳이 그걸 말씀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걸 말하는 게 상당히 부끄럽다는 생각마저 첨부했는데도 경완은 뻔뻔하게 입 밖으로 꺼낸 것이다.
하지만 경완은 1절로 끝나지 않았다.
“솔직히 사령관님이 중증 노출증 환자 저리가라 할 정도의 변태가 아닐까 의심했을 정도였어요.”
“상대를 설득하려면 부끄럽더라도 진심으로 부딪혀야 하는 법이죠. 덕분에 많은 협조자를 얻었습니다.”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솔직함이 확실히 전달된 이미지와 정청완 준장의 진심에 대한 신뢰를 끌어올렸으니까.
확실히 설득과 회유에 대단히 특화된 능력이었다. 과연 정신계 능력이랄까?
정청완 준장이 말을 이었다.
“전 제게 이런 능력이 생겼다는 걸 축복으로 생각합니다. 세상의 많은 비극이 오해로 빚어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 능력이 없었다면 쿠데타가 이렇게 적은 피해로 성공했을 리가 없죠.”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에게 정청완 준장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경완 씨. 어떻습니까? 저를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경완은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문득 드는 생각이 바로 이 순간이 계엄 사령관이 노리던 바가 아니었을까?라는 것이었다. 준장의 능력은 설득과 회유에 매우 강한 강점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정청완 준장이 전달한 텔레파시의 내용이 진실이라고 치자. 그렇다고 그것이 과연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까?
경완은 과거를 돌이켜보았다. 모두가 원하는 길이 모두에게 이익인 길은 아니었다. 선의가 항상 좋은 결과를 일구어내는 것도 아니었다.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선 항상 적절한 수단과 운이 따라줘야 했다.
경완의 고민은 거기에 있었다. 운이야 하늘에 맡겨도 적절한 수단이라는 부분에서 과연 그의 협조가 적절하냐는 질문은 세세하게 따져봐야 했다.
이 의문에 대한 경완의 대답은 이러했다.
“과도해요.”
“네?”
“저까지 사령관님의 편을 드는 게 과도하다는 겁니다.”
“……혹시 저를 막으실 생각입니까?”
“그건 아니고 방관자의 자세를 취하고 싶다는 겁니다.”
그 말에 정청완 준장은 긴장과 함께 미간을 찌푸렸고, 경완은 검지를 펴며 오해가 없도록 좀 더 설명했다.
“현실적 문제를 보죠. 저가 협조한다고 합시다. 그렇게 되면 확실히 반대파들을 억누를 수 있겠죠. 하지만 그게 능사일까요? 불리함을 느껴서 속내를 감추고 구밀복검하며 권토중래할 기회를 노리는 자들이 있다면 어떻게 할 건가요? 과연 그들을 색출할 수 있을까요? 색출한다고 해도 그 과정이 과연 순탄할까요? 공든 탑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입니다.”
경완은 손가락을 하나 더 펴며 말했다.
“또 하나는 조직 내부적인 문제입니다. 쿠데타는 물론이고 사령관님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려면 조직적인 협조가 필수인데, 과연 저를 영입하면 그 조직은 어떻게 될까요? 저에 대한 대우는 어떻게 할 겁니까? 이를 보는 다른 조직원의 시선과 감정은요? 어떻게든 문제가 발생하리라는 건 뻔해요.”
이경완이 본인의 역량에 맞지 않는 대우에 만족한다?
그럼 다른 인재들은 감히 더 나은 대우를 요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경완이 본인의 역량에 맞는 대우를 원한다?
그 대우를 위해 분배되는 조직의 자원은 둘째 치고 상대적 박탈감은 어찌할 것인가?
인간이 모였을 때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자원의 배분이었고, 조직의 발전과 유지를 위해서는 이 자원의 배분에 반드시 구성원 대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원칙이 있어야 했다. 여기서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원칙이 바로 신상필벌이었다. 잘하면 상을 받고 못하면 벌을 받는 것.
하지만 이 시스템은 경완이 끼어드는 순간부터 흔들린다. 그는 대체 불가능한 인적 자원이었고, 그가 조직 내에 원하는 포지션은 반드시 그의 것이 될 것이며 이는 반드시 갈등을 촉발한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정청완 준장과 그를 따르는 무리로 이루어진 조직은 경완을 담기엔 그릇이 부족했다.
조직의 비전. 대한민국의 존속과 번영? 한 세계를 구원해본 구원자였던 경완에겐 식상했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별로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더 그러했다.
조직 수장의 그릇. 분명 능력 있고 대단한 사내임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경완이 따를 정도로 대단한 카리스마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조직에 몸을 담는 것에 대한 대가. 오히려 갈등을 빚을 여지가 더 컸다. 쿠데타를 시작한 창업공신도 아니고 굴러들어온 돌이잖은가?
“정말 궁금하지 않나?”
“제가 그런 거까지 신경 쓰기엔 겪은 세상 풍파가 많아서요. 대통령님 나름의 고충이 있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