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307화
29-역사는 거꾸로 간다
정호태는 이렇게 대꾸했다.
“쟤도 이제 훈련소에 끌려가겠네요.”
초능 특수전 부대가 청와대에 이어 의회를 장악했을 때 대항한 히어로들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TSTG가 없던 그들은 중화 영역 때문에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제압된 후에 훈련소에서 3일간 얼차려 및 정신교육을 받고 나서야 풀려났다.
그런데 그중에는 정청완 준장과 면담을 한 후 오히려 쿠데타를 지지하기까지 한 이가 있었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히어로 컴퍼니 한국지부는 등록된 히어로들에게 일제히 문자를 돌려 정치적 중립을 지켜줄 것을 당부했다.
이는 단순히 권력자에 대한 부담 때문이 아니라 정청완 준장의 능력 때문이었다. 이미 그를 지지하는 히어로가 생겼으니 나중에 또 회유된 히어로가 나오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는데, 이는 쿠데타가 성공하든 아니든 향후 히어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악영향을 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괜히 연예인이 정치적인 의사 표현과 거리를 두겠는가? 이는 엔터테인먼트라는 명칭이 붙은 히어로 업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거 TSTG 맞죠?”
경완은 정리된 기자회견장에서 정청완 중장을 경호하기 위해 좌우로 선 초능 특수전 부대원들의 복장을 보고 말했다. 그들은 TSTG를 입고 있었다. 초능 특수전의 전력이 차근차근 강화되고 있다는 증거였고, 이는 지금의 정국을 주도하는 원동력이 여전히 강력한 무력임을 정청완 중장 본인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역시 허점을 보강했네요. 중화 영역의 약점에 대한 정보가 새어 나간 정황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요.”
“뭐, TSTG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다면 그렇겠죠.”
경완이 대꾸했다.
바로 칼을 대지 않고 있지만 정청완 중장은 아마 대기업의 동향에 대해서 면밀히 살피고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 대기업이 TSTG를 확보하려는 정황을 파악했을 가능성도 높다. 그러니 TSTG를 선점하고 또 저렇게 선을 보이고 있는 거 아닐까?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경고의 표시로 말이다.
“방금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계속 진행하네요.”
“군인이니까요.”
정호태의 말에 경완이 대꾸했다. 화면 속에선 정청완 중장이 정리된 현장에서 계속 발표하는 게 보였다.
이 해프닝이 시련을 꿋꿋하게 이겨 나가는 군인다운 모습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려는 일종의 쇼일 수 있다는 발상은 너무 삐뚤어진 생각인가?
경완은 그런 상상을 뒤로하고 정청완 중장의 발표를 들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발광하는 언론에 채찍을 들겠다는 뜻이었다.
이는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것과는 달랐다. 마음대로 떠들어라. 하지만 허위사실 유포나 개인 사생활 침해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말이었다.
“슬슬 언론에 칼을 대는 거 보니까 벌써 기획재정부랑 감사원은 정리가 끝났나 봅니다. 다음은 대기업일까요?”
정호태의 말에 경완은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언론에 칼을 댄 것이 아니라, 슬슬 속도를 늦추겠다는 신호로 보이는데요?”
“네? 저렇게 선전포고를 했는데요?”
“정청완 중장이 여태 해온 방식을 보세요. 적폐라고 생각되면 일단 잡아 가두고 봅니다.”
굳이 죽일 필요도 없었다. 적폐적인 인물의 영향력이 말소된 이후엔 풀어줘도 상관없었다. 훈련소에 잡아 가둔 이들 전부가 공직자라는 점 덕분에 그러한 전략이 더욱 효과적이었다. 결국 자리가 없어진 공무원은 아무것도 아닌 잉여인간이 아닌가? 언론에선 말을 아꼈지만 물갈이된 검찰에선 훈련소에 수용된 이들에 대한 수사와 구속영장을 진행 중이라는 말이 파다했다.
목적은 명확했다. 공직에서 그들을 끌어내리고 옷을 벗기는 것이다.
이러한 소식은 한국 언론이 아니라 외신을 통해 매우 잘 알 수 있었다.
경완이 말을 이었다.
“그동안 정청완 중장은 인적 청산부터 해왔어요. 전쟁에 비유하자면 전격전이랄까?”
적을 분쇄하고 나면 그 지역을 점령한 후 안정화를 해야 하는데, 안정화보다는 적폐 인사라는 적 병력부터 격파해 온 것이 정청완 중장이 여태 보인 행보였다. 그러니 언론을 공격하려고 했다면 단순히 사주를 잡아 가둬 인질 삼을 것이 아니라, 언론 주필 등 언론의 방향성을 지도하고 프레임을 짜는 언론 엘리트를 잡아서 가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경완은 그 이유를 전쟁의 지형이 바뀌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전격전을 벌일 수 있는 지형은 여기까지랄까? 언론과 재벌을 전격전의 방식으로 처리할 순 없었다. 그들은 공직자들처럼 옷을 벗길 수 없는 자들이었으며 잡아 가둔다고 그 영향력이 완전히 소멸하는 부류도 아니었으며 공무원처럼 대체 가능한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걸 무시하고 억지로 여태 해왔던 방식을 취하면 막대한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고, 국민적인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이는 정청완 중장이 바라는 바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기자들을 잡아 가두지 않고 저렇게 법적으로 처리하겠다고 발표한 거죠. 가만히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물갈이된 검찰은 이제 고소인과 피고소인이 누구냐에 따라서 고무줄 잣대를 들이밀지 않을 것이다. 물론 언론에서는 검찰이 군부정권의 손발이 되어 언론을 탄압한다고 개거품을 물겠지만 진짜 그런 행동을 해서 비난의 빌미를 줄 정도로 검사(檢事)나 정청완 중장이 어리석지는 않았다.
경완이 정호태를 보았다.
“이제 슬슬 위버멘쉬 코리아도 바빠지겠네요. 정확히 말하자면 정 지부장님이겠지만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현재 위버멘쉬 코리아의 주요 인사들은 군부 정권에 찍혔다가 해제된 이들이잖아요. 그러니까 재계는 생각이 많을 겁니다. 도대체 이 인간들이 정청완이랑 무슨 딜을 했나, 어떻게든 끌어들여야 유리해지는데 뭔가 줄 것이 없을까, 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간을 보거나 아니면 대놓고 도와달라고 하겠죠.”
경완의 말에 정호태는 웃으며 말했다.
“그거 듣는 것만으로도 피곤하네요.”
“뭐, 그 피곤함은 저에게도 오겠죠.”
웃는 정호태와 다르게 경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잠잠해질 때까지 태평양에서 바스티앙에게 신세를 지고 싶은데 결심한 일이 있으니 그럴 순 없었다.
정호태가 그런 경완의 모습을 보며 농담을 건넸다.
“하하하. 경완 씨가 부지런할 모습을 다 보겠네요.”
“중국 까먹으셨어요?”
“……아…….”
정호태는 멍한 표정으로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러고 보니 경완이 부지런할 때는 주로 깽판 칠 때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날 저녁, 정호태는 경완의 예측에 혀를 내둘렀다. 갑작스럽게 기업인들이 리셉션을 여니 거기에 오라고 초대를 받은 것이다. 동행인도 한 명까지는 괜찮다면서 말이다.
정호태는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경완에게 연락했다. 아무리 정호태가 위버멘쉬 코리아의 지부장이라고 해도 지금은 쿠데타로 인해 군부 정권이 집권한 시기. 대기업이라고 똑같이 무력을 사용할 생각을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 점이 쿠데타의 문제점이었다. 힘이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것과 동시에 명분을 쥐여주는 것이니까.
“여긴가 보죠?”
“네.”
경완은 정호태와 나란히 걸어 리셉션이 열린다는 호텔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리셉션이란 어떠한 사람을 환영하기 위해 베푸는 공식적 모임이라는 뜻인데, 대체로 환영, 축하의 의미를 지녔다. 그런데 무엇을 축하하고 환영한다는 뜻일까?
두 사람을 안내한 호텔 직원은 연회장 문 안으로 두 사람을 들였다. 닫힌 문 앞 좌우에는 양복을 입은 건장한 사내들이 입구를 철통처럼 경비하고 있었다. 경완의 감각은 그 두 사람이 초능력자임을 감지해 냈다.
“확실히 단순한 친목 모임은 아닌 것 같네요.”
경완의 말에 정호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삼엄한 경비를 생각하니 생각보다 중요한 의제를 논하는 모임인 것 같았다.
연회장 안으로 들어간 정호태는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그리로 향했다.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정 회장님 아닙니까?”
“이게 누군가 정 지부장 아닌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있던 모모 그룹의 정준호 회장은 정호태를 보더니 살짝 딱딱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정호태는 그와 악수를 하고는 경완을 소개했다.
“경완 씨, 인사하세요. 모모 그룹의 정준호 회장님입니다.”
“안녕하세요.”
“오! 이게 누군가? 최강의 초능력자 아닌가?”
“그래요? 전 제 별명이 싸이코나 개또라이 미친놈이라고 알고 있었는데요?”
불쑥 던져진 말에 정호태는 아찔해져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 설마 이렇게 분위기를 개X창 낼 줄은 그도 예상하지 못했다.
갑자기 어색해진 분위기에 주변의 사람들이 눈알만 굴리자 경완은 만면에 호의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도 정 회장님께서 저를 최강의 초능력자라고 불러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하. 하! 누가 감히 경완 씨 앞에서 그런 상스러운 말을 내뱉었는가? 말만 하게 아주 그냥 혼꾸멍을 내줄 테니.”
경완이 웃으며 말했다.
“에이. 남한테 맡기느니 제가 먼저 구멍을 내죠.”
“구, 구멍?”
경완의 악명이 머리에 박힌 어느 회장님은 구멍이라는 말에 당황했다. 아마 사람 몸에 구멍을 내는 걸 상상한 모양이었다.
경완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에이, 혼꾸멍 말이에요, 혼꾸멍. 제가 또 혼백을 터는 것에 일가견이 있답니다. 제 능력 다들 아시죠? 진실의 스무고개. 거기에 걸리면 어릴 적 흑역사까지 죄다 털 수 있어요.”
경완이 웃으며 하는 말에 다들 얼굴에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정호태가 급히 끼어들어 딱딱한 분위기를 흐트러뜨리며 사람들과 인사하고는 간식 테이블에서 태연히 핑거 스낵을 집어먹고 있는 경완에게 다가가 목소리를 죽여 말했다.
‘너무 막 나가시는 거 아닙니까?’
아무리 정청완 중장과 불가침조약을 맺었다고 하더라도 대기업, 재벌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었다. 경완이 원하는 중립적인 포지션을 짜려면 두 세력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쪽이 효과적이었다.
경완이 정호태에게 속삭였다.
‘만만하게 보지 말라고 미리 밑밥을 깐 거죠.’
경완에겐 최강의 초능력자라는 별명만 있는 게 아니다. 미친놈, 개또라이 등의 별명도 있었다. 그런 별명을 생각해 보면 그가 중국에서 저지른 짓 때문에 힘만 믿고 앞뒤 없이 직진한다는 편견이 없다고 할 순 없으리라.
아마 정 회장이 경완에게 최강의 초능력자니 하면서 반갑게 맞이한 것도 그런 편견에 어화둥둥 경완의 기분을 띄우고 구슬려 이용하려는 심산이었겠지만, 그는 미리 거칠고 자극적인 모습을 보며 신중히 생각하라고 경고한 것이다.
그 말이 일리가 없지는 않았기 때문에 정호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갔다.
그 후 정호태는 경완을 데리고 여기저기 인사를 하러 다녔다. 물론 몇 명 만나러 다니진 않았다. 경완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이들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반갑습니다. 디디 그룹 회장님, 경성 그룹 회장님, 고령 그룹 회장님…….”
정호태는 찾아오는 회장들에게 경완을 인사시키느라 바빴다. 인사를 나눈 그들은 경완과 정호태의 주변에 서서 대화를 나누었는데, 대부분이 정청완 중장을 성토하거나 군부 정권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마치 경완보고 들으라는 듯이 말이다.
그러던 중 뭔가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누군가 경완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
“그런데 경완 군은 정청완 중장의 병사들을 만난 적 있나?”
“그건 왜 물으시는지요?”
“아니, 그냥 궁금해서. 최강의 초능력자와 쿠데타를 성공해 버린 초능력 병사들 간에 싸우면 누가 이길지 말이야.”